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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8, Sep 2020

낯선 전쟁

2020.6.25 - 2020.9.2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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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실 미학/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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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리얼리티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학에 입학한 이들이 대개 겪었듯이, 나 또한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그때까지의 모든 역사관과 가치 판단들이 도전받고 송두리째 뒤집히기도 했다. 특히 해방과 한국전쟁은 분단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가장 근본적인 시발점이었다. 당시 그렇게 역사를 다시 보기 위한 필독서 가운데 하나가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의 『한국전쟁의 기원』이었다(다른 정전 하나는 물론, 『해방전후사의 인식』이었다).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브루스 커밍스가 제시한 한국전쟁에 대한 분석과 프레임은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38선을 넘은 6.25 남침이라는 사건은 한국전쟁의 가시적인 발발이지, 결코 전쟁의 원인이 아니라는 점, 전면전 이전 내전과 국지전으로 점철된 이데올로기 대립과 군사 정치적 혼란, 이승만 및 미국의 계산과 착오 등 결코 한 줄로 기술될 수 없는 착종된 역사적 사건의 실타래를 처음 맞닥뜨려 본 것이다. 여전히 휴전상태인 이 땅에서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한 사람들 대부분은 전쟁을 실감하지 못하며, 전쟁의 참상과 이산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는 사라져가고 있다.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깊은 적대와 상처를 보면서, 한편으로 반공 이데올로기가 통치 집단의 정치적 카드로 끝없이 이용되어온 역사 속에서 자라온 세대들에게 전쟁이란 너무나 낯설고 불투명한 어떤 것임에 분명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낯선 전쟁>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마련된 전시이면서, 분단과 전쟁에 대해 이 같은 한국 사회의 정서적 간극과 인식의 불일치를 가늠케 한다. 총 네 파트로 나뉘어있는 전시는 한국전쟁에 대한 전쟁 세대의 기억과 상처를 소환하고(1부 ‘낯선 전쟁의 기억’), 분단이라는 상황이 낳은 왜곡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더듬는 한편(2부 ‘전쟁과 함께 살다’), 내전과 난민에 대한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업들로 전 지구적 전쟁의 폭력성을 다루며(3부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일상의 폭력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제안들을 모색한다(4부 ‘무엇을 할 것인가’). 
구성면에서 전시는 전쟁 세대에서 동시대로, 한국전쟁의 개별성과 참상에서 인류 보편사적 폭력에 대한 성찰로 연결되고 확장된다. 그러나 한편 이 구성은 상당히 이질적이고 단절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말하자면, 마치 ‘전쟁’이라는 화두를 각각 다른 세대와 입장에서 접근한 결과를 펼쳐놓은 채, 전시의 내부에서 이를 연결하는 핵심이나 문제의식이 기민하게 작동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큐레이팅의 문제라기보다는 더 큰 범주에서의 문제, 다시 말해 이 사회가 지닌 공백과 단절이 그대로 재현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회의 세대적 간극과 감수성의 차이, 전쟁의 체험적 서사와 세계 시민적 태도가 갖는 거리감 사이에 어떤 전도체도 없이 단락된 지금의 현실이 반영된 것 아닐까. ‘남침’이라는 대표적인 서사만을 인정하는 정권의 정통성, 아직 공적으로 봉합되지 않은 학살의 개인적·집단적 상처들, 분단과 통일 문제를 바라보는 전혀 다른 시차는 각기 다른 회고와 공감을 설파하고 있는 전시장의 공간적 구획과 겹쳐진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들의 동시대성과 시차를 도외시해온 한국 미술의 노선들이 글로벌 미술과 만나 각기 지분을 얻은 듯 전시장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이러한 결락의 마디들 또한 이 전시가 환기시켜 줄 수 있는 시차적 관점일 것이다.



김세진 <녹색섬광> 2020 6채널 HD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6분 30초 

  



1부 전시장에서 만나는 전쟁 세대의 그림들은 현장의 기록이긴 하지만, 대부분 생생하고 잔혹한 참상보다는 전쟁으로 인한 피난민들의 고통과 정서를 담아낸 작업들이다. 한국전쟁이 냉전의 대리전이라 할 만큼 이념전이었던 것을 반추해보면, 김환기의 <판자집>(1951)이나 이수억의 <폐허의 서울>(1952)와 같은 유화들을 비롯해 전시장에 걸린 그림들은 이념적 호소력을 지닌 이미지들이기보다는 동족상잔의 피해와 고통, 그리고 피난이라는 초유의 경험을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회화가 전쟁의 형상을 담아내는 적절한 매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혹자는 쉽게 전쟁의 진실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 담아낼 수 있다고 답할지 모르겠다. 물론, 상흔을 가라앉힌 그림들보다는 선명한 얼굴들과 사태를 담은 한국전쟁 관련 사진이나 영상 자료에 먼저 눈길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윤중식, 김성환이 남긴 기록화들은 위급함과 끔찍함이 일상이 되어버린 생경한 시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고, 변월룡의 섬세한 에칭 <6.25 전쟁의 비극>(1962)과 <조선분단의 비극>(1962)은 전쟁의 광기와 참상을 담은 고야의 판화들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생이별’, ‘전쟁과부’와 같은 말이 지닌 파괴된 삶, 조선 특유의 비극적 정서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모든 성인 남성의 군복무, 막대한 방위비와 같은 분단 모순의 부산물은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문젯거리로 인식되기보다 병영국가라는 기형적인 ‘정상성’을 낳았고, 군사문화는 한국 가부장제 사회를 지탱하는 위계이자 중추가 되었다. 분단 사회의 일상성에 천착한 2부 전시장에서 천고에 닿을 듯이 세로로 배열된 노순택의 ‘좋은, 살인’(2008) 연작이 가장 눈길을 끈다. 성남 서울비행장에서 개최되는 국제항공 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장의 풍경을 담은 이 사진들은 우리 일상에 더 깊이 파고든 전쟁에 대한 무감각과 군사 엔터테인먼트라는 유령체를 직면하게 만든다. 전쟁과 함께하는 삶의 또 다른 면모는 진화하는 정보 사회에 동기화되어 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이후 육탄전과 물리적 대결의 시대는 끝났고, 걸프전 이후 원거리 미사일과 드론 타격 중심의 공중전은 전쟁에 대한 새로운 지각들을 만들어 냈다. 김세진의 <녹색 섬광>(2020)은 그러한 원거리 지각과 폭력의 윤리를 질문하며 곤충의 눈을 닮은 정찰, 감시, 식별, 조준이라는 새로운 전쟁의 감각을 강렬하게 재구성해 보여준다.

첨예한 신자유주의와 재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 ‘평화’라는 말이 주는 울림은 굉장히 빈약해졌다. 전쟁의 반대말로서 평화는 자신의 일상을 해치지 않는 ‘안정’이라는 말로, 현재의 질서를 가급적 유지하는 한에서 행하는 ‘비폭력적’ 저항이라는 말로 은밀히 등치되곤 한다. 아이 웨이웨이(Ai weiwei)의 영상 <이도메니>(2016)는 그리스 북부와 이케도니아 국경 이도메니에 발이 묶인 수천 명의 난민들과 캠프 철거과정을 평화롭게 보여준다. 철거된 장소에서 주어온 수많은 옷가지와 신발들이 아이 웨이웨이의 베를린 스튜디오에서 세탁되고 전시된다. 2016년의 일이다. 당시 캠프를 찾았던 아이 웨이웨이가 비 오는 날 진창의 캠프에 그랜드피아노를 들여와 난민 소녀를 위해 즉석 연주회를 열었던 이벤트를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은 기만에 가깝다며 비판한 바 있다.

<이도메니> 영상은 작위성을 덜어내 깊고 잔잔하다. 그러나 등 뒤의 거대하게 설치된 고무보트의 난민들 <여행의 법칙>(2017)은 난민의 처지를 환기시키다 못해 스펙터클로 변모한다. 벽에 전사된 <폭탄> (2019)이 전달하는 압도적인 공포와 스케일은 아슬아슬하게 숭고에 가닿는다. 아이 웨이웨이의 작업이 늘 지니는 스케일과 윤리 사이의 긴장이다. 에르칸 오즈겐(Erkan Ozgen)의 영상작업이 3부 전시 동선의 처음과 끝을 담당한다. <보랏빛 모슬린> (2018)에서 난민 캠프에 머무는 야지디 여성들의 증언과 기도는 생생하고 고통스럽다. 여인들은 말한다. 하루 세 번 약을 먹지 않으면 칭얼대는 애들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전쟁의 고통과 폭력은 여전히 동시대적이다. 기념, 애도, 기억을 넘어 이 고난의 시차를 미술이 어떻게 마주하고 재현할 것인지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며, 그 곤란함 또한 이 전시가 주는 리얼리티다. 


*아이 웨이웨이 <여행의 법칙(Law of the Journey)> 2017 강화 염화폴리비닐 350×560×1600cm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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