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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9, Oct 2020

제니퍼 스타인캠프: Souls

2020.9.3 - 2020.10.31 리만머핀 서울, 리안갤러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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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원 씨알콜렉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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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경(恍惚境)


마릴린 먼로 주연의 영화에서 제목을 따온 <돌아오지 않는 강(The River of No return)>으로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 작품을 선보였던 제니퍼 스타인캠프(Jennifer Steinkamp)는 전시관과 공중통로 난간에 자연의 생태학적 해석을 담은 LED 영상을 설치하며 2002년 ‘미디어시티서울’에 이어 한국에 소개되었다. ‘애니메이션 영상설치 분야의 개척자’로 잘 알려진 스타인캠프는 건축공간에서 공감각적 경험을 창조하는 3D 애니메이션 영상설치작가다. 정교하고 정치한 3D 마야 렌더링(Maya rendering)의 최신 디지털미디어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그의 작업은, 특정 공간 속에서 빛과 이미지의 움직임, 그리고 관람자와의 인터랙션을 통해 그들을 ‘지금, 여기’가 아닌 또 다른 차원으로 인도한다. 작가는 주로 자연적이고 유기적인 이미지들을 차용해 자연의 섭리, 신체와 우주의 신비, 태초의 에너지 또는 핵폭발과 같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 또는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함, 두려움에서 오는 외경감을 드러냄과 동시에 유명한 미술작품이나 영화 같은 문화예술을 재매개(remediation)함으로써 동시대와 공명한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모션 효과, 발광하는 영상 이미지는 실제이자 가상이고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으로, 묘한 긴장감과 모호함을 통해 관람자의 몰입감을 끌어올린다.

스타인캠프의 시그니처(signature)인 나무 이미지가 처음 사용된 2003년 ‘이스탄불 비엔날레(Istanbul Biennial)’에서는 터키 예레바탄 지하궁전(Yerebatan Cistern) 안에 있는 메두사 두상조각에서 영감을 받아 구불구불한 나뭇가지가 뻗은 다양한 나무들의 영상설치를 선보였다. 영상 속 나뭇가지들은 저수지에 반사되어 메두사 조각 주변이 독사처럼 보이도록 계산된 매혹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또한 과거 철도수하물 창고였던 샌디에이고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San Diego)의 특별전시장 전체를 상상의 꽃잎들로 이루어진 폭죽이 터진 듯 한 사건으로 전환한 전시 <마담 퀴리(Madame Curie)>는 7채널 싱크로나이즈 영상으로, 방사성 원소를 발견한 퀴리 부인이 꽃에 대한 집착, 정원 가꾸는데 열정적이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핵폭발 같은 에너지 무브먼트를 구현한 작품이다. 
이외에도 작가는 마스크 기법으로 공간의 특정장소에만 영상이 투사되게 설치하기도, 뮤지션들과의 협업으로 사운드와 함께 자연의 추상성을 극대화하여 낯선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관람객의 검은 그림자가 이미지에 교차되어 공간을 다르게 인식하게 하는 등 수많은 영상미디어 설치작업을 구현해왔다. 특히 어두운 공간에서 작품만이 온전히 극적으로 보이는 동시대 ‘종합 환경 비디오 아티스트의 선구자’ 빌 비올라(Bill Viola)의 작업과는 다른, 예술로서 건축 내부가 그대로 드러나게 조명을 남겨 자연스러운 공간 자체를 체험하게 하는 공존의 연출력을 보여주었다. 

전시공간 외에도, 스타인캠프는 세인트 루이스 미술관(Saint Louis Art Museum) 건물 외벽에 궤도를 그리는 듯 한 카메라 워크로 변화무쌍한 자연의 섭리를 한눈에 보여주는 <궤도(Orbit)>(2013), 그리고 뉴욕 타임스퀘어(Times Square)의 번쩍이는 전광판들을 화려하고 생생한 꽃의 향연으로 물들여 뉴욕 거리를 ‘꽃의 정원’으로 전환한 퍼블릭아트 <보타닉(Botanic)>(2016)을 선보였다. 또한 필라델피아 벤자민 프랭클린 파크웨이(Benjamin Franklin Parkway)에 공공미디어 조각 형태로 설치한 <겨울 샘(Winter Fountains>(2017-2018)은 전기에너지의 원초적 힘을 보여주듯 주기적으로 밝아지는 반구 형태로, 떨어지는 꽃들 속에서 소행성들이 충돌하는 신비한 체험을 제공한다. 이렇게 도시 한복판 또는 미술관 건물 내외부에 투사된 비물질의 빛은 밝고 생기 넘치는 움직임과 추상적 이미지로 감각과 정서를 전환시키고 퍼블릭 공간에 새로운 생명성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추상영상은 보다 적극적인 관람자들의 행위를 이끌어내는 인터랙티브한 작업으로도 진화한다. 그는 2018년 ‘자궁(Womb)’ 시리즈를 통해 과일과 꽃무리가 관람객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는 영상설치를 선보인다. 이외에도 2019년에는 머스 커닝햄 트러스트(Merce Cunningham Trust)의 공연 <Night of 100 Solos: A Centennial Event>의 무대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업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리만머핀 서울과 리안갤러리 서울에 함께 마련된 개인전 <Souls>은 라이프스케일의 사적이며 특정한 공간으로의 침투 시도이다. 작가는 보다 정교하고 향상된 렌더링과 프로젝션을 통해 내부의 어떠한 가변적 공간도 정확하게 맞추어 공감각적 디지털 영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증명하듯 깔끔한 영상설치를 선보인다. 특히 리만머핀 서울 공간 입구 전면 창에 설치된 <Blinded Eye 4>(2019)는 내부에서 창문 밖의 자작나무숲을 보고 있는 듯한 묘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자작나무 숲으로 연출된 이 작업은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위치한 클라크 아트 인스티튜트(Clark Art Institute) (2018년 스타인캠프의 주요 개인전이 열렸던 곳) 주변 자작나무 숲의 실제 사계절을 고스란히 겪어낸 드라마틱한 변화를 정적으로 정면화한 작품으로, 일렬로 늘어선 옹이진 나무들의 숲은 바람에 가지들이 휘고, 물결치는 격정적인 움직임에서, 나뭇잎들의 작은 떨림까지 묘사하는데, 선형적 시공간을 초월하여 실제보다 더 리얼한 현장성과 가상성을 선사한다. 

리안갤러리에 전시된 그의 대표적 시리즈 작품 ‘Judy Crook’(2019)(작품명은 작가 스승의 이름에서 가져왔다)의 12, 14도 나무가 자라 무성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후 시들어 앙상한 가지만을 남기는, 생성과 소멸의 반복으로 순환하며 다채로운 현상을 아우르는 자연(自然)의 질서를 드러내는데, 장난감의 재질감, 카메라 앵글의 역동성, 깔끔한 모션프레임이 충격적이었던, 3D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Toy Story)>처럼 비물질의 극대화된 물질성, 요동치는 나뭇가지의 우아한 모션이 일품이다. ‘Blind Eye’ 시리즈가 특정 장소 주변을 고려했다면 건축가의 의도를 존중하는 리서치를 통해 이미지를 구축한 작업도 선보인다. 리안갤러리의 <Retinal 1>(2018), <Retinal 2>(2019)는 2018년 캔자스시티 넬슨-앳킨스 미술관(Nelson-Atkins Museum of Art)의 건축가 스티븐 홀(Steven J. Holl)이 건축의 창을 일종의 렌즈로 상정한 것에서 영감을 받아 눈의 망막정맥을 차용한 영상설치다.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으로 보랏빛 반투명한 튜브 같은 관으로 피 같은 액체가 흐르고 뭉쳤다 흩어지는, 유기적인 모션의 망막정맥 이미지를 환상적으로 가시화하였다. 

또한 먹음직한 농익은 과일과 생생한 꽃잎들로 뒤덮인 맞은편 벽면은 17세기 플랑드르 화파의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를 재매개, 그리고 해체한 영상으로, 작가의 개입으로 다시 생명성을 부여 받고 부유하는 과일과 꽃들의 파라다이스를 구현한 ‘Still-life’ 시리즈를 전시하였다. 리만머핀 서울에 전시된 최근 신작 <Primordial, 1>(2020)은 작가의 주요 활동무대인 LA의 밝고 건강한 색감을 바탕으로 수중 미생물 같은 상상의 꽃잎들이 상승/하강하는 산소 방울과 함께 우아하게 움직이는데, 섬광이 번뜩일 때는 문화와 경제적 부를 자랑하던 15세기 르네상스시기 피렌체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베누스의 탄생>처럼 태초의 사랑과 미의 탄생순간을 상상하게 한다. <Daisy Chain Twist, tall>(2004)는 데이지 꽃 화환이 덩어리를 비틀며 돌아가는 또는 폭포 같은 움직임을 통해 꿈틀거리는 숨 쉬고 있는 식물의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는듯하다. 

특히 항상 인류와 함께해온 자연 생태계 변화를 마치 장시간 노출하여 슬로모션으로 찍은 듯한, 또는 시공간을 압축한 듯 한 영상으로 관람자들에게 애니메이션이 보여줄 수 있는 생명성의 감동과 역동적 황홀경을 선사하고 있다. 더하여, 빛이 생성해내는 밝음과 화사함의 비물질적 정서와 함께 3D 영상이 만들어내는 스타인캠프의 추상 이미지의 액션은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 작가인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에게서 영감을 받기도 했지만, 자연적 소재로부터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 태초의 에너지, 그 분화와 폭발의 경이로운 순간으로 전환해내어 생명의 원천, 본질로 회귀하게 하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두 전시장 모두, 스타인캠프의 대표적인 시리즈 신작을 내세우며, 작가의 집요한 태도, 최신의 기술력과 함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나무, 꽃, 과일, 보랏빛 같은 매력적이고 보편적인 이미지 위주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코로나19의 팬데믹 시기를 고려한 듯, 매혹적인 가상의, 그리고 실재의 황홀경을 제안함으로써 위태로운 집콕시대 극복을 위한 시원한 눈 호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Still-Life 4> 2020 비디오설치 가변 크기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리안갤러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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