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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3, June 2019

처염상정(處染常淨)

Cambodia

Landscapes Afterwar(d)s
2019.4.25-2019.5.25 프롬펜, 보파나 시청각 자료 센터

크메르족의 찬란한 유산이 살아 숨 쉬는 곳, 캄보디아. 연꽃을 닮은 앙코르 와트의 탑 봉우리들이 하늘을 향해 높게 솟아오르고, 지상과 천상을 잇는 무지개다리 너머로 크메르의 미소가 환하게 번진다. 천상의 무희, 압사라의 춤사위가 펼쳐지고, 거대한 무리의 코끼리가 광활한 들판을 가로지르며 행렬한다. 신과 인간, 산 자와 죽은 자, 자연과 문명이 한데 어우러진 이 땅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다 형용할 수 있을까. 그러나 캄보디아는 비운의 나라이기도 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앙코르 왕국은 일찌감치 15세기에 막을 내렸고, 이후 베트남의 지배를 받아온 이들은 제국주의 시절, 끝내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마침내 왕정복고와 독립을 이루어내지만, 현실은 야속했다. 안정을 되찾기도 전 캄보디아 사회는 냉전과 함께 또다시 사상적, 정치적 혼란에 휩싸였고 그 결과 세상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 사진 Bophana Audiovisual Resource Center 제공

Luanne Delgado 'Diamond Island avant / apres' Photographie argentique noir et blanc, Phnom Penh, Juillet 2018 ⓒ Luanne Delg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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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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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포트(Pol Pot)가 이끌었던 캄보디아의 급진 좌익 무장단체, 크메르루즈(Khmer Rouge)가 자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제노사이드는 지금까지도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악랄했던 사건으로 회자한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불과 4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이들은 농촌사회에 기반한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목표 아래, 지식인과 부유층은 물론 노인, 여성, 어린아이를 무차별적으로 고문하고 학살했다. 일명 ‘S-21’로 불리는 투옹슬랭(Tuol Sleng) 교도소와 캄보디아 전역에 산재해 있는 2만여 개의 집단학살 매장지, 킬링필드(Killing Fields)는 그릇된 이데올로기가 불러온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덧 40년이 흘렀다. 그사이 많은 것들이 변했다. 특히 수도 프놈펜의 모습은 과거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탈바꿈했다





Carole Fékété <Pop Phsar Kandal> 2018

 Digital images in loop ⓒ Carole Fékété




황톳빛 모래 먼지를 날리던 비포장길은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로 바뀌었고, 메콩강변에는 초고층 빌딩들이 들어섰다. 마치 과거의 슬픔을 말끔히 씻어내려는 듯, 프놈펜의 풍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방인이 바라본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좀 더 가까이에서 이곳을 들여다보면, 속사정은 꽤 암울하다. 공포의 시절은 끝났지만, 새롭게 변화하는 캄보디아 사회의 이면에는기억의 부재라는 커다란 상흔이 남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프놈펜의 거리는 베이비 붐 세대인 이삼십대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이들은 앞선 세대가 겪은 비극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 말살에 가까웠던 킬링필드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극히 소수였고, 그 시절을 언급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이 전쟁, 학살과 같은 집단적·국가적 차원의 폭력일 경우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이보다 더 참담한 일은 이 비극의 역사가 사라지고 잊히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풍경 속을 사는 캄보디아의 2030 세대. 그들은 무엇을 기억하는가.





Luanne Delgado <Diamond Island avant / apres>

 Photographie argentique noir et blanc, 

Phnom Penh, Juillet 2018 ⓒ Luanne Delgado 

 



킬링필드 사건이 세계에 제대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영화감독, 리티 판(Rithy Panh)의 작품들을 통해서다. 크메르루즈 정권하에서 처참한 유년기를 보내다 극적으로 프랑스 망명에 성공한 그는 자신이 실제로 보고 겪은 참상을 스크린 위로 옮겼다. 리티 판의 영화는 단순히 한 개인의 자전적 기억을 담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자의 증언이며, 곧 시대의 기록이다. 이러한 까닭에 그의 영화는 캄보디아 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이후, 그는 캄보디아의 시청각 자료들을 수집 관리하는 아카이브 센터이자, 영화와 영상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보파나 센터(Bophana Center)를 설립하여, 젊은 예술인들을 양성하고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크메르루즈 축출 40주년을 맞이한 올해, 때마침 보파나 센터에서는 캄보디아가 걸어온 그간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는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크메르루즈 정권 시절, 사라진 가족의 무덤을 찾아 떠나는 한 소년의 여정을 담은 리티 판의 <이름 없는 무덤들(Les Tombeaux sans nom)>(2018)의 상영을 시작으로, 캄보디아 현지 작가들과 유럽, 남미 출신의 작가들이 함께한 <종전 ()의 풍경들(Landscapes Afterwar(d)s)>전은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프놈펜의 변화된 모습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무엇이 어떻게 변했을까





Rida Srun <China behind of Cambodia> 

2017 C-print ⓒ Rida Srun

 




파트릭 나르당(Patrick Nardin)이 연출, 캄보디아 왕립예술대학의 찬 비타린(Chan Vitharin) 교수가 참여한 공동프로젝트 ‘Double Crossing’(2017)은 공간을 통해 잊힌 시간의 궤적을 쫓는다. 크메르루즈 정권 몰락 직후, 발터 헤이노위스키(Walter Heynowski)와 게파트 슈만(Gerhard Scheumann)이 기록한 1979년의 프놈펜과 이 원작에 등장한 실제 장소들을 재촬영한 영상을 병치시킨 이 작업은 촬영지는 물론 이동 경로와 장면전환속도, 카메라의 앵글, 트레블링 숏까지 완벽히 동일하다. 인기척 하나 없는 텅 빈 마을, 그 바로 옆으로 오토바이와 자동차, 행인들로 북적이는 혼잡한 시내가 보인다. 같은 곳이지만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두 풍경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드러내며 짙은 여운을 남긴다. ‘같은 장소, 다른 풍경이란 모티브는 프놈펜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도 목격된다. 크메르 전통과 서양건축양식이 어우러진 올림픽 스타디움을 포착한 리다 스런(Rida Srun) <China behind of Cambodia>와 다이아몬드섬 일대의 대규모 공사현장을 조망한 루안 델가도(Luanne Delgado) <Diamond Island before / after>는 소멸과 생성이 교차하는 변화의 경계를 보여준다. 전시를 기획한 소코 파이(Soko Phay)는 풍경이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자연과 다르다고 설명한다




Archive Consultation Space 

ⓒ Bophana Center / Vann Channarong 





, 우리의 눈길, 지각, 심상이 닿은 그 곳이 바로 풍경이 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풍경은 평면을 넘어 시간의 지층이 형성되는 곳이며, 물리적 시공간을 넘어선 기억과 상상의 이미지이다. 햇볕에 그을려 무엇인가 타버린 흔적, 그 위로 연꽃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사라짐의 순간을 기록한 플로랑시아 히시(Florencia Hisi) <Cam (to remember)>을 비롯해 학살된 희생자의 초상을 얇은 꽃잎에 새겨 추모한 라미 레알(Muchramy Real) <The missing>, 크메르루즈 정권 시절에 관한 푸티지영상과 증언이 담긴 <영혼의 집(The House of the Spirits)>을 거리에 설치한 크리스토발 부에(Cristobal Bouey)의 관객참여형 퍼포먼스, 캄보디아인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들을 더듬은 베아트리츠 스털링(Beatriz Sterling) <Lost places>는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기억과 상상이 포개어진 캄보디아의 풍경을 그려낸다. 식민지, 쿠데타, 내전과 학살로 굴곡진 시대를 막 지나온 캄보디아는 이제 과거사를 비롯해 고도성장이 불러온 새로운 문제들과 직면해 있다





Rafael Medeiros <To disappear (Double Fantome)> 

2018 HD video, loop 12’ 30’’ ⓒ Rafael Medeiros





수풀이 우거진 남겨진 공터,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뒤덮은 밤거리, 어딘가를 향해 끝없이 달리는 오토바이, 버려진 벽돌, 아무도 없는 빈 고층건물들이 화면 위를 스쳐 지나간다. 그 사이로 들려오는 한 캄보디아 미대생의 고백. 그는 무엇을 배우고 그릴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새로 지어진 건물을 폐허라 부른다. 변곡점에 선 프놈펜을 유령도시로 묘사한 라파엘 메데이로스(Rafael Medeiros) <To disappear (Double Fantôme)>은 가파른 변화의 문턱에서 새 세대가 봉착한 혼돈과 상실을 끄집어낸다그들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형형색색의 꽃 문양이 수놓아진 크메르 전통직물의 이미지들이 빠르게 교차한다. 역동감 넘치는 캄보디아의 정체성을 시각화한 카롤 페케테(Carole Fékété) <Pop Phsar Kandal>이다. 그렇다. 캄보디아는 꽃의 나라다. 그중에서도 유독 연꽃이 많다. 길을 잃고 헤맬 때 유일한 이정표는 이미 걸어온 길뿐이다. 캄보디아의 새 세대들도 수천 년, 크메르인 곁을 지켜온 이 화려한 연꽃을 더 흐드러지게 피워내길 소망하는 바다.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현대미술과 뉴미디어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 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 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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