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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1, Jun 2018

구수현
Koo Soohyun

PUBLIC ART NEW HERO
2018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대상

미술이라는 제도, 작가라는 역할

구수현에게 전시장은 단지 작품을 감상하는 곳이 아니다. 입구 벽에 붙은 서문을 읽을 땐 말끔하게 시트지를 붙인 사람의 노하우가 눈에 들어오고, 전시 기간 내내 먼지 하나 없이 관리되는 환경에 황송해한다. 그러다 작품 지킴이의 행동도 힐끔거리며, 다른 관람객의 존재도 의식한다. 이처럼 작가에게 전시장은 “노동의 현장이었고 생활의 장소”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회사의 이미지와 회사원이 체감하는 실체가 갖는 필연적 온도차처럼 해당 세계에 발을 담근 이들만 감지할 수 있는 요소들을 작업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수현의 작품이 의태하고 있는 것은 ‘미술계’라 통칭하는 추상적 세계에서 일하고 관계 맺는 여러 주체를 집요하게 관찰한 결과물인 셈이다.
● 이가진 기자 ● 사진 서지연

'the moment's already passing' 2017 설치 전경 photo: Katrin B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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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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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작업 안에서 작가의 역할은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the definitive book>의 연구자, <be normal; 정상처럼 굴기> <웨얼아유프롬.>, <mysteriansan. com> 등에선 수집가가 되었고 <Opening Hours>에서는 고용주로, 나아가 <컬렉터의 비밀창고>의 미술품 컬렉터이자 가상의 인물 등으로까지 거듭났다. 이처럼 다양한 배역을 자처한 것은 곧 작업을 작동시키기 위한 설계이면서, 동시대 미술에서 작가가 취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실험이었다


작품이나 전시가 그대로 작업의 주제가 되어 때때로 전시 자체가 작품이기도 하고, 전시에선 딱히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없는 경우도 있다“미술을 미술로 보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처럼 미술 자체에 대한 질문, 그로부터 관성적인 전시의 법칙과 작품과 작품 아닌 것의 경계에 대해 항상 의심하고 있다”고 말하는 구수현. 이러한 의심을 품고 풀어내는 결과물은 결국 ‘미술’을 구성하는 메타적인 질문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창작과 기획의 구분이 없는, 능동적인 주체로서의 작가상이 부각된다. 미술 현장 내부에서 작동하는 원리, 환경, 제도를 두고 고민하는 그지만 “특별히 고발이나 비판적 자세를 취하진 않는다”고 선을 긋는다. 그보다는 보편적인 명제를 흔들거나 보이지 않지만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드러내기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웨얼아유프롬.> 2017 11종의 수집한 생수를 가습기를 통해 유리박스안에서 혼합 가변크기



 

실제로 구수현이 주목하는 사건 혹은 대상은 일견 개인적이거나 사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평범하고 미시적인 존재들을 감지한다. 이후 무언가를 모으고 어딘가에 어떻게 놓음으로써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가 진짜 주목하는 것은 ‘수집’하고 ‘디스플레이’하는 과정에 잠재된 많은 가능성이다. 수집된 사물이나 개념, 이야기가 가진 원래의 목적이나 의미를 디스플레이 단계에서 나름대로 재구성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완결된 이미지를 제시하진 않는 이유다. 을지로의 세운상가에 콘셉트가 다른 6개의 방을 만들어놓고 초대장을 통해 신청한 관람객만이 관람할 수 있었던 <컬렉터의 비밀창고>(2016)는 개별적이고 독점적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지를 결정하게 하는 전시였다. 바꿔 말하면 일종의 관객참여형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험의 공유’를 염두에 두고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의 것, 일테면 “취향이나 기억, 기분, 가치의 기준, 지식의 정도, 감각의 온도”와 같은 각자의 상태를 소환하게 해 나름대로 작업과 맞물리는 지점을 찾게 한 것이다.




<anterroom_좌대를 작품처럼 배치해 놓은 방> 2016 

작가들이 제작한 10개의 좌대와 1개의 액자 가변크기 <컬렉터의 비밀창고전시 전경 




누군가 구수현의 작업에서 단일하고 명쾌한 대답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애초에 잘못된 접근이다. 다만 그는 <Opening Hours>(2016)에서처럼 때론 직접적으로 관람자의 의식이나 경험에 개입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바로 ‘지킴이를 지키기 위한 안내문’이 그것. 이 프로젝트를 위해 작가는 경기도 안산의 용역회사에 속한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근무조건을 제시하고 조건에 맞는 이를 직접 고용하고, 전시장 지킴이로 근무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우간다 출신 이주노동자는 전시장 지킴이로 5시간 동안 근로를 하면서 동시에 퍼포먼스를 펼쳤고, 갤러리 유리문에는 시트지로 “지킴이는 작품이 아니니, 관람하지 마세요”라고 적었다. 피로할 정도로 ‘다문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여전히 인종이나 문화에 관한 편견이 팽배한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작업’을 단지 “미술관-작품-전시장 지킴이-관람객의 정치적 구조와 관계성”으로만 해석할 수 있을까. 명백히 존재하지만 마치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기를 요구받는 역할의 특수성은 ‘관음’ 또는 ‘관람’을 금지한다는 분명한 문장과 만나 새롭게 삐걱댄다





<지킴이를 지키기 위한 안내문> 2016 전시장 입구에 시트지 20×40cm 




그래서 “전시장 지킴이와 이주민 노동자는 둘 다 필요하지만, 의식할수록 불편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 닮아있다”는 의견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을 반영한 뼈있는 지적이다. 짐짓 정상처럼 굴지만, 당신은 어디 출신이냐고 대담하게 묻거나, 특정 지역의 소문과 괴담을 수집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구수현의 작업은 단순해 보이는 일상에 잠재된 사회문화적 복잡다단함을 슬쩍 들춘다. 태연하지만 변화무쌍한 그의 역할 변신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될 것이다. 자신의 세계 밖, 같은 시대를 사는 낯선 이들에게까지 유효할 공동의 감각을 제시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만큼은 제법 단호하기 때문이다. 

 


 

구수현




작가 구수현은 2008년 국민대학교 회화과를, 2015년에는 동 대학원을 인터미디어아트 전공으로 졸업했다. 두 차례의 개인전 <be normal; 정상처럼 굴기>와 <컬렉터의 비밀창고>를 열었으며 포스코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의 그룹전에 참여한 바 있다. 제도와 구조로부터 정해지는 역할과 관계, 이로 인한 현상에 꾸준한 관심을 갖고 탐색하는 그는 올 연말에 열릴 새로운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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