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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8, Nov 2019

우정수
Woo Jeongsu

무엇을, 왜, 지금, 아름다움:
우정수의 작업으로부터 발견하는 동시대적 예술의 특징

PUBLIC ART NEW HERO
2019 퍼블릭아트 뉴히어로Ⅴ

나는 지금 이 시각을 살아간다. 나는 지금 동시대적 미술을 실천하고 경험한다. 나와 미술은 오늘을 살아가는 한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시간이라는 선형 위에서 언제나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것이다. 고로 나는 언제나 지금을 살아가는 동시대 미술을 규정하고 정의하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으며, 동시에 미술은 역사라는 범주 아래 우리의 매일이 향유하는 아름다움을 매번 표상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미술과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미적 기준이 복잡하게 얽히고 겹친 세계를 어떠한 방식으로 인식하는지 혹은 인식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상징적 대타자(Autres)이자, 투영하는 상상적 소타자(autres)의 지위를 함께 점유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너’와 ‘나’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도 또한 명확해지기도 하는 지점인데, 그 순간 동시대의 조건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이 명확함과 모호함의 경계는 더는 능동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닌 일견 피동적인 수용의 문제로 회귀해 버린다.
● 장진택 독립큐레이터 ● 사진 박희자 작가

'서사의 의무' 2016 벽과 종이 위에 먹 260×9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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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택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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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대지와 바다는 언젠가 하나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메말라버린 지평선이 되거나, 때로는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파도가 넘실대는 수평선이 된다. 그 때문에 나는 걷고 서거나, 떠다니고 헤엄칠 것이 분명하고, 휩쓸렸거나 가라앉았다고 말하거나, 뛰어다녔거나 누워있었다고 말할 것이 틀림없다. 다만, 이 모든 때에도 대지 혹은 바다와 창공의 경계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나, 그것은 곧 사이의 경계라기보다는 어느 한쪽으로부터 시작되는 포용의 형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더 맞을 테다. 이렇듯 모든 것은 아우르거나 아울러 지기도 하고, 바라보거나 바라봐지기도 한다. 행하는 것과 행해지는 것은 그 관점의 주체를 누구로 설정하는가에 따라 역전할 뿐이지,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오로지 기억할 것은 내가 보았고, 들었으며, 만졌을 때 느꼈던 모든 경험이며, 집중할 것은 내가 보고, 들으며, 만지면서 느끼는 모든 감각이다.





<원숭이도서관> 2015-2016 

먹물, 잉크, 종이에 아크릴릭 514×433cm

 



우정수의 작업은 이처럼 나에게 시대를 풍미하는 아름다움의 형상과 그 근거를 상기시킨다. 아름다움의 형상 그 자체는 특정한 이미지의 형태 또는 그 특정한 이미지를 조장하는 몇 가지 주요한 세부적 요인들이 뒤섞여 발현하는 어떤 분위기에 의해 주도될 것이며, 그로부터 일정한 시기를 구분하거나 일정한 시기에 따라 구분되는 형성의 근거가 추출 가능하다. 이제까지 우정수가 구축해 온 일련의 평면 작업에 대해서는 회화라는 매체적 특성과 그 표면의 내용에 치중하며 이를 해제하는 방법론이 주로 적용되어 왔지만, 나는 여기서 그가 그러한 주제를 설정하거나 그렇게 그려내고자 한 표현의 계기를 좀 더 조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표현의 계기란, 어떻게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에 집중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무엇어떻게 선택하고, 어떻게 표현함으로써, 어떠한 분위기를 자아내고자 한다. 이는 사실 어떠한 이미지를 스스로 구축하려 했으며, 자신을 어떻게 보이고자 했는지에 대한 의도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이 어떻게를 차치해야 하는 까닭은 결국 미술이 내가, 네가,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써 현재 유효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이미지를 투영하는 작업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정수의 작품을 정확하게 바라보기 위한 작업은 라는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그것은 우리가 작가의 작품에서 어떻게라는 부사보다 무엇을이라는 목적어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타고니스트_버밀리온 1> 2018 

캔버스에 아크릴릭과 잉크 72.7×60.6cm 




이러한 관점에서 우정수는 보통 현재 혹은 과거의 도상 혹은 그 이미지를 작품이라는 형식 틀 안에서 차용하면서, 그것이 특정한 의미를 갖거나 또는 그것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종의 복합적 지시체로서의 작품을 구현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지금에 관한 이미지의 명료한 차용을 시도했던 전작에서는 이미지를 그리는 그리고 보는 행위를 통해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즉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작가는 우리의 주변을 부유하는 느슨한 관계의 대상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자연스레 감상자로 하여금 그가 무엇을 유심히 보고 있는지, 그리고 당신이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직접적으로 가리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의 근작에서는 명료한 의지를 내보이는 서사를 부각하기보다, 각각의 도상 이미지들의 배치 및 이를 통해 생성되는 맥락을 혼재함으로써 개별적 도상이 내포하는 역사적 의미를 무의미하게 내버려 두고자 하는 상황을 조성하는 데에 이른다. 이를 위해 그는 개별적 서사를 엮어내며 구축하는 작품의 전체적 서사 구도에서 탈주하면서 상대적으로 한층 더 변경하기 어려운 배경을 가진 개별적 서사, 즉 신화의 차원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그 강력한 서사 이미지의 무작위적 배치를 통해 흐리는 무의미의 의미 창출은 점차 작품을 맥락화라는 무거운 책임에서 해방하면서, 예술을 취향, 선호, 유행 등과 같이 상대적으로 가볍고 자유로운 감각의 차원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놓아준다.




<프로타고니스트_버밀리온 3> 2018 

캔버스에 아크릴릭과 잉크 72.7×60.6cm




이것이 필연인지 우연인지는 감히 판단키 어렵지만, 그와 같은 우정수의 자기-이미지 생성의 방법론을 통해 제작한 작업의 연속은 당대가 소비하거나 향유하는 예술 이미지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것, 피상적이고 대중적인 것, 오래되고 고상한 것, 신선하고 하위적인 것과 같은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는 모두의 눈을 멀게 하여 견고한 질서를 어지럽히고 높은 권위를 무너뜨렸다. 기술은 데이터를 무한하게 만들었고, 이 무한한 데이터는 접근의 권한을 무용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은 여전히 우리를 배회하고, 양극단은 이제 서로 다른 환경과 처지를 식별하기 어려운 정도로 멀어져 있다. 그처럼 상충과 모순이 난립하는 가운데, 우정수는 꽤 차분하게 상황을 조망하는 듯하다. 어지러운 혼돈의 현실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은 채 있는 그대로를 오롯이 인정하고 서로를 다독거린다. 서구의 전통 문양, 휘갈긴 낙서, 목판 위의 선지자들, 스마일 이모티콘, 과거의 초상, 오늘의 정물, 이 모든 이미지 파편은 아무 의미도 드러내지 않고 그저 함께 있다. 지금은 범람의 시대, 이 범람의 폭풍을 단지 견딜 수밖에 없는 지금의 단상을 슬퍼하지도 그렇다고 기뻐하지도 않는 초연의 현상, 어쩌면 그는 이것이 바로 동시대의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우려는 것은 아닐까.

 



 우정수




작가 우정수는 20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조형예술과 예술사를 졸업하고 동 대학의 전문사를 취득했다. 2015년 서울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연 <불한당의 그림들>전부터 OCI미술관갤러리 룩스온그라운2, 금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이 밖에도 두산갤러리챕터투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서교예술실험센터 등에서 열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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