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이제 지긋지긋하다며 색색 별로 물감을 토하는 <The Emetics (Primary Vomit): I am Sick of Art>(1977), 도끼로 팔(인조 피부에 고기를 갈아 넣어 만든 정교한 모형)을 내리치는 <Cathartic Action: Social Gestus No. 5 (the Armchop)> (1977), 낚싯바늘로 살갗을 뚫고 낚싯줄로 피부를 잡아당기는 기괴한 자화상 시리즈 ‘The Sickness Unto Death’(2010-2015) 등 파의 작업은 그야말로 가학적이다. 이로 인해 관객들은 퍼포먼스 사진과 영상 앞에서 눈을 질끈 감은 채 놀라움과 불편함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술가의 몸은 왜 이리 혹사당해야만 하는가? 그는 왜 자처하여 실험대상이 되었는가? 마이크 파는 태어날 때부터 왼팔이 없었다. 성장하면서 장애 때문에 세계로부터 격리되고 있다고 느낀 그는 자신의 고통을 ‘사회적 자폐증’에 비유하곤 했다. 파는 자신의 기형적인 모습을 감추고 싶어 했지만 이러한 신체적인 결함은 훗날 그의 작품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파는 퀸즐랜드에서 나고 자랐지만, 1960년대 말 시드니로 거처를 옮겨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했다. 당시 미술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몸에 대한 인식과 그 재현 방식이 변화하고 있었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몸을 재현하던 전통은 붕괴된 지 오래였다.
<The Sickness Unto Death> 2010-2015 Sydney Colour photographs
Private Collection Performer: Mike Parr Photographer:
Paul Green Face sewing: Garry Manson; Make-up artist:
Linda Jeffreyes; Madame Matisse's hat: Clare Milledge
더 나아가 몸이 하나의 실체로 주목받게 되면서 예술가의 몸은 예술을 위한 도구이자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는 장소로 급부상했다. 이로 인해 다양한 신체미술(body art)을 아우르는 개념미술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에 힘입어 파의 텍스트 작업은 급진적인 퍼포먼스 아트로 이어졌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인 결함을 전면에 내세우기로 결심하고 유행처럼 번진 개념미술의 흐름에 합류했다. 파의 가장 큰 업적은 동료 예술가 피터 케네디(Peter Kennedy), 팀 존슨(Tim Johnson)과 함께 예술가 단체 ‘Inhibodress’를 설립하고 대안공간을 운영하면서 호주 관객들에게 새로운 장르의 미술을 소개한 것이다. 지난 50년간 호주 미술계로부터 날카로운 비평을 이끌어내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파는 스텔락(Stelarc), 발리 엑스포트(Valie Export), 울레이(Ulay)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첽 ) 등 동시대 작가들과 함께 오늘날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Primitive Gifts> (2006.4.11) Colour photograph from
closed performance The Lab Studio, Waterloo,
Sydney Private Collection Performer: Mike Parr Photographer:
Paul Green Photoshop: Felicity Jenkins; Make-up: Chizuko Saito
마이크 파는 주로 신체를 공격하는 자학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의 몸을 재인식하는데 주력했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자화상이 등장했다. 1980년대 그는 퍼포먼스 아트를 잠시 접어두고 드로잉으로 전향했다. 당시 48점 연작으로 발표한 ‘Self Portraits through Mother's Glassware’(1982)에서 보여준 드로잉과 사진작업은 자화상 프로젝트의 시초가 되었다. 자화상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자신의 몸을 언어로 사용했으며 1990년대에 이르러 분신과도 다름없는 새로운 자아, ‘신부’를 만들어냈다. 파는 그와 협업을 하던 사진작가 아내 펠리치타스(Felizitas Parr)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이후부터 신부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자화상 프로젝트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신부는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남성과 여성이 혼합된 형상으로서 인내를 필요로 하는 퍼포먼스의 대상이자 그를 대표하는 또 한 명의 마이크 파라고 할 수 있다.
<Cathartic Action: Social Gestus No. 5 (the “Armchop”)> 1977
Colour photo graph from performance Sculpture Centre,
The Rocks, Sydney Private Collection Performer:
Mike Parr Photographer: John Delacour
파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카이브이다. 그의 아카이브는 도저히 한 사람이 수집한 자료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그는 퍼포먼스 기록 앨범과 전시 홍보물은 물론 각종 미디어 기사와 개념미술 관련 자료, 심지어 세금 영수증과 비행기 티켓에 이르기까지 전시와 관련된 모든 것을 보관해 두었다. 그의 아카이브가 호주 현대미술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여긴 호주국립미술관은 2012년부터 파의 아카이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의 자료는 상자 600여 개에 이르며 이 중 일부는 전시장에 위치한 아카이브 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시장 입구에는 세월의 흔적을 증명해주는 빛바랜 일기장들이 유물처럼 펼쳐져 있다. 자그마치 50년 동안의 기록.
지난 반세기를 빽빽한 텍스트로 저장해 놓은 한 예술가의 작업일지는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아키비스트로서의 그의 활동은 거의 병적일 정도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강박증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과잉의 콘텐츠들은 그의 창조적인 환경을 알려주는 나레이션의 역할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토록 수집과 기록에 열을 올리던 그였지만 70세에 이른 최근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을 불태우거나 덧칠하면서 그 흔적을 지우고 있다고 한다. 마치 죽음을 앞두고 인생의 덧없음을 깨달은 사람처럼 세상에 더 이상 소중한 것은 없다는 듯이 그는 서서히 작품을 파괴하고 있다. 그러므로 <Foreign Looking>은 결국 죽음의 문턱에서 일시적으로 살아남은 작품들의 향연인 셈이다.
글쓴이 김남은은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에서 「장-미셸 오토니엘의 작품연구」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9년간 신한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캔버라에 거주하면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호주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