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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0, Nov 2020

최기석 개인전

2020.9.3 - 2020.10.3 갤러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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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안소연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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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표면과 소멸하는 것의 무게


모든 것은 무제였고, 어떤 것도 표현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공허한 표면을 가졌다. 최기석은 철을 재료로 하여 두 개로 나뉜 전시공간에 각각 직육면체와 삼각뿔 형태의 커다란 구조물을 제작해 가져다 놓았고, 그중 한 쪽 벽에는 드로잉 열여덟 점과 한쪽에 따로 떨어뜨려 놓은 드로잉까지 모두 열아홉 점의 목탄 드로잉을 설치했다. 두 개의 큰 구조물과 연관되어 보이는 기하학적 형상을 종이에 목탄으로 그린 드로잉의 제목도 무제였다. 전시의 제목은 어디에도 없었고, 단지 두 개의 기하학적 형태와 두 개의 물질만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어떤 것의 무게와 질감, 그리고 그것이 함의하는 시간과 드러나지 않은 물질의 현상이 무제의 형상들과 함께 거기에 있었다.

폭과 길이가 각각 4ft, 8ft로 규격화된 철판을 사용해 최대 높이 360cm 크기의 기하학적 구조물을 만든 최기석은, 수직으로 세울 수 없는 판재를 조각의 재료로 가져다 쓰면서 용접 기술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그 내부에 지지대를 매개하여 판과 판이 서로 지탱하도록 결합시켜 거대한 수직적 구조물이 되게 했다. 그 형태는 산업용으로 규격화된 철판의 일정한 크기와 전시 공간의 건축적 스케일에 대응하여 각각의 특정한 폭과 높이를 갖게 됐다. 금속의 표면 처리마저 포기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만든 철 구조물에 물리적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태도를 강하게 내비쳤다. 

그 결과 표면에는 철판의 모서리가 만들어내는 희미한 분할선과 철의 부식에 의한 붉은 녹이 스스로의 논리로 생겨났으며, 이로써 어떤 현상을 함의하는 무명의 형태가 만들어지게 됐다. 임의의 기하학적 형태에서 하나의 면을 이루게 된 철판은 시간의 축적된 힘에 의해 스스로 구축한 형태의 표면을 열어젖혀 내부의 물질로부터 붉은 녹의 질감을 끌어올리고 궁극에는 소멸하는 것의 육중한 무게를 환기시키는 역설을 내내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표면을 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의 단단한 윤곽을 지연시킨다는 것이며 내부가 바깥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인간 형상에 빗대어 보면, 존재의 형태를 잃는다는 것이며 피부가 발가벗겨져 내부의 불안을 보게 된다는 것일 테다. 최기석의 기하학적 구조물들은 무명의 형태로서 아무 것도 표현하려 들지 않는다. 단지 그것의 존재와 현상을 드러낼 뿐인데, 이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윤곽을 서서히 지연시키면서 내부를 바깥으로 드러내려는 암묵적 시도는 어떠한 함의를 갖는 것일까. 최기석은 조각가로서 철을 재료 삼아 추상적인 형태를 만드는 일에 오랫동안 몰두해 왔다. 

이를테면, 용접과 단조 기술을 통해 조각의 표면에 일체의 시선을 집중시켜 놓았을 만큼, 그가 내부를 봉인한 철의 표면에 힘을 보태 시각적인 명확성을 보다 충실히 드러내왔음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의 변화는, 그가 이미 지난 작업들에서 몇 차례의 크고 작은 실험의 과정을 거친 후 재료에 물리적 힘을 최소화 함으로써 재료가 스스로 외연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 그것의 물성에 주목한 것이다. 그 결과 형태를 결정하는 크기의 규격을 가진 오브제로서의 철판, 표면이 애초에 비어있는 내부 물질로서의 철이라는 물성의 역설적인 함의가 드러난 것처럼 보인다. 

직육면체와 사각뿔의 형태를 선명하게 나타내 보이는 육중한 조각 두 점은, 역설적이게도 그 윤곽을 계속해서 지연시키는 중에 있다. 게다가 윤곽을 지우면서 더 강력한 질감을 갖게 되었으며, 동일한 시각으로, 소멸을 불러오면서 그 소멸이 가중시키는 물질의 육중한 무게를 더욱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열아홉 점의 목탄 드로잉에서도 반복됐다. 종이 위에 마른 가루의 물질로 형태를 구축해 놓은 검은 목탄은 직육면체와 삼각뿔의 거대한 구조를 구축하고 있는 철의 물성과 닮아있다. 

무겁고 단단해 보이는 기하학적 형태들은, 종이 위에서 언제 소멸할지 모르는 목탄의 육중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그려진 형태의 가장자리에는 이미 사라진 물질의 흔적들만 얼룩처럼 남겨졌고, 기하학적이고 견고한 형태들의 표면은 그것을 이루는 목탄의 거친 질감에 의해 내부의 검은 물질이 끝없이 바깥으로 배어나올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러한 물질에 대한 감각과 그것의 역설적인 물리적 현상은 무제라는 언어의 공허함 속에서 더욱 강렬하게 지각되며, 그것이 이름 붙여지지 않은 최기석의 개인전에서 현전하는 형태로 우리가 경험한 것의 전부/전체일지 모른다.  


*<무제> 2020 철 360×240×48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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