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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0, May 2018

대화는 이어진다

U.S.A

Adrian Piper
A Synthesis of Intuitions 1965-2016
2018.3.31-2018.7.22 뉴욕, 현대미술관

한동안 닫혀있던 뉴욕 현대미술관(이하 MoMA, Museum of Modern Art)의 6층이 3월 말 다시 그 문을 열었다. 전체 공간이 미국 작가 아드리안 파이퍼(Adrian Piper)의 작품으로 채워진 채로 말이다. 파이퍼는 1960년대 후반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과 소통해왔다. 살아있는 작가의 전시에 MoMA가 6층 전체를 할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이번 전에는 그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하나로 엮는 가닥이 존재하는지를 묻고, 존재한다면 그것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묻어난다. 누구나 그러하듯, 아티스트도 그들의 삶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정의하는 재료를 찾아낸다. 다만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져가는 그 과정을 작품으로 표현해낸다는 점이 조금 다르겠지만 말이다. 파이퍼는 뉴욕 맨해튼의 중산층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 유년기 동안 백인이 중심인 집단, 예를 들어 사립학교에 속해 자신과 다른 인종에 둘러싸인 삶을 산다. 그리고 전시 초입에 위치한 1960년대 중반의 작업들은 경계인으로의 삶에서 비롯된 다양한 관심사가 그의 작품에 녹아들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 정하영 미국통신원 ● 사진 Museum of Modern Art 제공

'The Mythic Being: I Embody Everything You Most Hate and Fear' 1975 Oil crayon on gelatin silver print 8×10 in.(20.3×25.4cm) Collection Thomas Erben, New York. ⓒ Adrian Piper Research Archive Foundation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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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영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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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14장의 사진이 포함된 <Food for the Spirit>(1971)은 작가의 시선이 내면에서 자신을 둘러싼 외부로 옮겨가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파이퍼는 1971년 여름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순수이성비판』을 탐독하며 자신을 이루고 있는 요소, , 육체와 정신이 존재하는 이유와 방식에 대해 집중한다. 자신의 물리적 존재를 계속해서 확인하는 과정으로 그는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거울로 상징되는 나의, (하지만 동시에)타인의 시선이 필요한 것이다. 


이후 젠더, 인종, 이민자 등 사회의 경계선에 놓여있는 그룹에 대한 관심은 이후 작품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로 발전한다. 특히 1970년대 초 중반, 실험적 작업이었던 <The Mystic Being>(1973)은 인종차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전례 없던 형식으로 보여주며 미술계에 파이퍼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그는 흑인 남성인 미스틱 비잉(Mystic Being)이라는 페르소나를 만들어 아프로 가발과 선글라스를 쓰고, 청바지를 입은 채 맨해튼 다운타운을 거닌다. 변장을 포함해 새로운 정체성을 끌어내기 위한 그의 행위뿐 아니라 길에서 마주치는 이들의 반응 또한 이 작품의 일부다.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존재를 마주쳤을 때 나타나는 사람들의 반응은 욕설을 내뱉는 것부터 웃음까지 다채롭다. 그의 ‘미스틱 비잉’은 길을 걷는 퍼포먼스에서 나아가 <The Mythic Being(I Embody Everything You Most Hate and Fear)>(1975)와 같은 사진 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관람객에 다가간다.





<Everything #2.8> 2003 Photocopied 

photograph on graph paper, sanded with sandpaper, 

overprinted with inkjet text 8.5″×11(21.6×27.9 cm) 

Private Collection  Adrian Piper Research Archive Foundation Berlin

 



이렇듯 파이퍼는 관람객에게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그들이 무의식중 가지고 있는, 사회를 보는 프레임에 의문을 던진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가 보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중립적인 관점이란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적극적 인식의 근간에는 개개인의 판단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작가는 그 판단에 일련의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파이퍼가 선택한 표현 방식들은 다양하나 공통적으로 개념미술의 성격을 갖는다. 그는 1960년대 후반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chool of Visual Arts) 재학 당시 솔 르윗(Sol LeWitt) 등과 교류하며 개념미술의 기본적인 이론을 습득했다. 아이디어나 개념이 예술 작품에 있어 가장 중요한 측면이고, 그렇기 때문에 개념미술에서 모든 계획과 결정은 제작 이전에 이뤄지며 이를 실행하는 일은 형식적인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이퍼의 초기작<Parallel Grid Proposal for Dugway Proving Grounds Headquarters> (1968)에서는 개념미술을 추구한 작가들이 택한 도면 혹은 지도 등 아이디어를 전하기 위한 약속된 기호와 형태를 사용하는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파이퍼가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이러한 개념미술에서 흔히 나타나는 지시(instruction)에 관람객의 참여를 더한다는 것이다. 관람객은 더 이상 제 3자에 머무르지 않고 작품 일부가 되어 작가와 소통하는 기회를 갖는다. 작가의 1980년대 초 작품인 <Funk Lessons>(1983-1984)가 그 대표적인 예다. 레슨이라는 형식을 빌려 관람객이자 작품의 참여자들은 흘러나오는 펑크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몸을 움직인다.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에서 그 자리에 있던 다양한 인종, 나이, 성별의 사람들은 펑크라는 흑인 문화를 떠올리는 청각적 자극에 다르면서도 같게 반응한다. 은연중에 이 퍼포먼스에 참여한 이들은 작가의 아이디어를 직접 몸으로 느끼며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Catalysis III> 1970 Documentation of the performance. 

Two gelatin silver prints and text mounted on colored paper Overall 

8 1/2×11in.(21.6×27.9cm) Photographs by Rosemary Mayer. 

Collection Thomas Erben, New York.  Adrian Piper Research Archive Foundation Berlin  





작품을 보는 이와 맞닿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또 다른 전략은 공간의 활용이다. 펑크 레슨에서 참여자들이 특정한 일시에 한 장소에 모여 작품을 만들어 냈듯이, 전시 전반에 걸쳐 파이퍼는 관람객을 둘러싸는 공간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다. 2층 아트리움(Atrium)에 별개로 전시된 <What It's Like, What It Is #3>(1991)이 대표적이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사방의 흰 벽과 백색등 아래서 관람객은 외부 세계와 완전히 분리된다. 사면에 흰색 계단 모양의 앉을 공간을 만들고 전시장 가운데에는 높은 원주를 세워 비디오 모니터를 사각으로 배열한다. 


모니터 속 흑인 남성은 일정한 시간마다 90。씩 각도를 틀며 흑인 남성에 관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부정하는 말(가령 “나는 노예가 아니다”)을 내뱉는다. 색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모니터 속 인물의 움직임 또한 규칙을 따라 움직이게 하는 등 감정을 드러낼 만한 요소를 최대한 도려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은 원형 극장을 닮은 이 공간 안에서 또렷이 들려오는 사운드를 통해 파이퍼의 아이디어를 즉각적으로 흡수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중 하나인 코니 버틀러(Connie Butler)는 전시 준비 과정에 있어 관람객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자연스레 작가의 의도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데 방점을 두었다 이야기한다. 가령 전시의3분의 2지점에서 관람객은 다음 갤러리로 이동하기 위한 통로를 지나야 한다. 그리고 이 통로에 <The Humming Room>(2012)이 위치한다. 통로(혹은 작품)는 우리가 미술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킴이가 가로막고 있다. 




<Parallel Grid Proposal for Dugway Proving Grounds Headquarters> 

1968 Two typescript pages; ink and colored ink on fourteen sheets of paper; 

architectural tape on acetate over ink on thirteen photostats; and 

ink on cut-and-pasted map, mounted on colored paper. 

Detail: Parallel Grid Proposal for Dugway Proving Grounds Headquarters 

#11, 8 ½×11 in.(21.6×27.9cm) Collection Beth Rudin DeWoody. 

 Adrian Piper Research Archive Foundation Berlin




지킴이는 작품을 만지지 말라거나, 사진을 찍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이곳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어떤 노래든 흥얼거려야 합니다. 지킴이에게 다가오며 시작하십시오”라는 지시 사항을 따르게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순응했던 기관이 가진 권위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제시한다. 관람객은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작가가 던진 질문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소화해야 하는 유머러스한 난관에 부닥치게 되는 것이다. 


한편, 파이퍼의 작업은 빈번히 다뤄지는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다. 환각제(LSD)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었던 시기에 제작된 <Barbara Epstein and Doll>(1966)에서 파이퍼는 자신의 방에 놓여있었을 법한 인형을 재료로 선택한다. 뿐만 아니라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곡에 맞춰 휘파람 소리를 함께 녹음한 <Bach Whistled>(1970)는 그 작업을 듣고 있는 이들에게 원곡과 휘파람 사이 완성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생소하지만 유쾌한 간극을 전한다. 그의 유머 감각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은 전시의 막바지에 이르러 흰 벽면을 차지하는 <Adrian Moves to Berlin>(2007)이다. 1980년대 펑크 레슨에서 보여준 유쾌한 몸의 움직임은 약 20년 후 제작된 이 작품에서도 반복된다. 




<Vanilla Nightmares #12> 1986 Charcoal on newspaper 

23 1/2×13 1/2 in.(59.7×34.3cm)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Gift of Gwen and Peter Norton.  Adrian Piper 

Research Archive Foundation Berlin. Photography by John Wronn





미국 운수보안국의 감시 목록에 오르자 작가는 이에 반발하는 행동의 일환으로 미국으로 돌아오기를 거부하고 독일에 거주한다. 그리고 노년의 몸으로 거리에서 춤을 추며 자신의 선택으로 누리게 된 자유로움을 행인 그리고 그 영상을 보는 관람객에게 전달한다.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파이퍼의 관심은 그 개인의 발자취와 경험을 담아내며 여러 형식으로 변주된다. 예를 들어, 철학과 요가 등 시각 예술 이외 그가 깊이 있게 탐구한 주제들은 최근작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지워지고 있는 인물들의 얼굴 위에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Everything will be taken away)” 라는 문구를 적어 넣은 사진을 포함한 ‘Everything(2003-현재) 시리즈 앞에서 우리는 물질적 존재의 유한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전시의 출구를 빠져나오면, 작품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세 개의 데스크가 <The Probable Trust Registry: The Rules of the Game #1-3>(2013) 라는 타이틀을 달고 놓여있다. 현재 진행 중인 파이퍼의 작업에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각 데스크 위에는 개인이 사인할 수 있는 선언문이 놓여있다. I will always mean what I say”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고, 이에 동의할 경우 사인을 남기면 파이퍼가 현재 쌓고 있는 아카이브에 더해지며 향후 작업의 일부가 되는 방식이다. 작가와 관람객 사이 존재하는 거리감을 좁히려는 그의 노력은 이렇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능해진 여러 매체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사회에 속에서 여전히 경계인의 삶은 위태롭다. 그리고 파이퍼는 계속해서 이 사회,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은 무엇인가에 대해 또 다른 형태를 빌려 관람객에게 깊이 있는 대화를 청할 것이다.  


 

글쓴이 정하영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과 고고미술사학을 공부한 후 한동안 투자은행에서 일했다. 이후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뉴욕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현대미술 이론 석사 취득 후 솔로몬 R.구겐하임 미술관 및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뮤지움 신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아트투어/컨설팅 회사 ITDA(잇다)를 운영하며 뉴욕 미술시장에 한걸음 내딛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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