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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9, Dec 2019

아티스트 피

Artist's Fee

작가 권리와 보수 보장으로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아티스트 피. 우리나라는 2018-2019년에 걸쳐 모든 국공립기관에서 ‘아티스트 피’ 제도를 운영한 뒤 2020년, 제도 도입 여부를 다시 검토하기로 방침을 세웠었다. 그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많은 이들이 비판과 비전을 담보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간 아티스트 피는 어떻게 운영돼 왔나? 2019년을 마무리하기 전 제도를 점검하기 위해 아티스트 피란 정확히 무엇인지 원론부터 시작해 행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또 앞으로 무슨 숙제가 남았는지 살펴본다. 양지연 동덕여대 교수, 심상용 서울대 교수, 이미연 작가가 현행 제도의 문제와 개선방안을 얘기한 후 국공립미술기관 관장 네 분의 짧은 제언을 덧붙여 소개한다. 당초 ‘아티스트 피’와 직접적으로 닿아있는 국공립 기관장들께 쭉 의견을 요청했으나 이에 답한 단지 몇몇의 옹달샘 같은 고견을 말이다. ● 기획·진행 정송 기자
* 특집에 사용된 일부 도판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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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연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교수,심상용 박사/서울대학교 교수,이미연 작가,최정주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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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Ⅰ

아티스트 피의 개념과 제도화의 조건_양지연

 

SPECIAL FEATUREⅡ

작가 보수제, 독이 든 성배(聖杯)_심상용

 

SPECIAL FEATUREⅢ

지금 하는 아티스트 피_이미연

 

SPECIAL FEATUREⅣ

디렉터스 코멘트_최정주, 최은주, 최정은, 윤범모




Natan Dvir <Union Square - 14th St., 11:12 pm> from the series: <Platforms> 2014-2016 © Natan Dvir


 


Special Feature 

아티스트 피의 개념과 제도화의 조건

양지연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 교수


아티스트 피란 무엇인가

최근 미술계 현장과 정책 영역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현안 중 하나는아티스트 피(artist’s fee)’. 아티스트 피를 어떻게 번역하고 개념화해야 할지 아직 명확하지 않을 정도로, 이는 해외에서 혹은 국제적으로 정착했지만, 국내에서는 보편적인 관행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아티스트 피는 간단하게 말하면 작가의 창작 활동과 연관하여 발생하는 노동에 대한 보수를 말한다. 주로 미술관 등 비영리적 맥락에서 전시에 출품하거나 설치작업, 대여, 커미션, 프로젝트, 기획, 강연, 교육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할 때 이에 대해 지급해야 하는 적절한 보수를 통칭하여 사용한다. 작가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창작의 결과물인 작품의 상품 가치 위주로 이루어져 왔다면, 아티스트 피는 예술가의 창작 활동, 직업 활동 자체에 대한 보수 개념에 가깝다. 2014년 즈음부터 국내에서 예술가 지원이 전시 등 특정 사업의 직접 지원에서 나아가 예술인들이 자생적으로 창작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으로 정책의 관점이 이동하면서 예술가의 권리가 논의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티스트 피는 현장에서 요구하는 주요 의제가 되었고, 문화부가 2014년과 2018년에 발표한 두 차례의 미술진흥 중장기계획에서 아티스트 피 제도화 계획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아티스트 피의 취지에 대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후 정부 차원에서 아티스트 피의 일괄적인 기준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미술 창작의 성격상 표준화가 어렵고 작가와 기관, 작품 등 여러 질적 변수에 따라 적절한 수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기관이나 예술가 단체별로 여러 형태의 아티스트 피가 있고 그 산정의 방식이나 기준도 각기 다르다. 일반적으로, 작가의 경력, 작업의 성격, 전시·프로젝트의 예산과 기간을 고려하고, 작업 소요 시간, 작가의 연 수입, 유사 분야 보수 기준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적정 기준을 제시하더라도, 개별 상황의 특수성에 준하여 작가나 기관이 조정하는 것이 아티스트 피 산정의 일반적인 형태이다.




이주리 <선셋 벨리> 2017-2018 웹어플리케이션. 실시간 생성 

<더블 네거티브: 화이트 큐브에서 넷플릭스까지> 아르코미술관 (2018.12.19-2019.2.3) 이미지 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따라서 아티스트 피 기준 마련은 여러 논란과 진통을 겪었고, 문화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도로 한 차례 시안이 개발되어 일부 시범 적용한 바 있다. 그러다가 올해 3월 공표된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에 맞춰 다시 개정한 아티스트 피 기준()이 발표되었다. 올해는 시범 적용 기간으로 기관이 참고 사항으로 활용하도록 하며 2020 3월 문체부 고시로 제정한다는 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시한 기준안에 의하면 아티스트 피 즉미술창작 대가는 작가비와 사례비로 구분된다. 작가비는미술 창작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전시 참여에 대한 보상의 개념으로 신작, 구작, 구작변형에 관계없이 전시에 참여하는 경우에 적용된다. 저작권법의 저작재산권 중 전시권(저작자가 미술 저작물 등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전시할 권리)에 지급의 근거를 두고 있다. 사례비는전시를 위한 작품 제작, 기획, 평론과 관련한 것에 대한 보수로, 작가, 기획자, 평론가에게 인건비성 경비로 지급하는 것이다(제작비 별도). 신작이나 구작변형으로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창작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에 적용된다고 밝히고 있다. 작품 제작뿐 아니라 일정한 기준이 없던 전시기획과 전시평론에 대한 사례비 기준도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창작 대가 기준은 그동안 여러 논란을 겪으면서 정량적으로 단순화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산식이 적용된다. 작가비는 1일 기준금액을 5만 원으로 책정하고, 여기에 전시일 수와 참여작가 수로 나눈 작가별 배분율과 조정계수를 곱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30일간의 전시에 10명의 작가가 참여하면 조정계수를 적용하지 않을 경우 한 작가당 작가비는 15만 원이 된다. 개인전일 경우 150만 원의 작가비가 책정된다. 사례비는 학술용역 기준에 따른 시간 기준금액에 창작 시간과 전시유형, 조정계수를 곱하여 산출한다. 작가비보다 시간 기준금액 및 창작 시간, 전시유형 등 모든 면에서 전시기획자가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 조정계수는 모두 0.7-1.0 수준에서 전시기획자가 전시예산, 반복 출품 가능성 등에 따라 자체 판단하여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1)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 전시와 관련하여 불거진 작가비 논란은 2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 예외적인 전시에서 새로운 기준안을 적용하여 도출된 작가비가 현실적인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이를 계기로 미술계에서 이 기준 산식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실증적 검토를 포함해 아티스트 피에 대한 인식과 홍보의 계기가 된 측면이 있다.



Renaud Jerez from left to right : <Pas de famille> / <pas de sexualité, pas de genre> / <pas de genèse> / <du corps> / 

<et des coups, des coups, des coups, des coups, des coups> 2019 <Nature conquérante> 2019 <Metropolitain> 

2019 <De l’escarre d’écorché> 2019 Exhibition view “Future, Former, Fugitive”, Palais de Tokyo (10.16.19 – 01.05.20)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Crèvecœur (Paris) Photo credit: Aurélien Mole 



 

예술가, 예술 활동의 직업적 특성


이러한 아티스트 피의 개념과 도입의 배경, 제도화에 따른 논란의 바탕에는 예술가와 예술 활동의 직업적 특성이 있다. 예술가의 활동에 대한 경제적 대가에 대한 논의는  예술가가 직업으로 인정되는가혹은예술 활동을 노동으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에서 나아가, 예술가와 예술 활동의 직업적 특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이에 대한 합리적 경제적 보상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진일보하고 있다. 흔히 일컫는전업 작가란 엄밀히 말해 다른 직업을 병행하지 않고 예술 창작을 업()으로 하며 생계가 창작 활동으로부터 유지되는 전문예술가(professional artist)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된 시간을 예술 활동에 쏟고 예술가로서의 직업 정체성을 가진 경우에도 이로 인해 기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예술가는 많지 않다. ‘2018 예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국내 미술 분야 예술인의 예술 활동으로 인한 연평균 소득은 869만 원에 불과하다. 예술 활동과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 복수의 직업을 갖거나 아르바이트 등 부수적 일을 병행하는 것이 대다수 작가의 상황이다.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작품이 팔리거나 지원이 있지 않은 이상 작가 활동을 하면 할수록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모순에 놓이기도 한다예술가의 활동은 주로 단기계약 형태로 일하는 프리랜서 혹은 일종의 자영업이나 1인기업의 성격을 갖는다.2) 이른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시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상근 정규직 외에 다양한 근로 형태가 확산하는 것은 모든 분야에서 예견되는 일이다. 따라서 다변화되는 직업 형태에 대한 적절한 경제적 보상체계를 수립하는 것은 미술계를 넘어 현재 중요한 사회적 이슈이기도 하다.




Pamela Rosenkranz <Our Product> Pavilion of Switzerland at the 56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 la Biennale di Venezia, 

2015 Installation views Courtesy the artist and Pro Helvetia Photos: Marc Asekhame




그렇다면 예술 활동에 대한 보수인 아티스트 피가 왜 미술계에서는 보편적인 보상체계로 자리 잡지 않아 왔던 것일까? 이는 수익 창출이 아닌 공익적·비영리 목적을 지닌 전시공간과 미술관의 특성상 예산 부족의 어려움이 상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술관과 작가 간의 예술적 협력이 중시되어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거나 지급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지 못한 것에도 원인이 있다. 미술관 전시 경력이 작가의 커리어에 가져다주는 명예와 직간접적 이득이 크다는 생각에서 전시 출품 자체에 대한 보상을 별도로 하지 않거나 작가들도 요구하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도 전시 참가에 따른 아티스트 피 지급을 반드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아티스트 피의 문제가 이렇듯 의례히 있을 수 있는 미술계의 권력 구조와 맞물린 것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해외에서도 아티스트 피는 예술가의 권익 보호 차원에서 예술가 협회나 비영리 예술단체 등이 주체가 되어 예술가들이 요구해야 하는 적절한 기준을 제시하고 인식을 확산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티스트 피는 예술가의 노동과 경제적 보상체계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세부적인 기준은 계속 합의점을 찾아 나가면 될 것이다.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의 지원으로 2004년 아티스트 피 기준을 연구, 출간한 ‘a-n 예술가 정보회사(a-n The Artists Information Company)’는 정기적으로 보수 기준을 점검하고 보완하여 공표하고 있다. 이 중 공공지원금으로 이루어지는 전시에 참여하거나 공공프로젝트에 작품을 발표하는 대가는전시비 가이드로 구체화하여 제시하고 있다. 이는 영국에서 추진된예술가에게 대가를 지급하기 캠페인(Paying Artist Campaign)’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인데, 지속해서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면서 현재 150-6,000파운드(한화 약 22-903만원) 범위에서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어 있다예술가가 어떻게 직업인으로서 사회에 존재하고 정당한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예술가의 생존과 창작 활동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오늘날 많은 동시대 작가들은 영상, 퍼포먼스, 사운드 아트, 일시적 설치나 프로젝트 등 비물질적이고 비 영속적인 형태로 작업한다. 이전과 같이 소장 가능한 작품의 판매 형태로만 경제적 보상을 추구하기에는 미술의 생산, 유통, 소비 지형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 예술가의 작업 방식과 사회적 활동 영역의 확장 등 변화하는 양상에 맞게 예술가가 전문성과 지식을 바탕으로 수행하는 다양한 사회적, 직업적 활동에서 정당한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예술 활동이 고유의 창의성과 능력, 투입한 시간과 비용을 인정받는 경제적 활동임을 자각하고, 역량 개발과 창작의 동기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Martin Roth <IN OCTOBER 2019 I LISTENED TO ANIMALS IMITATING HUMANS> 

2019 Listened to animal imitating humans> © Kunst HAUS WIEN 2019 Photo: Thomas Meyer 





미술 생태계와 아티스트 피


앞으로 미술계에서 아티스트 피 제도가 잘 정착되려면 생태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예술가의 양성, 미술계 시스템, 정책적 지원, 미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 복합적인 구조에서 아티스트 피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를 양성하는 대학에서부터 사회에서 전문예술가로 활동하는 방법과 미술계 시스템에 대한 이해, 예술가의 권리와 책무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미술관 등 공공문화기관의 전시 행정이 보다 전문화되어 예술가와 큐레이터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미술 정책에서도 직접 지원 방식을 넘어 작가와 미술계가 더욱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음원 수입처럼 미술 작가가 저작물에 대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취할 수 있는 구조도 그중 하나이다. 이번에 제시된 아티스트 피나 미술품 유통에서 논의되고 있는 추급권도 이러한 점에서 지속해서 검토해야 할 의미 있는 주제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를 존중하는 태도와 이에 바탕을 둔 상호 신뢰와 소통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예술의 가치와 예술가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보다 광범위하게 확산하여야 한다. 예술가가 창작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두려움과 도전을 내밀하게 기술한 데이비드 베일즈(David Bayles)와 테드 올랜드(Ted Orland)의 글귀처럼, 많은예술가들에게 생존이란 곧 예술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예술 창조가 장려되는 환경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3)  

 

[각주]

1) 문화체육관광부가 2019 4월 배포한 <알기 쉬운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 부록에서 제시된 2019년 미술창작대가기준()은 다음과 같다. 작가비 산출 산식: 1일 기준금액(5만원전시일수×작가별 배분율×조정계수, 사례비 산출 산식: 시간 기준금액(15,778창작시간×전시유형×조정계수. 

2) 피에르 미셸 멩거(Pierre-Michel Menger), Artists as workers: Theoretical and methodological challenges, Poetics, 28, 2001, pp. 241-254.

3) 데이비드 베일즈·테드 올랜드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루비박스, 2006, p. 77.

 

 

글쓴이 양지연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미술경영학 석사,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예술행정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각예술과 미술관·박물관 분야의 경영, 교육, 정책을 연구, 강의 해 왔다.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 교수(2000-)로 재직 중이며, 현재 ()한국예술예술경영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Pamela Rosenkranz <Feeding, Fleeing, Fighting, Reproduction> Kunsthalle Basel 2012 Installation view <More Stream> 

2012 Sink, water, Methylene Blue 50×118×75cm Courtesy the artist and Karma International, Zürich and Miguel Abreu Gallery, New York Photo: Gunnar Meier

 



Special Feature 

작가 보수제, 독이 든 성배(聖杯)

심상용 미술사학 박사/서울대학교 교수


효과와 역효과

예술가들은 현재보다 더 나은 창작 환경과 생존을 위한 여건이 담보되기를 기대한다. ‘작가 보수제또는아티스트 피(artist’s fee)’ 제도는 정부가 공공재정을 투입해 창작자에 정당한 전시 비용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시각예술가의 창작 활동에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는 이 제도의 취지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우선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전시 참여 같은 예술 창작활동을 통상적인 사회노동의 단위로 환산하는 것과 관련된 협의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창작행위를 통상적인 계약 요건들로 분할하고 측정하는 방법, 즉 창작과 노동이라는 상충하는 두 가치 간의 위상적 간극을 극복하는 도구가 확보되어야 한다. 작가 보수제를 둘러싼 논의 일부는 표준계약서를 설계하는 것과 관련된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에 닿아 있으며, 그러니만큼 이미 어느 정도 쟁점화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창작과 노동의 두 지점의 봉합을 관통해야 하는 이 일은 여전히 자칫 화상(火傷)을 입는 것을 감수해야 할 만큼 뜨겁다. ‘창작도 노동이다의 명제는 두 차원, 곧 인식적 차원과 실제적 차원에서 논쟁적인데, 이 중에서 후자 곧 실제적 차원은 주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다양한 창작행위의 속성이 사회적 노동으로 편입되는 직전 단계인유형화작업을 곤란하게 만든다는 점과 결부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표준계약서상의 항목들의 상당한 구속력을 지닌 지침들을 통해 그 뾰족한 날을 둔하게 해 고분고분하게 만든다는 것이 적어도 현재까지는 합리적인 접근으로 간주되고 있다.




Ingela Ihrman <Giant clam> 2019 Reading performance in Seved, Malmö © Courtesy the artist Foto: Marte Edvarda Tidslevold Bildupphovsrätt 2019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성과만큼이나 역효과에 대한 우려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보자. 계약서상의 항목들 가운데 재료비, 운송비, 진행비 등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정작 결정적인 요인인작가 사례비는 결국 표준 계약서의 범위를 넘는 외부의 별도의 판단 근거에 기댈 수밖에 없다. 작가 사례비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예컨대 경력 등의 요인을 통해 부분적으로 객관화하는 것이 가능한 개별 작가의 가치, 그것들 가운데서도 가장 유력한 근거로 간주될 것이 자명한 유명세-특히 시장에서의-, 곧 브래드화 된 인지도가 될 개연성이 크다. 이에 비하면,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적 장르가 아닌, 제작, 전시, 판매 유형이 제각각인 설치 작업이나 개념적인 작업, 퍼포먼스 등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한 문제가 될 것이다. 작가 사례비 측정을 둘러싼 이러한 불길한 추론은 정부가 투입하는 공공재정에 전적으로 의존하는작가 보수제에 도사린 더 큰 암운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것은 이 제도의 구축에 있어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예산확보의 문제다. 얼핏이라도 국공립미술관들이 처한 현 상황을 들여다보면, 제도의 구축과 실행에 요구되는 예산의 충분하고 지속적인 투입이 용이하지 않을 수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공공미술관의 중심 기능인 소장품 예산마저 심지어 전무한 광역단체 미술관 등의 사례를 고려하면, 국공립미술관에서조차 예산 항목에 아티스트 피를 고정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예산은 늘 예산 이상의 문제를 일으킨다. 현재로선 이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예산 확보와 관련한 어떤 중장기적 계획이나 발판도 불투명한 상황이니만큼, 이 제도를 통해 획득될 것으로 기대됐던 성과 또한 그에 비례해 모호한 것이 되고 만다.

 



<폐허풍경> 2018 비누, 가변 크기 건축 프로젝트’ <신미경_사라지고도 존재하는> 아르코미술관 (2018.7.5.-2018.9.9) 이미지 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시 고비용 구조와 파바로티 효과


그렇더라도 예산 투정이나 부리는 것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아니다. 우리 우려의 한 가닥은 이 제도가 전시와 연구, 교육 등 이미 충분히 취약한 미술관의 공공적 기능을 더욱 가파르게 무력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것에 있다. 영세한 규모와 예산으로 꾸려지는 지자체 미술관들과 그보다 더 열악한 사립미술관 생태계를 고려할 때, 이런 역기능이 증폭될 여지는 생태계 도처에 산재하고 있다. 중장기 비전이 허약하거나 아예 부재하며 만성적인 예산 부족을 겪는 대다수 중소규모의 미술관들은 아티스트 피로 인해 가중된 부담을 더는 일환으로서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이전보다 더 흥행성이나 상업성에 편향된 전시를 만들거나 아니면 연구나 교육 관련 예산을 삭감하는 조처를 내릴 수도 있다. 연구기반이 취약하고, 공공적 감수성이 덜 예민한 상태의 기관이라면, 그러한 유혹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할 것이다.  물론 그런 대응들이 사태를 호전시킬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가중된 부담으로 인해 기치 못했던 일련의 악순환 구조가 정착될 개연성도 없지 않다. 예컨대 흥행성 담보를 위해 스타급이나 블루칩 작가들로 구성된 전시 콘텐츠 기획이 요구되고, 그것이 작가 사례비 지출을 더욱 증가시키는 이른바 점증적인전시 고비용 구조가 자리 잡는 것이 그것이다. 전시 고비용 구조는 영세한 중소규모의 미술관들에 더욱 혹독한 조건이 될 것이다. 이런 미술관들은 아티스트 피를 상대적으로 적게 지불하는 한도 내에서, 그러니까 어느 정도 작가로서 위상이 사회적으로 세트업 된 작가들의 보수로 전시예산의 상당 부분이 소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전시 콘텐츠를 구성할 수밖에 없고, 이는 전시의 질을 상향하기 어렵거나 하락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아미도 충분히 양극화되고 단성화된 미술 콘텐츠 생산 생태계의 병리적 측면이 더욱 악화되는 것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은 소수 국공립미술관이나 재벌 또는 기업 미술관들이 전시와 담론 콘텐츠 생산에서 차지하는 독과점적 지위가 강화되어, 다양성의 위축 등 생태계 자체가 더욱 저질화되는 양상을 띠게 될 개연성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미술창작 장의 활성화라는 제도의 본래 취지와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PACIFIC (London), T293 (Rome) In the background : Marine Peixoto <Fugue, Photographies prises dans l’appartement 

n°111 de la Tour Fugue, Orgues de Flandre, Paris, de janvier à juillet 2019> 2019 Courtesy of the artist Exhibition view 

“Future, Former, Fugitive”, Palais de Tokyo (10.16.19–01.05.20) Photo credit: Aurélien Mole 

 



작가나 전시기획자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관찰된다. 결함이 없는 표준계약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작가들은 자신의 작가로서의 가치와 전시 참여 행위에 더 많은 보수를 제공할 여력이 있는 미술관들로 자신들의 동선을 한정할 개연성이 크다. 그리고 이는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않은 작가들에게 더 춥고 긴 터널을 지나도록 종용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영세한 미술관들에서 신념을 갖고 일하는 전시기획자들로서는 작가들의 비난과 항의에 직면하거나 심지어 전시 참여 자체를 거부당함으로써 노동 의욕을 상실하게 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1) 전시기획의 학문적이거나 비평적인 매력이 아니라 작가와의 갈등 해소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소모적인 환경에서 자신의 열정을 소모하고 싶은 큐레이터가 어디 있겠는가. 재정적 영세성 여부가 작가와 큐레이터의 관계나 소통을 규정하고, 종종 또는 자주 전시의 수준을 결정하며, 관객 동원의 성패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부정 순환이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속도로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결국 미술장의 양극화, ‘파바로티 효과에서 비롯되고 파바로티 효과의 재강화로 귀결되는 장()의 디지털적 분열과 게토화가 한 층 더 앞당겨지게 될 것이다. 당장 아티스트 피를 지급할 여력이 없는 군소 영세 미술관이나 비영리 전시 공간, 독립 큐레이터들은 그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작가들과의 때 이른 결별을 서둘러야 할지도 모른다.

 

독이 든 성배


제도의 작동은 사회를 넘어 존재 내부로 침투하는데, 이것이 제도의 존재론적 특성이다. 또한 모든 제도는 사회적으로 존재론적으로도 특효약이자 치명적인 독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회적 응답이면서 사회적 무덤이며, 하나의 가능성에 대한 열어젖힘인 동시에 복수의 가능성에 대한 단절이다. 소통이자 소통의 억압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에 예술은 제도적으로 작동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제도화, 즉 제도에 의해 통제받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이것이 작가 보수제 역시독이 든 성배가 되는 맥락이다. 특별히 작가 보수제는 법제화 과정을 마치고 광범위하게 실행되더라도,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느슨한 원칙을 제시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더 나을 거라는 주장, 예컨대 하나의 표준을 모든 미술관과 전시 공간에 일괄 적용해서는 곤란할 거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도 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2) 해당 제도의 법제화로 인한 혼란을 완화하거나 최소화하는 데 필요한 부수적인 조치들이 모색되어야 하고, 이 제도가 미술장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에게 당장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빨리 실망하지 않도록 하는 인내심도 요구된다.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까지는 인식이 바뀌는데 필요한 더 긴 시간이 요구되기도 한다작가 보수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는 데 있어 정작 결정적인 요인은 제도의 운용에 관여하거나 그 영향에 노출되는 구성원들 간의 소통과 공감의 기반을 두껍게 하는 것이다. 계약의 당사자들이기도 한 장의 구성원들, 미술관 전시기획에 가담하는 작가, 큐레이터, 정책 관련자 사이 협의의 공간을 생성하고 확장해나가는 것이 결함 없는 표준계약서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예컨대 (앞서 말했듯) 이 제도의 과즙이 소수의 블루칩 작가들로만 한정되어 창작장의 생태계가 더 양극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과 관련된 장의 문화나 분위기가 지금처럼 부재하는 한, 완성도 높은 표준 계약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제도의 도입으로 기대했던 성과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Alex Baczynski-Jenkins <Untitled (Holding Horizon)> 2018 Performance view

 <Such Feeling> Kunsthalle Basel 2019 Photo: Diana Pfammatter / Kunsthalle Basel




아티스트 피가 지나치게 신화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작가들이) 전시마다 자신의 보수를 계산하다가 계산이 전시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는 것이 의당한 문화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다. 전시 참여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적절하게 협의가 이뤄진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지만, 그것이 예술창작과 예술품 전시행위에 수반된 일체의 비가시적인 가치들, 소명과 신념, 애정과 열정까지도 경제적으로 환산되고 보상받는 것까지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것으로 곡해해서는 곤란하다. 혹여라도 그것이고독의 반납이라거나저항정신-역사적 분별력에 기반한-의 박탈같은 사건을 정당화하는 체계의 사주로 작동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멸 예술(auto-destructive art)로 알려진 작가 구스타프 메츠거(Gustav Metzger)는 자신에게 예술은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꼭 움켜쥐는 거라 했다. 반면, ‘보수는 종종 인생에서 더욱 중요한 것을 앗아가는 대가로서 주어지곤 하는, 음험한 교환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보수는바로 그 시점에서 작가나 작가의 창작행위가 지니는상대적 가치에 대한 계량치 이상일 수 없다. 그것을 예술의 다른 가치들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는 이유다. 그렇기에 작가 보수제가 한때 빛을 발했던 이 영역을비저항이라는 기이한 정신을 계승하는 상실의 다음 단계로 밀어 넣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그렇더라도 예술창작과 보수에 의해 전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가능한 작업 간의 간극을 새삼 환기하거나, 예술가로 남는 것과 임노동자(賃勞動者)가 되는 것은 여전히 다른 일이라는 사실에 다시금 스테로이드를 주입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것이 선뜻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다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많은 의미 있는 사건들이 그것을 일으키는 대가로 주어지는 보상(보수)과 무관한 동기에 의해, 더 나아가 보상(보수)을 전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굴하지 않는 태도로부터 가능했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각주]

1) 이명옥/사비나미술관 관장 2017.12.7. https://www.noblesse.com/home/news/magazine/detail.php?no=6634

2) 캐슬린 E. 김은 법무법인중정 변호사이자 미술 작가 보수 제도 연구자로 참여했다. https://www.noblesse.com/home/news/magazine/detail.php?no=6634

 


글쓴이 심상용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 졸업하고 파리 8대학에서 조형예술학 석사와 D.E.A. 파리 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 취득했다. 저서로는 『재앙과 현대미술』(2019), 『앤디 워홀-돈과 헤게모니의 화수분』(2018.), 『아트테이너-피에로에 가려진 현대미술』(2017), 『예술, 상처를 말하다』(2011) 외 다수가 있다. 현대미술사학회, 한국미술이론학회 회장 역임했으며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 교수(1998-2018)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Special Feature 

지금 하는 아티스트 피

이미연 작가

 

* 본 글에서 다루는 아티스트 피에 대한 주요 개념은 미술생산자모임에서 그동안 고민하고 연구하고 토론하며 오갔던 많은 대화와 회의들로부터 만들어졌음을 밝힌다.

 

아티스트 피는 당연히 있어야 했는데 없던 것이었고, 이에 대한 논의는 그것을 만들자는 이야기였다.


이것은 삶에 대한 문제로부터 시작되었다. 2012 ‘5.1 총파업에 참여한 미술-디자인 워크 그룹 속에서 너나 할 것 없이 가장 먼저 튀어나왔던 얘기는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하는 불안정한 생활뿐 아니라 그동안 미술제도 속에서 떠안아 왔던 온갖 고충들과 부당함이었다. 이것은 작가뿐 아니라 큐레이터, 테크니션, 인턴, 비평가, 디자이너, 미술대학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전부 포함되는 이야기였다. 당연하게도 말하는 창구는 스스로 터질 수밖에 없었다. 2013년 미술생산자모임의 1차 공개 토론회가 미술 생산자로서살기를 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창작활동 이외에 혹은 창작활동을 빙자해서 작가가 겪게 된 일, 늘상 싸워야 하는 기관의 관료주의와 행정편의주의, 공론장 없는 통폐합에 휩쓸린 미술대학과 대안공간의 열정 노동까지, 말들은 그야말로 화살처럼 오갔고 작가들은 이런 묵시록적 상황에서 어떻게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과연 창작활동이란 것이 지속 가능 할 수 있을지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총체적인 문제의식 속에서 아티스트 피는 이 모든 것의 첫발을 떼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논제에 해당했다. 즉 작가들이 작품 제작과 전시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공론장에 내어놓고 싸우기 위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작가들 스스로에게도 분명한 개념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티스트 피에 관한 인식 조사와 함께 해외 사례들을 연구하고 이후 공동 번역한 자료집을 배포(2015 미술생산자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아티스트 피의 공론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유례없이미술 진흥 중장기계획을 발표하면서 표준계약서와 함께 미술 창작에 대한 대가 체계 도입이라는 제도화 준비과정이 시작되었다. 아티스트 피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작가들 혹은 기획자는 제도화 과정에 필요한 정책 토론회와 공청회 자리에 번갈아 참석했다. 과정을 만들어가다 보면 그 안에서 방법들이 나올 것이라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 편이지만 그동안의 과정이 예상보다 더 지난했던 것은 사실이다. 제도화의 필요성과 기준 마련 안을 성실히 연구했던 기초 연구자 그룹이 별다른 이유 없이 순식간에 교체되면서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정책 연구가 재시작된 것이 가장 큰 장애였다. 일이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기대보다는 아티스트 피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과 의미가 곡해되거나 누락되지 않도록 원점으로 돌아가 설득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어느 순간엔 과연 이 공회전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무엇보다 예술가의 창작 행위의 범주 내에 미학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이 양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같은 영역에 있지도 않았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했다. 작가가 인건비를 받으면 자본시장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비약을 경계해야 했고 아티스트 피에 대한 논의의 핵심이 단지 구체적인액수의 요구가 아니라는 점을 수시로 확인시켜야 했다. 커미션을 준 경우 기관이 그 작품을 당연히 소유해야 한다거나, 작가는 작품을 소유하기 때문에 그것의 판매를 통해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연구원과 행정가의 태도에 대해 작가가 만들어내는 것이 단순히 사적 소유를 위한 시장의상품이 아니라 공적으로 전시가 목적인작품이라는 점 또한 강조해야 했다.




Sander Breure & Witte van Hulzen <Accidents Waiting to Happen> 2019 Installation, sculpture, video, performance Prix de Rome 2019 

Photo: Daniel Nicolas Courtesy tegenboschvanvreden, Amsterdam, with thanks to the Leiden University Medical Centre 

 



아티스트 피라는 용어에 대한 구체적인 조정과 이해 과정도 필요했다. 보통아티스트 피 논의라고 할 때광의로서 아티스트 피는 전시라는 하나의 이벤트를 통과하면서 이것을 가능케 한 창작자이자 협업자로서 작가 자신에게 귀속되는 경제적 보상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고 넓게는 프로덕션피(production fee)까지 포함하기도 했다. 표준계약서 개발과 거의 동시에 진행된광의의 아티스트 피 논의는 그동안 정확히 명시된 적 없고 부당하게 누락되곤 했던 중요한 항목들을 한꺼번에 제도 속에 포함시킬 기회였으므로 언제나 함께 이야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의 항목으로서아티스트 피는 가장 어지럽게 사용되는 말이면서 또한 가장 위태로운 개념이었다. 작가에 대한 보수 체계를 포괄하는 논의의 타이틀처럼 들리다가 어느 순간 행정 편의를 위해 작품 제작비 속에 슬쩍 포함되어도 괜찮은 것이 되기도 했다. 아티스트 피는 분명히 용역비, 사례비, 작품 제작비 등과 분리되어야 했다. 아티스트 피는 단순대가보수’, ‘경비의 문제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 피는 특정 전시와 관련하여 작품 제작에 필요한 실비용인 프로덕션 피와 별개다. 또 아티스트 피는 작품의 제작, 변형, 설치를 비롯해 출판, 강연, 워크숍 등 예술 전문성을 갖춘 작가가 특정 전시를 위해 행하는 모든 일에 관한 사례에 해당하는 전문성비(professional fee) 혹은 사례비와도 구별된다. 아티스트 피는 오직 작가에게만 귀속되며, 창작자와 그들의 창작 행위의 특수성 그 자체를 영예로운 사회적 가치로 인정함으로써 발생한다. 아티스트 피는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을 경제적 수단을 통해 표현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티스트 피의 의미가 발현될 수 있는최소한의 방법과 경로로 가정된 것이 바로전시라고 하는 제도적으로 인정된 공공성을 지닌 예술 이벤트다. 미술이 보이는 공동의 장소에서 미술이 결국은 우리 사회의 공적인 구성물로서 위치 짓고 드러나는 것임을 전제로, 그러한 전시를 가능케 하는 작가의 창작활동에 대한 사회적 존중을 표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티스트 피는 전시에 참여하는 모든 생존하는 작가들에게 차별 없이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이때전시란 기본적으로 작품의 판매 목적이나 영리 기관에서의 작품 전시를 배제한다그렇다면 작가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어떤 방식으로 수치화 할 수 있을까?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산출해낼 것인가? 아티스트 피가 전시와 함께 연동된다면 전시 기관은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방법에 대한 논의가 필요했다. 아티스트 피를 결정하는 기준과 산정방식이 아티스트 피의 내용을 지지해주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했고, 동시에 예산 증액이 담보되지 않은 전시 기관이 아티스트 피를 비롯한 미술 창작 대가 지급을 유지하면서 전시의 규모 및 퀄리티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했다. 미국, 캐나다, 스웨덴, 네덜란드, 노르웨이, 호주 등 각국에서 조금씩 다르게 시행되고 있는 예술가 지원과 보수 체계를 참조해서 여러 가지 기준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전시 총예산의 일정 비율을 아티스트 피에 할당하는 방식이나 저작권법과의 연동 혹은 최저임금과 그 인상률을 반영하는 방법 등이 있었다. 아티스트 피의 최저선과 함께 최고선의 기준에 대한 명시도 필요했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셈을 작가들이 모두 알아서 조사할 수는 없는 일이고, 관련된 기관들의 협력을 전제로 행정가와 연구원들이 그야말로을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2018년 문체부의 미술 창작 대가기준안은 몇 차례 토론회를 통해 수정을 거치면서도 지속해서 같은 문제점을 드러냈고, 2019년 시범 도입 기간을 지나 고시를 앞둔 현재에도 그때의 기준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나마 고용계약 상의 인건비 정도로 이해되어 왔던 아티스트 피가 최소한의 의미를 명시하고작가비항목으로 수렴된 점은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그 산출 방정식은 분명하게 오류투성이다.




 <오디토리움(Auditorium)> 2014 캐비넷, 오브제, 조명, 모터 700×500×320cm

 <AT MUSEUM> 성남큐브미술관 (2018.6.22-2018.9.9) 이미지 제공: 성남큐브미술관




현재 아티스트 피(작가비) 산출식은 지금까지 언급한 아티스트 피의 의미를 사실상 전혀 담지 하지 못하고 있다. 저작권법(전시권)의 저작권 사용료를 근거로 삼으면서 기계적 도식 이외에 어떠한 디테일도 포함하지 않고 있다. 먼저 아티스트 피의 1일 기준 금액인 1일 평균 저작권 사용료는 화랑, 경매회사, 아트 페어와 같은 예술 시장의 평균 매출액을 기준으로 산출되었다. 창작자에 대한 존중과 사회적 인정의 기준이 어째서 예술 시장의 거래 실적에 기대어 산출되어야 하는지 둘 사이의 합당한 관계성을 찾기 어렵다. 또한 현재 아티스트 피 항목은 모든 작가에게 귀속되는 아티스트 피라는 의미보다 구작을 전시하는 작가에게 귀속되는 항목으로 의미가 강화될 수 있다.1) 이 두 의미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작권 사용료를 참여 작가 수로 나누는 아티스트 피 산출방식은 원래 저작권 사용료의 가치와 효력을 흐리게 만들 뿐이다. 작가의 한 작품에 대한 저작권 사용료는 그 작품의 저작권자에게 온전히 귀속되어야지 참여작가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결과 활동 경력과 무관하게 동등하게 지급되어야 한다는 아티스트 피의 공평함이 마치 고통 분담처럼 작가들이 짐을 나누어지도록 설계되었다. 현재 아티스트 피 산출식은 1일 기준 금액인 5만 원을 참여 작가 수(n)로 쪼개는 방식이다. 따라서 참여 작가 수(n)의 값이 커질수록 작가들의 하루당 아티스트 피는 비극적으로 형편없어질 수 있다. 반면 전시를 주관하는 기관은 참여 작가 수와 관계없이 아티스트 피의 하루 총예산으로 단 5만 원만 지급하면 되는 것이다. 아티스트 피 지급에 따른 전시 예산 증가의 부담을 작가들이 모두공평하게떠안는 셈이다. 특히 마지막 내용은 미술 창작 대가기준안 시범 도입 이전인 2018 11월 미술생산자모임이 보도자료를 통해 정확히 지적했던 내용2)이지만 별다른 수정안 없이 그대로 시범 도입되었다. 어쩌면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러한 아티스트 피 산출식을 나름 엄격하게 준수(?)하면서 오류가 드러나게 된 것은 다행인지도 모른다. 미술 창작 대가 기준안을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면 아티스트 피에만 오류가 있는 것도 아닌데3), 하루 몇 백 원이라는 자극적일 정도로 비참한 금액이 현실로 닥치면서 그야말로 아티스트 피가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Mirko Martin <Untitled> 2010 From the series: <L.A. Crash> 2006-2011 © Mirko Martin 

 



아티스트 피는 단지 얼마의액수가 중요하다기보다 한 사회가 작가의 존재와 그들의 창작활동을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하는 그 개념이 중요한 게 맞다. 하지만 현재 아티스트 피의 가장 큰 오류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보잘것없는액수로 판명됐다. 작가들의 지속적인 항의와 건의에 따라 마지못해 들어간 듯한 아티스트 피라는 항목 한 줄은 그 터무니없는 상징성을 통해 아티스트 피가 말하고자 했던 것들, 이를테면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에 대한 정당한 대우, 작가로서의 존재감과 창작 행위에 대한 사회적 존중과 같은 모든 요구를 집어삼키는 듯하다. 그리고 작가의 양극화, 전시의 양극화를 동시에 심화시키는 요소가 되었다. 단지 작가들 개개인들에게만 해당하는 몇 가지의 룰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한국 사회의 문화적 체계라는 점에서 이 수식은 비참함이 아니라 어쩌면 뻔뻔함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 할 수 있는 일이란 아티스트 피를 포함한 미술 창작 대가의 산출식을 면밀히 재검토하는 일뿐이다. 이를 위해 2019년 시범 도입 기간 국공립미술관과 국가 보조금을 받은 해당 기관의 시뮬레이션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참고하고 공개해야 한다. 산출식을 정확히 따랐는지 여부를 따지는 게 아니라 그 산출식이 현장에서 적용되는 데 무리가 없었는지, 현장에선 어떻게 해석하고 집행했는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나 보완점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현장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부족한 기준안을 성급하게 고시하기보다 필요하다면 개정된 기준안을 가지고 시범 기간을 다시 가질 수 있어야 한다. 2020년 해당 예산이 증액되는 것도 아니라면 더욱더 그렇다정책과 관련해 종종 토론회에 참석하면서 행정부처 사람들로부터 그동안 귀가 따갑게 들었던 얘기는작가들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라는 것이었다. 문제를 제기해도 제대로 반영도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는 관심을 두지 않겠단 소리로 들려서 불쾌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말이 맞기도 하다. 말하지 않은 채 저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티스트 피 논의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이다.

 

[각주]

1) 현재 미술 창작 대가 기준안에 따르면 작품의 재제작이나 재설치 등 별도의 작가 개입 없는 구작(기관 소장 혹은 작가 개인 소장)을 그대로 전시하는 경우 작가는 아티스트 피만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아티스트 피는 구작으로 전시에 참여할 때 받게 되는 대가라는 의미와 혼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발표된 영상 작품이 스크리닝피(screening fee)를 청구하고 받게 되는 것처럼 구작에 대한 작품 대여료 항목과 가이드는 아티스트 피에서 분리되어 따로 구성되어야 한다.

2) 배포된 보도자료가 그대로 뉴스화 되었으므로 그 내용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미술생산자모임예술가를 가나다급으로 나누지 말라”>, 뉴시스, 2018.11.20

3) 미술 창작 대가 기준에 따르면 작가는 신작을 제작하거나 개작인 경우 참여작가 모두에게 동등하게 지급되는아티스트 피와 함께 인건비성 경비인전문성비=사례비를 별도로 받게 된다. 사례비를 받는 것은 정당한 일이며 지금껏 작가들이 요구했던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사례비의 산식은 문제가 있고, 내용의 심각성에 비해 의외로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기류 또한 있는 듯하다. 현재까지도 사례비는 시간기준단가에 창작 시간을 곱셈하는 산식을 따르고 있는데시간기준단가의 경우 작가의 전시 경력을 점수화하여 등급(가나다)을 매기고 그에 준하여 차등 지급하는 것으로 설계되어 있다. 한 전시를 구성하기 위한 작가의 창작 행위가 그동안 참여했던 전시 규모에 따라 질적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이는 작가의 창작행위를성과별 작가 등급제의 논리로 일축해버리는 것이고 결국은 창작 행위의 특수성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글쓴이 이미연은 예술가 듀오 그룹 파트타임스위트(2009-)를 기획했고 창립멤버로서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미술생산자모임의 멤버로 아티스트 피에 대한 공개토론회(2013/2015), 자료집 배포 등 공동 활동에 참여했다.

 



Installation view <KERRY JAMES MARSHALL: MASTRY>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MOCA) Canada(3.12.17-7.3.17)




Special Feature 

디렉터스 코멘트

● 제주도립미술관 최정주 관장


미술 작가 보수제도(artist’s fees)는 예술가의 창작행위를 사회적 가치로 인정하고 이를 제도화하자는 좋은 취지에서 발의되었고, 작가뿐만 아니라 기획자, 평론가에게도 정당한 대가를 주어야 한다는 선의가 담겨있다. 그러나 정형화하기도 어렵고, 점점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미술 창작 분야를 법제화하는 시도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정리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최근 들어 법안에서 정해놓은 산술식의 결과가 미술 작가 모두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산술식에 대입할명확한 기준을 규정하기 어렵다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사례비 산출 시 적용하는 작가의 등급을 개인전과 단체전만을 기준으로 하는 점과, 그렇다 하더라도 두 경우에 점수 차를 두는 것이 전시 기여도의 부분에서 타당한 것인지, 그리고 아티스트 피 산출 시 참여 작품 수로 작가별 배분율을 나누는 것이 합리적인지 결정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중견작가 1인의 개인전과 청년작가 n명의 단체전에서 도출되는 빈부의 쏠림 현상을 방지할 수 있을지, 보수의 상한가나 하한가를 두는 방식이 대안으로 적용될 수 있을지, 제시된 계산식을 국공사립미술관에 일괄 적용해도 기관별 불이익이 없을지, 그리고 추급권과 저작권의 문제는 고려하지 않아도 무방한지 등 많은 문제가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또한 이 문제는 한 해 예산을 미리 산정해야 하는 국공립미술관의 경우 그 어려움이 한층 자명해진다. 국공립미술관은 국민의 세금을 분배받는 형식이기 때문에 본디 신규 항목에 대한 예산 증액 자체가 쉽지 않은데다, 중견작가의 경우 월 472만 원, 신진작가의 경우 월 236만 원 등의 지급 기준액을 감당하기는 더욱 수월치 않다. 게다가 전시를 기획할 때 참여 작가의 수와 등급, 작품 수, 전시 일수까지 정확히 파악해야만 예산안 계산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나온다. 그렇기에 기획 단계에서 예측할 수 있는 변수를 최대한 미리 잡아내고, 더 나아가 확정 단계까지 구축해야 하는 부지런함이 요구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혹여 작가의 사정상 참여가 불가하여 다른 작가로 대체할 경우, 상향 등급보다는 같은 등급의 수평 이동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고, 예산의 문제로 인해 참여 작가의 수나 전시 기간 등에 타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조율이 필요한 단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전제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범위가 넓고 그 거리감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술가의 창작권을 보호하고 창작 환경을 활성화하려는 본래의 취지가 실현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예술과 예술가의 행위에 법으로 그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으려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합의의 지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meka Ogboh < TOWERMMK> 2018 

Sufferhead Original (Frankfurt edition) Installation view Courtesy Emeka Ogboh Photo: Axel Schneider




대구미술관  최은주 관장


아티스트 피가 내년부터 적용된다면 우선 적용대상인 국공립미술관들은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대처할 수 있는 준비는 되어있을까? 그렇지 못하다고 이야기 해야겠다. 왜냐하면 대부분 세금이라는 공적 재원으로 움직이는 공공미술관의 예산 항목이나 예산액의 한계가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티스트 피는 예술가의 창작활동에 대한 보상금 성격인데, 공공미술관들은 이런 돈을 지출할 수 있는 예산 항목을 갖추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 관련한 경험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작품 재료비나 제작비는 비용의 근거가 제시될 수 있지만, 아티스트 피는 그런 유형의 증거 제시가 불가능한 지출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문제점 때문에 내년부터 시행되는 아티스트 피에 대한 현장의 대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또한 작품 재료비나 제작비에 아티스트 피를 암묵적으로 얹어 놓는 편법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아티스트 피가 권장 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라면 지금이라도 각급 미술관들에 이 제도의 실제적 적용에 대한 고지와 교육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아티스트 피에 대해 작가 자신이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선택권을 설정해 놓는 것도 이 제도의 불확실성을 잠시 유예해 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최정은 관장


아티스트 피 제도는 예술가의 노력과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그동안 미술관들은 전시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일종의 홍보 및 소개, 그리고 작가의 경력 축적이라는 점 등 여러 이익을 작가에게 준다는 명목으로 작가들에게 터무니없는 대가를 지불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국내외 활약, 국내 미술관, 예술 관련 기관 등의 인프라, 미술잡지, 평론가, 기획자의 양적·질적 성장을 보면 지금 우리 미술계는 상당한 수준을 향해 발전해 가고 있다. 또한 국민 전체가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정부 정책과 지원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예술계가 비약적인 확장을 이루고,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이 의미 있는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예술가. 예술계를 이끄는 것은 현실적인 삶을 뒤로하고 고군분투하며 그 한계를 뛰어넘는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술가가 없다면 향유나 감상, 관련 시스템은 작동조차 할 수 없다. 따라서 문화예술의 진정한 발전을 원한다면 정부 정책의 중심은 예술 향유자에서 예술가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 예술가에 대한 보상은 단순히 수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작가에게 할당된 예산을 참여 작가의 수나 전시 개최 건수로 나누어 지급 비용을 산출하고, 예술가들에게 등급을 매겨 대가를 차등 지급하는 방안 등은 예술의 본질을 도외시한 정책적 과오이다. 최근에 불거진 여러 문제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물론 아티스트 피 제도에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티스트 피가 증액되면 미술관의 전시 비용이 증가되고, 그러한 예산을 감당하기 어려운 소규모 사립미술관들은 전시개최 자체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티스트 피 제도가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제도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진정으로 우리나라 예술계의 도약을 원한다면 예술가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라는 종국적 목표로 방향을 설정하고 점차 개선해 나가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


아티스트 피는 기본적으로 작가를 위한 제도이기 때문에 시행하는 것이 좋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창작에 매진하는 작가를 생각한다면 이로부터 선순환 작용이 많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취지가 아무리 좋다 해도 현실은 또 현실이다. 이에 현실성 있는 제도의 안착을 위해 지혜와 노력을 모아야 할 때이다. 또 그에 걸 맞는 예산 확보가 관건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작가를 우대하는 제도라면 무엇보다 앞장서겠다는 입장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아티스트 피의 경우도 전향적 입장에서 개선하고자 한다.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국공사립미술관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별도의 예산을 추가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해도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갈 떠날 채비를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창작 현장에서 혼신의 열정을 다하는 작가들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함께 가는 마음이 소중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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