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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6, May 2021

김선두
Kim Sundoo

전통에 저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한국미술계는 광복 이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근대성을 비판하고 새로운 미술의 이념과 양식을 서양미술에서 답을 찾으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으며 지금도 이러한 움직임은 달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미술대학의 교육 방향이 서양미술에 편중되다 보니 학생들이 한국미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서구지향주의 분위기에도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우리 전통에서 찾으려는 노력 또한 있었다. 한국미술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두 흐름은 상호 대립과 모색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지금도 이러한 근대성과 현대성 사이의 고민과 갈등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피할 수 없는 운명 같다.
●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 ● 이미지 작가 제공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다' 전시 전경 2021 전남도립미술관
'별 헤는 밤' 2018 장지에 먹 분채 180×6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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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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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를 수묵의 고향 남도에서 보내고 부친으로부터 시서화(詩書畵)를 체득한 후 서울에서 미술대학의 현대식 교육을 받은 김선두에게 동·서미술의 간극은 현대화가로 성장하는 큰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부친은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과 남농 허건, 월전 장우성의 제자이자 시서화를 모두 갖춘 문인화가 소천 김천두 화백이다. 전통적인 필법이 몸에 체화된 그의 작업에서 도시와 농촌, 인간과 자연,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대형 한지 캔버스 화면 위에 화려한 색채와 검은 먹의 번짐, 날렵한 붓질, 추상과 구상의 형식 초월, 동서양 원근법이 해체된 과감한 구도, 붙이고 찢어내는 파격적인 표현기법 등의 작업 방식은 한국미술 세계화라는 화두에 부응하고 새로운 한국화의 시대를 여는 기회로 만든다.


김선두 작품의 소재는 자연과 소소한 생활도구가 등장하는 문인화에서 보듯 평범한 사람들, 자연, 오브제들이다. 주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 길가에 피어난 잡초, 계절변화를 알리는 들과 논, 밭 등으로 흔히 마주치고 볼 수 있는 평이한 것들이다. 대표작으로는 ‘큰 산’, ‘그리운 잡풀’, ‘느린 풍경’ 등의 연작이 있다. 작품 제목을 자세히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리운, 느린 등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고 새롭게 대가오는 미래를 예측하는 ‘시간’에 대한 특별한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이한 소재들은 시간이라는 주제를 풀어가기 위한 장치이며,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시간은 그의 사상과 개념을 표현하는 주제이다.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다> 전시 전경 2021 

전남도립미술관 왼쪽부터 <느린 풍경-유정길>, 

<느린 풍경-남포길>, <느린 풍경-덕도길>




작가의 초기작품은 민주화운동이 활발했던 1980년대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주로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포장마차와 지하철 풍경을 담은 인물화가 중심인데, 그는 피곤하고 지친 서민의 표정과 모습에 당시 사회문제로 고민하던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 사실적이고 표현적으로 그렸다. 이후 점차 그의 관심이 인물에서 자연과 풍경으로 옮겨가면서 질경이, 엉겅퀴 잡초 같은 풀들이 그림의 소재가 된다. 최악의 환경 조건에도 비집고 피어나는 잡초의 생명력은 젊은 시절 화가로 살아가기 위해 힘들었던 자신을 비유하는 코드로 결국 인물화와 정물 풍경화는 작가 자신을 표현한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그의 회화적 조형미는 이 시기에 미술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2000년을 전후로 작가는 지리산에서 설악산에 이르기까지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기록화처럼 이를 화폭에 담아낸다. 자연을 소재로 하는 그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고향’이라는 키워드로 귀결되고 초록빛, 주홍빛 등의 사시사철 변화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 남도의 기름진 땅을 다양한 주제와 내용으로 그려내고 있다.




<느린 풍경-사이> 2017 장지에 먹 분채 83×143cm 




‘남도’ 연작들을 보노라면 과거 변화무쌍한 한국의 사계를 담은 의재의 팔곡병풍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나 소년기를 고향에서 보내고 서울로 올라갔으니 어릴 적 고향에 대한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화면 전체를 점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억은 과거의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 획득된 정보로, 인간은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과 더불어 망각하는 능력이 있다. 승용차를 타고 고향을 오고 가는 과정에서 백미러와 반사경에 투영된 이미지는 여러 방식을 통해 상호작용하면서 인식되는 정도가 다를 수 있다. 예컨대 고향 풍경을 향한 시선은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시간과 시간이 교차하는 개념적인 것으로 이것이 그의 작업의 원천이라고 사료된다. 특히 남도를 소재로 그린 일련의 연작들에서 보듯이 고향에 대한 관심은 1988년 이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집요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집착은 구상적이며 반추상적인 표현에서 개념적인 표현의 단계로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행-아름다운 시절> 2019 

장지에 잉크 파우더 컬러 65×47cm




마치 영국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1980년경 고향 런던을 떠나 뉴욕을 거쳐 미국 서부의 산타모니카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크게 펼칠 수 있었던 것처럼, 작업환경 변화로 인해 작품의 크기와 색채가 확 달라졌다. 팝적 구상성에서 벗어나 표현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캔버스를 이어 붙여 6m가 넘는 화면에 집, 정원, 일상 오브제, 하늘 등이 들어간 집 근처의 계곡을 그린 ‘니클라스 케년’ 풍경 시리즈 작품이 그렇다. 물론 도시 생활에 지친 김선두가 따뜻한 시선으로 고향 땅을 흠모하며 그리워하는 경우라면, 호크니는 편견으로 얼룩진 고향을 뒤로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새로운 안식처로 신대륙을 바라보고 있다. 고향을 바라보는 감성은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전혀 손대지 않은 그대로의 대자연을 뜻하는 무위자연 사상이 두 작가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김선두는 고향의 풍경에서 느낀 감동을 화면에 옮기는 과정에서 대상이 지닌 형상과 크기를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인간 중심 관점의 원근법을 무시하고, 자신이 자연의 관찰자가 아닌 오히려 자연에 의해 관찰된 대상이 되기를 바란다. 동양 회화에서도 일찍부터 가까이 있는 사물은 아래에, 멀리 있는 사물은 위쪽에 표현하는 원근법이 있다. 호크니가 해변이 보이는 집안 풍경을 다지점의 역원근법을 사용하여 관찰자 쪽으로 확장되는 여러 개의 소실점이 있는 방식을 사용한 것과 같다. 이전에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가 원근법을 무시하고 입체파의 시각언어를 확장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스펙터클한 이차원의 평면으로 와이드하게 구성했던 행위도 같은 맥락이다. 




<유혹-양귀비> 2020 장지에 먹 분채 150×162cm




그의 뛰어난 회화성은 원근법 등 기존 회화의 형식을 해체하려는 실험적인 태도에도 있지만, 종이, 먹, 물감 등 그림 재료를 다루는 능력과 공간을 인지하는 통찰력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특히 장지 기법은 장지 위에 바탕색이 빛을 발하도록 60번의 붓질을 한다. 드세고 질긴 장지에 채색이 얹히기보다는 투명하게 우러나도록 한다. 아울러 자유자재로 그려내는 필획이 살아있는 선묘와 묘한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선 하나를 제대로 그으려 30년 넘게 붓질하며 살았다”는 10년 전 그의 고백처럼 예술적 잠재성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선 또한 김선두의 예술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가 감정과 내면세계를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모필을 통제하고 붓을 능숙하게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에 몰두하는 자체가 전통에 저항하는 것이며 새로운 창조를 위한 실험”이라는 폴 발레리(Paul Valéry)의 말처럼, 지난 3월 22일 개관한 전남도립미술관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다>전에서 전통에 대한 김선두의 독창적인 시각을 만날 수 있다. 신작 <느린 풍경-유정길>, <느린 풍경-덕도길>, <느린 풍경-남포길>은 수묵과 채색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재료 선택, 거대한 평면에 병렬적으로 펼쳐지는 파격적인 구도, 남도 자연의 DNA를 함축하는 주홍 원색의 강렬하고 폭발적인 색채 등을 통해 한국화라는 장르를 넘어 현대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절제된 붓질을 보여주던 초기 작업과는 달리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동서양의 문화가 서로 벗어나고, 관통하고, 해체되어 새로운 융합적 미학의 실험대가 된 그의 작업은 완벽한 장인의 필선, 장지의 깊은 발색, 반원근법 등과 같은 기법을 사용해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PA





김선두





작가 김선두는 1958년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92년 금호미술관에서의 <남도>를 시작으로 20회 이상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스페이스K를 비롯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넘나들며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성곡미술관, 금호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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