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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6, May 2021

심승욱
Sim Seungwook

아이러니스트

심승욱은 개인전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놀이터'에서 기존의 조각 작업 대신 매체나 장르의 경계 없이 쏟아낸 생경한 이미지들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몇 가지 단상들을 꺼내놓았다. 특히 회화작업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것으로, 'Merry! Go Around!'와 '축제' 같은 작품에서는 일종의 고통과 불안으로 과장되고 뒤틀려 일그러진 모습의 군상들을 어둡고 역동적인 일러스트로 묘사한다. 무대 같이 설정된 공간에서 이 무리들은 회전목마에 탑승하여 쳇바퀴 돌 듯 함께 돌아간다. 장르적 시도만이 아니라 기존의 어둡고 짙은 폐허의 색에서 벗어나 컬러풀한 색감도 등장했다. 또 다른 회화시리즈 ‘XO, OX, 그리고 X를 X하다’는 O나 X 같은 기호 자체의 안정적이면서도 폐쇄적인 시각적 구조를 그리는 행위 속에서 재확인하는 작업이다. 게다가 ‘Fake Cake’는 사진 작업이다. 주요 피사체인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집적된 캔(can)들은 물성을 약화시키려는 듯 사진 이미지로 전환되었고, 케이크가 아닌 오브제는 실제가 아닌 페이크라는 동어 반복적 부정을 통해 강한 긍정적 부정을 이야기한다.
● 오세원 콘텐츠 큐레이터·씨알콜렉티브 디렉터 ● 이미지 작가 제공

'안정화된 불안-8개의 이야기가 있는 무대' 2018 아연도금강, 초산비닐수지, 구로철, 알루미늄, 확성기, 음향장비, 무용가 최수진 퍼포먼스 영상 400×400×44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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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원 콘텐츠 큐레이터·씨알콜렉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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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짚기 도구>는 장대높이뛰기를 위한 키 큰 장대들이 위태롭게 서 있는 설치작업으로, 어울리지 않는 번쩍이는 브라스(brass)와 검은 가구 다리 형태의 장대가 불안하고 아슬아슬하게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 작가는 두 개의 브라스 막대가 십자가 형태가 되는 지점에 의미를 두고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불거진 한국교회의 위태로운 현주소에 주목해 그 속에 자리한 종교적 신성과 현실 사이의 모순된 관계를 지적한다. 이렇게 설치작업부터 회화, 사진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업을 둘러보니 작품의 형식과 내용 모두 다채롭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매체나 장르 사용에서 자유로워지길 원했고, 특히 페인팅을 통해 파편적이지만 작가가 소통하고 싶은 내러티브가 드러나길 바랐다. 구체적인 이야기 전달에 대한 작가의 집중이 작업의 풍부한 정서나 맥락을 다소 단조롭고 납작하게 만들어버렸지만, 중견작가로서 해왔던 일종의 관습을 벗어던지고 여러 시도와 도전이 돋보이는 전시다.




<넘겨짚기 도구> 2021 미송 황동 470×150×201cm





전시 제목이 시사하듯, 이번 전시에 소환된 신기루 같은 ‘놀이터’는 작가가 활동해온 장(場)인 ‘한국미술계’로 읽힌다. 2008년 첫 개인전에서 작가는 <검은 중력>이라는 어둡고 무게감 있는 구조의 작업을 선보이면서 이를 구축과 해체라는 양가적인 개념으로 확장시켜 자신의 작업 세계를 공고히 했고, 아카데미에서의 훈련과 수상경력까지 시스템에 주도적으로 적응 또는 저항해나가는 이 구역 놀이터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그의 대표작 격인 <구축/해체>나 <오브제 A> 같은 작업에서는 아파트 같기도 레고 블록 같기도 한 건축적 덩어리가 세워지는 듯하면서도 허물어져 내리는 것 같은 아이러니한 구조적 긴장감을 보여주었다.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와 그 기저의 불안정성이 역설적이고 뜻 모를 욕망을 야기했고, 이 아이러니가 불러오는 긴장감과 함께 암울한 죽음의 정서가 작가 심승욱의 시그니처(signature)였다. 매체적으로도 비조각과 조각 사이를 넘나들며 욕망이 구현되는 상반된 양태를 드러내는 데에 집중해왔다. 2018년 ‘강원국제비엔날레’에 등장한 펜타곤(pentagon) 구조와 확성기 형태의 <안정화된 불안-8개의 이야기>는 빈곤, 전쟁, 환경의 문제를 건드리며 구축/해체의 긴장감 체재에서 인권의 문제로 변주되는 확장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더불어 전시 <우주전쟁 그러나 시에스타>와 <새벽의 검은 우유>를 기획하면서 동료작가와 연대하는 기획자로서의 역량도 보여주었다. 그러던 와중 작가는 어느 순간 놀이터가 사라지고, 누군가에게 뺏긴 것 같기도 하다가, 심지어 원래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었나 싶기도 한 무중력의 상태를 맞이한다. 이렇게 작업에 대한 전면 재고라는 도전을 하게 하고 실천과정에 제동을 걸게 할 만큼 영향을 미친 현타(현실 자각 타임)의 원인은 무엇인가? 성장한 작가에게 놀이터의 기구들이 재미없어진 것인가?




<Merry! Go Around!>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12×162cm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작업이, 작가가, 전시장까지, 이렇게 세 가지 요소가 상호 맞물려 인증 받는 시스템이란 것이 있다. 예술계를 만들어내는 이 서클은 일탈자 없이 자본 안에서 밀접하게 관여하며 순환하지만 폐쇄된 구조여서 마치 고인 물처럼 되기 쉽다. 그러기에 작가로서, 자신의 작업을, 인정받는 공간에서 전시하여 상호 인증되는 경력화 과정을 인지하고 능동적으로 활용하느냐 아니면 편승과 타협의 늪으로 보느냐는 관점마다 다르며, 이 속에서 작동하는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맞물린 욕망과 관계한다. 이미 순수의 시대, 천재의 시대는 지났고 이러한 이해관계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향유할 수 있는 태도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와 관계자들에게 요구되어왔다. 




<축제>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12×162cm




게다가 수용자와의 소통과 시장이라는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의 바다에서 헤엄쳐 살아나야 하기에 작가들은 어려움을 호소하다 이곳에서 자주 현타를 마주하거나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물론 여기서 전략이나 자본으로 귀결되는 유통과정을 허세와 기만 그리고 치사한 협잡 정도로 보고 분노하는 나이브함도 극복되어야 하는 덕목에 들어간다. 이 서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작가라는 고고함과 자존심을 지켜나가는 행위와 태도를 뻣뻣함으로 보지만 않으면 다행이고, 여기에 너무 집착해도 아이러니하게 스스로 인정 욕망을 드러내는 것으로 인식된다. 실천의 가치는 이 수렁에서 탄생되는 것이고 변수를 내재한 운(運)이기도 해서 현타는 그냥 고여 있지 않으려는 발버둥이자 또 다른 진보를 위한 시그널이다.     


작가는 지금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인간사회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매일 터져 나오는 사건·사고에도 귀를 쫑긋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그의 SNS에는 삐딱함과 비판적인 시각의 글들로 가득하다. 작가가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의견을 갖는 것은 작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다만 그가 작업방식의 외연은 넓히면서 자유롭길 원하나 외부로부터의 일말의 불의함에 저항하기에 작업은 자유롭지 못하게 되니 결과적으로 작가 스스로에게만 높은 잣대를 들이대며 상당히 가학적으로 되는듯하다. 게다가 사회적 발언과 작업의 텍스트는 분리된 것으로 동질화나 일치의 과정은 또 다른 문제이다. 작가는 액셔니스트보다는 아이러니스트로서 무관심하지 않고 유연하게 사회적 연대가 가능한 작가로서 또는 기획자로서 작업의 스펙트럼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하겠다. 




<구축 혹은 해체-부재와 임재 사이> 

2015 초산비닐수지, 알루미늄 확성기, 미송 구조목, 

아크릴릭 가변설치 약 600×600×420cm




우리는 누구나 일종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일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빈 곳은 채워지고 온전해져 안정적인 피안의 유토피아를 꿈꾼다. 하지만 한 번도 완전함을 맛보지 못한 우리는 꿈꾸기를 포기한다. 아니 애초에 없는 것을 상상하며 결핍을 만들어냈을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 불완전한 불안정의 시대를 익숙한 디스토피아이자 유토피아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이러한 동시대를 반영하여 역설적 상황이 공존하는, 아이러니에서 오는 긴장을 중요한 테제로 설정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서클이 작가들에게 매번 ‘구축과 해체’를 추동시키는 기제, 욕망하게 하는 드라이브를 어디서든 빨리 찾으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든다. 살짝 미쳐도 좋고 과해도 좋으니 차이를 욕망하고 생산하라고. 심승욱의 흔들림 없는 디투어(detour)가 의미 있어 보이는 이유다. 결국 이러한 행보가 이제까지의 노정을 뒤돌아보는 기회가 되고 진일보를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PA




심승욱





작가 심승욱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 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예술대학(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시카고 칼 해머 갤러리(Carl Hammer Gallery)에서의 <검은 중력 (Black Gravity)>을 시작으로 2009년 <검은 풍경 (Black Landscape)>, 2014년 <구축/해체>, 2015년 <부재와 임재 사이>, 2021년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놀이터>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국내는 물론 독일과 미국, 영국, 싱가폴 등에서 열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며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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