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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9, Feb 2019

버팀의 미학

France

GÉOMÉTRIES SUD,
DU MEXIQUE À LA TERRE DE FEU
2018.10.14-2019.2.24 파리, 까르띠에 현대예술재단

멕시코 출신 영화감독,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ón)이 신작 [로마(Roma)]로 돌아왔다. 멕시코 시티의 한 작은 마을, 콜로니아 로마를 배경으로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격동하는 1970년대 멕시코의 풍경을 스크린 속에 담담히 그려냈다. 비교적 다른 중남미대륙의 국가들보다 안정된 나라로 비쳤던 멕시코, 그것은 어쩌면 한낱 허울에 불과했던 것일까. 잘 드러나 보이지 않았던 사회의 염증은 1971년 ‘성체 축일 학살사건(Corpus Christi Massacre)’으로 터지고 만다.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는 좌파 학생시위대와 우익무장단체가 격돌하며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 유혈사태로 평화로웠던 멕시코 사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무자비한 국가의 폭력 앞에 선 사람들, 무책임하게 떠나버린 가장과 남겨진 가족들, 사랑하는 남자에게 비참하게 버려진 여자. 소년 쿠아론이 목도한 현실은 처참했으나, 그런데도 감독 쿠아론은 이 비극적 기억을 눈부시게 아름답도록 담아낸다. 결코 미화는 아니다. 그가 17년 만에 모국으로 돌아와 만든 이 영화는 묵묵히 파란의 시대를 버텨온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터전을 변함없이 지켜온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 사진 까르띠에 현대예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제공

Vue de l’exposition 'Géméries Sud, du Mexique à la Terre de Feu' présentée du 14 octobre 2018 au 24 férier 2019 à la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Paris Photo ⓒ Luc Boeg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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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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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규모의 이구아수 폭포를 비롯해 볼리비아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우유니 소금사막,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티티카카 호수, 울창한 아마존 정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잉카인들이 건설한 마추픽추 공중도시, 지구의 최남단 페리토 모레노 빙하에 이르기까지. 멕시코를 따라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까지 광활하게 펼쳐지는 남미대륙은 태초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땅이다. 또한, 아메리카 인디언, 잉카, 아스테카, 마야 문명이 탄생한 근원지로 고대문명의 신비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땅의 역사는 결코 순탄치 못했다.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이 세계 일주에 성공하며 본격적인 대항해시대가 열린 15세기, 유럽의 항해사들이 처음 도착한 신대륙은 곧 침략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아메리카는 물론 중남미 대륙 곳곳에서 약탈과 대학살이 자행되었고, 특히 아스테카와 잉카 문명은 스페인 함대에 의해 허무하게 멸망하고 만다. 이후 300여 년간 지속한 식민통치를 경험한 중남미 국가들은 20세기 초에 이르러 마침내 독립하지만, 군부독재와 냉전 시대를 거치며 또 한번 혼돈의 시대를 맞이한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 민족과 땅을 잃은 중남미대륙의 근대로의 이행은 이처럼 혹독했다. 누군가의 위대한 탐험이 누군가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았다. 어두웠던 과거의 긴 터널을 지난 지금, 이 땅에는 과연 무엇이 남아있을까. 현재 파리, 까르띠에 현대예술재단에서 진행 중인 <남쪽의 기하학, 멕시코에서 불의 대지까지(Géométries Sud, du Mexique à la Terre de Feu)>전은 중남미 고대문명이 남긴 유물들부터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들까지 총망라하여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시도한다. 흑백으로 채워진 쿠아론의 로마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의 빛을 선사했다면, 남쪽의 기하학은 강렬한 색채들의 향연이라 하겠다.





Olga de Amaral <Brumas E, B, C, A> 2013 Cotton, gesso, 

and acrylic 190×90cm (each) Galerie La Patinoire Royale / 

Valerie Bach, Brussels, Belgium Courtesy of Casa Amaral ⓒ Diego Amaral





70여 명의 아티스트가 참여, 소수 토착 원주민들의 삶과 풍습,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오브제를 시작으로 고대 유적지부터 현재의 도시 모습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회화, 전통과 현대를 관통하는 기하학적 문양과 대담한 색채가 돋보이는 대형 설치물에 이르기까지 250여 점의 작품들로 가득 메워진 전시장은 마치 중남미대륙을 여행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지역색이 짙게 묻어있다. 볼리비아 출신 건축가, 프레디 마마니 실베스트레(Freddy Mamani Silvestre)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설계한 인 시튜(in-situ) 설치작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반긴다. 장 누벨(Jean Nouvel)이 거대한 유리창을 사용해 내부공간과 정원의 녹음을 하나로 중첩해, 투명함을 강조한 기존의 까르띠에 재단은 장식성이 강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샹들리에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는 중앙홀에는 알록달록한 색상들과 계단형 문양이 입혀진 천장과 기둥이 펼쳐지고,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된 형광빛의 조명들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왕궁을 연상케 할 만큼 화려한 그의 네오 안디안(Neo-Andean) 건축 스타일은 안데스산맥에 거주하는 아이마라족의 전통문화에서 받은 영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이다.




Vue de l’exposition <Géméries Sud, du Mexique à la Terre de Feu>

 présentée du 14 octobre 2018 au 24 férier 2019 à la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Paris Photo ⓒ Thibaut Voisin  





중앙에 놓인 대형 스크린에는 2000년대 초반부터 프레디 마마니가 볼리비아의 수도, 엘 알토(El Alto)에 설계한 100여 채의 건물들의 사진들이 지나간다. 형형색색의 벽돌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거대한 기하학적인 패턴을 만들어내는 건물들은 용도에 따라 층이 구획되어 있는데, 1층은 상점이나 임대용 거주공간, 중간층은 결혼이나 아이마라족의 축제를 위한 이벤트 살롱(salon de eventos), 꼭대기 층은 샬레(chalet)라고 불리는 건물주의 호화로운 거주공간으로 사용된다. 안티플라노 고원의 푸른 하늘과 붉은 땅을 배경으로 세워진 그의 건축물 시리즈는 남미의 정신이 가장 잘 반영된 창작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아마도 석조공이었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능과 본인의 뿌리인 아이마라족의 전통을 간직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뒤이어 파라과이를 대표하는 듀오 건축가, 솔라노 베니테즈(Solano Benitez)와 글로리아 카브랄(Gloria Cabral)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Freddy Mamani <Cholet in red brick residential area> 

2016 El Alto Photo ⓒ Tatewaki Nio, Néo-andina series 

This work was produced with the support of the 

musée du quai Branly - Jacques Chirac 

 




2016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Venice Architecture Biennale)’에서황금사자상(Golden Lion)’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이들은 144개의 벽돌과 콘크리트를 모르타르(mortar) 기법으로 결합하여 격자 형태의 대형 오브제를 완성했다. 수직과 수평, 양방향으로 연결된 마름모꼴의 골조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며 무한대로 확장된다. 중남미 토양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적 소재를 사용, 단순한 형태의 반복을 통해 구축된 이 유기적 생성구조는 지속 가능한 경제와 친환경이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운 건축가들의 창작 의도를 함축하고 있다


이처럼, 수많은 점이 만나 하나의 선을 이루고, 그 선들이 모여 평면과 입체로 차원을 확대해나가는 기하학적 증식과 다채로운 색채는 중남미 예술의 핵심을 이룬다. 대비 효과가 큰 색들을 조합하여 한 치의 오차 없이 깔끔한 화면을 구성하는 쿠바 출신의 노장 아티스트, 카르멘 헤레라(Carmen Herrera) <세 개의 빨간 삼각형들(3 Red Triangles)>을 비롯해 신대륙 발견 전 남미 땅의 지도와 현대 감옥의 평면도를 겹쳐 가상의 판옵티콘을 제작한 귀에르모 쿠이트카(Guillermo Kuitca) <노란 감옥(Cárcel amarilla)>, 화려한 색으로 염색된 수만 개의 얇은 섬유를 콜롬비아의 전통 직조 기법으로 엮어, 대각선 형태로 섬세하게 정렬, 배치한 올가 드 아마랄(Olga de Amaral)의 공중커튼에서 살펴볼 수 있듯기하학의 전통은 중남미의 과거와 현대를 잇는 매개체의 임무를 수행한다





Luiz Zerbini <A Primeira Missa> 2014 Acrylic on canvas 

200×300cm Collection Luis Zerbini ⓒ Luiz Zerbini Photo ⓒ Jaime Acioli





민족적 정서가 진하게 깃든 이들의 예술은 영광의 시대만 비추지 않는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 문명의 자취, 존멸의 갈림길에 서 있는 소수민족들의 초상, 현대화라는 명목하에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개발과 환경파괴의 실태를 포착한 사진들은 과거사를 포함해 오늘날 중남미 국가들이 새롭게 직면한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성한 야자수 숲이 우거진 푸른 해안가, 커다란 머리 장식과 귀걸이를 한 원주민 여자와 백인 남자가 서 있다. 언뜻 평온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새까만 피부를 가진 여자의 얼굴과 젖가슴은 피로 물들어 있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카브랄(Cabral) 1500년에 브라질을 발견하고 첫 미사를 집전하는 광경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루이즈 제르비니(Luiz Zerbini) <최초의 미사(A Primeira Missa)>는 곧 다가올 중남미대륙의 비극적 운명을 예고한다. 침략자의 이름이 지명으로 남은 땅,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잊지 않고, 몰락과 상실의 시대를 꿋꿋이 버텨낸 자들이 있었기에 중남미 대륙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고 있다. 휘황찬란한 남쪽의 기하학이 절대 과하지 않은 이유다.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현대미술과 뉴미디어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 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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