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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6, Jul 2020

전지적 여성향 시점

2020.6.5 - 2020.6.22 space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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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아름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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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기에 더욱 존재하는


어두에 여(女)자가 붙는 단어들이 으레 그렇듯 ‘여성향’이란 말은 ‘일반적인’ 오타쿠와 여성의 취향을 구분하기 위해 탄생한 표현이다. 오타쿠 문화의 향유 주체의 디폴트값은 언제나 남성이었기에 여성 취향의 장르는 별개의 카테고리로 치부되었고, 동인지 샵이나 오타쿠 굿즈샵에서는 여성향 상품과 일반 오타쿠 상품의 매대는 물론 판매 점포까지도 분리하곤 한다. 여성향의 영역은 여성의 욕망을 물화하는 소비사회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인 동시에 비-일반적인 것으로서 여성의 취향을 격리수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성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피력하고 창작하기 위한 공간을 추구한 이상 그곳은 언제나 위반과 해방의 함의를 갖는다.

스페이스 xx의 서늘한 지하 공간에 들어서면 아슬아슬하게 국부만 가린 남성의 나신에 포위된다. 하지만 동서양 명화의 풍경 속에 자리 잡은 남자들은 관람객을 도발하지도, 탐하지도 않고 초점이 살짝 풀린 눈으로 ‘조신하게’ 앉아 시선이 와닿기를 다만 기다린다. 관람객-여성들은 시선의 주체로서 마음껏 이들을 응시하고 탐닉하고 욕망할 수 있다. 전시장의 전면을 차지하는 신작 <少像勃莖(소상발경)- the Devil May Care>이 실제가 아닌 관념 속 이상적 풍경을 그리는 문인화의 전통인 <소상팔경>을 모티브로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전시장은 여성들이 자유롭게 욕망할 수 있는 상상적 공간, 김화현이 구축한 여성향적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 나신들만큼 주목을 끄는 것은 그림 곳곳에 자리하는 만화적인 장식들이다. 은은하고 섬세하게 그려진 인물과 산수들을 꽃과 깃털, 반짝이, 보석 등 순정만화들의 화려한 장식 효과들이 둘러싼다. 본래는 그림의 배경에서 주제부를 받쳐주어야 했을 이 장식들은 흑백이 선명한 만화적 필치로 그려져 인물들을 단순 배경으로 전락시키고 전면에 나선다. 휘감기고 얽매이고 꼬인 천과 끈들은 그저 예쁘기만 한 장식을 표방하지만 명백하게 포르노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질 나쁜 농담처럼 인물과 정경을 희롱한다. 작가는 이러한 표현을 일종의 ‘영역 표시’라고 말한다. 여성들이 구축한 시각언어 유산으로서의 순정만화의 기법들을 이용하여 그림을 응시하는 주체가 ‘여성’임을 분명히 하겠다는 것이다. 여러 대중매체에서 세상을 나이브한 로맨스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을 표현하기 위해 순정만화의 작법을 패러디하곤 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것은 유쾌한 전복이자 여성 중심 시각 문화에 대한 임파워링이 된다.

이렇게 김화현의 그림은 매번 동서양의 미술사적 전통들을 여성향의 세계관으로 끌고 와 뒤집어 왔다. 응시되는 오브제로서의 이상화된 여성의 신체를 남성의 그것으로 대체하고 선비들이 꿈꾸던 정경을 순정만화의 효과로 우악스럽게 덮어버린다. 미술사의 수많은 여성 혐오적 레퍼런스를 참조하고 패러디하며 그 권위를 무력화시키고 시선의 주체를 뒤바꾼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저 전복과 미러링이라고 치부하기에 그림 속 남성들의 육체에 대한 그의 표현은 집요하고도 도착적이다. 거기에는 자신이 열의를 다해 그려낸 남성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욕망이 자리한다.

여성이 욕망한다고 여겨지는 남성은 막연히 ‘꽃미남-일반’으로 호명되어왔다. 이것은 ‘진짜’ 남자가 아닌 존재,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고 남성으로 인정되지도 않을 비-현실적 존재에 대한 망상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핫 뮤직(Hot Music)>에서 김화현은 특정한 용모와 몸짓을 가진 락커의 실제 몸을 발견한다. 이것은 남성들이 서술한 역사에서 음악만이 신화화되어 관념적인 ‘전설’로만 발화되었으나 분명히 누군가가 의해 바라봐지고 욕망되고 있던 구체적 신체였다. 여성향의 공간이 열어주는 것은 여성 일반이 꿈꿀 것으로 생각되는 하나의 지향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특정한 여성 개인들 각각의 취향을 발견하고 보존하고 확장하는 길이다. 그렇기에 김화현의 <소상발경>에서 노니는 남자들이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이것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집합시킨 관념적 꽃미남이기 때문이 아니다. <핫뮤직>과 ‘외국 락 잡지’들을 탐독하던 김화현의 구체적이고 진정성 있는 욕망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少像勃莖(소상발경)-the Devil May Care> 2020 순지에 수묵 채색 195×550cm 5폭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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