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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7, Dec 2018

정정주
Jeong Jeongju

살아있는 세계: 비어있는 공간, 넘나드는 시선

여기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사물의 크기가 있다. 그 크기는 정확한 치수가 아닌 이상 상대적인 감각으로 파악된다. 이 중 건물은 대체로 인간보다 크게 인식된다. 건물이 갖는 거대하고 단단한 물리성은 우리를 외부로부터 확실하게 구획 짓는다. 그리고 이로부터 건물 안에 머무르는 우리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그 물리적 경계가 모든 시선을 차단하여 심리적 경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예술에 있어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에 대한 의심, 다시 말해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불변의 감각을 뒤바꾸는 일은 우리에게 어떠한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가? 정정주는 이러한 인간의 일반적 인식과 감각을 간단하게 전복시키는 작가다. 그의 작업은 건물과 인간의 크기를 연속적으로 뒤바꾸는 것이다. 작은 모형으로서의 건물은 관객을 상대적으로 확대하면서 그에게 특정한 권력을 부여한다. 이는 일종의 통제 권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껏 포스트 휴먼으로서의 상상 속 인간 중 일부는 거대한 신체를 통해 그 능력을 확보해왔다. 신적 능력과도 같은 이러한 초월성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는 시선의 확장이다. 대상 전부를 관조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대상의 정보와 시점의 파악 및 조작 가능성을 의미한다. 새로운 능력으로부터 권력을 획득한 관객은 모형을 자유롭게 탐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건물모형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순간, 그들은 의도치 않게 작업 일부로 편입된다.
● 천미림 독립큐레이터 ● 사진 서지연

'거실(Living room)' 2014 함석판, 5개의 모니터 120×80×1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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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미림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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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city of gaze-Illusion>(2010)이나 ‘schauhaus’ 시리즈(2000-2008)에서 그는 관객의 모든 행위를 모형 내부의 카메라로 관찰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시선의 권력은 다시금 전복된다. 촬영된 관객의 행위가 실시간으로 전시장에 송출되는 그때, 전시장 안의 관객은 상대적으로 공간보다 축소된다. 모형 내부의 화면(인간)-모형(공간)-관객(인간)-전시장(공간)은 무빙이미지와 관객의 수행이 갖는 현시성과 결합하여 긴장감 있는 통제 게임을 진행한다. 무작위의 뒤섞임, 그 혼란이 주는 착란은 물리적 거리감과 심리적 거리감 사이를 줄다리기하며 부단하게 변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공간과 인간을 하나의 유기체로 묶어내는 데 성공한다. 


유기성을 갖게 된 작업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서 모둠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구체적인 부분들로 다시 분해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분해된 요소들 사이의 수많은 결합 가능성과 경우의 수들은 작업이 끊임없이 변주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따라서 정정주의 작업은 인간과 공간 사이, 보이지 않는 수많은 관계가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생명체와도 닮아있다고 볼 수 있다. 생명체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과 시간을 함께 점유한다는 것이다. 그는 작업을 감상하는 물리적 공간에 카메라를 배치하는 간단한 전략을 통해 현재라는 시간성을 부여함으로써 관객의 경험을 전시적 경험으로 전환한다. 이때 관객은 관람이라는 주체적 행위와 작업의 요소가 된다는 비주체적 행위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이는 수용의 측면에서 흥미로운 해석 지점을 갖는다. 보는 이는 자신이 주관을 갖고 모형을 관찰함으로써 작업을 파악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모형 내부의 카메라가 자신을 촬영하고 영상이 송출된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그 불편함 감각에 의해 주관은 무너진다. 타자의 시선에 의한 의식적 행위는 관객이 관찰행위를 다소 연출하게끔 만들며 이는 작업 관람의 수용적 속성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뒤바꾼다. 





 <Passage 2018> 2018 3D 애니메이션 20인치 모니터




수용자의 역할이 관찰자에서 관찰대상으로 바뀌면서 작업 일부로 편입되는 과정은 자신의 의지와 다소 무관하게 진행된다. 사실상 주도권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체적이라는 착각이 주는 기묘한 느낌은 미적 측면에서의 지각 경험에 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이 모든 과정이 작업 속에 배치된 작가의 의도와 감각에 의해 통제된다는 점에서 참여예술과 미적 경험의 관계에 대한 질문들을 상기해볼 수 있다. 이처럼 작가는 작업이 갖는 구조와 물질성, 다시 말해 형식적이고 조형적인 설정들을 통해 비물리적인 은유들을 병치시킨다. 타인과의 관계, 인간의 기억과 감각, 예술의 역할 등과 관련한 형이상학적 개념들이 작업을 통해 경험으로서 구체화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정주의 작업은 다분히 철학적이다. 그의 작업은 시각으로부터 발생하는 실존의 감각에 대응하는 조형의 시도들이자 동시에 실재와 환상 사이를 조율함으로써 세계를 인식하는 실험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정정주의 작업은 예술에서 기능적 대응이라는 형식적 특징들로부터 서사의 힘을 얻는다. 


특히 중심이 되는 개념이라고 한다면 단연 빛과 공간이다. 작가가 유학 시절 낯선 이국에서 느끼던 외로움을 창을 통해 작은 방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며 타자와의 관계에 대하여 고찰했던 것이 작업의 시발점이 되었다. 빛은 그에게 심리적 관계에 대한 은유이자 동시에 먼 차원의 물리적 존재가 갖는 경이로움이기도 하다. ‘응시의 도시 시리즈는 이러한 사유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업이다. 사실 빛과 공간은 인식적인 측면에서 우리에게 물성을 가늠하고 존재에 관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우리에게 실재한다고 인지되는 대부분의 세계는 입체로 이루어져 있는데(따라서 모든 평면 또한 얇은 형태의 입체로 환원할 수 있다), 입체를 비롯한 모든 가능 대상은 음영에 의해 공간성을 얻는다. 





<빌딩> 2006 나무, 아크릴, 형광등, 5대의 소형 비디오카메라

4개의 모니터, 비디오 프로젝터 300×600×190cm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 그림자와 그늘처럼 빛의 존재 여부는 공간을 인식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빛은 우리에게 공간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준다. 공간을 경험한다는 것은 실존적 감각의 공유이며, 텍스트적 설명보다 선행하는 시각적 제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정주가 빛을 사용하는 방식은 공간의 경험적 속성을 보장하고자 하는 전략으로 읽힌다빛이 들고 나는 방향과 흐름은 앞서 언급한 관객의 시선 및 카메라의 관찰 동선과 병치됨으로써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시킨다. 발생하는 시선과 관찰은 모형과 전시장 사이를 묶는 끈이라는 점에서 우리로 하여금 공간의 형태를 구성하고 그 존재를 확신하게 만든다. 작업을 통해 빛과 시선의 은유와 흐름의 레이어가 중첩됨으로써 공간은 우리에게 실재하게 된다. 감각의 성질들을 빛이라는 물리적 토대 위에 겹침으로써 조형적 당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렇게 빛을 통해 공간을 인식하게 되면 우리의 관심은 공간의 구성적 가능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시금 주목할 만한 대상은 역시 모형이다. 


정정주의 모형은 제거와 비움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우선 모형의 가장 큰 특징은 축소다. 공간이 축소된다는 것은 곧 우리가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다시 말해 모형이라는 매개에 의해 경험 가능한 공간이 온전히 시각적 대상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전환을 통해 오감을 시각으로 한정 지어 집중시키고자 한다. 시각이 작업 전반의 큰 축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축소는 매우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추상이다. 모형은 구체적 사물, 즉 디테일이 제거되고 기본 도형을 바탕으로 단순화되어 제작된다. 사실 정정주의 초기 작업은 제작 대상이 되는 실제 공간의 건축적 특징들을 재현하는 데 집중되었다. 그러나 2016년 갤러리 조선에서 발표된 작업부터는 추상화가 두드러진다. 실제 공간보다 추상화된 표현들은 복잡한 주변부를 생략함으로써 시선과 빛의 흐름 및 움직임을 더욱 명확히 드러낸다. 





<응시의 도시> 2010 나무, 카메라, 프로젝터 가변크기   




대상들의 명료화가 주는 시각적 해방감은 미적 경험을 더욱더 풍요롭게 만든다. 공감은 바로 이 빈칸으로부터 발생한다. 감상의 측면에서 복잡하고 유기적인 작업의 서사들은 관객들에게 현시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미적 경험은 긴장감이나 불편함 같은 자동적 느낌에서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정정주의 작업에서 모형은 오히려 이를 뛰어넘는 사후적 미적 경험을 끌어내기 위한 특별한 장치로서 제시된다. 축소와 추상화를 통해 제거되고 비워진 빈칸은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작가의 모형은 작가 주변에 실재하는 구체적 공간을 모티브로 하지만, 그가 행하는 빈칸의 의도적 구현은 공간의 주관성을 삭제하고 일반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관객들이 시선의 참여와 더불어 모형 속 공간을 자의적으로 재해석하고 자신의 주변부와 경험을 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은 작가의 사건을 관객 자신의 사건으로 전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정정주 작업의 형식적 속성들은 서사의 은유적 구현이자 동시에 공감이라는 특정한 미적 경험으로의 안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정주의 관심 중 일부는 3D 애니메이션에 있다. <Nighthwaks>(2017)이나 <Palace> 같은 작업은 인물을 삭제하고 빛을 이동시켜 명화로 우리에게 익숙한 평면 공간을 재구성한다. 정지된 것과 움직이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틈을 탐색하는 일은 이전까지의 설치작업의 시도들과 절대로 무관하지 않다. 





<Bunker1> 2015 투명아크릴 100×120×100cm





평면 레이어의 중첩으로 형성된 입체들은 가상과 실제를 넘나들며 그가 이제껏 가져왔던 철학적 탐구들을 더욱 심도 있게 파고들게 한다. 덧붙여 카메라부터 애니메이션까지 지속하여온 기술 매체에 대한 작가의 집중도 흥미롭다. 정정주의 작업 전반에서 드러나는 조형적 은유들은 매체의 기술적 속성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요구한다 카메라와 인간 시각의 병치는 신체를 기계로 보는 데카르트적 해석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3D 애니메이션은 물리적 공간이 가상공간으로 이전되면서 발생하는 미적 경험의 변화를 주목할 수 있게 한다. 미디어의 속성을 작업적 전략으로 구성하는 작가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기술의 출현에 따라 그 기술을 습득하고 체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항상 예술의 현재를 고민하고 읽어내려는 그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매체의 특성을 관념적 언어로 풀어내고자 하는 그의 작업은 우리에게 늘 새로운 감각을 일깨운다. 정정주의 세계는 살아있다. 다시 말해 작업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작업과 내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며 결합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공간에서 시선으로, 시선에서 주체로, 주체에서 다시 공간으로 회귀하는 이 순환적인 움직임은 마치 우주의 원리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가 단순히 주제를 제시하는 일방적인 작업이 아닌 대화를 나누는 양방향의 작업을 보여준다는 점 또한 의미가 있다. 인터랙션이 주는 감상적 효과를 통해 우리는 작업에 몰입할 수 있다. 앞으로의 그의 계획은 기존 카메라를 이용한 모형작업과 추상적 조형 작업, 그리고 애니메이션 영상작업을 발전시키고 통합시키는 것이다. 내년 곧 있을 독일 개인전에서 그의 실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정정주




작가 정정주는 홍익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2002년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후버트 키콜(Hubert Kiecol) 교수의 마이스터슐러를 취득했다. 2000년 독일 아헨의 메어베르트 미술협회에서의 개인전 <Schauhaus>를 시작으로 벨기에, 한국, 일본, 독일, 미국, 중국 등 세계 각국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을 비롯해 독일 ZKM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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