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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6, Sep 2019

이원호
Lee Wonho

나는 너, 너는 나, 그리고 우리

미술의 실천을 구성하는 가장 필수이자 기본적인 요소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작업이라는 실천의 행위와 이를 행하는 주체인 작가, 그리고 작가의 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작품일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이들 세 요소의 관계에서 어떤 행위와 이를 수행하는 행위자 및 그 주체적 대상이 함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이들은 모두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면서 각각이 전부 개별적인 요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따로 독립적인 움직임으로 진동하면서 파장을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또 같이 미술의 얼개를 지속해서 엮어 나가는 하나의 큰 동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작업, 작품, 작가는 미적 맥락을 창출하고 담론을 생산하는 역할을 주도한다. 이를 내부에서 외부로 발산의 방향성을 지닌 하나의 예술적 에너지라고 한다면,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에너지의 주체는 바로 관람의 행위를 수행하는 관람자 또는 작업-작가-작품과 관람자 사이를 잇는 이론 기반의 비평가 또는 기획자의 지위를 점유한 이들이다. 결국, 이러한 관계의 삼각 구도로 인해 미술은 실현되고 동시에 기능한다.
● 장진택 독립큐레이터 ● 사진 작가 제공

'The white field I ' 2011 테니스장에서 수거해 온 흰색 라인(석회 가루) 사진, 영상, 설치 사진: 송은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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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택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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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위와 같은 예술 시스템을 구축하는 다면적인 주체들의 입장이 모호하게 혼재되어 있다는 점인데, 당연하게도 이는 그의 작품이 담아내는 주제와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작가 의식에 기인한다. 실제로 그는 작품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면서 작업을 직접 진행하는 가운데 매번 신선한 경험의 주체라는 입장에 자신을 위치시키기도 하며, 이를 미술의 언어로 다듬고 정리하는 일 또한 작품 외부에서 수행한다. 물론 대부분의 작품은 작가의 작업을 통해 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작가가 작품에서 가장 주체적인 인물이 되는 것을 새삼 특이점이라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원호의 작품에서 작품 자체가 작가로 환원하는 순환 고리로 매우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보편적인 설정과 구별된다. 이 필연적인 연결은 제작-관람-경험이라는 미술에서의 순차적인 위계 구조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로 작가, 이론가 그리고 관람객 모두를 인도하며 전혀 다른 차원으로 미적 감상의 의미를 발굴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라는 주체는 와 같아지고, 라는 객체는 가 되며, 우리라는 이름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적절할 때까지 I> 2019 

양면스크린, 아크릴, 나무 5 채널 영상 60분 사진: 정정호




그의 최근 전시 <적절할 때까지>는 제작-관람-경험이라는 미술에서의 삼위를 일체시키는 가장 명료한 전시로, 여기서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일정한 방법론을 통해 내재화하거나 혹은 외재화한다. 이를 구성하는 근작 중 하나인 <적절할 때까지 I>(2019)에서 작가는 서울 시내 전역을 활보하는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고, 이를 60분가량의 5채널 영상으로 구현했다. 그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가장자리를 이으며 집의 형태가 단순화된 오각형 모양의 경로를 GPS에 따라 걸어 나가는데, 작품과 함께 공명하는 소리는 그가 이 거리를 걸으며 소지한 나무 막대기가 땅을 긁어 일으킨 소음을 채집하여 덧입힌 것이다. GPS 정보로 추출한 경로는 사전 설정된 각각의 꼭짓점을 이어낸 구조로, 작가는 본인이 의도한 특정 체험을 직접 수행하는 타자적 경험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동시에 본인의 경험에 다시금 의도를 부여하는 주체적 작업의 타자가 되기도 한다. 삼자적인 작품 관람의 차원에서도 그와 같은 자타의 경계는 꽤나 모호하게 설정되어 있다. 이는 1인칭인 동시에 3인칭으로 놓인 작가의 뒷모습을 좇는 우리가 작품 내부의 자아를 경험하게 됨과 동시에 여전히 작품 외부에서 작가를 바라보며 작업을 함께 구축하게 되는 고유한 상황 연출에 기인한다.





<Looking for>(부분) 2016 

종이 위에 금박지, 부동산 홍보물, , 스탠드 조명 





같은 맥락에서, 위의 전시를 구성하는 동일한 제목의 또 다른 작품 <적절할 때까지 II>(2019)는 앞과는 다른 양상으로 관계의 경계를 흐트러뜨린다. 3채널 영상으로 재생되는 작품은 20여 분에 걸쳐 하나의 글을 읽는 인물들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이를 시청하는 관람자들에게 누가, 무엇을, 어떻게, 에 대한 궁금증을 계속해서 떠올리도록 자극한다. 여기서 작품의 관람자가 이 작업을 누가 실행하고,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를 궁금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작가가 굳이 밝히지 않는 작업의 맥락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텍스트를 연기라는 필터를 통해 읽어내는 이 등장인물들 역시도 그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며, 무슨 의미를 창출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영상을 보는 사람도, 이 영상 안에 출현하는 사람도 마지막 어느 시점에 다다라서야 그들이 듣고 관람한 것, 그들이 읽고 연기한 것이 곧 이 모든 순간을 연출한 작가의 작업에 대한 비평문이었음을 비로소 알 수 있게 된다. 바로 여기서 작가는 작가인 동시에 자신을 스스로 작업의 대상이라는 위치로 전환한다. 이는 작가를 다루면서도 작가가 직접 제작한 작품이 아닌 무엇, 다시 말해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가 구축한 작업 세계에 이르기까지 나름의 해제를 더한 또 하나의 () 가공된 작가와 작업, 작품을 두고 발발하는 조망의 관계적 다층을 밝게 비춘다.    





<()부동산> 2015 노숙자들로부터 

매매 구입한 종이박스 집, 매매계약서, , 종이, 

나무, 액자 2채널 영상 각 33 49 /

 32 35초 사진: 도쿄국립미술관 




이렇듯 이원호는 기존의 맥락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체하거나 재배치하면서 작가 개인의 작업적 방법론을 일으켜 세우는 한편, 이를 통해 주조한 새로운 작품의 형식과 더불어 그 안팎에서도 새로운 관계의 방향성을 교차하게 함으로써 미술에서의 일반적인 제작-관람-경험의 일 방향성을 무효화한다. 우리 주변에 놓인 여러 사회 문제들을 관통하는 그의 전작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향성의 기저를 가늠할 수 있다. 과거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에서 선보인 <..>(2015)이나 창원조각비엔날레를 위해 작업한 <Signboard - 오도록, 바라보게, 살피게, 헤아리게, 고르게, 결정하게, 행하게 하다.>(2014)가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여기서 작가는 실제 부동산을 운영하는 부동산 업자를 고용해 관람객들과 만나게 하면서 실생활과 예술의 경계를 흐리고 현실과 이상이라는 상반되는 개념의 재배열을 시도하거나, 현재는 운영하지 않는 가게들의 간판을 재현하여 과거와 현재 사이의 시차를 뒤바꾸며 현상의 원인 분석에 대한 기준점을 다른 곳으로 옮겨 내기도 했다. 또한 2011년부터 시작한 The white field(2011-) 연작이나, 독일 슈투트가르트 아들러 거리의 한 철거 예정 건물에서 진행한 <Freedom from all ideas and thoughts>(2009)와 같은 경우, 탁구대, 테니스장, 축구장 등지의 운동 경기장에 그어진 백색의 라인을 수거하여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거나, 공간의 바닥을 청소하기 위해 쓸어 나간 흔적의 주변을 정리하는 것으로 작품의 틀을 조직하는 등의 실험을 통해 맥락의 재맥락화나 자기-조직적 맥락화를 성취하고자 했다.





<()부동산> 설치 전경 2015 노숙자들로부터 

매매 구입한 종이박스 집, 매매계약서, 

, 종이, 나무, 액자 2채널 영상 각 33 49 

32 35초 사진: 도쿄국립미술관





이제 그의 작업은 곧 사회 구조 내에서의 의미와 개념의 순환이 어느 방향으로든 전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나아가 사회 구조 내에서의 옳고 그름의 문제 혹은 가치 체계의 근간에 끊임없이 흠집과 균열을 일으키며, 매우 당연하게 우리에게 나와 너의 생각을 서로 상기시키는 작동의 계기를 마련한다. 이원호의 작품을 통해 비로소 나는 안, 밖도 아닌 어느 경계선 위에서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도, 그렇다고 이를 외면하고 자신만의 동굴 속에서 마냥 틀어박혀 있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이처럼 작가의 작업과 작품에서 발현하는 관조의 태도는 자연스레 휩쓸리도록 했던 거대한 파도, 그리고 드높은 하늘 사이에서 표류하는 우리가 선택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받도록 그 순간을 얼마만큼 유예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원호





작가 이원호는 1997년 홍익대학교 회화를 전공하고 1999년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독일 슈투트가르트 쿤스트 아카데미 조소과 대학원(Aufbaustudium)에서 마이스터슐러(Meisterschüler)를 취득했다. 사회적 구조와 그 구조를 구분 짓는 경계에 관심이 있는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일본, 독일 등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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