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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6, Jul 2020

이삭 코달
Isaac Cordal

위장술의 아이러니

쓰레기통 뒤에 숨어 훔쳐보는 눈길, 길바닥에 쓰러져있는 사람. 상상하면 섬뜩하고 우울한 이 모습들은 모두 이삭 코달 작업의 주인공이다. 흔한 가이드라인이나 캡션 없이 거리에 놓여있는 작은 인물상들은 그냥 지나쳐도 모를, 거리의 틈새에 위장해있다. 아주 사적인 발견인 이 공공미술은 우리가 창조한 문명사회에 대한 작가의 답가이자 자화상이다. 그리고 가만히 시민들을 응시하는 인물들은 대사 하나 없이도 연극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관심을 유도한다. 어떤 텍스트도 존재하지 않는 도시의 돌부리와 같은, 그러나 우리 자신을 닮은 듯한 이 소인들의 무대는 지켜보는 관객 없이도 상시 진행 중이다. 작가의 초대는 거리의 모두에게 열려있다.
'Cement Eclipses' 2018 Salerno, It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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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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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코달은 2008년부터 ‘Cement Eclipses’ 프로젝트를 선보여 왔다. 회색 빌딩이 햇빛을 가리는 순간을 비유하는 이 단어는 그의 재료와 문제의식이 담긴 친절한 안내서와도 같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15-25cm 크기의 중년 남성은 작업 어디에나 등장하는 화자인데, 작가는 그를 사회적 권력을 가진 사업가의 스테레오타입이라고 소개한다. 그 자체로 이미 낡은 이미지를 풍기는, 수트를 입고 서류 가방을 든 채 반쯤 벗겨진 머리를 가진 작은 인형들은 보편적인 시민의 모습으로 마치 원래 거기 존재했던 것처럼 도시 곳곳에 출몰한다. 이들을 이해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빌바오 구겐하임(Bilbao Guggenheim Museum) 근처 길바닥에 설치됐던 <Melted Tourist>(2018)는 제목처럼 곧 녹아 없어질 것 같은 형상을 띠고 있다




<Cement Eclipses> 2017 Ulm, Germany

 



상반신만 남은 상황에서도 여전히 관광지의 풍광을 사진기에 담고 있는 익명의 인물들은 불완전한 사회에서 외롭고 황망하게 남겨진 유목인을 나타낸다. 그들의 무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곳이 아니다. 빌딩의 균열 부분이나 얇은 전깃줄 위에 위태롭게 서 있고, 배수구 파이프를 타고 내려와 지상에 불시착한 듯 배치되어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도시의 틈새를 다른 세계의 입구로 탈바꿈시키는 작가는 스스로를 무대감독이라 자처한다. 그렇기에 조각의 조형미를 배치의 미학으로 넓혀 문맥을 해석하는 것은 마치 배우의 독백을 이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인간 군상에 대한 직접적 반영이자 공존과 발견의 즐거움인 이 소인들의 존재는 관람자들에게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흔히 작고 조밀한 것을 보면 느껴지는 귀여움의 감정이나 예술작품의 섬세한 기술성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더라도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나는 이유는 시멘트의 그가 자못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상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음에도 인물 중 그 누구도 웃고 있지 않다는 점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그들은 천진하게 그저 존재하지 않으며,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진지한 표정은 목소리를 내다가 그 상태로 얼어버린 듯 난처하다.




<Melted tourist> 2018 Bilbao, Spain 

 



현실에서 권력을 쥔 중년 남성들은 여기서 어떠한 위협도 가하지 못하는 시멘트 덩어리로 변주되어 나약하다. 2019년 프랑스 안시(Annecy) 공원에 설치된 <Follow the leaders>가 그 대표적 예다. 2009년부터 시작된 동명의 시리즈 연장선에 있는 이 작품은 호수 중앙에 폴리우레탄 수지로 만들어진 20명의 인물 군상이다. 글로벌한 사회에서 다양한 의제를 이끄는 리더들은 지구온난화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미 물에 잠긴 채 갑론을박하는 이들의 모습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예측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제목 그대로 이들을 따르다가는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라 경고하는 메시지 같기도 하다. 그러나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사람, 체념한 듯 눈을 감고 있는 사람, 슬픈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은 가까이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과 대조되는 한편,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작업은 결국 현실사회의 축소된 무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업은 자본주의나 관료제 사회의 투영이자 환경에 대한 목소리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이들이 정치적으로 읽히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 그보다 이삭에게 인물상 개개인은 오히려 작가 자신이며, 획일화된 교육을 통해 단편적인 가치관을 갖게 되어버린 우리 모두로서 친근한 존재다. 세상의 아이러니를 말하는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씁쓸한 유머를 마련한다. 이 웃음은 단지 비릿한 것이 아니라 나약하고 작은 신체로 표현된 부조리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다. 몸을 숙여 눈높이를 맞춰야만 표정을 살필 수 있는 이 미니어처를 감상하는 첫 번째 방법은 알아차리고, 다가가는 것이다.





<Follow the leaders> 2019 

Annecy Paysages Annecy, France  




사회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우연한 만남을 창조하는 작업은 2000년대 중후반 진행된 ‘Cement bleak’ 시리즈에서부터 예견됐다. 처음부터 그의 관심은 사회 속 인물로 일관됐는데, 이때는 부엌에서 사용하는 둥근 체에 얼굴만을 표현했다. 핀셋을 이용해 와이어를 하나하나 당기고 눌러 3차원의 표정을 만들고 이를 어두운 도로에 설치한 작업이다. 가로등 조명에 프로젝션 되는 얼굴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지금과 같이 행인들을 멈춰 세우곤 했다. 디지털 매핑(digital mapping)의 이미지를 차용했음에도 기술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친숙하고 고요하게 탈바꿈된 이 사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침묵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2008년 무렵 변화한 당시의 인물상은 지금과 같은 미니어처 형태였지만 투박한 돌처럼 색도 표정도 없었다


이때부터 작가는 줄곧 자연에 반하는 인조적 재료로 시멘트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와 함께 개발된 몰개성적 캐릭터는 자본주의의 노예와 같은 피해자이자 동시에 코믹한 존재로 설정되며 점차 지금의 모습으로 구체화됐다. 아스팔트 바닥이나 공사 현장에 놓여있을 때 완벽하게 풍경으로 위장되던 페르소나들은 대낮의 거리에서 색을 부여받으면서 점점 현대인의 실체를 갖춰나갔고, 사람들의 눈에 띄면서 완벽한 위장에서 멀어져갔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눈이 감겨있고, 입은 없는 투명한 대상에서 마치 대화가 가능할 것만 같은 타인으로 진화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로소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된 이삭의 미니어처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설령 개인의 우울일지라도, 관람객들이 그에게 좀 더 많은 공감을 느끼게 된 것만은 틀림없다.




<Cement Eclipses> 2017

 UpNorth Festival Røst, Norway




거리의 아티스트로 널리 알려진 만큼 이삭은 최근 몇 년간 지역의 특색을 살린 예술 축제에서 활발히 소개되고 있다. 2017년 노르웨이의 섬 로스트(RØst)에서 열렸던업노스 페스티벌(UpNorth Festival)’은 매번 변화하는 설치 장소를 능수능란하게 해석하는 작가의 스킬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섬에서는 집들의 색이 형형색색으로 눈에 띈다는 것을 포착해 난파선처럼 바다 한가운데에 고립되어있는 인물상들에게 원색의 담요를 잘라 옷처럼 입혔다. 도시 이주와 홈리스에 대한 고찰이 반영된 디자인은 도시와 또 다르게 여러 실험이 가능한 자연환경에 대한 작가만의 융화법이다그렇기에 전시할 지역에 도착하기 전에는 작업이 어떻게 설치될지 결코 알지 못한다. 그는  인물상 30-40여 개가 든 커다란 백팩을 지고, 사다리를 들고 돌아다닌다


배치가 확정되면 호텔 방으로 돌아와 그제야 작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러한 불확실성과 가변성은 도시 환경뿐 아니라 그 속의 인간들과 상호작용을 맺는다. 하지만 때로는 난감한 재미가 생겨나기도 한다. 인물상들이 종종 사라지기 때문이다. 범인은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부터 거리의 청소부, 신경질적인 이웃까지 여럿이지만 그 누구보다 이들에게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그런 이들에게 이 작은생명체는 지켜주고 싶은 대상이자 위로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다이삭이 바라보는 세상은 밝지 않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희망을 잃지 않은 유머의 순간들이 있다.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미시적인 것에 집중하는 작가는 24시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거리에서 풍부한 가능성을 축출한다. 우리가 알아차리길 기다리는 이 소인들을 언제 어디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섬세한 시선으로 도시를 유영하는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이삭 코달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Henrik Lund




작가 이삭 코달은 1974년 스페인 갈리시아주에서 태어났다폰테베드라 미술대학(University of Fine Arts Pontevedra)에서 조각을 전공한 후 5년간 석조 공예와 보존을 공부했다스페인 JM갤러리(Gallery Javier Marín), 영국 퓨어이블 갤러리(Pure Evil Gallery), 벨기에 할란레비 프로젝트 갤러리(Harlan Levey Projects Gallery) 등 유럽의 여러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최근에는 2017 ‘UpNorth Festival’, 2018 ‘Blackburn Open Walls Street Art Festival’ 등 다양한 예술 축제에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올해 2월 독일 어반 슈프레(Urban Spree)에서 개인전을 마친 그는 현재 디지털 아트 커뮤니티 ‘Alg-a.org’의 창립 멤버이자 아티스트 콜렉티브 ‘Ludd34560’, ‘Sr. Pause’의 멤버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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