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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8, Nov 2019

나무를 심은 사람들

France

Nous les Arbres
2019.7.12-2019.11.10 파리, 까르띠에 현대예술 재단

알프스의 산 중턱 어딘가에서 노인이 홀로 나무 씨를 흩날리고 있다. 마실 물을 찾아 헤매다 우연히 이곳을 지나게 된 한 젊은 나그네는 이 광경을 보고 의아해한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커녕 물 한 방울조차 찾아볼 수 없는 땅에서 싹이 트고 나무가 자라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 아닌가. 아무래도 노인은 헛되고 무모한 일을 하는 듯 보였다. 청년은 떠났고, 그 후에도 노인은 매일매일 묵묵히 씨를 뿌리고 땅을 가꾸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뒤, 다시 이곳을 찾은 청년의 눈앞에는 실로 믿기 힘든 놀라운 풍경들이 펼쳐진다. 황폐했던 평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는 장성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메말랐던 산등성이에는 맑은 물줄기들이 타고 흘러내렸고, 각양각색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났으며, 나비와 산새들이 쉴 새 없이 지저귀며 찾아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도 살지 않던 적막했던 마을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불모의 땅을 생명의 땅으로 만든 노인. 장 지오노(Jean Giono)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Elz ard Bouffier)가 일으킨 기적은 현실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까.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 사진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제공

View of the exhibition 'Trees' Presented from July 12 to November 10, 2019, at the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Paris Photo © Thibaut Voi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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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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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나무를 심으며 죽은 땅과 마을을 살려냈다는 부피에의 이야기는 전 세계의 독자들을 감동시켰고, 그 덕에 그가 실존 인물일 것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비록 그는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로 밝혀졌지만, 부피에가 몰고 온 사회적 파장은 컸다. 소설의 배경이 된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대규모 나무 심기 캠페인이 일어났고, 황무지를 숲으로 바꾼 현실판 부피에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의 이름을 딴 길도 생겨났다. 이같이 세상을 뒤흔든 '부피에 신드롬은 아마도 소설 속의 기적이 단순히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이 빚어낸 허구가 아니라, 실천 가능한 우리의 미래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작가, 장 지오노 역시 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땅과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보았고, 그 경험을 통해 부피에라는 인물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소설이 남긴 교훈은 아직도 유효하다. 아니 더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 되었다. 우리가 직면한 환경 문제가 반세기 전, 더욱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개발과 오염으로 점점 사라져가는 녹지,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세계 곳곳에서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와 사막화 문제는 자연 생태계 파괴를 넘어 인간의 삶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보고 예술가들도 나무를 심는데 나섰다. 파리, 까르띠에 현대예술재단에서 진행 중인 <우리, 나무들(Nous les Arbres)>전이 바로 그것이다. 예술가들이 행한 기적은 무엇일까, 그들이 가꾼 녹색지대로 지금부터 들어가 본다.




View of the exhibition <Trees> Presented from July 

12 to November 10, 2019, at the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Paris Photo © Thibaut Voisin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싱그러운 숲 내음이 은은하게 퍼진다. 형형색색의 꽃과 이름 모를 진기한 열매들이 탐스럽게 맺힌 나뭇가지를 향해 새들이 날아들고, 무성한 잎사귀들이 그늘을 드리우며 대지의 열기를 식힌다. 마치 거대한 밀림 속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생동감이 넘치는 이 풍경은 브라질 작가, 루이즈 제르비니(Luiz Zerbini)가 그려낸 아마존 정글 <세상의 모든 것(Coisas doMundo)>이다. ‘지구의 허파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때 묻지 않은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가득 머금은 아마존의 웅장한 자태는 가히 압도적이다. 그러나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캔버스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묘한 이질감이 엄습해온다. 자연 본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물체들이 우리 눈에 하나둘씩 포착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절경 속에 비밀스럽게 감춰져 있던 장면들이 아마존의 민낯을 들추어내기 시작한다. 수풀을 헤치고 나온 초고층 건물, 똬리를 튼 뱀처럼 둥글게 말린 각종 산업용 고무호스와 파이프, 나무줄기처럼 곧게 솟아오른 전봇대, 바닥에 널브러진 주방용 스펀지와 플라스틱 용기들. 정글과 절대 어울리지 않는 갖가지 오브제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가운데, 괴상한 붉은 빛을 띤 물고기 한 마리가 육지 위를 유유히 헤엄친다


60년대 이후, 브라질에서 급속하게 진행된 도시화·산업화 과정에서 아마존의 존재는 철저히 배제되었고, 그 훼손과 파괴 실태는 은폐되었다. 1988년 이래 30년간 아마존에서 유실된 산림의 면적이 80km2에 육박한다. 그동안 얼마나 무분별한 개발이 행해져 왔는지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그 결과, 태초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지상낙원이라 불렸던 아마존은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자연적으로 생성될 수 없는 인공물들이 자연에 기생하고, 돌연변이 생명체들이 출몰하는 곳이 지금의 아마존이다. 생존의 위험에 내몰린 것은 비단 생태계뿐만이 아니다. 자연의 파괴는 한 민족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단절시키고, 더 나아가 그 민족의 존속 자체를 위태롭게 만든다





View of the exhibition <Trees> Presented

 from July 12 to November 10, 2019, at the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Paris Photo © Luc Boegly 





아마존에 거주하는 원시 부족, 야노마미족이 처한 상황이 그러하다. 석기 문화를 토대로 한때는 아마존에서 가장 강성했던 이 원주민 공동체는 금광을 캐러 온 개발업자들이 자행한 약탈과 방화, 폭력과 살인으로 인해 괴멸의 길을 걷고 있다. 파라과이의 열대초원, 그란차코(Gran Chaco)에 거주하는 과라니족과 니바끌레족의 형편도 별반 다르지 않다. 드넓은 초원에서 뛰놀던 야생동물들은 자취를 감췄고, 부족들에게 먹을 양식을 제공해 준 나무들은 흔적도 없이 모두 잘려 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농작지가 개간되고, 잘 닦인 도로와 다리가 세워졌다. 존멸의 갈림길에 서 있는 원시 부족들, 과연 그들은 예전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야노마미족 출신의 아티스트, 조제카(Joseca)는 대대로 전해 내려온 전통 의식을 통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부족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한다. 나뭇가지와 잎으로 머리와 몸을 한껏 치장한 주술사 한 여인을 중심으로, 부족 사람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노래를 부른다. 그러자 머리에 나뭇잎이 자라고, 양팔에 검은 새 떼를 품은 여신이 등장한다




View of the exhibition <Trees> 

Presented from July 12 to November 10, 2019, 

at the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Paris Photo © Luc Boegly

 




나무의 정령을 소환해내는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된 <암그루의 영혼> <자토바 나무의 영혼>은 자연과 공존해온 야노마미족의 오랜 전통과 지혜를 보여주는 한편, 오만 년 동안 번성한 공동체의 존립을 향한 강한 열망과 의지를 표출한다. 뒤이어, 강가에서 목을 축이는 왜가리 떼, 광활한 초원을 무서운 속도로 가로지르는 재규어, 프로소피스 나무에 열린 콩을 커다란 부리로 쪼개어 먹는 토코투칸 새들이 보인다. 강렬한 흑백의 기하학적 패턴으로 전개되는 이 리듬감 넘치는 야생의 세계는 그란차코의 로컬 아티스트, 조르지 카레마(Jorge Carema)와 에스트반 클라센(Esteban Klassen)이 서식지를 잃고 사라져 버린 동식물들을 소생시켜, 평화롭고 풍요롭던 시절을 되짚은 것이다. 짐승이 많다 하여, ‘거대한 사냥터라는 지명이 붙은 그란차코. 야생의 거친 순수함이 뿜어져 나오던 그곳은 이제 되돌아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기억 속 풍경으로 남았다. 원주민 작가들을 비롯해 남미에서 건너온 작가들이 자연과 현대 문명의 충돌 속에서 빚어진 환경 문제의 위험성에 집중했다면, 자연과 인간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며 환경 문제의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작가들도 있다





 View of the exhibition <Trees> Presented from 

July 12 to November 10, 2019, at the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Paris Photo ©





레이몽 드파르동(Raymond Depardon)과 클로딘 누가레(Caludine Nougaret)가 공동 연출한 <나의 나무(Mon Arbre)>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겠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다큐멘터리는 실제 나무를 가꾸는 사람들의 삶을 추적하며, 인간과 나무의 관계성에 대해 고찰한다. 플라타너스, 호두나무, 떡갈나무, 삼나무 등 십여 종의 나무들과 함께 나무 주인들이 등장한다. 집 마당에 텃밭을 일구어 생명의 기쁨을 맛보는 사람, 공원에서 조경수를 관리하는 정원사, 농장에서 수천 그루의 나무를 재배하는 농부. 각자 나무를 키우게 된 사연과 상황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나무를 객체(object)나 소유물이 아니라, 반려의 존재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농부는 ‘‘나무 곁에서 사는 것은 상당히 피곤하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는 나무들이 걱정되어 어디론가 마음 편히 떠나본 적도, 떠날 의지와 생각도 없다. 사시사철 나무를 돌보는 농부의 삶은 한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평생 사는 나무들의 삶과 똑 닮아 있다. 이처럼 <나의 나무>는 인간의 관점에서 나무를 바라보고 있지만, 나무를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 둘의 관계는상호의존적이며, 한배를 탄 운명 공동체로 그려진다. 그렇다. 나무가 살지 못하는 세상에서 인간 역시 살아남을 수 없다. 그 때문인가, 몰락해가는 세상에는 언제나 나무가 등장한다. 무한한 생명력을 지닌 나무에서 인간은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고, 땅속 깊숙이 뻗어 내린 나무의 뿌리처럼 우리도 번성하길 바랐다. 예술가들이 부피에의 기적을 다시금 재현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적이 반복되면 그것은 더는 기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피에의 기적은 계속되어야 한다.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현대미술과 뉴미디어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 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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