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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0, May 2018

전광영: WORKS 1975-2018

2018.4.6 – 2018.6.5 PKM 갤러리 & P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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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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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층적 기억의 충돌과 유연한 총체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과거 속에서 희망의 불꽃을 점화할 재능을 요청한다. “과거를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위험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어떤 기억을 붙잡는 것이라고 말한다(『역사철학테제』 6). 섬광 같은 기억을 붙잡으며 1990년대 중반에 역사적 궤도에 진입한 전광영의 집합(Aggregation)’ 연작은 지금도 이 궤도를 맴돌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자신의 궤도만을 돌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어느 순간 한국 현대 미술사의 궤도와 맞물려서 이제 개인의 역사를 넘어 한국 현대 미술사에 그 궤적을 남기고 있다. 미술평론가 카터 래트클리프(Carter Ratcliff)는 그의 작업을 독일 신표현주의 거장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작품과 견주었고(『집합: 전광영과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  C. 웰치먼(John C. Welchman)은 일본을 대표하는 전위예술가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의 작품과 전광영의 작업을 면밀히 비교하는 글을 작성했다.

 

(『테라폼: 전광영의 작품세계』). 전광영은 이미 자신의 조형 언어를 확고히 확립한 작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작가가 그렇듯 그도 핍진(乏盡)했던 과거가 있었다. 지나간 옛것을 붙잡으며 언제 올지 모를 새것을 기다리던 유토피아의 유예 기간. 이번에 열린 <전광영: WORKS 1975-2018>전이 특별한 것은 바로 그가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1970-80년대 초기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가 유채, 염료, 종이, 마스킹 테이프 등을 활용하여 회화의 기본적인 조형 요소인 빛, , 형태 등을 표현한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미술계에 처음으로 선보였던 1970년대는 미국의 미니멀리즘이 퇴조하고, 한국의 단색화(모노크롬)가 선풍을 일으키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으로 인해 그가 선보인 추상표현주의 회화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70, 80년대 작업들은 그의 작업 궤적을 추적하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70, 80년대 작품들은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줄무늬 형태의 적층(積層) 구조((1976), (1978))와 복잡성/우연성의 구조((1975), (1983), (1986)). 이러한 작업의 구조가 형성된 것은 아마도 60년대 말 그가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대학 대학원에서 유학하며 경험했던 미국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영향이 주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미국 추상표현주의 회화는 세계 모던아트를 지배하고 있었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했다. 더불어 이 시기 작품들에서 보이는 다채로운 색상의 번짐과 흡수의 기법은 유학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일했던 염색 공장에서 습득한 염색 기법이 반영된 것으로 추측된다. 


표면적으로 이 시기 작업들은 작가가 90년대 중반부터 선보인 한지로 싸고 묶은 삼각 오브제들의 결합체(‘집합(Aggregation)’ 연작)와는 크게 달라 보인다. 70, 80년대 작업은 평면적이고, 서양의 추상표현주의적이고, 우연적인 데 반해, 90년대 중반 이후의 ‘Aggregation’ 연작은 부조형식의 입체이고, 한지 사용으로 동양적 감정이 내재해 있고, 계획성이 엿보이는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상이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Aggregation’ 연작이 보여주는 삼각 유닛(unit)들의 충돌과 대립, 화합의 복잡성은 70, 80년대 작업의 이미지와 유사한 양상을 띠고 있어 전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 1983년 작 와1986년 작 은 어찌 보면 복잡하게 얽혀 있는 ‘Aggregation’ 연작의 평면 버전처럼 보일 정도로 유사한 면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ggregation’ 연작은 이전 시기 작업들과 확연히 다른 차원의 작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작업에 관해 설명할 때 신화처럼 이야기되는 하나의 사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치 과거 속에서 희망의 불꽃을 점화하듯 작가는 잊힌 과거를 찬란한 역사로 등극시켰던 섬광 같은 기억을 작업으로 끌어와, 그것이 작업의 의미체로 기능하도록 내러티브를 형성하였다. 작가는 1995년 어느 늦은 봄날, 감기몸살로 며칠째 고생하고 있던 그 날, 얇은 약봉지 속의 알약을 매만지던 그때 불현듯, 어릴 적 병약했던 작가가 자주 갔던 한의원과 그곳에 한지로 싸여 천장에 가득 달려있던 약봉지를 떠올렸다고 한다. 정성스럽게 한약을 싸고 묶은 삼각형 모양의 약봉지와 그 위에 적는 약재명(藥材名)에 대한 이미지는 그의 작품세계를 송두리째 변화시킬 정도로 강렬했다고 한다. 





 <Aggregation15-MA018(Desire4)>

2015 한지와 혼합매체 151×151cm 

이미지 제공: 작가 & PKM갤러리 

Courtesy of the artist & PKM

 




이 하나의 기억이, 이 하나의 과거가 마치 불꽃을 점화하듯 그의 주요작업인 ‘Aggregation’ 연작을 탄생시켰고,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내러티브가 되었다. 더불어 작가는 이 연작에 고서(인쇄된 문자)를 도입함으로써 기억의 층위를 중층화하는데 성공한다. 삼각형 한약봉지에 적은 약재명과 유비관계인 한지에 인쇄된 한자와 한글은 거시적 관점에서 문자를 탄생시킨 동양(혹은 우리나라)의 정신과, 미시적 관점에서 그 고서를 읽던 과거 사람들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 이로 인해 전광영의 ‘Aggregation’ 연작에 등장하는 문자는 개인의 기억(한의원)과 과거 공동체의 기억, 그리고 동양(혹은 우리나라)의 근본적 정신이 중층적으로 결합한 의미체가 되어 내러티브의 복선으로 작용한다.


Aggregation’ 연작은 동양과 서양의 사이에서, 회화와 조각의 사이에서, 전통과 현대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고, 충돌하고, 대립하고, 화합한다. 그곳에는 켜켜이 쌓인 격동하는 총체성이 담겨 있다. 서양에서 개발된 화학적 구성물인 삼각형 스티로폼은 동양에서 개발된 물리적 구성물인 한지에 싸고 묶여 하나의 유닛을 이룬다. 하나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백 개의 삼각 유닛들은 작품 안에서 서로 갈등과 대립, 충돌을 일으키며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리고 결국 서로 맞붙어 집적(aggregation)된다. 갈등, 대립, 충돌은 전체로 흡수되어 유연한 결합을 이뤄 하나의 총체적 아름다움을 구현해 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총체로 집적된 ‘Aggregation’ 연작은 90년대 중반 이후 다양한 양식으로 분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초기에는 비슷한 크기의 삼각 유닛들을 결합하여 사각 프레임에 안착한 형태로 작품을 제작하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크기가 다른 삼각 유닛을 결합하거나 사각 프레임을 벗어나는 양식을 선보였다. 특히, 2003년부터는 마치 외계 행성의 지표면을 연상시키는 분화구나 웅덩이 같은 공간을 화면에서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더불어 색채도 강렬한 원색으로 변하며 색상에서나 형태에서 다채로운 양식을 드러냈다. 


작가는 점점 비규칙적 방식의 작업을 많이 선보이는데, 그와 같은 비선형적·카오스적 방식의 삼각 유닛 결합체는 모종의 질서 아닌 질서를 구축하면서 미묘한 매혹을 산출한다. 그리고 유닛과 유닛 사이에 헝클어진 논리적 접속관계는 코스모스의 세계가 쉽게 빠지곤 하는 상투성이라는 함정을 피해 가면서 유려한 시각적 리듬을 형성한다. 또한 작가는 ‘Aggregation’ 연작을 계열화시키는 모습도 보인다. 2014년부터 원형 형태의 작업에는 ‘Star’, 모래사막이나 광야가 연상되는 작업에는 ‘Desire’,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며 맑고 밝은 색채로 표현된 작업에는‘Dream’을 제목 끝에 덧붙이며 계열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 조금 아쉬웠던 것은 ‘Aggregation’ 연작 중 외계 행성의 지표면을 연상시키는 작업이 전시되지 않은 점이다. 많은 이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원형의 ‘Star’ 작업을 볼 수 없었던 것도 아쉬웠다. 그렇지만 전시된 총 18개의 작품 중 10개의 작품이 2017년과 2018년 제작된 최신작으로, 작가의 최근 작업 방향과 추구하는 양식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큰 의미를 지닌다. 작가는 최근작에서 천연 염색 기법을 활용하여 삼각 유닛들을 맑은 색채로 물들이는 양식에 집중하는 듯 보인다. 이러한 양식으로 제작된 ‘Aggregation’ 연작은 드러나는 색채가 부드럽고 포근하여 이전보다 온화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로 인해 기존 작업이 지닌 강렬함은 조금 상쇄된 느낌이다. 하지만 대립과 충돌, 갈등을 하나로 총체화했던 작가는 분명 내일의 작품에 온화함 강렬함을 총체화할 것이다. 그는 조만간 우리를 그의 새로운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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