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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1, Apr 2019

배남한
Bae Namhan

우주적 전회(轉回)로서의 침묵의 공간 : 응시

배남한이 펼쳐 보이는 세계는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가상의 세계다. 미디어 아트만 아니지 실은 그 이상의 상상계를 보여준다. 커다란 화면에 지시된 수많은 이미지는 원전(原典)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을 짜는데 동원된 원소들이다. 그는 복사기를 활용하여 같은 이미지를 수없이 복제해 하나의 화면을 만들어나간다. 예나 지금이나 그 중심은 언제나 태아와 우주인이다. 태아는 시원(始原), 그러니까 문명 이전의 세계를, 우주인은 과학 문명으로 표상되는 현대의 세계를 표상한다. 배남한은 이 중심축을 기준으로 잡지와 신문, 서적에서 가려 뽑은 이미지들을 합성해 나간다. 그가 작품 제작에 주로 사용하는 기법은 ‘콜라주(collage)’다. 피카소(Pablo Picasso)와 같은 입체파 작가들로부터 시작해 다다(Dada)와 초현실주의에 이르는, 그리고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수많은 작가에 의해 이어지고 있는 잘 알려진 회화의 표현기법 중 하나다. 배남한은 어쩌면 이제 흔한 기법으로 치부되고 있는 이 콜라주 작업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오늘의 상황에서 모종의 발언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사진 작가 제공

'There and there' 2017 혼합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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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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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남한의 작품을 소개하기에 앞서 우선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 이유는 작가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그 작가가 처한 창작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현실을 도외시한 작품의 분석이나 이해는 사상누각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에 이 창작의 조건에 대한 이해는 그 어떤 요인보다 우선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배남한이 현재의 양평 작업실로 이사했을 때 그는 한 트럭분의 하드보드 전지를 가져왔다. 그는 작업실의 한쪽 벽에 엄청난 분량의 하드보드를 쌓아놓고 작업의 재료로 쓰기 시작했다. 현재는 그 많던 양이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태다. 그만큼 작업량이 많고 치열했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 그가 가져온 것은 한 질의 과학대백과사전이다


배남한은 10년 동안 그 많은 양의 사전을 독파하는 한편 다양한 잡지와 서적에서 마음에 드는 장면을 골라 수집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그의 작업실을 맨 처음 방문한 10여 년 전 당시 그는 주변에서 구한 사물들을 화면에 결합한 드로잉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개념미술이 한참 위세를 떨치던 1970년대 중반에 작업을 시작한 그는 사물(objet)에 대한 개념적 분석에 빠져 있었고 그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 그의 작업은 개념미술과 1980년대 초반 화단에 성행한 드로잉의 방법론이 결합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작가로 활동한 적이 있는 나는 그런 그의 세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예순 살에 이르렀던 그는 자신이 겪은 화단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작가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도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There and there> 2018 혼합매체 122×122cm 





허름한 단층 슬래브 건물의 옥상에 널린 하드보드지에는 주변에서 구한 나뭇가지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오브제들이 연필, 공업용 락카 스프레이, , 유성 마카 등으로 그린 드로잉과 한 자리에 어울려 배남한 특유의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한 광경은 작업실 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동안 제작한 작품을 한쪽 벽에 켜켜이 쌓아 놓은 채, 마치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작업실 바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연못의 더러운 진흙 바닥에서 아름답고 청초한 연꽃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그때 실감했다. 배남한은 광기에 찬 눈을 번뜩이며 과거를 회상하는 동시에 현재를 직시한 작업에 몰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궁벽하고 외진 시골의 구석에 처박혀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죄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실 벽에는 감각과 느낌을 초월하면 무엇이 보여질까?, 채움과 비움, 범부의 삶을 살자와 같은 문구들이 마구 휘갈긴 필체로 쓰여 있다. 그 중 범부의 삶이란 문구에서는 예술가의 특권을 배제한 평민의 삶 속에서 생활의 단면을 기록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소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채움과 비움은 화면 구성의 원리로 가득 찬 것과 비워진 것 사이의 진자운동을, 감각과 느낌의 초월은 눈에 보이는 시각적 이미지의 너머에 존재하는 진실을 추구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There and there> 2018 혼합매체 122×122cm




근작을 통해 배남한은 작업의 많은 부분을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전도>를 파편화하는 일에 정성을 쏟고 있다. 그는 <금강전도>의 복사된 이미지를 잘라 붙임으로써 원전의 의미를 해체하는 가운데 다른 원전으로부터 온 이미지들과 함께 어울려 새로운 세계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행한다. 초현실주의의 환치기법을 연상시키는 이 재구성 작업은 아련한 유년 시절의 공간 공포 체험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평면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의 단절은 종이를 잘라 이어 붙이는 행위의 행간에 나타난다. 차라리 단절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 상상작용은 기실 지각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물리적 사물을 통해 지각된 것 이상을 상상하는 인간의 정신작용은 특수한 심리적 국면이지만, 이미지를 통해 그러한 작용을 환기하는 것이야말로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의 주된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There and there> 2017 혼합매체 53×132cm 




어렸을 적 까마득한 절벽 앞에 서 있던 원초적 경험은 왜 그가 유독 끝없는 우주 공간을 탐색하는 우주인을 주소재로 택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을 해 준다. 이는 어머니의 컴컴한 자궁 속에 웅크리고 있는 태아의 공포와도 맞닿아 있다. 배남한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이다. 그의 작품에는 세상의 삼라만상이 만화경의 파노라마 형태로 펼쳐진다. 최초로 달에 착륙한 우주인과 자궁 속의 태아 이미지를 대비시키는 가운데 자연의 다양한 물상들과 사회상이 특유의 콜라지 기법을 통해 펼쳐진다. 그의 작품에는 겸재의  <금강전도> 등 한국의 고전 명화 이미지와 동서의 고전 명화, 현대의 인물과 사회의 단편 이미지들이 서로 중첩되거나 나란히 이웃하여 공존하기도 한다. 나비와 꽃으로 대변되는 생명의 탄생에 대한 예찬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죽음의 음산한 장송곡이 흐른다. 오욕칠정을 지닌 인간의 감정이 파편화된 이미지들을 통해 유감없이 발산되고 있다.


현대의 과학과 기술 문명이 탱화와 같은 무속의 이미지와 공존하는 것이 배남한의 그림이다. 따라서 모던 이전(pre-modern)모던(modern), 그리고 포스트 모던(postmodern)이 한 화면에 뒤섞여 있다. 그것들은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원환적인 사건들의 조합을 보여준다. 특별한 인과관계가 없이 병치 되거나 중첩된 이미지들은 삶에서 일어나는 우연성에 대한 탐구의 결과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그처럼 혼란스럽게 보이는 물상들의 이면에는 노자가 우주의 근본 원리로 본 질서가 흐르고 있음을 도저한 통찰로 잡아내고 있다


 



<There and there> 2018 혼합매체 176×336cm




그는 현상만을 보지 말고 그 이면에 흐르는 원리를 보라고 말한다. 허상에 불과한 이미지가 아닌 실체에 접근할 것을 권고한다. 기다려라, 기다려라, 뭔가가 오는 중이다. 그의 화면에는 잡지에서 오려낸 영어 문구가 간명한 경고의 형태로 등장한다. Youve been waiting is on its way, Waiting is on its, Waiting . 그것들은 도대체 어떤 맥락에 존재하다 잘려서 소환된 것일까? 그 해석은 오롯이 보는 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수많은 이미지의 결합을 통해 상상의 복원을 시도하는 배남한의 작품은 R. G 콜링우드(R. G Collingwood)의 잘 알려진 가위와 풀의 역사 개념에 빗대면 아주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해 준다. 가위와 풀에 의한 콜라주 기법을 통해 과거의 단면을 새로운 현재적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포스트모던의 개방적인 세계를 열어갈 새로운 단초를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관람객의 상상력을 통해 마무리되는, 작가와 관람객 간의 상호작용(interaction)이 이루어지는 개방적인 공간의 하나인 것이다.  

 



배남한




작가 배남한은 1951년에 경상남도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앙데팡당전>, 서울비엔날레 그리고 서울현대미술제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관훈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2019년에 팔레드서울에서 제2회 개인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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