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Issue 148, Jan 2019

최병석_바쁜 손 느린 마음 비워지는 선반

2018.12.14 - 2019.1.10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최희승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Tags

만들기와 비우기의 호환 모드



‘만들기(making)’라는 말을 붙여도 정말 괜찮은 걸까? 최병석 은 개인전 <바쁜 손 느린 마음 비워지는 선반>에서 자신의 작업 을 도출해내는 행위인 만들기에 집중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 (Clement Greenberg)가 장식 미학에 공예의 개념을 대입하며 하위 예술로 단정 지어 버린 이후, 동시대 미술에서 좀처럼 조명 받기 어려웠던 만들기가 이번 전시에서는 당연한 듯이 중심에 있다. 전시는 작업이라는 명제 이전에 가만히 앉아 사부작사부 작 뚝딱거리기 자체를 즐거워했던 작가의 초심을 담백하게 드 러내며 ‘만들기도 충분히 괜찮다’는 초록 불빛을 보냈다.


손으로 만든 조각은 다시 손으로 작동시키기에 적당한 크기 로 만들어졌다. 사실 매우 개인적인 기능과 형태를 지니는 최병 석의 조각은 가느다란 녹색과 붉은색의 전선, 반질거리는 육각 형의 너트와 볼트, 빨간 바늘이 동그란 다이얼 사이로 지나가는 타이머와 같이 주로 ‘메이드 인 을지로’의 감각을 머금은 재료를 사용해 얼핏 공업 용품의 모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 서 작가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잠시 뒤에 두고, 지금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할 수 있는 만들기 자체를 바라 봤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작업실 선반을 메우고 있던 재료로 50여 개에 이르는 작품을 제작했고, 완성된 조각에는 제목 대신 일련번호를 붙였다. 스위치, 버튼, 조이스틱, 플러그 등에서 조 각이 지닌 반응과 작동, 즉 기능을 암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정 확하게 어떤 기능을 하는지 전시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 러한 과정을 지켜보고 조언하며 전시를 함께 만들어간 독립 기 획자 장혜정은 작가와의 대화 속에서 ‘바쁜 손’, ‘느린 마음’, ‘비워 지는 선반’이라는 말을 꺼내 전시 제목으로 제안했다.


그런데 제목에서 (‘비워진 선반’이 아닌) ‘비워지는 선반’은 아 직 완전히 비워지지 않았다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업실의 선반은 작가의 만들기에 의해 비워졌을지라도 전시장 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커다란 선반에는 새로운 조각이 즐비했 다. 맞은편 아카이브에도 결코 비어 있지 않은, 패널이 빼곡히 들어있는 선반이 자리하고 있다. 약간의 과장을 섞어, 이번 전시 에서 선반의 의미는 최병석이 재료를 쌓아두는 물리적인 공간 외에도 작업을 구현하기 위해 마련한 편안하고 너른 자리, 나아 가 작업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환기하는 곧고 평평한 마음 을 포함하는 것처럼 들렸다. 특히 조각 일부를 확대해 형태를 드 러낸 흑백사진과 조각의 기능과 형태, 재료를 두고 A(기능이 형 태를 결정한 경우), B(기능과 형태가 비교적 동등하게 적용된 경 우), C(재료가 형태를 결정한 경우), D(기능 없이 형태만 남은 경 우)의 네 가지로 분류된 작품 목록은 작가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 을 어렴풋이 가리키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에서 전시장의 선반 이 또다시 비워질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만들기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한 이번 전시는 이처럼 동시대 미술 작가로서 시각 언어를 창조해내는, 작업이라는 끝 모를 선 반을 채우고, 비우고, 뒤집어 풀었다가 다시 조립하는 일을 계속 이어가는 것에 대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리 고 무엇인가를 비워내는 일은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향해 준비 자세를 잡는, 아주 구체적인 행동이자 실천임을 우리는 알고 있 다. 이제 청소를 마무리하고 있는 최병석의 선반 위에 무엇이 들 어서고 쌓이며, 마지막까지 놓여있게 될지 오래 지켜보는 일이 우리에게 남아있다. ● 최희승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A18006> 2018 놋쇠, 스프링, 폴리우드, 스위치, 전선, 솔레노 이드, 타이머, 모터, 결합기, 선 택장치, 케이블타이, 모터마운트, 긴 볼트, 슈링크 튜브, 볼트, 너 트, 워셔 13.2(h)×16×16cm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