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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0, Nov 2020

휘슬러(The Whistler)

2020.9.10 - 2020.10.17 갤러리 E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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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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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기억


 

기억을 소재로 하는 작업이나 전시는 대개 객관성의 문제를 동반하기 마련인데, 갤러리 ERD에서 진행된 <휘슬러(The Whistler)>는 작가 개개인의 특정한 경험이 아닌 “작가의 기억” 그 자체에 주목했다. 기묘한 숲속 풍경을 배경으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처럼 때로는 장난스럽고, 때로는 잔인한 기억의 다양한 모습들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세 명의 작가들이 서로 모티브를 주고받으며 전개해 나간 이번 전시 또한 한편으로는 익살맞고 장난기 가득해 보이지만, 뒤를 돌아보는 행위에서 비롯된 미묘한 감정들의 갈등으로 가득한 이면 또한 어김없이 드러난다.

이번 전시를 위해 그동안 잊고 지내온 초기작들을 되돌아본 최병석은 ‘덫’ 연작을 비롯한 자신의 초창기 작품이 얼마나 조형적이었는지 적잖게 놀랐다고 한다. 그의 초기작과 신작을 비교해보면, 동물적인 귀소본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간소하고 언뜻 보면 추상적인 <열 번의 기회>(2020) 같은 신작에서는, 그가 용도와 비-용도의 경계에서 이어온 근래의 만들기 작업을 통해 비워내고 또 비워낸 결과물 혹은 부산물이 그의 초기작과 얼마나 밀접한지 엿볼 수 있다.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가의 세라믹 작업 역시 기존 작업의 주된 요소들이었던 발명, 조립, 기능을 배제하고 “만들기”라는 개념 자체를 재고함으로써 나온 소산물로 보이며, 그가 작업을 막 시작했을 무렵 종이봉투를 이용해 만든 <메이저 톰> (2013)과 조형적으로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신작들을 선보인 이현종은 소리를 시각화하고,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탐구한다. 그는 미술 작업을 유혹과 동일시한다.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의 <열정(Passion)>(1982)에서 노동과 사랑의 유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주인공의 말에 그는 분명 동의할 테다. 오리들을 유인하는 소리를 내는 꽤 성적인 모양의 사냥 도구를 현실 도피적이고 쾌락적인 티키 문화와 병치한 <티키바>(2020), 노골적인 붉은 조명 속에 역시나 멧돼지 울음소리를 모방해 유인하는 용도로 쓰이는 사냥용 파이프를 소총 받침대 위에 올려놓은 <어느 재즈 카페에서>(2020)와 같은 작품들은 작가가 느끼는 본능적인 작업의 충동을 원초적인 성적 이끌림과 대비시켜 어린 시절의 어설픈 연애 실패담을 풀어내듯 무겁지 않게 이야기한다.

한편, 이번 전시에 포함된 장종완의 그림들은 말 그대로 어둡다. 선전화 또는 달력이나 엽서 사진들을 기반으로 한, 햇살 가득한 유토피아적 풍경의 이면을 다루는 것으로 잘 알려진 그의 그림들과는 대조적이다. 어스름에 잠긴 숲속 풍경들은 어렴풋이 기억나는 동화의 장면 장면들처럼 음산한 구석이 있고, 하나같이 내적이다. 자신을 벤 듯한 도끼를 감싸 쥔 나무 둥치를 표현한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알렉상드르의 노동(Les Travaux d’Alexandre)>(1962)을 인용해 그린 <붉은 피리>(2019)에서는 피리를 쥔 나무 둥치가, <동쪽에서 온 여우>(2019)에서는 신선도의 한상자(韓湘子)처럼 피리를 불며 파도를 건너는 여우 한 마리가 등장한다. 최병석의 덫과 이현종의 사냥 도구처럼, 장종완의 피리 또한 무언가를 유인하는 도구일 텐데, 그렇다면 이들이 공통적으로 좇는 대상은 무엇인가?

뒤를 돌아보는 행위는 언제나 사적인 기억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가리킨다. 이미 오래전에 논쟁이 끝난 줄 알았던 역사적 사건들의 해석을 놓고 많은 사회가 둘로 갈리고, 문화 전반적으로 다 잊힌 줄만 알았던 소재들을 도로 끄집어내 재포장하는 데에 급급한 최근에는 더더욱 그래 보인다. 기억을 부정하려는 시도는 모더니즘의 커다란 특징 중 하나였는데, 일례로 뒤샹(Marcel Duchamp)은 기억이 없는 삶을 살기를 원했다. “기억의 부정”이라는 개념 또한 옛날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우리는 현재 기억을 부정하고 수정하려는 새로운 사회적 시도들과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끝없는 이미지의 흐름으로 환산된 기억을 취사선택해 큐레이팅하는 일이 당연시된 요즘, 다소 어둡지만 때로는 희화화할 수밖에 없는 작가의 기억 그 자체에 집중한 이번 전시는, 음습한 곳 어딘가에 항상 도사리며 우리를 기다리는 불편한 기억의 필연성을 상기시켜주는 듯하다.  


*벽면: 장종완 <사냥꾼의 시>(왼), <얼굴들>(오) 2018 / 앞쪽: 최병석 <덫5> 2020 나무, 끈, 못, 황동 148×77×4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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