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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6, Nov 2018

전지인_금요일에게, 우리가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가워

2018.10.11 – 2018.10.28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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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영준 기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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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도 글만큼 중요하다



전지인 개인전이 열리던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에 들어서면 제 일 먼저 <큐비클 바디>라는 제목의 영상이 설치된 것이 눈에 띈다. 인쇄물의 망점을 대폭 확대해서 영상으로 만든 작품이다. 망점들 의 색깔이 예뻐서 현혹될 지경이었다. ‘망점들이 멀어져서 작아지 면 뭔가 형상이 나타나는 듯해서 설마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눈 을 가늘게 뜨고 보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좀 물러서서 봤는데 역시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아 감정이 상해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 봤다. 평소에 인공위성 카메라의 판독능력 수준의 정교하고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해 왔는데 아무것도 확인 할 수 없으니 나의 눈에 대한 배신감이 든 것이다. 


그다음 작업은 반짝이는 아크릴판에 온갖 좋은 글귀를 레이저 커 팅으로 새긴 것이다. 글귀들은 이 세상 여기저기의 그럴싸한 속담 에서 가져온 것들인데 앞뒤가 잘 토막 나 있어서 홀랑 집어먹기 좋 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호출당한 순간에 다시 내가 되었어”, “금요일에게 우리가 다시 만나서 반가워 같이 시적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암시하는 글귀들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글 귀들이 반짝이는 아크릴판에 새겨져 있어서 그 글귀를 보는 내 모 습이 자꾸 어른거려 비친다. ‘가 작가의 작업을 교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치욕스러울 정도로 미안스러워서 내 모습을 피하려고 자 세를 바꾸거나 시점을 바꾸면 이번에는 글귀가 안 보인다.

 

그래서 또 빈정 상해서 전시장 안으로 더 들어가 봤다. 그랬더니 아까 그 글귀에서 제목을 가져온 것이 분명한 <금요일에게>라는 영 상이 틀어져 있었다. 전시장의 가장 안쪽에 숨겨 놓듯이 틀어놓아 서 그런지 이 영상을 제일 열심히 봤다. 일단 알아볼 수 있는 요소가 있어서 반가웠다. 지난번 태풍 때 물이 잔뜩 불은 중랑천의 물흐름 을 찍었다. 그러다가 알 수 없는 건물을 찍었는데 영상 자체가 꽤 아 름답다. 건물의 구조, 색깔, 영상의 프레임이 만들어내는 합주가 차 분하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 장면을 다시 보려고 10분짜리 영상 을 몇 번 더 봤다. 앞서 작업에서는 뭔가 알아야 할 것 같은데 몰라 서 감정이 상했는데 이 부분에 와서는 모른다는 것이 묘한 쾌감으 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 전시를 보는 그 짧은 시간에 작가에게 세 뇌된 것인가. 세뇌돼도 좋다, 아름답기만 하다면. 영상의 여러 부분 에서 먼지 같은 것들이 미세하게 떨리는 움직임을 잡아낸 작가의 눈이 따스하게 예리하다고 생각했다. 전지인은 어떤 것도 과장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사물을 찬찬히 따라가며 영상을 찍어서 작품을 만들었는데 보는 사람을 편하게 했다. 영상 편집도 과도하지 않게, 적절하게 양념을 친 음식처럼 최소한의 효과만 내고 있다. 작가의 목소리를 너무 넣기보다는 사물과 빛의 세계를 좀 참을성 있게 보 다 보면 거기서 진리든 뭐든 나오지 않을까 하는 태도다.

 

하긴 이런 전지인의 태도를 본 것이 한두 해가 아니다. 그가 학교 다닐 때의 작업에서도 끈기 있게 사물을 관찰하며 느릿한 움직임을 담아낸 작업을 봤는데 그 작업이 지난 15년 내내 지속된 듯한 느낌 이다. 전지인의 영상이 내 망막 속에 그렇게 오랜 세월 붙어 있었으 니 친숙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거기서 느낀 것은 전지인의 보는 눈 이었다. 이런 눈이라면 뭔가 믿고 맡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요즘 기획하고 있는 전시에 작가를 초대했다. 이런 눈이라면 차분하게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앞서 쉽사 리 감정 상했던 나의 경박함에 대한 사과이기도 했고 작가의 섬세 한 눈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했다. 사실 전시장을 나서면서 아크릴판에 새긴 글씨와 영상이 무슨 관계일까 고민이 되면서도 작가에게 묻지 못했는데 리뷰를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들은 모두 작가의 시선이 어루만져준 이 세상의 모습의 다른 단면이었다. 지난 15년간 그런 시선을 유지해 왔으니 앞으로 15년도 그러하리라 예상해 본다. 그다음 15년도, 그 다음 15년도 또 그렇게…….


 

*<Folder 직박구리> 2018 은경아크릴, 액자 가변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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