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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9, Oct 2020

강익중
Kang Ikjoong

바람 부는대로 춤추는 파도처럼

소란스럽고 어려운 2020년 여름의 끝자락, 사뭇 낯설게 조용해진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강익중 작가를 만났다. 1984년부터 뉴욕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인생에서 얻은 지식과 삶의 진리를 통해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예술가다. 강익중은 모든 사람이 동등한 위치에서 협업하는 참여형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하는데, 이는 작은 것들이 모여 큰 힘을 이루고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는 작가의 신념에서 비롯한다. 그는 또한 예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세상을 통해 예술을 감각하며, 우리 앞에 놓인 위안부, 남북문제, 실향민 등 역사, 정치, 국민, 예술 등의 이슈도 한 발치 떨어져 바라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좌표를 모색하고 자신이 나아가야 할 지점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 강익중에 대해 이야기한다.
● 정재연 미국통신원 ● 이미지 작가 제공

'꿈의 집' 2018 1만 5,000명 어린이들의 드로잉과 820개의 작가 드로잉 11×5.7×7.25m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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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연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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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ogether, 너와 나 그리고 함께

 

 동등한 민주주의에 대한 평정심과 올곧음을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죠.” 가로, 세로 3인치(7.6cm)의 작은 정사각형의 그림을 수천 개, 수만 개 나열하는 일명 ‘3인치 작가로 유명한 강익중은 누구에게나 동등한 크기를 제공한다. 예술의 역할은 소통, 연결자 즉 긴 파이프 역할을 해야 하고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어디를 가야 하는지 그 길을 제시해주는 지도와 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그는 미술관 밖으로 나와 지역공동체, 전 계층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공미술을 선택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 두 가지를 꼽았다. 그중 하나는 순천 현충 정원에 순천 시민 4분의 1에 해당하는 6 5,000명이 참여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의 <꿈의 다리> 이후 두 번째 프로젝트로, 단기간의 프로젝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순천시의 도움을 받아 시민들의 3인치 그림을 통해통일의 염원을 한데 모을 수 있었다. 102세 고령의 참가자를 비롯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그림을 모은 프로젝트는 하나의 문화혁명이었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시 도서관 1층 로비에 설치한 벽화 작품이다. 3만 명 정도만 사는 프린스턴은 도서관을 기점으로 반은 백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 그리고 반은 남미 출신 히스패닉과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뉜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도서관에 드나드는 모습이 작가에게 깊은 인상을 선사했고 그곳에 벽화를 세워 화합의 연결점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우선 그는 지역 신문에 광고를 내어 각자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은 소품을 가져오도록 했다. 자신의 이발소 명함, 멕시코에서 온 가족사진,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의 사인이 든 편지, 그리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카드 등 총 4,700개의 오브제가 모였고 그것이 전시됐다. 적은 인구지만 서로 대화도 나누지 않고, 보수적이었던 도시의 도서관엔 방문객이 더 늘어났고 프로젝트는 대성공이었다. 이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으며 지역이나 인종에 상관없이, 잘살든 못살든 3인치 그림 안에서는 모두 동등하고 민주적이라는 작가 철학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꿈의 다리> 2013 영구 야외 설치 순천


 


We are connected, 새로운 관계형 예술

 

이렇게 오랜 시간 대중과 함께 소통하며 일관성 있는 작업을 하는 작가가 또 있을까. 예술가와 관람객이 상호적으로 관계하는 미학적 구도 안에서 사유하고 느끼는 공동의 행위는 서로가 새로운 관계를 맺고 배울 수 있는 삶의 통로다. 예술 분야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하나의 큰 생태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가장 본질적인 것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관계형 예술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가 진행했던 모든 예술 협업, 시민, 어린이들 참여 프로젝트가 늘 그가 지향하는 흐름대로 흘러갔는지 말이다. 그로부터원하는 방향이나 흐름으로 늘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유인즉 어떠한흐름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강익중은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지켜보는 자라고 한다. 위대한 스승인 백남준 작가는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예술 잡지보다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를 읽어라.” 한 일화로 1994년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에서 백남준과 2인전 오프닝이 끝난 후, 살로몬 브라더스(Salomon Brothers) 은행가 집에 갔는데 그곳에서 백남준이 당시 은행가의 이슈와 경제 주가에 관한 이야기를 막힘없이 했다고 한다. 은행가가 백 작가에게당신은 작가입니까? 경제 전문가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미소를 띠며근데 그건 그렇고 30세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았습니까?”라고 답했다. 1,000년 후를 미리 생각하는 남다른 백남준에 대해낮에 별을 보는 무당이라고 강익중은 여겼다. 미술은 미술 안에서 바라보았을 때 아주 작은 일부분일 수 있으나, 미술 밖에 있을 때 힘을 얻는다. 같은 맥락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이다.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삼라만상> 201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올해는 강익중이 미국에 온 지 딱 36년째 되는 해이다. 미국에서 작업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는인종’, ‘피부색이라는 단어를 지웠다. 인종차별, 피부색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스스로 남을 차별하지 않고, 차별당했다는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그가 작품의 주제, 소재를 탐색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함께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는 동등한 사회, 그리고 상대방을 껴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예술가로서 사회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인정받지 못했을 때, 상대방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 때 갈등은 생겨난다. 감싸 안고 인정해주면 해결되는데 사람들은 그걸 하지 못한다. 하지만 예술에서는 가능하다. 그래서 예술을 작은 혁명이라고 했던가. 가장 작고 겸손한 것이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다. 2017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했던 <내가 아는 것>도 마찬가지다. 작품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저마다 삶에서 터득한 지식과 지혜를 토대로 작은 캔버스에 결과물을 차례로 연결하고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했다. 이는 참여한 사람 개개인의 삶과 역사가 그대로 반영된 지식의 모음으로 거대한 소수가 발언할 수 있는 소통 가능한 예술로 재탄생했다.




<광화문 아리랑> 2020 8×8×8m 서울





현재 그는 시를 쓰고 있다. 벌써 1,750여 편의 시를 쓴 강익중은 앞으로 10년 안에 1만 편의 시를 채우고 싶단다. 작품은 어느 정도의 돈도 필요하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지만 시를 쓰는 것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하얀 종이 위에 글을 쓰는 행위도 일종의 드로잉과 같은 창작 행위이며, 독창성과 작가만의 시간성이 포함된다. 그림을 그리듯 드로잉과 쓰기의 방법론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가 쓰고 싶은 시의 목적은 간단하다. 제일 작은 것으로 시작하지만 다 읽고 나면 가장 큰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작은 먼지가 광활한 우주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그의 작품과도 연결된다. 그는 한글의 다섯 가지 자음, , , , 철자를 만들어 누구나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다




<집으로 가는 길> 2016 실향민 500명이 그린 고향집 드로잉 

10×10×10m ( 1×1m) 템즈 강, 런던 사진: Woo Hemyong




한글은 확장성, 호환성, 유연성이 있기 때문에 순발력 있는 한글 특징을 살려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 그가 사랑하는 달항아리도 그리고 한글도, 위 아래 그리고 자음과 모음이 모여야 하나의 완전체가 된다. 세계의 모든 질서가 그렇듯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알아갈 수 있는지 항상 의식해야 한다. 예술의 중요한 바탕은 나의 지점을 찍고 있는지, 지도의 좌표에서 어떤 지점을 찍고 있는지 잘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가이든 역사가이든 글을 쓰는 평론가이든 예술가이든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자신의 의식이 깨어 있는지 아닌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알아갈 수 있다고 강익중은 강조한다. 무언가 끊임없이 다른 것을 하며 전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강익중, 그가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 갈 미래가 궁금하다. PA

 

 


 

강익중




 

작가 강익중은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1987년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백남준과 함께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에서 <멀티플/다이얼로그>전을 열었고, 1997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한국 대표로 참가해 특별상을 수상했다구겐하임 미술관영국박물관휘트니 미술관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보스턴 미술관독일 루트비히 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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