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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8, Jan 2019

정은영_어리석다 할 것인가 사내답다 할 것인가

2018.11.6 - 2019.12.8 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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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황예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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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은 소멸되었는가: Happily Ever After



늙은 여인이 무대인의 분장을 하고 있다. 움직이는 흑심에 주름 진 피부가 같이 위아래로 딸려갔다. 나는 그 실낱같은 미동을 보 며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분장 시간은 짧았지만 중간 중간 내 쉬는 숨에 몇 곱절, 무한 혹은 정지의 시간을 느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얼굴에는 여러 겹의 서사가 새겨져 있었다. 패인 굴곡에서 오는 역사성, 남성을 묘사하는 행위에서 오는 유사성, 미묘한 오 차와 계승되지 않았다는 지점에서 오는 분절. 내가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다른 세계로 접속할 수 있었고 다른 감정에 마음 이 철렁일 수 있었다.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내가 여성국극 을 알게 된 것은 몇 해 되지 않았다. 깜깜한 학교에 앉아있는데 타 과 학생이 김혜정 감독의 <왕자가 된 소녀들>을 틀었다. 정은영의 작품도 이를 시작으로 처음 접했다. ‘존재했다’로 시작되는 이야기 에 동요하는 편이 아닌데도 여성국극은 내게 충격적으로 다가왔 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내 속에서 “이 시대에도 이런 문화가 있 었다니”하고 퍼져 나오는 쾌감의 아우성이었다. 나는 어느 시대에 잘려나간 여성국극에 역순행적 구성으로 입회한 것이다.


초등학생이었다. 머리가 짧고 털털한 여자아이가 전학을 왔 다. 나의 여자 친구들은 그 친구가 지나가면 얼굴을 붉히거나 소 리를 지르곤 했다. 그 친구가 무심하게 굴면 입을 빼쭉 내밀고 토라졌다. 퀴어의 개념에 대해 몰랐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이르 고 투명하게 내 앞에서 형체를 갖췄다. 성징과 성욕, 성애를 겪 으며 나 또한 다양한 표면의 사랑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내 엄마 아빠가 하는 사랑, 꾸지람으로 시작되는 교과서 속 사랑은 따분했고 아이돌과 애니메이션 팬덤에서 일어나는 연성과 사랑 은 재밌었다. 한 번은 아이돌 커버 댄스팀의 공연을 보러 간 적 이 있다. 물리적 남성은 받지 않는다는 팀은 남성 아이돌 역할 도, 백댄서 역할도 모두 여성이 하고 있었다. 관객마저도 여성이 었다. 유물을 발굴하는 마음으로 보더라도, 성애적 관점으로 보 더라도 여성국극의 본체는 지속되고 있었다. 크게 외쳤던 대사 를 복기하는 여성국극인이 그 광경을 보면 너털웃음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내가 기류로 알고 몸으로 체득했던 것이 언어화되기 시작했 다. 언어의 특성처럼 다수성과 하나의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바 지씨라는 부름은 부치가 되었고 치마씨라는 부름은 팸이 되었 다. 내게 퀴어의 개념은 대항이자 대안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도 성별 이분법으로부터 멀리 도망칠 수 없었다. 다수의 성실한 수행에 무성향이라는 중립지는 통용어 사이에서 고립되었다. 사내답다 할 것인가 어리석다 할 것인가. 사회적으 로 지워진, 잠식된 사랑을 감히 세어볼 수 있을까. 사회는 우리 가 사랑을 실천하기 이전부터 안정적인 사랑, 일반적인 사랑에 대한 그림을 머릿속에 주입했다. 맞물리는 사물에도 성 지칭을 새겨놓고. 마치 프로파간다처럼. 사내답다는 것은 학습된 언어 이자 관계의 완충재 역할이었을 것이다.


무엇답다는 말을 끝내고 나로 돌아가려면 씁쓸하지만, 불화 를 지나야 했다. 여태까지 정은영이 보여준 작업이 성별 교전을 중단하게 하고 날카롭게 중립지로 안내하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사랑의 단상, 역할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물음표라는 무 기를 쥐어 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 물음표를 어떻게 휘두를까 고 민했다. 부드럽고 강력한 수라고 여겼다. 결혼이라는 제목의 작 업을 앞에 두고 마음이 무너졌다. 존중의 언어로 재건된 정동이 내게는 다소 건조하게 다가왔다. 내 사랑의 결론 같기도 했고 무 성한 사랑의 소멸 같기도 했다. 그런 사랑이 있었다고 읽고 맥없 이 자리를 뜨기보다는 그들이 행복했다는 결말에 내가 받은 물 음표를 쓰고 싶다. 호기롭게 얘기한다. 그 사랑은 소멸했는가. 아니, 아니라고.


 

*<무영탑(Directing for Gender)> 2010 단채널 비디오 00:10:15 sireneunyoung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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