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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2, May 2019

팬텀시티

2019.4.3 - 2019.7.21 세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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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홍균 독립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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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마고리아에 무감각해진 지금



세화미술관의 도시를 주제로 한 연속기획팬텀시티 2018원더시티에 이은 두 번째 전시이다. ‘원더시티가 근대도시의 풍경을 관망하던 보들레르(Charles Baudelarie)의 산책자의 태도를 차용했다면, ‘팬텀시티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아케이드가 처음 등장했던 1822년 이후의 파리를 기록한 탐구서다. 벤야민이 살았던 20세기의 파리가 아니고, 보들레르가 살았던 19세기 파리의 이야기다. 모든 사물이 상품이 되어가기 시작했던 시기, 그는 산책자로서의 보들레르를 탐구의 중심에 두었다. 우리는 전시장에서 산책자가 된다. 한가한 시간이 노동 시간의 일부로 보이기도 한다. 혼자일 때보다 여럿이 있을 때 산책자는 좀 더 그 임무에 충실해진다. 잘 차려입고 나온 날은 더욱더 그러하다. 작품을 향한 시선은 어느새 다른 산책자를 좇기도 한다. 그들은 서로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으려 애씀으로써 서로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나의 상점을 지나 다음 상점 앞을 지나듯, 하나의 작품을 지나 다음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떤 작품은 그냥 지나치듯 하면서, 어떤 작품은 오랜 시간 머물기도 한다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기 전 좀 더 오래 산책자의 시선을 잡아둘 수 있도록 작품들은 나름의 유인책을 갖는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 흰 벽에 단정하게 정리되어 보는 이의 이해를 돕는다. 그리고 곳곳에 적힌 작가의 짧고 명쾌한 문장은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을 말해준다. 때로는 작품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한다. 갤러리는 전체가 하나의 공간이지만 작가별로 집중해서 관람할 수 있도록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넋을 놓고 보다가는 다음 공간으로 이동할 통로를 찾지 못해 헤맬 수도 있다.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과 이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케이드의 상품 진열 방식과 그곳을 어슬렁거리는 산책자와 닮아있다. 관람자는 아케이드를 거닐던 산책자가 그랬듯 전시된 작품을 관람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전시한다. 19세기 아케이드가 처음 등장했던 시기 작가들은 그곳에서 인테리어 작업을 하며 돈을 벌기도 했다. 그들은 본 전시가 전면에 내세우는 판타스마고리아를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또 다른 판타스마고리아로 관람객의 시선을 현혹시킨다정정주의 <Facade 2019>는 이제 막 신축공사를 마치고 점등식이라도 하는 듯 화려한 조명을 밝힌 텅 비어있는 구조물이다. 우리는 이 공간이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미래의 모습을 투영해서 보게 된다. 인간을 집어넣기 위한 거대한 정리함의 모습이다. 권용래의 <Vision-Light>는 빛이 곧 작품이 된다. 천정에 설치된 조명이 스테인리스 스틸에 반사되어 벽면에 현란한 빛 그림자를 남긴다. 빛이 없는 공간에서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 이는 빛이 없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도시를 다시 확인시켜주기도 한다. 러봇랩의 <AVENUE I>은 광화문 앞 세종대로를 빛으로 표현한다. 긴 막대 모양의 조명등은 장노출로 촬영된 촛불 행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도시의 빛은 그 형태만으로도 서사를 지니게 된 셈이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인 판타스마고리아는 온갖 현란한 빛으로 상품을 돋보이게 해 소비 욕망을 부추기는 촉매제의 기능을 가진다. 그것은 사람들을 속이지 않고서는 돈을 벌 수 없었던 상품판매 공간으로서의 아케이드를 비판하는 의미가 있다. 조명에서 나오는 빛이 공기를 오염시키지는 않을까 의심하던 그런 시대였다. 전시는 도시를 시각적 환영 덩어리로 보고, 작가들은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살펴본다최은정의 <Untitled>는 그 밝고 화려함만으로도 유토피아를 이야기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 자체가 환영이기도 한 각각의 캔버스는 흥미로운 설치 방식과 어우러져 또 하나의 거대한 환영을 만든다. 드러난 나무 구조물들은 환영을 방해하는 건 아닌지 혼란을 주기도 한다. 혜자의 <Hauptbahnhof>는 베를린 중앙역을 배경으로 한다. 19세기 아케이드처럼 이곳 역시 철과 유리로 지어졌다화려한 상품들과 인간의 욕망이 뒤섞인 아케이드의 판타스마고리아는 인간의 불안과 고독이 뒤섞인 도시의 신기루가 되었다. 홍성우는 오래된 아파트 풍경을 3D 프로그램을 이용해 담아낸다. 빛은 오래된 아파트를 더욱더 흥미롭게 만든다. <APT-W-1>은 빛과 나무의 그림자가 투영된 아파트의 벽면이다. 작품은 유리창 전면을 덮어 외부의 빛을 흡수해 실제 벽면을 보는 듯하다. 이러한 착시는 이희준의 작업으로 이어진다. 작품<A Shape of Taste no.111>는 건너편 건물의 실제 모습과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전시장의 커다란 유리 창문으로 바로 건너편 구세군 빌딩이 보이기 때문이다. 두 점의 작품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는 작업의 출발점이 어디인지 짐작케 한다. 


이창원의 <네 도시:바그다드,평양,서울,후쿠시마>는 미디어를 통해 접했을 법한 도시의 이미지를 빛을 이용해 벽면에 투사시킨 작품이다. 벽면에 투사된 각 도시의 이미지는 그 차이를 구별하기 힘들다. 우리가 접하는 도시 이미지는 실제보다 선명해서 오히려 실제의 모습이 허상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최성록의 <Scroll Down Journey>는 가상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처럼 친숙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도시는 과거 어느 시점에서는 가상의 이미지였다. 그래서 세대에 따라 도시의 모습이 낯설면서 친숙하게도 느껴진다. 작가는 드론의 시점에서 본 도시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그려나간다. 작가들은 도시 이미지를 수집하는 산책자이다. 보들레르의 시가 파리를 그 자양분으로 삼았듯 작가들 역시 그러하다다만, 산책의 방식과 범위가 조금 확장되었을 뿐이다. 그들은 기차역, 오래된 아파트, 고층 건물 등 도시 곳곳을 거닐며 이미지를 수집하기도 하지만 인터넷을 떠돌기도 한다. 이제 산책은 시공을 초월하는 수집행위가 된다. 그리고 산책자의 발걸음은 하나하나 기록되고 분석된다. 과거 아케이드 산책자가 그 어슬렁거리는 행위만으로도 상품판매에 기여했다면 이젠 가볍게 키보드를 누르는 손끝만으로도 자본을 만드는 일에 협조하게 된 셈이다. 판타스마고리아에 무감각해진 지금, 알고리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판타스마고리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러봇랩 <AVENUE Ι> 2019 인터렉티브 라이트 아트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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