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초상을 담는 작가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가 부산을 찾았다. 독일 쾰른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그는 오랜 시간 도서관, 극장, 박물관 등 문화적 공공장소 내부공간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포착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나란히 공개되는 회퍼의 초기작과 신작은 사진 속 대상의 시각적 면모와 공간 존재의 역사적 깊이를 함께 드러낸다. <Dom Melnikova Moskwa VIII 2017>은 러시아 구성주의 건축가 콘스탄틴 멜니코프(Konstantin Melnikov)가 설계한 멜니코프 하우스(Melnikov House)의 모습으로, 2017년 모스크바에서 촬영한 것이다. 작품 속 공간은 마치 건물이 지어진 1920년대에 멈춘 듯 본래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지만, 유리창 밖으로 현시대를 엿볼 수 있는 관람자들은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에르미타주 미술관(State Hermitage Museum)의 협력으로 완성된 <Bolshoi Teatr Moskwa III 2017>은 볼쇼이 극장(Bolshoi Teatr) 공간 자체의 상징적인 역사와 그곳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던 작가의 시간과 경험이 더해져 한층 더 풍부한 컨텍스트로 거듭난다.
<Bolshoi Teatr Moskwa III 2017>
C프린트 180×199.6cm ©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 Candida Höfer/VG Bild-Kunst, Bonn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La Salle Labrouste - La Bibliothèque de l'INHA Paris II 2017>은 약 7년간의 재건축과정을 거쳐 현재 모습으로 완성된 프랑스 국립 미술사 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Art History) 도서관 열람실 풍경으로, 역사, 즉 시간의 흐름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보존하는 문화적 기관들의 면면과 가치에 주목하는 회퍼의 면모를 가늠할 수 있다. 회퍼는 장소에 본래 존재하는 인공조명과 자연광을 제외하고 어떠한 인위적 조명 장비나 보정도 가미하지 않는다. 제한된 시간 내 장소를 포착해야 하는 작품의 특성상, 작가는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 다양한 구도와 조광을 사전에 철저하고 세밀하게 계산한다. 촬영이 끝나고 수많은 인화와 선정 작업을 거쳐 최종 결과물이 선발된다. 하나의 이미지로 완성된 회퍼의 작품에선 대체로 인간의 형상을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그저 시각적으로만 부재할 따름이다. 사진 속 전경들은 그 자체로 인간의 업적과 활동을 증명하고 있으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인간 존재를 필연적으로 상기시킨다. 특유의 정교한 구도와 완성도 높은 기술로 현대사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 회퍼의 작품은 11월 8일까지 만날 수 있다.
· 문의 국제갤러리 부산 051-758-2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