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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5, Aug 2019

지중해, 지중해

The Mediterranean

“땅 한 가운데에 있는 바다”라는 의미를 지닌 지중해. 이는 본래 바다였다가, 소금 사막이었다가, 다시 바다가 된 역사를 가졌다. 고정된 형태 없이 주변 구조와 조건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돼 온 것이다. 이런 격동적인 장소에 자리한 탓일까, 최근 지중해 주변 나라들이 심상치 않다. 2010년 재정난으로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후 작년까지 국제채권단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지원받아왔던 그리스, 근래 급박하게 정치권이 휘몰아치던 이 나라는 지난달 7일 총선을 개최한 직후 바로 다음날 우파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Κυριάκος Μητσοτάκης)가 총리로 취임했다. 이 초유의 고속 인사는 더 위태로워진 나라 상황을 고스란히 반증하는 것. 이 지난한 정세가 유럽 전반을 관통하면서 국제 사회는 물론 미술계의 관심도 더 강해지고 있다. 8월, 청량한 날씨와 푸른 바다를 연상케 하는 지중해의 깊은 실연을 들여다보며 두 얼굴의 지중해를 지금 현대미술은 어떻게 바라보는지 함께 확인하자.
● 기획 편집부 ● 진행 정일주 편집장, 이민주 수습기자

아이 웨이웨이 'Trace' 2014 Installation view on Alcatraz Island, San Francisco ⓒ Ai Weiwei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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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영 미술비평,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정지윤 프랑스통신원,이가진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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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Ⅰ

지중해, 난민 그리고 예술가들의 의식 있는 항변_주하영

 

SPECIAL FEATURE Ⅱ

지중해를 재건하라_정지윤

 

SPECIAL FEATURE Ⅲ

우리가 몰랐던 지중해로부터: 마야 시릭 인터뷰_이가진




The migrant shipwreck of 18 April 2015 being 

transported from the Pontile Marina Militare di Melilli

 (NATO)to the Arsenale in Venice, Italy Photo ⓒ BARCA NOSTRA 

사진: 안드레아스 마이크스너(Andreas Meichsner) 사진제공: ARTLAB

 




Special feature Ⅰ

지중해, 난민 그리고 예술가들의 의식 있는 항변

주하영 미술비평,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올해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에서는 지중해에서 난파된 거대한 난민선이 전시되어 정치적,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이 난민선은 스위스 작가인 크리스토프 뷔헬(Christoph Büchel)의 작업인 <우리의 배(Barca Nostra)>(2019) 2015년 리비아에서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향하다 침몰한 바로 그 배를 인양하여 옮겨놓은 것이다. 이 선박은 인간 비극을 상징하는 유물인 동시에 생존을 건 이주에 대한 기념비와도 같았다. 우선, 난민 문제가 전시의 중요한 화두가 되어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관심을 촉구하는 의도가 보였고, 베니스에 난민선이 등장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현시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상징이자 분열과 혼돈을 의미했다. 하지만, 수백 명이 처절하게 사투를 벌이다 죽어간 바로 그 배를 지중해에 하나의 오브제로서 설치했다는 점에는 많은 비난을 면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 비극적 사건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 잔해를 미술이라는 범주로 들여와 많은 이들의 아픔과 상처를 상기시킨 점에서 작가의 윤리의식까지 거론되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난파선 자체가 아니라 지중해에 인양된 이 배를 통해 상기시킬 수 있는 가치 있는 논쟁의 모든 과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며 자신의 작품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봐주기를 원했다그렇다면, 왜 국제 전시에 난민선이 등장했으며, 그 배가 동방의 관문이자 지중해의 중심이었던 베니스로 옮겨 왔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중해와 같은 초국가적(transnational) 접경지대에 설치 된 난민선은 대륙 간, 민족 간의 집단 경험과 트라우마를 상기하며, 국경과 경계의 의미를 재고해보게 한다. 또한 힘의 논리에 의해 어떠한 비극의 역사와 기억이 부각되고 또 침묵되는지, 그리고 유럽-지중해-난민의 복잡한 연결 관계를 통해 소외계층으로 분류되는 무국적, 무소속의 급진적 주체를 현시점에서 어떻게 논의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미술계에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중해는 북으로 유럽, 남으로는 아프리카, 동으로 아시아 대륙으로 둘러싸여 있는 대서양으로 연결되는 바다이자, 지리적으로는 유럽의 바다이나 문화적으로는 유라시아-아프리카의 바다였다. 고대부터 지중해는 중요한 교역로로서 여러 민족이 서로 만나 새로운 정보와 물자를 주고받는 열린 공간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공간에서 진보적이고 새로운 문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이곳에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났으며, 다양한 민족, 국가, 사회, 종교가 만나 오리엔트, 그리스-로마, 이슬람 문화가 일어난 혼종성(hybiridity)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 지중해는 동서 문화의 접점이자 물질문명과 정신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작용한 곳이다이러한 지중해에 2015년부터 시리아를 비롯하여, 이라크,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등지에서 불법으로 유럽의 국경을 넘는 난민과 이주민이 대거 유입되면서 여러 위기와 갈등을 낳고 있다. 중동 지역과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정치적 군사적 분쟁과 내전으로 인해 수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생활 터전을 잃게 되었고 전 세계로 유랑하게 되었다


난민이 급증함에 따라 지중해 연안의 주변국에서 여러 사회적, 경제적 문제가 야기되면서 난민 문제는 당사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및 아랍·중동지역의 문제로까지 확산되었다. 유럽 연합(European Union, EU)에서는 국제적인 이슈에 대응하면서 난민을 위한 정착 프로그램과 새로운 난민 할당제, 유럽 연합 외부의 국경에 대한 비용 지원을 마련하는 등 이러한 위기를 대처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늘어나는 난민 수에 대해서는 그들을 거부하거나 국경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게 되었다. 물론 난민의 기본적인 권리와 인권은 보장되어야 하고, 합리적인 난민관련 법규 및 제도 마련이 시급하지만, 유럽 내에서는 자국민 보호정책과 경제적인 문제를 우선시하며 국가 간, 민족 간의 대내외적인 갈등을 빚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유럽 난민 사태(European refugee crisis)’라 부른다.





빈스 브리파(Vince Briffa) <Outland> 2019

 Installation detail: video projections, audio, 

water Actors: Paul Portelli Sandra Mifsud Stills 

photo: Jon Wrigley ⓒ Vince Briffa


 


난민과 이주, 디아스포라 예술


최근 미술계에서는 국제 비엔날레와 페스티벌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디아스포라와 난민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들 전시에서는 전쟁과 상흔, 이주와 망명, 디아스포라의 경험과 기억과 같은 시의적인 주제를 다루며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 권리, 그리고 정치적 체제를 비판 하고 있다. 디아스포라는 모국을 떠나 전 세계로 흩어진 이산 현상을 말하며, 개인, 민족, 공동체와 함께 발생하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개념을 말한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난민 문제도 급진적이고 가혹한 디아스포라의 한 형태이다. 난민 문제는 전쟁과 학살과 같은 집단 참극, 인종박해, 재앙으로 인해 선택이 아닌 받아줄 곳을 찾아 정처 없이 떠나야만 했던 가혹한 유랑의 역사를 대변한다.


이번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은 랄프 루고프(Ralph Rugoff)흥미로운 시대를 살기를(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이란 주제로 난민, 성 소수자, 장애인, 여성의 목소리에 주목하며, 혼돈과 위기의 상황을 논쟁적인 예술적 실천으로 풀어가고자 했다. 많은 예술가는 국제 사회문제에 대해 의식 있는 태도를 요구하며, 유럽의 난민 위기와 그 대응방식에 관심을 촉구했다. 예술이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힘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간과했던 문제를 논의해 볼 수 있고, 낡은 체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시의성 있는 주제는카셀 도큐멘타 14(Kassel documenta 14)’에서도 드러났다. 전시감독인 아담 심칙(Adam Szymczyk) <아테네에서 배우기(Learning from Athens)>(2017)란 주제로 지중해에 인접한 아테네를 카셀과 대등한 위치로 두어 혼란을 겪고 있는 유럽의 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디아스포라 예술가와 반체제 난민 작가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또한, 2018년 이탈리아의 팔레르모(Palermo)에서 개최된마니페스타 12(Manifesta12)’에서도 이주와 난민, 유럽 지역에 흩어져 활동하는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의 작품에 주목했다. 지중해의 교차점에 위치한 팔레르모는 현재 수많은 유입민과 난민 문제로 정치적, 경제적 갈등을 겪고 있는 도시이다. 이러한 불안과 반()난민 정서를 지닌 팔레르모에서 <행성의 정원, 공존 형성(The Planetary Garden. Cultivating Coexistence)>(2018)이란 주제로 국가와 민족의 화합, 공존을 논하며 난민 문제를 다루고자 한 것은 매우 논쟁적이었지만, 이는 한 도시만의 문제가 아닌 현시점을 대변하고자 했다. 더불어 디아스포라, 난민 예술의 소개와 함께 그 중요성을 알리고자 했다.


디아스포라와 이주, 망명과 전치에 대한 주제가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부상한 것은 20세기 후반의 일이다. 절대적일 것 같던 이데올로기와 거대 서사의 붕괴와 함께 민족과 인종, 젠더와 섹슈얼리티와 같은 세부적인 현상에 주목하게 되면서, 국경과 경계를 가로지르는 이산과 이주, 접경에 관한 담론은 동시대 예술을 해석하는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하지만 미술계에서 급진적 디아스포라의 현상인 난민 문제가 중요한 화두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미술계에서 이 현상에 주목한 이유는 비록 예술이 대륙 간의 긴장감을 완화하거나 패권주의와 민족주의를 막을 수 없더라도, 이러한 혼돈의 시기에 어떠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지, 어떻게 주위를 살펴봐야 하는지 숙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주와 난민, 디아스포라 역사와 경험에 도전하고 이를 해체하여 또 다른 타자의 모습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침묵을 강요받고 소외된 이들의 위치를 기존 질서 내에 편입시키고자 하려는 것이다. 이는 예술을 통해 새로운 주체 형성과 표상의 가능성을 열고, 다양한 해석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체계를 형성한다.

 



<We, Elsewhere> Pavilion of Turkey 58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 ‘La Biennale di Venezia’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 

Photo: Italo Rondinella ⓒ La Biennale di Venezia  

 



난민을 향한 예술가들의 항변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난민과 이주의 문제는 이제 개인과 국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지구적인 관심사이자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요인이 결합된 난제이다. 그러나 난민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그 연구와 해석에 한계가 있다. 현실 속에서 외면당하고 소외되며, 역사에서 사라지는 난민들의 위치와 상황은 가벼이 논의될 수도, 쉽게 재현될 수도 없다. 하지만, 비극적 디아스포라의 경험이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상상되고 재현될 수는 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 국가적 관념이 충돌하여 초국가적인 성질로 변형되듯이,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없음에서 오는 분열과 갈등은 복잡한 층위를 형성하며 뒤틀리고 분절된 형상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난민 문제를 다루는 예술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예술가 스스로가 자신을 난민이자 디아스포라인이라 칭하며, 난민이 겪은 불안과 고통을 자기 투사의 거울로 삼아 작품 활동에 임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가가 난민 문제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윤리적, 인도적 차원에서 성찰하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이다. 전자는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예술가들이 원하던 그렇지 않던 계속되는 추방과 이주를 경험해야 했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팽창에 따른 폭력적 추방과 정치적 대립 속에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분열과 소외, 갈등의 상황을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는 경우이다. 후자는 21세기 들어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전 세계적인 난민 사태와 관련하여 주위를 기울이며, 특정한 이미지로 타자화 되는 난민의 문제에 저항하며, 우리의 인식 변화를 촉구하는 경우이다.


쿠르드족 출신 이라크 예술가인 히와 케이(Hiwa K) 1990년대 난민 신분으로 이라크에서 독일로 이주하게 된 경험을 작품의 중요한 주제로 삼는다. <우리가 이미지를 만들어낼 때(When We Were Exhaling Images)>(2017)는 작가가 정착할 곳을 찾아 사투를 벌일 당시, 실제로 배수관에서 머물던 경험을 바탕으로 20개의 배수관을 설치하여 자신의 삶과 시리아 난민 문제를 연결하고자 했다. 작가는 제국주의와 힘의 논리에 의해 국가와 터전을 잃고 유랑해야만 했던 디아스포라 삶의 궤적을 통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려 하지 않는다. 그저 처절함이 존재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또한, 팔레스타인 계 미국인 예술가인 에밀리 자시르(Emily Jacir)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미국의 관계를 통해 폭력적인 이주와 강제적 추방에 의해 난민이 된 상황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주권 박탈과 인권 상실에 대해 논한다. <1948년 이스라엘에 의해 파괴되고, 퇴거되고, 점령된 418개의 팔레스타인 마을에 대한 기념(Memorial to 418 Palestinian Villages destroyed, depopulated and occupied by Israel in 1948)>(2001)이란 작업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작업실에 초대하여 그들을 위한 난민 텐트를 제작하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다


하지만 자시르는 이 작업을 통해 긴 유랑에 놓인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통일시키거나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쟁의 지역과 경험을 단순화하여 실재 사건과 거리를 두며, 잊힌 역사와 기억, 그리고 소외된 삶을 상기시키고자 했다. 에밀리 자시르와 히와 케이와 같이 자신을 난민이자 디아스포라 인이라 칭하며, 국가와 사회의 주변부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은 어느 곳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고 소외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을 드러낸다. 또한, 분명히 정의 내릴 수 없는 위치에 대한 고민과 정체성을 작품으로 표상한다. 이들의 작업은 전세계적으로 전쟁과 위협을 피해 피난처를 찾고자 하는 난민들의 불안정한 삶이 반영된 생생한 시각적 증언과도 같다. 하지만 난민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투사하여 낭만적이거나 혹은 비극적으로 그 경험을 타자화하여 재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간접적으로 항변하거나, 함축적인 언어와 오브제를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존 제라드(John Gerrard)

 <Untitled (near Parndorf, Austria)>

 2018 Video simulation Duration one year Installation view 

photo Gerrard Manifesta 12 by: John Gerrard Studio All other

 installation views Photo: Simone Sapienza 

ⓒ Manifesta 12 Palermo and the artist




한편, 중국 출신의 예술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유랑하는 사람들(Human Flow)>(2017)이란 영상작업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난민 사태에 주목했다. 영상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이 유랑은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를 거쳐 미국에 도착하고, 다시 유럽으로 돌아온다. 중심부과 주변부를 가로지르는 이 여정에는 난민이 있고, 그 사람들은 난민촌에 머무는 자, 수용소의 수감자, 도로 위에서 잠시 머무는 자,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도는 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의 유랑에는 전쟁과 폐해, 재난과 기근, 정치적 망명과 추방 등 그 이유도 다양하다. 작가는 이러한 난민의 이동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드론으로 촬영해 멀리서 이를 조망하며 거리 두기를 했다. 또한, 터키 출신 예술가인 바누 세네토글루(Banu Cennetoˇglu) 2007년부터 현재까지 <목록(The List)>(2007-2019)이란 작업을 통해, 유럽 연합 국경 지대에서 죽어간 난민, 망명 신청자, 이민자에 대한 자료를 모아 소외된 자와 잊힌 기록에 대한 복권을 요구하고 있다


이 작업은 이주민과 난민을 지원하는 암스테르담 기반의 다문화 협력기관인 유나이티드(UNITED)와의 협업으로 1993년부터 이루어졌고, 여러 도시에서 포스터, 간판, 스크린 등의 다양한 형태로 보인다. 2019년 초 약 35,000건의 목록이 만들어졌지만, 작가는 작품에 서명하거나 편집하여 상업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관심과 인식 변화를 촉구할 뿐이다. 따라서, 아이 웨이웨이와 바누 세네토글루는 작품이 하나의 매개체가 되어 은폐된 사건과 진실에 대해 발언하며, 침묵에 저항할 수 있기를 원했다. 이는 소유가 아닌 공유하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것으로 완결된 시각 텍스트로서 기능하는 예술작품이 아닌 지속적인 해석과 번역 가능성을 통해 난민 문제를 바로 알리고자 한 것이다. 이들의 작업은 권력 관계의 불균형 속에서 자연스레 타자화된 난민 문제와 그 재현에 반한다. 이는 차별과 소외를 당하고 역사 속에서 배제된 그들의 목소리를 복권하기 위함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난민에 대한 인식 개선을 요구하고자 한다.

 


다시, 지중해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그곳, 지중해는 사람과 문화가 만나고 교류하며, 서로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거나 공존하는 장()인 접경지대(Contact Zone)이다. 이러한 접경은 선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의 공간으로서 인간행위의 물리적 조건인 동시에 다양한 문화, 사고 그리고 가치가 만나 서로 경쟁하고 공명하는 곳이다. 이는 국경이나 변경 같은 외적인 접경뿐만 아니라 사회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 종교와 언어, 생활양식 간의 교차지대인 내적 접경도 아우른다.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민 사태는 국가적, 사회적, 민족적 대립과 충돌 및 사회적 불균형의 문제, 차별과 소외 현상을 낳았다. 지중해의 난민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식민을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뿐만 아니라 내전과 폭력으로 인한 강압적 이주와 박해, 그리고 자연재해와 가난 등 국가적, 정치적, 경제적 문제가 얽혀있다.  


미술계에서 이러한 현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난민 문제에 대해 주류 세계에서 만들어낸 전형적이고 열등한 이미지가 고착되어 이들의 위치가 불안과 폭력, 차별과 혐오로 재현되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거창하게 정치적, 경제적 해방이나 정의실현에 대해 행동주의자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작품이라는 매개를 통해 우리의 분별력과 판단력의 변화를 촉구하였다. 지중해의 난민 문제는 이제 지협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문제이다. 또한, 생존을 위한 난민들의 이주와 전세계로 유입은 이제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국제 전시와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이주와 난민, 전쟁과 상흔 같은 주제를 체계적인 기획과 비판의식 없이 너무 많은 내용을 한 번에 다루려 한다면, 삶의 문제와 직결되는 이 버거운 주제가 자칫 미술계의 흐름이나 유행을 반영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이는 반드시 지양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주하영은 영국 리즈대학교에서 문화예술학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성공회대학교에서 외래교수직과 유러스 컬렉션(화정박물관 자매기관)에서 책임연구원을 맡고 있다. 또한, 시각문화예술단체인 로드콜렉티브(ROADcollective)의 디렉터를 맡고 있으며, 전시 기획과 비평에 관심을 두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영국 그라피티 예술의 정치성 비평」(한국미술사논단, 2019), 「동시대 미술 속에서 후기식민주의와 저항 담론에 대한 비평」(유럽문화예술학회), 「의도된 혼돈의 축제: 카셀 도큐멘타 14와 이중적 위치에 대한 비평적 고찰」(서양미술사학회),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예술과 타자성」(한국미술이론학회, 2016) 등이 있으며, 공공사업으로는제주 공공미술 프로젝트’(제주특별자치도, 2009-2010),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브 프로젝트’(예술경영지원센터 2016) 등이 있다.

 



보니타 엘리(Bonita Ely) 

<Plastikus Progressus: Memento Mori>

 ‘documenta 14’ ⓒ Stathis Mamalakis





Special feature Ⅱ

지중해를 재건하라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2015 9, 터키 남서부에 위치한 보드룸(Bodrum) 해안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어린 소년의 사진 한 장이 세상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모래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린 채 숨을 거둔 아이. 사진 속 주인공은 시리아 내전을 피해 그리스로 도피하던 중 선박이 침몰하여 목숨을 잃은 세 살배기 난민, 아일란 쿠르디(Alan Kurdi)로 밝혀졌다. 소년의 참혹한 사진은 온라인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난민 문제의 심각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고, 메마른 땅에서 굶주림을 호소하는 난민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죽음의 벼랑 끝에 선 그들은 살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사나운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진다. 그러나 망망대해에서 살아남는 자는 극히 일부다. 올해 초,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중해에서 목숨을 잃는 난민의 수가 하루 평균 6명에 이른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푸르른 바다, 동서양이 만나 찬란한 인류의 문명을 꽃피운 곳, 한때 고대 유럽인들이 세상의 중심이라 믿었던 지중해. 그 곳은 이제 피의 바다로 불리고 있다.

 


지중해의 몰락


지중해(地中海)는 말 그대로 땅과 땅 사이에 있는 바다를 가리킨다. 250만㎢에 이르는 거대한 면적을 지닌 이 넓은 해안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대륙이 맞닿아 있는 지점으로, 무려 21개의 나라가 인접해있다. 실크로드(Silk Road)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했다면, 세상의 모든 바닷길은 지중해를 통했다. 예로부터 해상무역이 발달한 이곳은 동서양을 잇는 최초의 메트로폴리스로서 일찌감치 자리매김했다. 고대 오리엔트 문명을 시작으로 그리스·로마제국, 비잔티움 제국,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제국들의 흥망성쇠가 거듭되고, 세계적인 종교로 발돋움한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가 태동한 곳이 바로 지중해이다. 하나의 바다를 둘러싸고 이렇게 많은 민족과 인종, 국가, 언어, 문화, 종교가 존재하는 곳이 세상천지에 또 어디 있을까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폴 발레리(Paul Valérie)가 지중해를문명 제작소라 예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 바다에서 다름의 가치가 공존하는 유토피아를 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지중해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근래 몇 년 간 유럽의 주요 도시 곳곳에서 대규모 테러 범죄가 끊이지 않으면서 유럽과 중동 사이의 심상치 않은 전운이 감돌고 있으며, 시리아, 예멘, 수단에서 내전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고국을 떠나 지중해 횡단을 감행하는 전쟁 난민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난민이 가장 많이 향하는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심각한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어, 난민 수용을 두고도 유럽 내 국가들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형편이다. 어디 이뿐인가. 지중해 인근 대부분의 땅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사막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큰 악재들이 한 번에 몰려올 수도 있나. 우리가 그토록 동경했던 지중해는 이렇게 점점 몰락하고 있다.

 



젤릴리 아티쿠(Jelili Atiku) 

<Festival of the Earth (Alaraagbo XIII)> 

2018 Processional performance, mixed media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photo: Simone 

Sapienza Perfomance photo: Francesco Bellina

 ⓒ Manifesta 12 Palermo and the artist

 



나와 타자들


나와 다른 세계가 주는 낯설음은 분명 매력적이다. 동시에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와 다른 피부색은 인종과 민족을 나누고, 나와 같은 신을 믿지 않는 자는 이단으로 몰 수 있으며, 자국의 영토와 권력, 자원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이 같은 흑백논리의 프레임 속에서다름은 순식간에틀림으로 둔갑한다. 더 나아가 전쟁을 일으킬 만한 그럴듯한 명분까지 제공한다. 이것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중해가 직면한 현실이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졸데 카림(Isolde Charim)은 최근 펴낸 『나와 타자들(Ich und die Anderen)』에서 민족, 국가와 같은 동질적 가치들이 사라지고, 감소된 정체성을 지닌 개인들이 사회를 구성하는다원화 과정과 이와 맞물려 1970년대 이후 불어 닥친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국제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짚어냈다. 특히, 그는 브렉시트(Brexit)와 함께 붕괴되기 시작한 유럽연합 체제,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이라 일컬어지며 국제전으로 번지고 있는 IS 테러와 내전, 그로 인해 발생한 난민 사태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내막에는 공통적으로타자 혐오의 이데올로기가 짙게 깔려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이미 지난 한 세기 동안, 제국식민주의, 파시즘, 세계대전, 냉전의 파국을 경험한 바 있다. 단일성을 향한 극단적인 신념과 환상은 선동적인 정치 슬로건으로 활용되며, 타자 배척, 혐오라는 비극을 빚어낸다. 저자가동질 사회라는 상상은 언제나 허구였다. 그러나 잘 기능하는 허구였다. 게다가 민족은 기능이 대단히 뛰어난 허구였다라고 밝히며, 다원화라는 변화의 수용을 주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카림 뿐만 아니다. 수많은 지식인들과 예술계는 지중해의 위기에 관심을 표명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시리아 난민 소년, 아일란 쿠르디 사건을 들 수 있다. 2015, 100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유럽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불거진 난민 사태는 인간의 생존이 직결된 문제이자, 열강들의 패권 다툼과 민족, 종교, 이념 갈등이 응집되어 터져 나온 결과이다


그러나 난민 수용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자국민의 안전과 생계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다. 굳게 닫힌 유럽의 국경을 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아일란 쿠르디였다. 지중해를 횡단하다 죽음을 맞이한 소년의 안타까운 사연은 세계인들의 눈시울을 붉혔고, 예술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난민 문제에 뛰어들었다. 중국 액티비스트 작가 아이 웨이웨이(Ai Weiwei)는 사체가 발견된 해안가를 찾아가 엎드린 채 죽은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몸소 재현했고, 핀란드 작가, 페카 이엘하(Pekka Jylhä) 1:1 실사 크기의 극사실적인 조각을 제작했으며, 예술계의 이단아, 뱅크시(Banksy)는 프랑스의 칼레 난민촌에 애플의 설립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초상을 그린 후, “시리아 이민자의 아들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이들의 작품은 뜨거운 논쟁을 불러왔다


난민 문제의 경종을 울리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충격적인 이미지를 양산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애도이고, 예술의 역할인지 묻는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일리가 있다. 아일란 쿠르디는 더 이상 난민 희생자가 아니라, 수없이 복제·소비되는 이미지로 전락했고, 스티브 잡스는 성공한 난민 2세가 되었다.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올해 5월에 개막한58회 베니스 비엔날레(58th Venice Biennale)’에서 크리스토프 뷔헬(Christoph Büchel) 800여 명의 아프리카 난민을 싣고 가다 침몰한 난파선 <우리들의 배(Barca Nostra)>를 공개해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예술계라고 딱히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메두사 호의 뗏목(Le Radeau de La Méduse)’이 재현되고 있는 지중해로 무혈입성 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술뿐임이 자명한 사실이나, 생사가 걸린 문제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한 고찰이 필요할 때이다.





미디엔그루페 비트닉(Mediengruppe Bitnik) 

<Ashley Madison Angels At Work in Athens>

2017 ‘Tomorrows’ Nates, France ⓒ Stavros Habakis

 



아테네에서 배우기


예술계는 2017년을 기점으로 지중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어왔다. ‘베니스 비엔날레’, ‘아트 바젤(Art Basel)’, ‘카셀 도쿠멘타(documenta)’,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Sculpture Project Münster)’가 연이어 개최된 2017년은 세계 예술 애호가들이 애타게 기다린 그랜드 투어의 해이기도 했다. 이 잔치판 속에서 단연 돋보인 것은 폴란드 출신의 큐레이터, 아담 심칙(Adam Szymczyk)이 이끈도쿠멘타였다. 독일의 카셀과 그리스의 아테네, 두 도시에서 진행된14회 도쿠멘타(이하 도쿠멘타 14)’는 지중해가 봉착한 난민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형식과 내용적 측면에서 참신한 시도를 선보인 것은 물론 현대예술이 나아갈 근본적인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아담 심칙이 아테네를 선택한 것은 놀라울 만한 일이 아니다. 쿤스트할레 바젤(Kunsthalle Basel) 관장과베를린 비엔날레(Berlin Biennale)’ 예술감독을 역임한 그는큐레이터계의 슈퍼스타라는 명성에 걸맞게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을뿐더러,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동시대적 가치에 물음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그가 몰락하는 지중해를 보고 지나칠 리 만무하다. ‘아테네에서 배우기’, 타이틀부터 의미심장하다. 일각에서는 정치색이 지나치게 강하다, 540만 유로의 적자를 기록한 것에 그리스를 살리려다 카셀이 빚을 진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왜 하필 아테네인가. 이에 대해 아담 심칙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 또 다른 시대, 또 다른 곳을 통해 전시 행위의 단일성을 침식시키고 싶다. 그리스를 생각했다. 난제가 많은 도시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카셀, 제네바, 런던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분명 많이 다르다. 나의 제안은 아주 정치적이다.” 우리는 아테네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도쿠멘타 14’는 전쟁, 경제 위기, 인종차별, 젠더 갈등 등의 이슈를 통해 지중해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진단하고, 인간성 회복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아놀드 보데상(Arnold Bode Prize)을 수상한 나이지리아 출신 미국 작가, 올루 오귀베(Olu Oguibe)는 카셀, 쾨니히 광장에 <이방인과 난민을 위한 기념비>를 세웠다. 마태복음 25, 최후의 심판에 나오는나그네가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라는 구절이 독일어, 영어, 아랍어, 터키어로 새겨진 오벨리스크는 난민에 대한 인식과 처우 개선을 촉구하는 바램을 담고 있다


더글라스 고든(Douglas Gordon)은 올해 초 타계한 요나스 메카스(Jonas Mekas)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I had nowhere to go>를 통해 난민들의 시각을 대변했다. 언더그라운드 실험영화의 선구자, 그 역시 리투아니아 출신으로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전쟁 난민이자, 이민자였다. 어둠이 뒤덮은 스크린, 그것은 젊은 요나스 메카스가 보았던 20세기의 풍경이었고, 지금 지중해에 표류한 난민들이 마주한 현실이리라. 이 밖에도 올라프 홀츠압펠(Olaf Holzapfel)은 목재와 지푸라기로 피난소를 짓고, 레베카 벨모어(Rebecca Belmore)는 대리석 텐트를 세웠으며, 히와 케이(Hiwa K)는 배수관을 이어 붙여 만든 임시주거지를 통해 난민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이처럼 아담 심칙은 초대형 스타 작가와 화려한 볼거리 대신 약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현실을 묵묵히 담아내며, 인류애적 가치와 공감을 이끌어냈다. 아테네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인문주의로의 회귀라 감히 말하겠다.



 

고든 후키(Gordon Hookey) <Solidarity>

 2017 Acrylic paint on concrete 8.2×7m 

Athens School of Fine Arts (ASFA), Athens ‘documenta 14’ 

ⓒ Stathis Mamalakis

 



공생으로 가는 길


아테네가 상실된 인간성의 회복을 통해 지중해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면, 시칠리아는 자연을 통해 다원화된 현대사회를 고찰하고 공생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2018,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팔레르모(Palermo)에서 개최된12회 마니페스타(manifesta)’(이하 마니페스타 12)를 눈여겨볼 만하다. 냉전 이데올로기와 함께 분열된 유럽 사회의 화해를 도모하자는 목표 아래, 네덜란드 예술사학자, 헤드윅 피엔(Hedwig Fijen) 1993년 창설한 이 행사는 2년마다 유럽의 각 도시를 순회하는 노마딕 비엔날레로 탈경계적 문화예술 교류를 시도하고 있다지구정원. 공존을 재배하다(The Planetary Garden. Cultivating Coexistence)’라는 타이틀로 진행된마니페스타 12’는 식물 생태계를 통해 다원화 현상을 조망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을 들었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로하코노(Francesco Lojacono) 1875년에 그린 <View of Palermo>를 주의 깊게 살펴볼 만하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풍경화 같지만, 그 안의 식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구정원의 개념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 풍경 속에는 그 어느 것도 토착적이지 않다. 올리브 나무는 아시아에서, 사시나무는 중동에서 건너왔다. 호주에서 온 유칼립투스, 멕시코에서 온 가시 많은 선인장 열매, 일본에서 온 황금 비파. 게다가 시칠리아의 상징인 감귤나무는 아랍세력의 지배를 받았던 때 들여온 것이다. 팔레르모, 더 나아가 지중해의 역사는 이 정원을 꼭 닮아 있다. 고대 그리스인, 아랍인, 노르만 족부터 최근 건너온 북아프리카인, 동남아인, 중동인까지, 지중해의 역사는 경계를 넘어온 자들에 의해 쓰여졌다. 프랑스 식물학자, 질 클레망(Gilles Clément)은 우리 사회가 다양한 식물 종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며 공존하는 생태계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의미에서지구정원이라 명명했다. 지구정원, 그 공생의 청사진을 스위스 작가 유리엘 올로(Uriel Orlow) <Wishing Trees>를 통해 그려본다


그는 시칠리아 섬에 심어진 나무 세 그루를 소개했다. 아프리카 노예의 아들이자, 요리사였으며 최초의 흑인 성인으로 추앙받은 베네딕트(St. Benedict)가 심은 편백나무, 악명 높은 마피아를 탕진하던 중 살해당한 치안검사, 지오반니 팔코네(Giovanni Falcone)가 살던 옛집에 솟은 큰잎고무나무, 1943년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의 파시즘 정권이 붕괴된 순간을 목도한 올리브나무가 그것이다. 갈등이 와해된 역사적 순간들을 상징하는 소원나무들이 무성한 지구정원은 과연 도래할 것인가.





뱅크시 Courtesy of Pest Control Office Banksy

 Paris 2018


 


지중해의 미래


다가올 지중해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스, 아테네에 위치한 문화예술센터, 오나시스 재단(Onassis Stegi Foundation)이 선보인 <내일. 지중해의 미래를 위한 이론적 전망(Tomorrows. Visions spéculatives pour l’avenir méditerranéen)>전이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겠다. 아티스트, 건축가, 그래픽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도시계획가 등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이 전시는 최첨단 과학·디지털 기술을 통해 지중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이며, 동시에 굉장히 현실적이다호주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건축가인 리암 영(Liam Young) 1950년대 아테네의 집합주택(polykatoikia)의 모델을 무한대로 확장시킨 거대한 아파트 <Tomorrow’s Storeys>를 통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현실의 문제를 비판하고 토론할 수 있는 담론의 공간을 제시했고, 헤바 아민(Heba Amin)은 지중해의 일부를 매립하여 아프리카, 유럽, 아랍 대륙을 하나로 잇는 <Operation Sunken Sea>를 통해 전쟁과 테러, 난민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는가 하면, 제노비아 톨루디(Zenovia Toloudi)는 기후변화와 사막화로 멸종 위기에 처한 지중해 식물 종들을 보전하며, 식량 부족을 대비하기 위해 씨앗을 장기간 저장하고 곡물을 재배하는 공동경제 시스템 ‘(Silo(e)scapes)’를 고안했다


와 같은 접근은 그리스 도시사회학자, 콘스탄티노스 도시아디스(Constantinos Doxiadis)가 주창한세계 도시(Ecumenepolis)’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도시화와 대도시의 확장이 가속화됨에 따라 전 세계가 단 하나의 도시로 될 것이라고 예견한 그의 연구는 허구성 짙은 가설에 머물지 않고,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될 것이라 점쳐진다. 자연, 구성원, 주거 환경, 인간망, 사회라는 다섯 가지 요소들이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 구축되는 이 세계 도시는 단일성에 기반한 통합적 현상이 아니라, 다양한 개체의 독립성을 유지한 채 중간적 통로를 설계하는 과정으로상호 의존적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지중해의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세계 도시의 건설은 시기상조이다


지중해에서 상호 의존성이 얼마나 확보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지중해의 위기는 승자와 패자가 적당한 선에서 나누어지는 경쟁을 넘어 서바이벌 게임에 돌입했다는 점이다. 지중해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운명공동체의 위치에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아테네, 지구 정원, 그리고 세계 도시에서 펼쳐지는 담론의 방향성은 동일하다. 다름의 공존이다. 해답은 이미 있으나, 도달하기가 힘들 뿐이다. 그렇다. 언제나 이론과 현실의 거리는 멀다. 그러나 그 간극을 좁히는 것은 결국 예술이라는 창의적 사유와 행위, 담론에서 비롯된다. “죽음에 저항하는 유일한 것은 예술이다.” 20세기 프랑스 사회를 이끈 행동하는 지성인,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의 말을 절실히 되새길 때이다.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현대미술과 뉴미디어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 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이크야(iQhiya) <The Portrait> 2016 Performance 

and installation with plastic crates, glass bottles, 

and fabric Dimensions variable Performance 

Athens School of Fine Arts (ASFA), Athens ‘documenta 14’ 

ⓒ Stathis Mamalakis

 




Special feature Ⅲ

우리가 몰랐던 지중해로부터: 마야 시릭 인터뷰

이가진 프랑스통신원

 


페니키아의 공주였던 에우로페(Europa)는 해변을 거닐던 중 황소로 변신한 제우스(Zeus)에 의해 그리스의 크레타섬으로 납치를 당한다. 에우로페의 아들 미노스(Minos)는 훗날 크레타의 왕이 되고, 그 섬은 유럽 문명이 시작한 장소로 여겨진다.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고귀한 단순함과 위대한 고요함이라 극찬했던 그 고전적 아름다움이 잉태된 것과 달리 미노스의 탄생 신화는 전혀 유쾌하지 않다. 사랑하는 딸과 동생을 잃고 페니키아의 왕과 왕자들이 에우로페의 이름을 애타게 외쳤던 그 바닷가는 어디인가. 바로 지중해에 면한 레바논의 도시, 티레다. 유럽이라는 땅의 이름, 나아가 유럽 문명의 요람은 그 시작부터 상실과 이주 혹은 되찾기와 정착의 역사가 되풀이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시아라는 이름의 유래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리스인들이 그들의 동쪽에 있는 나라를 가리킬 때 사용한 표현에서 비롯된 것처럼, 아시아의 여러 개별 국가들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도 전, 이미 오랜 세월 동안 타자에 의해 정체불명의 덩어리로 그려졌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훈풍, 따사로운 햇살과 올리브 나무, 여유와 풍요로움이라는 일련의 추상적인 이미지 바깥의 지중해, 그 실체를 우리는 모른다. 토마스 만(Thomas Mann) <마의 산>에서시대 자체가 겉보기에 아무리 분주하게 움직인다 하더라도, 내부에 어떤 희망이나 장래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희망과 장래가 없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속사정을 은밀하게 드러내고 만다고 지적한 바 있다. 끊임없는 경제 위기, 대규모 인구 이동, 기후 변화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지중해의 속사정을 감지하는 예술의 움직임은 어떤 양상인지 살피기 위해 내부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필수적이다.





로터(Rotor) <Da quassu e tutta un’altra cosa>

 2018 Video Photo: Simone Sapienza 

ⓒ Manifesta 12 Palermo and the artist

 



지중해 유럽 신진 아티스트 비엔날레(Biennale of Young Artists from Mediterranean Europe, 이하 BJCEM)’는 예술과 문화를 통해 지중해 지역의 사회적, 정치적 차이점들을 극복하고 평화를 찾자는 목표로 1985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시작되었다. 현재는 그 본부를 이탈리아 토리노에 두고, 많은 기관과 독립적인 예술 협회들의 네트워크로서 기능하고 있다. 시각예술, 디자인, 패션, 건축, 문학, 퍼포먼스, 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행위를 아우르는데, 가장 최근 행사는 2017, 알바니아의 두러스와 티라나 일대에서 개최됐다. 지난 ‘BJCEM’에서 총 27개국 출신의 80여 명 작가들을 모아 전시를 기획한 독립 큐레이터 마야 시릭(Maja Ciri´c)지중해, 현재, 예술이라는 키워드로 이야기를 나눴다. 시릭은 이제 지도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에서 태어나 세르비아에 거주하고 있다


알바니아와 세르비아는발칸의 앙숙이라고 불릴 정도로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세르비아 출신 기획자가 알바니아에서 대규모 전시를 기획한 것은 다소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그러나서구의 큐레이터에 의한 이국적인 타자화를 경계했기에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나를 선택한 것 같다는 설명처럼 그들 사이에는 모종의 동반자 의식 또한 남아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1990년대, 알바니아의 난민들은 보트를 타고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지난 비엔날레의 개막식은 과거의 흐름과 반대로 떠나는 여행으로 시작되었다. 참여 아티스트들이 이탈리아 바리에서 출발한 보트를 타고 두라스로 도착한 것. “소외되었던 알바니아의 과거와 화해하는 차원이자, 서구 사회로부터 의미 있는 존재임을 승인받은 것을 기념하는 홈커밍이라는 낭만적인 이벤트의 이면엔 이탈리아로부터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개막 행사에 동참할 수 없었던 이집트 작가들의 상황처럼 여전히 복잡한 갈등이 남아있긴 하지만 말이다. 





Siniša Radulovi´c <Indivisible and Inseparable>

 2017 Video 7‘ 39“ ⓒ Siniša Radulovic

 



이처럼 지중해라는 지역은 그 긍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가혹한 현실에 놓여있다. “예술의 역할이 현실을 묘사하거나 비판하는 것이라고 상정했을 때, 좀 더 비관적인 관점에서, 지역주의는 그 안에 있는 맥락과 상황을 연결하고 중립화하거나 때로는 통제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시릭은 말한다. 이는 타자(the other)나 다른 곳의 이슈들을 화이트 큐브나 블랙박스 속에서 이뤄지는 전시에 투영하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널리 퍼져있는상상된 발칸 반도오리엔탈리즘에 의한 동양등에 적용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중해와 세계의 다른 지역들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냐는 질문에 그는 지중해의 매우 길고 복잡한 역사를 염두에 둬야 한다면서도, 차이점보다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답했다. 우선 지중해에서의존재론적 이민,’ 그러니까 생존 그 자체를 위한 싸움, 밀수꾼들, 예상치 못한 결과는 버마(현재 미얀마)에서 태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사정과 비슷하다고 본다


또한 19세기 대기근 이후 아일랜드인들의 이민 행렬과도 유사하지만 그 깊은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내부를 제외한 곳에선 그것에 관해 배우거나 떠올리지 못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에스토니아의 탈린과 핀란드의 헬싱키를 잇는 발트해를 건너는 이민자들은 순전히 존재론적이라기보다는 경제적인 이유가 더 크다. 뾰족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이 기획자는 지중해를 건너려는 일련의 시도들이 단순히 지금, 그들만의 문제라고 국한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무엇보다예술은 지중해를 대표하거나 이곳의 가혹한 현실에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그것이지중해동시대 미술사이에 징검다리를 만든다고 가정했을 때 놓일 수 있을 키워드로대조(Contrasts)’를 꼽는 이유다. 시릭에 따르면 유구한 역사로부터 비롯된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것과 특정한 시대의 정치적 요구에 의한 위기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며유용한 예술(useful art)’이라는 용어로 예술적 행동주의를 설명한 타니아 브루게라(Tania Bruguera)의 사례처럼 말이다





안민욱 <뭐 없는 것 네 가지-밑이 없는

2016 가변 구조 설치

 <홈리스의 도시> ⓒ 이동엽, 아르코미술관



 


그는아날 학파(Annales School) 특유의 엘리트주의 방법론으로 쓴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의 『지중해』가 아무리 지중해를 아름답게 묘사했더라도, 결국 그것 또한 지중해 지역을 정착민 식민주의의 관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땅에 대한 관심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점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일갈한다. 또한아프리카 대륙에서의 내전을 유발하고, 지중해에서의 위기를 초래하는 것 또한 바로 아프리카와 중동에 대한 새로운 식민주의적 이해관계이다. 한 지역이 약탈적 자본주의에 굴복하고 난 다음엔 아무도 그곳이 진짜 상징하는 바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문제를 대변하려는 예술을 다룰 때 매우 조심해야만 한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흐름이 한 지역에서, 특정 시기에만 유달리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이론적 연결고리역시 되새겨 볼 만하다는 입장이다가령, 네그리튀드(négritude) 운동의 창시자인 에메 세제르(Aimé Cesaire)가 유럽에서 유학하는 동안, 유고슬라비아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세제르가 자신의 저서 『귀향수첩(Cahier d'un retour au pays natal)(1939)을 완성한 것은 그 여행 중 아드리아해의 작은 섬, 마틴스카를 방문한 이후다. 이 작은 섬이 자신의 고향인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를 연상시켰고, 다르게 말하면 지중해가 세제르에게 식민주의와 싸울 용기를 북돋아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과 사상의 주춧돌이 된 그의 작품은, 억압과 고통의 삶에 짓눌려 자신에 관해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했던 흑인의 목소리를 오롯이 담고 있다. 에두아르 글리상(Édouard Glissant)의 저서 역시 카리브해의 대표적인 참고문헌으로 여겨진다. 세계의 불투명함에 관한 글리상의 글은 오늘날 지중해에서의 위기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을 듯하다시릭은여러 가지 사건과 서로 다른 지역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선 잠비아 출신의 경제학자 담비사 모요(Dambisa Moyo)의 책을 참조할 수 있다중국이 경제적으로 아프리카를 점유해 나가는 내용을 다룬 모요의 주장에서 그것이 지중해 유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We, Elsewhere> Pavilion of Turkey 58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 ‘La Biennale di Venezia’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 

Photo: Italo Rondinella ⓒ La Biennale di Venezia  

2. 올라프 홀츠압펠 Installation view




대안적이라거나지역 중심의또는국제정세에 따른 맥락이라는 표현은 간단하지만, 실체 없는 허명(虛名)처럼 지루하게 반복될 때도 있다. 인간은 언제나 위기의 일부이며 동시에 그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의 일부이기도 하다. 어떤 예술은 외면하고 싶은 환멸과 절망을 강조하거나 반대로 이상적인 공동체의 감각을 일깨운다. 그것이 과거, 현재, 미래 어떤 시점에 닻을 내리고 있든 항상-고잉(on-going)’ 프로젝트다. 이제, 마야 시릭의 마지막 말이다. “진짜 예술가들의 진짜 예술 덕분에, 사건에 단지 이름표나 표식을 붙이는 일 외에 다른 길이 있음을 알 수 있으니 다행이다.” 한편, ‘58회 베니스 비엔날레(58th Venice Biennale)’ 몰타 국가관은 지중해의 중심을 자처한다


<Maleth/Haven/Port>전을 기획한 헤스페리아 라두-슈피에 박사(Dr. Hesperia Iliadou-Suppiej)역사/고고학, 신화/전통, 비전/기대라는 세 가지 유형을 통해 몰타 국가관 내부에 지중해 전체에 관한 예술적 대화의 장소(topos)를 마련하겠다고 기획의 변을 밝혔다. 세계 각지에서이민, 난민, 이동, 집 없음등에 대해 다루는 많은 전시가 열리지만, 몰타야말로 그런 일들이 실제의 삶과 맞닿아 있는 장소라는 설명이다. 이에 3명의 예술가, 트레보르 보르그(Trevor Borg), 빈스 브리파(Vince Briffa), 클리차 안토니우(Klitsa Antoniou)의 장소 특정적 설치, 멀티채널 영상, 멀티미디어 설치 작품은공간 속의 공간을 추구하며 모든 장소의 외부에 있는 일종의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를 구현하고자 했다. 오브제로서의 예술을 넘어 대화의 장으로서 내러티브를 구성하겠다는 그들의 의도는 과연 지중해 밖의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인식되었을까. 그 응답이 어떻게 돌아올지 궁금하다.  

 


글쓴이 이가진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문학과 미술사학 전공으로 학부를 마친 후 프랑스 파리 8 대학교에서  「에드워드 루셰(Edward Ruscha)의 초기 아티스트북」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퍼블릭아트」 기자로 동시대 미술 신에 관한 글을 쓰고 책을 만들기도 했다. 시각예술과 텍스트라는 두 가지 영역에 관심을 두고, 그 사이를 잇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며 보다 긴 호흡의 글을 쓰고자 한다. 현재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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