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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0, May 2018

전소정
Jun Sojung

낯익음과 생소함의 만선(滿船)

그의 화면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여러 작가의 작품을 한 권에 합쳐 놓은 책이나 다양한 감독의 시선을 담은 옴니버스 영화마냥 전소정의 영상엔 사랑 혹은 증오, 기쁨 또는 절망, 자아 그대로의 에고나 인격의 가면인 페르소나 등등이 겹겹의 레이어처럼 쌓여있다. ‘결코 한 번에 알아챌 수 없는 스토리’라 지레 겁을 집어 먹어도 전소정의 작품은 시지각적 오감에 의해 보이고 느껴지는 본성이 알리바이로 존재한다. 오래도록 이름이 거론되는 작가 작품엔 공통점이 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여러 비밀들이 오버랩 돼 있는 것 같고,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암시하는 복선 같으며 그러다 어느 순간 작품은 마치 하나의 깊은 이야기를 담은 항아리처럼 느껴진단 사실이다. 아마도 직관 혹은 특수한 각도로 세상을 구경하는 작가들이 복잡한 매트릭스로 얽힌 사고를 작품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리라.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서지연

'형이상학적 해부(Metaphysical Dissection)' 2017 혼합매체 가변크기 송은아트스페이스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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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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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전소정의 이름을 들은 건 여덟아홉 해 전이고 그의 작품을 처음 본 건 2012년 초였다. ‘예술하는 습관’이라 이름 붙여진 개인전엔 단순한 에피소드를 반복하는 일곱 가지의 영상작업과 그 중 세 개를 상징적 이미지로 재구성한 사진작업들이 있었다. 어쩌면 나한테 일어날 수도 있고 설령 이미 겪었더라도 머리에 담아두지 않을 법한 지극히 소소한 상황을 덤덤하게 배치해 놓은 전시는 사뭇 낯설었다. 나에게 그는 연극적 구성과 무대, 퍼포먼스와 설치, 역사적 사료나 고전 텍스트를 차용한 내러티브를 동원해 압도적 영상미를 완성한다고 알려진 작가였다. 이처럼 서툰 선입견을 탑재한 관람객에 린치를 가하듯 그는 컴컴한 시멘트 갤러리에 단순하게 반복되는 영상들을 틀어놓았다. 성냥개비를 높이 쌓아올리고, 물에 비친 달의 모습을 떠내거나, 좁은 평균대 위를 아슬아슬 걸어가는 이의 모습 등이 단채널로 상영되며 공허함을 배가시켰다.





<Interval. Recess. Pause> 2017 

단채널 비디오사운드 23 47초 송은아트스페이스 전시 전경




“상대의 눈길이 적어도 3초간 머물도록 작업을 기획한다”고 비슷한 시기 만난 한 젊은 작가의 말을 듣자 전소정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이상하리만치 그의 화면은 시선을 잡아맸다. 어찌 보면 장난 같고 무신경해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조금 더 열심히 보다간 화면으로 끌려들어갈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미묘한 감정에 대한 집요한 해석, 스스로 행동하는 듯한 움직임이 범벅된 화면은 이야기를 나지막이 읊조렸다. 전소정의 이름은 이후로도 끊임없이 회자됐다. 보도자료와 뉴스레터 등으로 그가 해외 레지던스에 참여하고 미술상을 거머쥔 소식도 전해 들었다. 그리고 2016년 ‘광주비엔날레’ 한복판에서 다시 그의 작품을 봤다. 영상 작업이 가득한 섹션에서 유독 집중도가 좋은 자리에 놓인 작품은 일전에 본 느낌과 무심하고 덤덤하고 뉘앙스로 이야기를 읊는 맥락이 같았다. 나와 내 주변의 여러 사람이 예상했듯 프레스 프리뷰 후 치러진 개막식에서 그는 비엔날레가 제정한 예술상을 수상했다. 삶에서 포착한 시간의 개념과 감정의 경험에 주목해 만든 그의 질문이, 그의 작품이 또 한 번 가치를 발하는 순간이었다.  





 <광인들의 배(The Ship of Fools)> 2016 

단채널 비디오사운드 22 50초 송은아트스페이스 전시 전경 2017 




가장 최근 열린 전시는 ‘Kiss me Quick’이란 타이틀로 마련됐다. 이는 변화하는 도시를 개별적 요소들로 채집하고 있는 루이 아라공(Louis Aragon)의 소설 『파리의 농부(Le Paysan de Paris)(1926)에 콜라주 된 카페 세르타(Café CERTA)의 메뉴를 차용한 것으로, 현실 비판적 사유를 바탕으로 시공을 초월코자 채택된 것이란다. 전시엔 “세 편의 신작을 통해 주변에서 마주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관통하여 시간과 공간의 전치, 떠남과 머묾, 언어와 번역, 불안정성과 비시각성 등의 현대적 삶에 대한 작가의 경험과 사유를 다층적인 시공간 안에 펼쳐낸다. 안무가, 공간 디자이너, 작곡가, 수학자, 요리사 등 다양한 주체들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본 전시에서 각 작품들은 상호 반응하면서 공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하며, 이는 창작의 조건들을 모색하면서 대화의 가능성, 매체의 고유한 언어와 정서 등을 탐구한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Interval. Recess. Pause> 2017 단채널 비디오사운드 23 47




그중 <광인들의 배(La Nave de Los Locos)>(2016)는 우루과이 출신의 망명 문학가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Christina Peri Rossi)의 『광인들의 배』(1984)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망명가이자 여성, 동성애자인 로시의 소설이 경험을 통한 존재에 대한 자각에 기인한다면 전소정의 영상은 소설의 이야기를 현재적 맥락으로 이동하려는 시도를 담아낸 것이었다. 로시에게 보내는 가상의 편지 형식으로 쓴 텍스트를 중심으로 전소정은 본연의 시점으로 바르셀로나에서 이방인으로 바라본 도시를 기록했다.




<광인들의 배(The Ship of Fools)> 

2016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22 50




애초 전소정의 글은 다른 이가 쓰기로 돼 있었다. 내내 이름을 새기고 나도 모르게 마음 끌리는 작가인데도 직접 글을 쓸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에 대한 메모를 조각보처럼 맞추고 있다. 약속된 글이 오지 않았을 때 깍쟁이 후배가 말했다. “우리, 작가 화보로 지면을 채워요!” 전소정은 멋있다. 작품처럼 무심한 태도로 상대를 홀리니, 그에게 반한 건 나와 후배 말고도 도저히 그 수를 셀 수 없다. 

 

 


 전소정




작가 전소정은 1982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했다. 2010년 인사미술공간에서의 <심경의 변화>전을 비롯해 2012년 갤러리 잔다리의 <예술하는 습관>, 2015년 두산갤러리 서울에 마련된 <폐허>, 2017년 송은아트스페이스 <Kiss me Quick> 등 개인전과 2012년 리움 삼성미술관 <아트스펙트럼 2012>, 2015년 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장미로 엮은 이 왕관>, 2016 광주비엔날레 <8기후대, 술은 무엇을 하는가?> 등 국내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2016년 파리의 빌라 바실리프-페르노리카 펠로우쉽, 2016년 광주비엔날레 눈(noon) 예술상14회 송은미술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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