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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8, Nov 2019

트레버 페글렌
Trevor Paglen

메타포에 숨은 예리한 시선

‘일맥상통’이야말로 트레버 페글렌(Trevor Paglen) 작업에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일 것이다. 그의 작업은 일종의 풍경화로 서로 엮여있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 회화로서의 풍경화와 모습은 매우 다르지만, 작가는 우리 주변에 있는 일상도 풍경이라 보고, 사진으로 남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그것들을 조직하고 연결한다. 그리고 이런 방식과 작업 이론을 바탕으로 다음의 질문은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주변의 여러 환경은 어떻게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가? 그리고 기술은 여기에 어떤 역할을 자처했는가?”
● 정송 기자 ● 사진 Trevor Paglen Studio 제공

Installation view 'Kate Crawford, Trevor Paglen: Training Humans' 12 September 2019 - 24 February 2020 Osservatorio Fondazione Prada Photo: Marco Cappelle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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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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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글렌의 작업은 은유, 메타포 그 자체다. 결코 직관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가 감각한 현상에서 두드러지는 메타포를 찾기 위해서 리서치는 필수 과정이다. 각 작업은 이를 바라보는 방식에 의해서 그 메타포가 해석된다. 따라서 해석이라는 작업 해체 과정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이 리서치는 결과적으로 매체를 오래 보면서 배우고자 하는 작가의 자세에 기인하기도 한다. 작가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어떤 대상을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선 관찰이 선행되어야 하고, 관찰과 분석을 진행하다 보면 그간의 연결고리들이 드러나게 된다. 작가는 이 지난한 과정을 끊임없이 인내해 비로소 작업으로 완성한다. 개념적인 페글렌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의 작업 과정을 파악하고 그 뒤를 따라갈 필요가 있다.




<Circular Reflector> 2018 Stainless steel, polished 

37×37×37cm (14 ⅝×14 ⅝×14 ⅝ in) 

Edition of 3 Copyright Trevor Paglen Courtesy of the Artist, 

Altman Siegel San Francisco




예술가이자 지리학자로 불리는 페글렌의 작업을 보면, 결국 그가 들여다보고자 했던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지극히 현재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결국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까지 그는 함께 엮어낸다. 지리학자로서, 사회과학 전반을 탐구하는 그에게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은 하나의 큰 주제다. 그는 현 사회에서 이러한 기술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인 언어와 같음을 짚어낸다. 예술가가 아닌 시선으로 바라보면, 예술 창작은 익숙한 것을 이상하게 만드는 행위이자 일반적이지 않은 트릭이다. 여러 매체를 언어로 치환했을 때, 이 다양한(예술가들의) 언어, 다양한 시선, 다양한 관심사들이 합쳐져 보다 적극적으로 세상에 개입하게 하는 기술이 바로 예술 창작 활동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에게 이러한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은 작업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임과 동시에 이를 들여다보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여기서 작가는 기술 그 자체 보다 그 기술이 영향을 미치는 사회의 모습에 더 중점을 둔다는 점을 다시 한번 짚어야 할 것이다. 그의 작업에 다소 예리하고도 비판적인 시각이 내재하여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 그 자체로 어떠한 작업을 만들어낼지를 탐구하기보다는 자신이 흥미를 느낀 어떠한 사회적 현상, 그리고 이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담아내기 적합한 기술을 접목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술을 바라보는 방식, 기술적 도구들이 결코 중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믿음이 그의 작업 기저에 깔려있다. 각 기술은 사회의 비전(vision)을 담고 있다. 이 발전과 더불어 사회의 목적과 방향성 역시 변화해왔다. 작가가 오랜 리서치를 통해 꼼꼼하게 확인하는 바는 바로 어떤 세계 비전이 어떤 기술 속에 있는가 혹은 이러한 비전이 어떻게 세계를 재구축하는가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답인 것이다.




Installation view <Kate Crawford, Trevor Paglen: Training Humans> 

12 September 2019 - 24 February 2020 

Osservatorio Fondazione Prada Photo: Marco Cappelletti




이제 우리는 기술이라는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가는 더는 수동적인 입장이 아닌, 행위의 주체가 되어 세상을 들여다보기 위한 렌즈로 기술을 사용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기술 그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들의 목적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며 보다 보편적이고 광범위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게 맞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오래도록 기계비전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반복해왔던 그는 결국 이번 백남준아트센터에서의 개인전 <기계비전>을 통해 기계가 보는 비전(시각)을 설명한다. 페글렌은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에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작가로서 자신의 역할이라고 한다. (), 즉 이미지(image) 혹은 풍경(landscape)은 인간이 보는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떠한 현상이나 대상을 바라보고 해석해내는 주체(인간)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전개하고, 수행하는 인간이 없다면 이미지는 과연 그 존재 가치가 있을까? 역사적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이 이미지 의미를 재고하고 또 바라보는 행위까지도 연구해왔다. 보는 행위와 대상 그리고 그의 의미를 만드는 것이 이미지에 대한 의미라고 정의한 페글렌은 이미지는 이상한 단어라고 덧붙였다. 작가는 최근 이미지에 대한 경향이 달라졌음을 가리킨다.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을 통해 이제 기계들이 인간을 대신해 이미지를 보고, 분류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이제는 이미지 자체에 과거와 같은 의미는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동안 우리가 사회적, 정치적인 맥락을 부여했기에, 비로소 그 의미를 지녔던 이미지는 이제 다르게 해석되어야만 할 것이다.




Prototype for <a Nonfunctional Satellite> 

Installation test at Hangar 2013 

C-Print 16×16ft Copyright Paglen Studio 

Courtesy of the Artist and Nevada Museum of Art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는 요즘 인공지능(AI)을 학습시키는 이미지 트레이닝에 관심이 지대하다. 이러한 작업의 시작을 알린 것이 바로 프라다 파운데이션(Fondazione Prada)에서 선뵌 작업 <ImageNet Roulette>이다. AI 연구원인 케이트 크라우포드(Kate Crawford)와 함께 협업한 이 작업은 인공지능과 안면인식 기술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점점 더 파고들면서, 컴퓨터 시각과 AI 시스템에서 인간을 인식하기 위해 사용되는 이미지에 일종의 고고학적 접근인 셈이다. AI 시스템 내의 정치를 이해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하다. , 채용을 위해 누구를 인터뷰할 것인지, 용의자 가운데 누구를 체포할 것인지, 그리고 그 밖의 많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페글렌과 크라우포드는 전시 서문에서 밝혔다


이들이 프로젝트에 활용한 데이터베이스인 이미지넷(ImageNet)은 기계가 이미지를 인식하도록 훈련되는 과정인 딥러닝에 적용되는 알고리즘을 위해 2009년 스탠포드 대학 연구자들이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이미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어떠한 사람, 사물, 동물을 대입했을 때 이에 따른 종의 분류부터 시작해 인종, 나이, 기분 등을 이미지에 레이블화한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는 오늘날 인간을 분류하는 데 사용되는 AI 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 세트의 편견과 내재된 정치적 맥락을 드러난다. 페글렌과 크라우포드는 AI가 어떤 대상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근저에 있는 분류 과정 속에서 드러난 인종차별, 여성 혐오적 레이블을 통해 그동안 체계적으로 축적된 편견의 연속성을 꼬집는다. 그리고 나아가 AI에서 과학, 역사, 정치, 이데올로기의 경계가 어떻게 모호해질 수 있는지,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결과가 어떻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A Study of Invisible Images> Copyright: 

Trevor Paglen Courtesy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페글렌에게 협업은 필수불가결하다. 리서치 단계에서부터 작품 구현까지 여러 전문가의 지식과 기술이 두루 필요한 작가는 그야말로 협업이 작업의 전부다라고 단언할 정도. 셀 수 없이 많은 협업을 했지만, 우주로 직접 쏘아 올린 인공위성 작업은 그가 거친 단연 최고의 협업이다. 벌써 두 번의 실험을 거쳤는데, 시작은 이렇다. 2012년 인공위성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인공위성의 이동 궤도 및 시시각각 변화하는 궤도를 계산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던 중 TV 커뮤니케이션 인공위성은 지구에서  3  6,000km 밖 궤도를 돌다가 그 수명이 다해도 영원히, 말 그대로 영구적인 시간 동안 남아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땅에 사람이 사라져도 이 위성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음에 영감을 받은 그는 The Last Pictures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MIT 레지던시에 있는 기간 동안 뉴매터리얼을 만드는 연구에 뛰어들었고, 결국 크리스털의 원자 구조를 바꿔 안정적으로 우주에 떠 있을 수 있는 새로운 매체를 개발해내고 결국 2012년 첫 인공위성을 런칭했다. 그리고 2018 12월에 쏘아 올린 인공위성 프로젝트 를 완성하기 위해서 작가는 NASA와 미군, 연방정부와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여기서 웃지 못할 헤프닝이 발생했다고 한다


작가가 이 기관들과 긴밀히 소통하던 기간은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멕시코 국경 벽과 관련해 정부 기관이 모두 파업하던 시기였다. 작업 자체가 발사된 후 점점 커지는 모습을 하고 있어 시간이 무척 중요했고, 결국, 이 파업 때문에 인공위성은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작가는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고 한다. 결국, 이 프로젝트가 보여주려던 포인트는 공공 공간, 공생, 국경에 관한 얘기였는데, 이러한 실패의 에피소드에서 이 작업은 완성됐다는 것이다. 작가의 인공위성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인공위성과 완전히 상반되는, 아무 목적 없는 프로젝트다. 원래 인공위성이 군사적이고 상업적인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면, 페글렌의 인공위성은 무의미함에 작업의 의의를 뒀다. 어떠한 대상이나 현상을 먼저 감각하고, 이를 이미지화하고, 내포된 의미와 맥락 등을 통해 우리 사회를 다각도로 해체해 보여주는 페글렌. 꼼꼼한 리서치와 분석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업은 그래서 끝이 없다. 이 세상을 차갑고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페글렌의 작품엔 이 사회에 대한 끈끈한 의리와 애정이 실재한다.  

 

 


트레버 페글렌




작가 트레버 페글렌은 1974년 생으로 지리학자이자 예술가이다이미지 메이킹조각글쓰기공학 등과 같은 많은 분야에 걸친 작업을 진행하는 그는 U.C. 버클리에서 인문학사를 취득하고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예술 석사를 그리고 다시 U.C. 버클리에서 지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우리가 살고 있는 순간과 대안적 미래를 그리는 그는2018년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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