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Issue 175, Apr 2021

전병구_밀물이 들어올때

2021.3.4 - 2021.4.3 이유진갤러리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천미림 독립큐레이터

Tags

누군가의 걸음을 따라 회화를 마주하기



전병구의 회화는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무엇이 그를 그리게 하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전시를 본 날에는 잔상이 남아 밤새 마음을 어지럽힌다. 누군가를 마주해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온 어느 늦은 밤의 감각이다. 그의 회화는 문장 그대로 ‘그림이 말을 건다’. 그렇기에 전병구의 개인전 <밀물이 들어올 때>는 길에서 우연히 조우한 누군가처럼 반갑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약 3년여 만의 개인전이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의 작품의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회화적 실험이다. 


그는 회화가 드러낼 수 있는 미적 요소들의 본질을 탐구한 것으로 보인다. 작업들은 구상에서 추상으로, 다시 그 추상이 구상으로 연결되는 기법 실험들을 보여준다. 추상에서 보여주는 기하학적 요소, 화면의 구성과 색면 사이의 균형들은 회화의 ‘맛’에 대한 작가적 태도를 여실히 드러낸다. 특히 ‘스타디움’(2019) 시리즈는 이 고민들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물감의 브랜드와 오일의 농도, 색의 혼합 등을 기민하게 리서치한 뒤 이미지의 감각적인 미적 효과를 도모한다. 


야구장의 풍경을 담은 반추상의 그림들은 캔버스 위 면의 분할과 미세한 초록색의 변주들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마치 같은 사진에 카메라로 여러 효과를 준 것 같은 명도와 채도의 변화를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캔버스의 크기까지 차이를 주어 작가의 실험적 의도를 쉽게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동일한 그림에 변주를 준 작품들이 함께 배치된 구성도 눈길을 끈다. 같은 풍경을 그렸지만 그 안의 오브제인 새의 존재와 부재만이 다른 작품들인 <무제>(2020)나 2년여 간의 연차를 두고 같은 이미지를 전혀 다른 기법으로 그린 두 작품 <만추>(2018)(2020)는 두 작품을 연접하여 배치한 과감함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시도를 통해 자신의 작업 안에서 치열하게 분투한 지난 시간들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에 대하여 그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나의 그리는 감각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진눈깨비> 2020 캔버스에 유채 53×40.9cm





그가 확인하고자 하는 감각들의 변화는 회화의 도상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초기에 영화 스틸컷이나 타인의 이미지를 화면에 옮긴 것과 달리 최근 작품들은 작가가 주변부에서 직접 수집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다. 작가는 이미지 그 자체를 대상으로 두기보다 그 이면에 놓인 당시에 실제로 느낀 순간적 심상을 그려내고자 했다. 이때 이미지는 현재 캔버스의 화면과 과거의 경험을 연결하는 매개의 기능을 한다. 객관적 실체로 드러나지 않는 날씨, 계절, 감정에 따른 변화 등의 주관성이 화면으로 옮겨졌다. 미디엄 글레이즈의 두께와 물감의 컬러, 붓질의 두께와 흔적 등이 당시의 작가적 실존을 대변한다. 다리 위를 걷는 누군가의 초상을 담은 <진눈깨비>(2020)나 건물이 무심하게 그려진 <소금창고> (2019)는 작가와 관람객의 시선이 묘하게 겹쳐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들이 2017년 이전 전병구의 초기작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초기작에서 자기 경험의 서사를 연작으로 구성하는 작품들에 매진했는데, 추상적 시도와 이미지와의 거리두기를 거쳐 다시금 주관적 경험과 감각으로 그 관심이 돌아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는 작가가 사용하는 색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과도 관련이 있다. 하천에 서 있는 남성의 뒷모습을 담은 <무제>(2020)나 덕수궁 안 분수를 담은 <무제>(2020)의 경우 그가 이전 작업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던 퍼플이나 아이보리 계열의 색상들이 큰 비중을 차지함을 확인할 수 있다. 





<회상> 2020 캔버스에 유채 40.9×31.8cm





이는 그가 이미지의 심상을 예민하게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기법적 장치로 해석된다. 또한 작가가 표정이 없는 인물들, 특히 뒷모습이나 멀리서 바라본 실루엣을 선택한다든지 인공물보다는 자연물에 더 집중하는 것 등 작업의 흐름에 따른 작은 변화도 눈치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가 전병구의 작업 활동의 흐름 속에서 유의미한 위치를 확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형식적이고 서사적인 시도와 결과들을 한눈에 파악하면서 작품세계의 전환점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관람객의 발걸음이 시작되는 곳으로부터 공간을 영유하는 모든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멈춤 또한 전시의 일부가 된다. 회화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애정을 확인하는 것은 덤이다.   



* <무제> 2019 캔버스에 유채 24.2×33.3cm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