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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5, Apr 2021

확장성 프로젝트: 곤란한 이야기들의 불협화음

2021.3.19 - 2021.4.18 A.I.R.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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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실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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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우면서도 짜릿한 실험, ‘대디 레지던시’



뉴욕 A.I.R. 갤러리가 마련한 <확장성 프로젝트: 곤란한 이야기들의 불협화음(The Scalability Project: Cacophony of Troubled Stories)>은 자본주의의 가속과 기후위기라는 상황에서 인간과 비인간, 다양종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안나 칭(Anna L. Tsing)의 제언을 빌려온 웹 전시다. 5개월 동안 웹 사이트는 어슐러 르 귄(Ursula Le Guin)의 ‘컨테이너’ 개념처럼, 반(反) 남성주의적이고 대안적인 가능 세계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분기하는 하나의 주머니이자 플랫폼으로 작동한다. 동시대 삶의 복수성을 질문하고 탐색하는 이 전시에서 지금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프로그래머이자 미디어 아티스트 김나희는 2019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 ‘대디 레지던시(daddy-residency)’를 소개하는 마이크로 사이트(deluxe.daddy-residency.com)를 선보이고 있다. 


‘대디 레지던시’는 2026년 나희가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출산하고 그 아이를 함께 양육할 ‘대디’를 모집하는 장기적인 생애 프로젝트로, 출산, 육아, 가족구성을 둘러싼 젠더의 역할을 질문하는 사고 실험이자 수행적 탐구이다. 태어날 아이 ‘가지’의 육아를 함께 감당할 ‘대디’들은 젠더와 인종에 관계없이 오픈콜을 통해 모집되며, 심사와 교육, 워크숍 등의 과정을 거쳐 3개월 내지 6개월 단위로 나희, 가지와 함께 이상한 가족공동체를 꾸리게 된다. 황당무계할 만한 이 프로젝트는 일견 예술 생산이라는 임무를 띤 미술 작가들의 레지던시를 모방하면서, 종내 반영구적이고 혈연 중심적인 ‘가족’이라는 개념과 틀을 뒤흔들어 놓을 문제적 사건이 될 모양새다. 프로젝트를 공개한 이후 작가는 어디를 가든지 “정말 아이를 낳을 것인가”, “이 프로젝트를 정말 실행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농담이나 제스처가 될 수 없는 생명 정치의 무게감을 감당하면서 작가는 이 질문들을 회피하지 않고, 생성 중이고 변화 중인 자신의 결정과 한계의 마디들을 공개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대디 레지던시는 인간 나희의 프로그램으로 출발하지만, 나희앱(nahee.app)이라는 알고리즘적 신체에 주도권이 넘어간 동시에 도래할 현실 여건 및 참여자들의 피드백이 다양한 변수로 작동될 위태로운 ‘다이어그램’(들뢰즈적 의미로)이 된다. 그래서 나희는 2089년 아카이브된 나희(데이터)의 목소리를 빌어 속내를 털어놓는다. “내 자신이 만든 매듭에 걸려든 짜릿한 속박의 기분”이라고.





‘대디 레지던시’ 모바일 메인 페이지





현 단계에서 작가에게 중요한 것 그리고 미술이라는 장에서 유효한 것은 이 무모한 사변을 둘러싼 질문과 이에 가능한 답들을 탐색해나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이 프로젝트를 ‘사변’이라 부르는 것은 ‘대디 레지던시’가 현실에서 “결코 있을 리 없는 일”로서의 판타지도,  유토피아적/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전망하는 픽션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디 레지던시는 단지 “일어나지 않은 일”로서 SF(speculative fabulation)가 지닌 가능성과 현재성을 붙들고 있다. 김나희가 속한 콜렉티브 업체eobchae와 나희의 가상 인격 나희앱은 그러한 질문과 탐색의 절차로서 ‘대디 레지던시’의 다양한 파생물을 생산한다. 엄청난 시차와 다종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 ‘스핀오프’격 영상물에서는 인공 생식을 둘러싼 자본주의와 우생학에 대한 질문, 후손이라는 자신의 메타 자아를 유전 형질이 아니라 기억과 밈(meme)의 계승자로 전환시키는 시도 그리고 모든 욕망과 감각이 데이터화되는 세계에서 성노동과 계급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상상 등이 펼쳐진다. 


<Cybersecurity4uterus>를 비롯해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파생물들은 조애나 러스(Joanna Russ)의 단편 『그들이 돌아온다 해도(When It Changed)』(1972)에서 등장하는 와일어웨이(whileaway)처럼 여성들끼리 단성생식을 이룬 사회를 그리면서, 이를 다시 디지털화 시킨다. 섹스는 배란 주기를 동기화한 두 자궁의 프로게스테론 파티로 번역되고, 독점적 테크노크라시는 대자궁 네트워크 서버시스템으로 해독된다. ‘자궁을 가진’ 여성을 일련의 프로토콜로, 정자를 데이터패킷으로 다시 쓰며 자궁해방의 반역을 심어 놓는 이 사변은 단순히 웃어넘길 만한 블랙유머가 아니다. 이는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문제적인 관념 그리고 욕망의 교환과 관계성을 위계화된 틀에 가두는 이성애-가부장제-정상가족 중심주의를 교란시키는 유쾌한 바이러스이면서, 다른 가능 세계의 틈을 벌리는 정치적 코딩이다.  



* 확장성 프로젝트의 ‘대디 레지던시’ 디테일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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