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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8, Jan 2019

클레멍 코지토르
Clément Cogitore

경계에 선 작가, 클레멍 코지토르

유난히 상복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 출신 영화감독이자 아티스트인 클레멍 코지토르(Clément Cogitore)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랜드 슬램이라는 말이 부족할 만큼, 그의 수상 경력은 화려하다. 그간 받은 상들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지만 중요한 이력들을 대략적으로 추려서 살펴보자면, 코지토르는 먼저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미주 지역의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쓸며, 꾸준히 연출능력을 인정받아 온 그는 2011년 ‘칸느 영화제(Festival de Cannes)’ ‘15인의 감독’ 부문에 초청되며, 영화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혔다. 같은 해, 역량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을 발굴해내는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 ‘살롱 드 몽후즈(Salon de Montrouge)’에서 그랑프리 수상의 영예를 동시에 안은 그는 예술계에서도 주목 받는 차세대 작가로 급부상한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영향력 있는 동시대 작가에게 주어지는 ‘마르셀 뒤샹 상(Prix Marcel Duchamp)’ 2018년도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며, 명실공히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십여 년간 쉬지 않고 수상릴레이를 이어오며, ‘시네아스트’와 ‘아티스트’라는 두 개의 타이틀을 완전히 거머쥔 클레멍 코지토르.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 사진 Galerie Eva Hober 제공

'Braguino ou la communaute impossible' 2017 LE BAL Courtesy Galerie Eva H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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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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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용지 몇 장에 걸쳐 빼곡하게 적힌 수상 경력과 참여한 전시회 이력만 보더라도 코지토르의 행보는 왕성하게 활동 중인 중견작가 혹은 평생을 예술계에 몸 받쳐 공로상 수상만을 남겨둔 원로작가들의 커리어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따라붙는 수식어가 하나 있다. 바로 젊은이다. 그렇다. 그는 이제 갓 서른 중반을 넘긴 청년예술가다. 이쯤 되니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영화계와 예술계가 앞다투어 이 신예작가에게 왜 이토록 열광했는지, 그 이유가 알고 싶다. 스트라스부르 고등장식미술학교와 국립 현대미술 스튜디오, 르 프레누아를 거친 코지토르는 영상매체를 통해 집중적으로 세상과 소통해온 작가다. 그의 영상은 영화라고 하기엔 비정형적이며, 비디오 아트라고 하기엔 시네마토그래픽적이다


이러한 역설적 비평이 나오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그의 필름 혹은 비디오라고 불리는 영상작업은 두 개의 포지션을 지닌 작가의 이중적 정체성이 시사하듯 시네마와 아트라는 두 경계에 애매하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작업은 기존의 영화들이 추구했던 재현적 환영(illusion)의 전통에서 완전히 탈피해 있다. 작가는 시각적 이질감을 줄이고 내러티브를 뚜렷하게 하는 등 영화의 몰입적 효과를 극대화하여 관객이 스크린 속으로 쉽게 침투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까닭에 관객은 스크린에 투영된 이미지가 실제인지, 허구인지 구별하기 힘든 혼돈을 마주하기 십상이다. 현실과 스크린 속 세상이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고, 때로는 중첩되는 시공간. 현실과 예술, 실재와 창작, 프레임의 안과 밖이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뒤엉키는 제3지대, 이 곳이 바로 코지토르가 구축하는 영상(映像)의 세계다





<Zodiaque> 2017 Courtesy de lartiste, 

de la galerie Eva Hober (FR) et de la galerie Reinhard Hauff (DE)

 



픽션과 논픽션, 다큐멘터리와 페이크 다큐멘터리, 파운드 푸티지와 아카이브 몽타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코지토르는 회화 한 폭을 연상시키는 완성도 높은 미장센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스크린 속에 예술작품을 직접 등장 시키거나 혹은 회화와 영화의 메타적 이미지를 투사하는 등 액자식 구성의 플롯과 미장센을 통해 미술적 색채가 짙은 장면들을 구현해낸다. 특히 예술을 향한 인간의 동경, 표상으로서 재현된 이미지와 현실의 관계에 대해 고찰한 초창기 작업들은 내용만큼이나 시각적으로도 예술적 은유와 상징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모스크바에 위치한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어느 80대 노부부의 저녁식사 장면을 촬영한 다큐멘터리 <비엘루틴, 시간의 정원 안에서(Bielutine, Dans le jardin du temps)>(2011)가 그 대표적인 예다. 전기가 나간 어두컴컴한 집안, 여자주인공 니나가 초에 불을 붙이는 장면으로 영상은 시작된다. 허름한 건물벽, 고풍스럽지만 낡은 가구들, 켜켜이 묵은 먼지들이 기나긴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고, 집안 곳곳을 가득 메운 고대 조각상들, 금테를 두른 회화작품들이 하나 둘씩 차례대로 보인다. 식탁 앞에 앉은 노부부는 인간의 정신적 승화는 오직 예술을 통해 가능하다며 벽에 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미켈란젤로(Michelangelo), 루벤스(Peter Paul Rubens), 티치아노(Titian),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들의 작품들을 예찬한다





<The Evil Eye> 2018 <Prix Marcel Duchamp 2018>

Courtesy Galerie Eva Hober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부부, 그들에게 예술은 진정 초월적 가치를 지닌 숭고의 대상이었을까. 관객을 찌를 듯이 노려보는 초상들의 강렬한 시선, 소파에 널브러진 인형들의 초점 없는 눈빛, 집안을 자유로이 거니는 검은 고양이의 말똥거리는 눈동자가 교차하는 노부부의 기묘한 집안 풍경을 통해 코지토르는 삶과 예술, 현실과 허구, 실재와 이미지가 충돌하는 경계들을 시각화한다. 이처럼 현실과 이미지의 세계를 병치시켜 둘 사이의 경계를 극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그의 연출기법은 <통로(Passages)>(2007)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유서 깊은 종교 조각상들이 잠들어 있는 어느 한 지하 회랑. 카메라는 종교적 경배의 대상이자 믿음의 표상이었던 조각상들이 우두커니 서 있는 어두운 방을 지난다. 뒤이어 바로 옆방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꼭 닮아있는 그들의 식사장면은 앞서 스친 빛바랜 조각상들과 대조적으로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트래블링 숏 하나로 구성된 이 영상은 통로라는 긴 공간의 횡단을 통해 현실과 표상의 간극을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극명하게, 가장 영화적으로 풀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서 표상의 위력은 더욱더 강력해진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이미지들이 현실을 대체하고 허구와 가상이 또 다른 차원의 현실을 구축하는 오늘날, 과연 우리의 눈은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지각할 수 있는가





<Les Indes galantes> 2017 Exposition 

<Uchronies Eva> Hober Galerie Courtesy Galerie Eva Hober

 



이미지뱅크 웹사이트에서 구입한 광고사진, TV와 영화 스틸 컷, 선거 포스터 등 이미 대중들에 의해 소비되고, 유통되는 이미지들을 재편집한 <악한 눈(The Evil Eye)>이미지 포화상태에 이른 동시대의 풍경을 조망하며 현실과 이미지의 불안정한 경계선을 표면화한다. 코지토르는 이러한 현실과 이미지의 대조적 국면을 정치, 문화, 종교, 사회적 이슈로 점차 확장시키며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경계들을 스크린 위에 펼쳐 놓는다. 영국 땅을 밟기 위해 매일 밤 경찰과 사투를 벌이는 불법이민자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우리 중에서(Parmi nous)>,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프랑스 군인들의 미스터리한 실종사건을 다룬 첫 장편영화 <하늘도 아닌 땅도 아닌(Ni le ciel ni la terre)>, 시베리아의 타이가지역에 위치한 한 작은 마을에서 자급자족하는 러시아정교 구교도 신자들의 야생적인 삶을 포착한 다큐멘터리 <브라기노(Braguino)>, -필립 하모(Jean-Philippe Rameau)가 작곡한 18세기 바로크 오페라발레극을 LA 흑인 빈민가에서 유래한 크럼프(Krump)댄스로 재해석한 <우아한 인도의 나라들(Les Indes galantes)>을 들 수 있겠다





<Braguino ou la communaute impossible>

2017 LE BAL Courtesy Galerie Eva Hober





각각의 영상 속에서 다뤄진 소재와 이야기, 연출방식은 모두 판이하지만 코지토르의 이미지에는 언제나 경계가 관통하고 있다. 그는 현실과 환영, 삶과 죽음, 지각과 망각(妄覺), 문명과 자연, 개인과 사회 등 세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경계들을 끊임없이 충돌시키며 이 과정 속에서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사실, 때론 회피하고자 했던 현실의 사각지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코지토르는 경계는 접합(connection)이 아니라, 반향들의 사이(interval)라고 했던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말에 영감 받은 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고 보니 그가 그린 경계는 이 아니라 겹겹이 쌓여지는 에 가깝다. 유연한 긴장을 통해 확장과 중첩이 가능한 중간 영역이다. 그래서인가, 코지토르의 경계는 결코 파열되지 않는다.  

 



 

클레멍 코지토르

Clément Cogitore Courtesy de lartiste

 



작가 클레멍 코지토르는 스트라스부르 고등장식미술학교와 국립 현대미술 스튜디오, 르 프레누아(Le Fresnoy)를 졸업했다. 그의 영상작업은 칸느, 로카르노, 토론토, 텔루라이드, 로스앤젤레스, 산세바스찬 등 국제 영화제에서 다수 초청된 바 있으며, 2011년 살롱 드 몽후즈(Salon de Montrouge) 현대예술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2012년 로마 주재, 프랑스 아카데미 빌라 메디치(Lʼ Académie de France à Rome-Villa Médicis)의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파리 퐁피두센터, 팔레 드 도쿄,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현대예술관, 쿤스트할레 바젤 등에서 전시한 바 있다. 첫 장편영화 <하늘도 아닌 땅도 아닌(Ni le ciel, ni la terre)> 2015년 칸느영화제-비평가주간에서 GAN 재단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르 발(Le BAL), 시엉스 포(Science Po), 리카재단(Fondation Ricard) 등 각종 예술기관에서 작가상을 수상한데 이어, 2018 마르셀 뒤샹 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가 무대연출을 맡은 파리 국립오페라 350주년 기념공연 <우아한 인도의 나라들(Les Indes galantes)>이 올해 9월 초연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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