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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1, Jun 2018

화이트 혹은 오렌지, 짧지만 화려했던 시절을 돌아보다

France

Margiela, Les Annee Hermés
2018.5.22-2018.9.2 파리, 장식미술 박물관

지금, 파리는 ‘마르지엘라!’의 이름으로 가득하다. 철저히 베일에 싸인, 그러면서도 지난 세기 패션과 예술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바로 그 이름, 벨기에 출신 패션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에 관한 대규모 전시가 두 곳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루브르(Musée du Louvre) 바로 옆에 위치한 장식미술 박물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과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맞은 편, 흔히 의상 장식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팔레 갈리에라(Palais Galliera)는 같은 시기, 이례적으로 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패션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로는 충분하지 않은, 그 이름이 가진 힘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 임정현 프랑스통신원 ● 사진 Musée des Arts Décoratifs 제공

ⓒ Photo : MoMu Anvers, Stany Dedern, Graphisme : Jelle Jes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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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현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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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부터 하우스와 일렉트로니카 음악으로 수많은 마니아를 양산한 프랑스의 듀오 다프트 펑크(Daft Punk)는 항상 특유의 헬멧을 쓰고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한다. 한 주간지에서는 이에 빗대, 마르지엘라를 ‘패션계의 다프트 펑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르지엘라는 헬멧을 쓴 모습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철저하게 숨고 또 숨었다. 매체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었고, 인터뷰 하더라도 측근을 통해 질문을 보내고 답을 얻는 방식으로만 진행한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것과 달리 그의 존재감은 가히 파괴적이었다.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스타일은 패션을 넘어 예술 전반에서 회자될 정도였다. 마르지엘라는 1957년 벨기에의 루벤에서 태어났다. 1979, 앤트워프 왕립 미술학교(Antwerps Royal Academy of Fine Arts)를 졸업하고, 1984년 파리로 이주해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디자인 어시스턴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4년 후인 1988,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인 제니 마이렌스(Jenny Meirens)와 함께 자신의 브랜드인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를 설립했다. 그때부터 그는 어떤 홍보 전략도 취하지 않은 채 하얀 모슬린 조각과 그것을 옷에 부착하는 네 개의 스티치로 모호하지만 가장 명백한 정체성으로 패션계에 깃발을 꽂았다팔레 갈리에라는 1989년부터 2009년까지의 패션 여정을 훑는 대규모 회고전을 기획했다. 의상뿐 아니라 각종 기록물을 통해 ‘마르지엘라’라는 디자이너의 세계를 전반적으로 훑을 수 있는 전시다.  




 'Hermès-Printemps/été' 1999 Photo : Studio des Fleurs  




한편, 그의 이력 중 가장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는 시기는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인 에르메스(Hermès)의 여성복 디렉터로 재직한 1997년부터 2003년까지일 것이다. 그리고 장식미술 박물관의 <Margiela, les année Hermès>전은 이 시기에 오롯이 집중했다. 이 전시는 클래식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에르메스와 아방가르드의 기수, 마르지엘라가 만나 ‘협업한’ 12개의 시즌 동안 어떤 창작물을 내놓았고, 그의 과거는 현재 어떻게 재평가받을 수 있을 것인지를 탐구해 펼쳐 보였다. 우선 100벌이 넘는 옷과 악세서리, 그리고 두 명가의 만남을 충실히 표현한 전시 디자인은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1997, 마르지엘라를 영입하면서 당시 에르메스의 회장이었던 장 루이 뒤마(Jean Louis Dumas)는 이 디자이너에게 백지 위임장(Carte Blanche)을 줬다고 한다. 그 믿음에 화답하듯, 마르지엘라는 하우스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자신만의 특징적인 재단 방식을 접목해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줬다.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된 전시장은 입구부터 명료하게 전시의 주제를 시각화했다. 절반은 마르지엘라를 상징하는 하얀색을, 절반은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주황색으로 칠했는데, 이 두 색깔의 대비는 전시장 전체를 관통하는 구성의 중심축이다. 





Exposition <Margiela, les année Hermès> Les Arts 

Décoratifs, MAD, Paris 2018 Photographie: Luc Boegly





특히 입구에는 곧 무너질 듯 자유롭게 쌓아둔 마르지엘라의 화이트 상자와 정갈한 블록처럼 쌓은 에르메스의 오렌지 박스로 그 차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프랑스 여배우 마리-헬렌 뱅상(Marie -Hélène Vincent)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찬사들(Les compliments)>이 울려 퍼진다. 에르메스와 마르지엘라의 마지막 쇼였던 2003 5(2004 S/S 시즌)의 패션쇼에서 소개되었던 이 음성작품은 ‘너는 ~다’라는 다양한 문장을 들려주는 것으로, 개인의 개성과 자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마르지엘라의 철학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흰색과 오렌지색으로 구분 지은 전시장의 흐름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나란히 진열된 모습을 통해 마르지엘라라는 한 사람에게서 나온 두 브랜드의 서로 다르지만 연관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한다. 


‘실루엣(Silhouette)’이라는 첫 섹션에서는 마르지엘라가 자신의 브랜드에서 했던 컷팅과 디자인이 에르메스의 여성복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옷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례로1996-1997년 겨울 선보였던 배꼽까지 파인 브이넥 형태의 니트와 코트는 1999년 봄/여름 시즌 에르메스에서 재해석 된다. 커다란 소매가 특징적인 마르지엘라의 오버사이즈 룩은 에르메스의 케이프 모양 코트로 다시 태어났다.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형태의 변형과 조합을 활용해 아주 정교하게 에르메스의 정체성을 유지해나간 것이다. 최고의 원단을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을 십분 활용해 최상의 재료와 완벽한 재단으로 의복을 만들어내면서도 마르지엘라는 전통적인 아이템을 조금씩 비틀어놓았다. 





Exposition <Margiela, les année Hermès> Les Arts Décoratifs, 

MAD, Paris 2018 Photographie: Luc Boegly





정사각형의 스카프를 마름모꼴(Losange)로 만들었고, 에르메스의 H를 실로 표현하기 위해 4개였던 단추 구멍을 6개로 바꾸거나, 한 줄짜리 시계를 두 번 감을 수 있도록 길게 만드는 식이었다. 이런 마르지엘라의 ‘흔적’은 여전히 에르메스에 남아 계승되고 있다. ‘복각’이라는 개념을 활용한 아이템들도 선보였다.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에서 1994년부터 시작한 레플리카(Replica) 라인은 말 그대로 예전에 있던 빈티지 제품들을 같은 형태로 다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제는 스테디셀러가 된 운동화(독일군 운동화라고 알려진 모델) 역시 오스트리아군 병사들의 신발에서 영감 받아 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아이디어를 따라 에르메스에서도 2002-2003, 캐시미어 니트와 가죽장갑의 옛 모델을 재생산했다. 또 다른 예로 1994-1995년 가을/겨울 시즌의 ‘Twin-set’라는 니트와 카디건 세트는 독특한 비화를 담고 있다.  1960년경에 촬영된 사진 속에서 바비 인형이 니트 카디건 세트를 입고 있는 것을 본 마르지엘라는 옷의 모습 그대로를 재현했다. 모든 디테일을 살려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전시장에는 그 사진이 크게 벽에 붙어 있고, 바비가 실제 옷을 들고 있는 것처럼 유머러스하게 디스플레이해뒀다. 이 ‘Twin-set’의 아이디어는 2003 -2004년 에르메스의 캐시미어 니트로 새롭게 선보여진 바 있다. 





 'Maison Martin Margiela - Printemps/été' 2009 Photo : Etienne Tordoir





이렇듯 자연스럽게 고유의 색과 기존 브랜드의 색을 조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근본적인 차이도 눈에 띄었다. 버킨백이나 캘리백처럼 그 자체가 고유명사가 된 에르메스의 가방과 소품은 고품질의 다양한 가죽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 반면,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는 새 가죽이 아닌 재활용한 가죽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패션쇼의 방식에서도 차이가 컸다. 마르지엘라는 독특한 장소를 패션쇼장으로 선택해 주목받았다. 파리의 지하도나 평범한 카페, 버려진 주차장 등을 활용했을뿐더러 모델로 평범한 사람들(친구의 지인, 길거리 캐스팅 등으로 선발)을 기용했다. 에르메스의 쇼에도 25세부터 65세까지 여러 연령대의 여성들을 캐스팅해 젊고 마른 여성들만 캣워크에 세우던 관행을 깨버렸다.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옷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이 전시의 매력을 높여주는 장치는 사실 특정 시기에 주목한 기획 방식에 있다. 나아가 그 기획 의도를 제대로 반영한 전시 디자인 사이의 손발이 제대로 맞았다. 단순한 두 종류 색으로 서로 다른 스타일의 두 브랜드를 절묘하게 배치해 낸 것이 주효했다. 에르메스의 옷을 보여줄 때는 LCD 모니터를 통해 옷을 입은 모델들을 소개하는 정제된 방식을 택했다면,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옷을 보여줄 때는 흰색으로 칠한 테이블 위에 마네킹을 놓거나, 프로젝터로 거친 이미지를 그대로 송출할 뿐 아니라 패션쇼의 소음을 그대로 음향으로 사용해 확실하게 두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구분 지었다. 





ⓒ Photo : MoMu Anvers, Stany Dedern, Graphisme : Jelle Jespers




이번 전시의 책임 기획자인 마리-소피 꺄론 드 라 꺄리에흐(Marie-sophie Carron de la Carrière)는 “마르지엘라는 해체를 통해 옷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옷을 분석하고 해석해 하나하나 해체한 뒤 다시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조합해 완전히 새로운 옷을 만들어 낸다는 설명이다. 개념적이면서도 파괴적인 마르지엘라는 패션 시스템의 본질에 도전했고, 그의 디자인은 오늘날까지도 ‘마르지엘라 키즈’들에 의해 반복되고 있다. 전시장의 출구, 다시 만난 오렌지색과 흰색의 문 가운데에는 검은색으로 굵고 거칠게 ‘THE END’라고 적혀있다. 분명 그 시대는 끝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게다가 마틴 마르지엘라는 신기루 같은 유산을 남기고 이미 10년 전,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그가 남긴 네 개의 실 땀에 열광한다.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의 답에 근접할 수 있는 힌트가 들어있는 두 개의 전시를 놓쳐선 안 될 여름이다. 

 


글쓴이 임정현은 서울예술대학교 사진학과와 프랑스 파리 8대학(Université Paris 8 Vincennes - Saint-Denis)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했다. 동대학원에서 현대미술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도시, 지형학 그리고 유토피아’를 주제로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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