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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1, Jun 2018

FRAGILE

2018.5.10 – 2018.6.23 챕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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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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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면 안 돼!  



무심히 날아 온 웹 초대장만 보고도 기대가 차올랐다. 최근 만난 작가들 중 가장 매력적인 작가들이 한꺼번에 모여 전시를 하다니. 시간이 되면,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보겠다며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전시가 열리는 챕터투(ChapterII)는 미술지형도에서 아직은 외곽으로 분류되는 곳인데다 대안공간이 그러하듯 언론이나 대중에게 기를 쓰고 홍보 또한 하지 않는 공간이다. 처음 생겼을 때와 작가 미팅 때문에 지금껏 두어 번 가본 공간에 대한 관심도 새삼 환기됐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툭툭 전달된 초대장에 매번 좋은 작가들 이름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우정수의 윈도우 드로잉으로 전시는 시작된다. 전시장 내부에 종이에 먹과 잉크로 그린 <폰타 델 코타 해전(The battle of Ponta Del Kota)>(2016)으로 본인의 건조하면서도 동적인 긴장감을 유감없이 선보인 작가는 투명한 유리벽엔 유쾌한 기법적 장치를 통해 시선을 사로잡는 드로잉을 펼쳐 보였다. 그의 작업은 때로 악마답고 잔망스럽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진중하면서 예의 바른 작가 본인과 다름없다. 그의 화면에 배치된 물어뜯고 뜯기는, 날카롭게 할퀴고 후벼 파는 짐승(혹은 사람)들은 단지 악하기보다 본성을 피력한다. 우정수가 전개하는 스토리는 어쩐지 희망적이다. 자극적인 장면으로 착하고 옳은 것을 말하는 재주야말로 작가의 가장 큰 매력이다.  

 

얼마 전 <퍼블릭아트 뉴히어로>전에 작품을 출품했던 김남현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Single #8>을 내놓았다. 지금도 젊은 작가는 8년 전 무겁고 진지한 마음으로 완성했던 작품을 조심스레 꺼내 보였다. 석고 붕대, 스티로폼, 석고, 스테인리스, 아크릴 물감에 굵은 실로 모서리를 꿰맨 작품은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란다. 그의 진짜 이야기를 애써 묻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보는 이의 해석과 이성에 따라 어차피 주관성이 희석되고 서사적으로 있음직한 사건의 결말로 조명되는 것이니까. 또 내가 묻는다고 사근사근하게 대답해줄 작가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밀한 스토리를 다루면서도 예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 작가는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끝으로 김명진은 한지와 먹, 안료 등으로 콜라주한 작품 <사람의 아들>을 출품했다. 어둡고 긴박한 그의 화면은 종종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작품과 비교된다. 이번 작품 또한 베이컨의 <Study after Velázquez’s Portrait of Pope Innocent X>(1953)를 연상케 하며 무슨 연유인지 궁금한, 해석의 자유를 열어두는 작품을 보여준다.  





김남현 <Single #8> 2010 석고붕대, 

스티로폼, 스테인리스, 아크릴, 실 가변크기   




 

한편 이들 작가를 묶은 전시 제목 ‘Fragile(프레자일)’은 어떤 의도인가? “구상미술은 현존하는 이미지에 대한 작가 자신의 주관적이고 탐미적인 해석의 결과물이다. 현실세계의 예술적 반영이기도 한 구상이라는 어원 자체는 차용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는데, 이는 실재하는 사물과 자연의 외모를 모방함이 필연적으로 수반됨에 연유한다. 모방과 작가 창의성의 발현 정도가 사조 혹은 화풍의 하위 분류점이 되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지에 내재된 보편적 의미가 함께 전이되고, 작품에 대한 감상과 비평의 매개로 작용하게 된다.(…중략) 차용된 이미지는 작가의 해석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때로는 원본과 아주 유사하게 혹은 원본의 물질적 특성이 대부분 해체된 최종 결과물로 재탄생한다. 작가의 개입과 이미지에 결부된 의미와 상징성을 전달하려는 의도의 농후 정도는, 작품이 일반적으로 감상되고 해석되는 방향성과 연결되어 있다.” 전시 의도 글은 제목만큼이나 묘연하다. 뚜렷한 조형성을 지니고 콘텍스트를 제어하거나 확장시킬 수 있는 작가를 한자리에 모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의도야 어떻든 상관없다. 섬세한 미적 언어를 연마해 온 그들 작품을 한곳에서 본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신선하니까. 그것만으로 챕터투는 열일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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