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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57, Oct 2019

예술과 후원

Art and Patronage

최근 미술계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던 새클러 가문(The Sacklers). 제약회사 퍼듀 파마(Purdue Pharma)의 소유주인 가문은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OxyContin)으로 오랜 시간 부를 축적해왔다. 사진작가 낸 골딘(Nan Goldin)이 밝힌 이 같은 사실로 그간 숨겨왔던 추악한 모습이 드러나자, 이들의 후원을 받아 온 영국의 테이트 미술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등은 새클러의 이름을 전시관에서 삭제하거나 그들의 후원금을 일절 받지 않는 것으로 강력한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이 사건을 출발점 삼아「퍼블릭아트」는 현대미술, 그리고 미술 기관들의 발전에 혁혁한 공헌을 해온 후원과 후원자의 발자취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며 그 원론적 태도를 살피는 기획을 마련했다. 도대체 예술과 후원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중심엔 무엇이 존재하는 걸까.
● 기획 정송 기자 ● 진행 편집부

Marie Losier & Pauline Curnier Jardin Exposition 'Parties, Sans éteindre la lumière' 05/21-06/29/2019, Fondation d’Entreprise Ricard © Marc Do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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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 Hzone 대표,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박은지 독일통신원, 김남은 호주통신원, 정재연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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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Ⅰ

예술어떤 시간에 담아낼 것인가?_이대형

 

SPECIAL FEATURE Ⅱ-Ⅰ

메세나의 미덕 혹은 진실_정지윤

 

SPECIAL FEATURE Ⅱ-Ⅱ

경제적 가치와 윤리적 가치의 기로에선 예술 후원_박은지

 

SPECIAL FEATURE Ⅱ-Ⅲ

미래를 보는 후원자의 안목_김남은

 

SPECIAL FEATURE Ⅱ-Ⅳ

예술 지원을 자처하는 도시뉴욕_정재연





Jake Naughton

 <Dual Shadows East Africa's LGBT Refugees> 

series ‘Project Grant’ of ‘Flash Forward 17’

 




Special feature Ⅰ

예술어떤 시간에 담아낼 것인가?

● 이대형 Hzone 대표

 


예술은 시대라는 그릇에 담긴 물처럼 그 형태가 유동적이다황금 성배에 담았을 때투명한 유리컵에 담았을 때항아리에 담았을 때 물은 그 형태와 의미를 달리한다역으로 예술이라는 액체의 속성에 맞게 시대의 그릇을 바꿀 수 있다고 노력해 보지만 그 성공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인간의 상상과 행동이 사회적 약속 즉 제도에 의해서 통제되듯이예술이란 콘텐츠는 그것을 담아내는 맥락(context)에 의해서 의미와 형태가 결정될 확률이 높다그래서 우리가 예술 후원을 실천할 때는 예술이란 콘텐츠가 아닌 그릇에 해당하는 문맥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즉 제도와 정책 차원에서 얼마나 유연하고투명하고포용적인 그릇을 만들어 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현명하다


예술을 후원한다며 ‘을 건드리면 잠깐 찰랑일 수 있으나곧 탁해지고오염돼 본래의 가치마저 잃어버리는 예는 차고 넘친다결과적으로 어떤 그릇어떤 제도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그 안에 담길 물의 속성을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그 물이 그릇을 깨고 새로운 의미와 형식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의 역사는 그것을 담아내는 제도그릇문맥의 전복과 극복의 연속이었다주술과 종교왕과 귀족성직자로부터 자유를 얻은 예술은 근대화와 함께 대중과 시장 속에서개인주의와 다원주의의 물결 속에서 더 복잡한 형식과 내용으로 진화해 왔다


그러나 경계를 초월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측면에서 예술의 본질적 가치는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다이집트의 피라미드이탈리아의 콜로세움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모나리자>,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Shigeru Ban)의 페이퍼 건축물가나 엘 아나추이(El Anatsui)의 작품을 보며 느끼는 감동이 말해주듯예술은 시간공간장르국적을 넘어 유의미한 가치를 담아내고전달하는 인류 공통의 자산임이 분명하다그런 이유로 국가는 박물관미술관을 통해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연구 기록하고도시는 비엔날레아트페어를 통해 지속가능한 문화관광자원을 확보한다반면 기업은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연결하며유연하고 창의적인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이같이 각자 여러 가지 이유로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지만그 결과가 꼭 위대한 예술작품을 탄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Installation view

 <Diana Thater: The Sympathetic Imagination>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November 22,

 2015-February 21, 2016 © Diana Thater Photo © Fredik Nilsen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그중 가장 중요한 요소가 시간이다회계연도 내에서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행정 편의주의는 긴 호흡으로 상상하는 예술가들의 창작과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시간 맞추기용 짜깁기 결과물을 양산하는데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아트시(Artsy)’  2016년 가장 영향력 있는 큐레이터로 선정된 LA 카운티미술관(이하 LACMA)의 브릿 살베슨(Britt Salvesen) 큐레이터는 “좋은 전시를 기획하기 위해서는 평균 5년이 필요하다는 말로 자신이 기획한 전시의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테이트 모던(Tate Modern)의 전시 디렉터 아킴 보르하르트-(Achim Borchardt-Hume) “시간의 길이만큼 큐레이터와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결정된다라는 설명과 함께 중장기적인 파트너십과 후원문화가 없이는 좋은 전시 프로그램과 좋은 작품을 창조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결국 예술 후원의 본질은 ‘자본에 있으나그것의 성공을 결정하는 변수는 ‘시간이다. ‘시간을 해석하는 관점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같은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결과는 달라진다


자본의 규모는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쉽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그러나 ‘시간을 이해하는 행정 편의주의는 예술 창작 과정에 대한 몰이해와 결합하여 시간에 쫓긴 동어반복을 양산하는 예견된 실패를 낳는다. ‘2019 베니스 비엔날레(2019 Venice Biennale)’의 리투아니아관(Lithuanian Pavilion) 18만 유로라는 적은 예산으로 ‘황금사자상(Golden Lion)’을 수상하였다한국관독일관일본관처럼 자체 국가관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별도의 전시장을 얻기 위해 임대료까지 지급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놀랍다. “좋은 전시를 위해 최소 1년 전에는 전시 큐레이터를 선정한다적어도 시간이라도 충분히 주기 위한 행정적인 배려다.” 리투아니아관 큐레이터 주스테 요누팃(Juste Jonutyte)의 설명이다참고로 한국관의 경우 평균 11개월 전중국관의 경우 평균 3.5개월 전에 큐레이터 선정이 이루어진다이에 비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 총감독 선정은 전시 오픈 18개월 전,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ementa)’의 경우는 4 2개월 전부터 큐레이팅이 시작된다.




Maja Smrekar je lani s projektom <K-9_topologija> 

v kategoriji hibridne umetnosti na Ars Electronici osvojila

 zlato niko Letos so umetnico povabili k sodelovanju na 

spektakularnem glasbenem dogodku Big Concert Night Foto: 

Maja Smrekar / Galerija Kapelica




예술 창작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바라보는 정부행정 관료들의 관점이 그 어떤 후원 금액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미술관 관장의 평균 임기를 살펴보면 더욱 선명해진다테이트 미술관(Tate)을 세계적인 기관으로 성장시킨 니콜라스 세로타(Nicholas Serota) 관장의 28년간의 리더십을 통해 테이트 모던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전시켰고, 1995년부터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이끄는 글렌 로리(Glenn D. Lowry) 관장, 2008년부터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을 맡은 리처드 암스트롱(Richard Armstrong) 관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그들이 특별히 더 똑똑하고 전문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사실은 이 세계적인 미술관들의 관장들은 최소 10평균 20여 년 동안 관장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전시를 기획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3-5년이라고 생각한다면그리고 한국의 전시를 해외로 보내고 국제 교류 프로그램을 완성하기 위해 최소 5년의 세월이 필요함을 고려하면한국의 미술관장 임기의 경우 2년 연임혹은 3년 연임 등 전혀 국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이같이 한국의 국·공립 미술관 관장의 짧은 임기로 인한 잦은 교체와 학예 인력의 순환보직으로 인해 해외 미술계에서 한국 국공립 미술관과 긴 호흡의 혁신적인 전시 프로그램을 논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결국 좋은 예술 후원은 자본의 문제를 넘어 예술을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로 이어진다예술의 외연을 넓히고 미래와 소통하기 위한 태도와 관점은 중장기적인 후원 정책 없이는 불가능하다. ‘현대자동차의 글로벌 아트 파트너십’ 프로그램들은 ‘물리적인 관점의 시간 ‘철학적 관점의 시간’ 차원에서 좋은 예술후원 사례이다


물리적으로 10년의 미술관 파트너십 체결을 통해 국립현대미술관테이트 모던, LACMA 큐레이터들은 10년 앞을 상상하며 10년 시리즈 전시와 출판을 기획할 수 있게 되었고철학적으로 작가를 선정하면서 장르국적젠더 문제를 보다 균형 있게 안배할 수 있는 시간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또한현재 완성된 컬렉션 작품을 구매하는 수동적인 지원이 아닌 커미션 후원을 통해 미래 가능성에 주목하며 기업의 미래지향적 철학을 은유적으로 선언하는 효과도 가져왔다중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파트너십은 예술에 대한 높은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다시 말해 물리적인 시간의 길이가 예술가들의 상상력의 폭과 깊이를 좌우한다는 점을 상기하며컬렉션 단계를 넘어 커미션으로부터단순 전시를 넘어 근본적인 리서치 단계부터 후원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관점이 중요하다. 2019년 상반기 글로벌 미술계를 놀라게 한 ‘현대 테이트 리서치 센터트랜스내셔널은 글로벌 미술계에 대한 오랜 관찰과 준비를 통해 이루어낸 결과이다.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미술사와 문화 현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후원한다는 발상은 스펙터클한 전시물과 많은 관람객을 기대하는 전통적인 기준에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그래서 이는 더욱 용기 있고 의미 있는미술계의 가치 사슬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긴 호흡으로 짚어낸 파트너십이다.





Katarína Dubovská 

<Unknown Plant at the Edge of the Arctic> 

Ausstellungsansicht ASPN Galerie, Leipzig 2018 

©Sophia Kesting




결국 성공적인 예술후원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시간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그러나 이른 시점에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없는 불확실한 먼 미래의 경우 예술후원 자체가 어려운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예술후원의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이 과거에 있거나숫자 기반의 데이터에 의존하는 일은 그것을 관리하는 행정의 입장이지 예술의 입장이 아니다긴 호흡으로조금 더 멀리 바라볼 수 있을 때예술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여기 ‘현실이라는 거대한 거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이 거대한 거울에 비친 환영을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 속에서 예술가란 인간이 나타났다어느 날 그는 작은 망치로 거대한 거울 표면을 두들기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표면에 금이 가고 작은 거울 조각이 떨어져 나왔다그는 울퉁불퉁 날카롭게 깨진 위험할 수도 있는 거울 파편을 두 손에 들더니 그 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거울의 각도를 이리저리 틀어보며이전에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풍경을 발견한다현실이란 거대한 거울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파편이 보여준 새로운 풍경에 주변 사람들은 열광했고이 작지만 낯선 풍경은 곧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또 다른 거대한 미래풍경으로 진화한다이렇듯 예술은 현실에서 태어났지만또 다른 현실또 다른 미래를 낳는 모태이기도 하다그런 측면에서 예술의 정의를 미술사미술관 등 전통적인 미술계의 맥락이 아닌 보다 광범위한 테두리 안에서 살펴봐야 한다나이테의 숫자를 읽으면 나무의 나이를 읽어 낼 수 있다그래서 나이테의 중심 부분에 가까울수록 과거를외부세계와 맞닿아 있는 껍질 부분에 가까울수록 미래를 상징하게 된다같은 논리로 사람들의 인식 경계선 역시 경험이 쌓이고 더 많은 정보를 읽힐수록 사고의 경계선은 더 확장된다


예술가는 태생적으로 인식의 경계선에 서 있기를 좋아한다좋은 예술은 경계선에 계속 서 있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그래야 현실과 제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반면 그것을 둘러싼 제도는 과거와 전통의 중력 에너지를 이용해 껍데기를 깨고 외부로 나가려는 변화의 운동 에너지에 저항한다이것이 살아 있는 예술의 속성이다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예술과 자본예술과 제도의 관계를 어떤 ‘시간개념을 가지고 설정하는가에 따라 예술후원의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조금 더 멀리 바라보았을 때예술의 현재가 아닌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때조금 더 유연하고 확장적인 후원 제도가 가능하고그래야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예술을 기대할 수 있다.

 

 

글쓴이 이대형은 큐레이터로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을 역임했고지난 6년간 현대자동차 아트 디렉터로서 글로벌 아트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총괄 기획하였다. 2018년과 2019년 유럽연합 ‘STARTS Prize’ 심사위원을 역임하며 과학테크놀로지예술비지니스의 융복합 실험 프로젝트를 발굴하며 21세기 예술이 어디에서 어떻게 거주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

 




<Abraham Cruzvillegas: Empty Lot> Hyundai Commission 

2015 © Abraham Cruzvillegas Photo: Andrew Dunkley 

©TATE 2015


 

 


Special feature Ⅱ-Ⅰ

메세나의 미덕 혹은 진실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화가가 후원자를 만나러 긴 여행길에 올랐다도착 시각이 다다를 무렵후원자는 하인과 개를 데리고 화가를 마중하러 나간다가지런히 잘 정돈된 수염말끔한 녹색 수트를 차려입은 후원자는 화가를 보자마자 장갑을 벗고양팔을 조심스레 펼치며 그에게 정중히 인사를 청한다이에 비해화가는 행색이 초라하다장시간 여행한 탓인지그가 입고 온 옷과 신발에는 지저분한 얼룩들이 가득 묻었다그러나 화가는 개의치 않는다오히려 그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후원자를 격 없이 맞이한다. 19세기사실주의 회화를 꽃피운 구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는 실제 자신의 후원자였던 알프레드 브뤼야(Alfred Bruyas)와 처음 만나는 순간을 위와 같이 묘사했다


예술사를 통틀어 쿠르베만큼 자신감 넘치는 화가가 또 있을까이름 모를 누군가의 장례식 풍경을 황제의 대관식처럼 웅장하게 묘사하는가 하면여성의 음부를 아주 세밀하고 노골적으로 재현해 보는 사람들을 낯뜨겁게 만들기도 했다모두가 터부시하는 주제자신이 몸소 체험한 현실을 가감 없이 대담하게 화폭에 담아내던 쿠르베였지만위의 작품만큼은 실제 상황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이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예술가와 후원자가 한 그림에 등장하는 것이 드물었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보면 일리가 있다리얼리즘의 거장이 미화한 현실그것은 바로 후원자 앞에 당당히 선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Gustave Courbet

 <La rencontre, ou “Bonjour Monsieur Courbe”> 

1854 Huile sur toile 132×150,5cm Musée Fabre, 

Montpellier, France




메세나의 역사


메세나(Mécénat)는 언제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그 기원은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로마제국의 초대 황제로 등극한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친구이자정치적 동반자였던 마에케나스(Maecenas)는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프로페르티우스(Sextus Propertius),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 등 당대 최고의 문예인을 발굴해내며, ‘라틴 문학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데 큰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오늘날 예술가 후원 활동을 의미하는 ‘메세나라는 단어도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두 세기 동안 아름다운 시와 노래가 울려 퍼지며 지속한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풍경은 후대의 권력자들에게 문화예술 후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귀감이 된다이후 메세나의 전통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황금기를 맞이한다. 15세기피렌체는 그야말로 ‘예술가의예술가에 의한예술가를 위한 도시였다안드레아 벨 베르키오(Andrea del Verrocchio), 보티첼로(Sandro Botticelli),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와 같은 인재들이 대거 배출되고그들의 작품들이 도시 곳곳을 장식했다만약 메디치 가문이 없었더라면그 위대한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의 후원이 없었더라면예술가들의 재능은 결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으리라


이탈리아에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면프랑스에는 프랑수아 1(François Ier)가 있었다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화폭에 매료된 왕은 황혼길에 접어든 노화가가 자신 곁에서 편안하게 말년을 보내며 작업할 수 있도록 성 한 채를 내어주었고이탈리아 예술가들을 퐁텐블로(Fontainebleau)로 데려와 웅장한 왕궁을 짓게 하기도 했다미술사가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예술가 열전』에서 왕이 다 빈치의 임종을 지킨 일화를 언급하는가 하면퐁텐블로를 ‘새로운 로마라고 부르며프랑수아 1세의 메세나로서의 면모를 강조한 바 있다그러나 이 위대한 예술가들의 삶은 그들의 작품만큼 눈부시게 아름답지 못했다그들의 능력을 흠모한 자들은 많았으나예술가와 후원자들은 여전히 주종 관계에 머물러 있었고자유로운 창작활동에는 적지 않은 제약이 뒤따랐다수집가주문자귀족성직자는 메세나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갑을관계에서 자유로운 예술가는 없었다그 암묵적인 룰을 공개적으로 꼬집은 장본인이 쿠르베였다앞서 언급한 그의 <만남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출품작이었다


작품은 공개와 동시에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후원자를 대하는 작품 속 쿠르베의 태도는 너무 오만했고대중들을 물론 비평가들까지 후원자와 동등한 위치에 서 있는 예술가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한 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평가는 달라졌다자신감이 넘치는 쿠르베의 모습은 후원자들의 권력과 경제력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독립적인 예술가로서의 의지가 표출된 것이라는 해석이 덧붙는다예술사학자미쉘 일레르(Michel Hilaire)는 작품 속에 묘사된 두 사람의 관계를 “19세기에 찾아보기 힘든 예술적 유토피아라고 설명한다다시 말해화가가 이토록 과장된 표현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창작의 자유를 보장해준 후원자 덕분이라는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쿠르베의 과장은 미화가 아니라 현실을 역 반영한다쿠르베의 작품이 발칙했던 이유는 어쩌면 예술가의 오만이 아니라그가 들춰낸 불편한 진실 때문일지 모른다이처럼 쿠르베가 던지는 화두는 분명하다자본 없이 가능한 예술은 없다이 불변의 명제를 곱씹어보면예술가와 후원자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에 놓여 있고메세나의 역사가 곧 예술의 역사라는 결론에 도달한다쿠르베가 꿈꾼 이상적인 메세나는 무엇이었을까.  

 



<Galerie de vues de la Rome Antique> 

© RMN-Grand Palais (Musée du Louvre) Adrien Didierjean




국가 정책으로서 이어진 메세나의 전통


고대 로마제국으로부터 시작된 메세나의 오랜 전통은 유럽 곳곳에 뿌리내렸다하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피폐해진 유럽 국가들은 1950-1960년대에 들어와서야 새로운 문화예술정책을 세울 수 있었다전후 세대가 당면한 과제는 과거의 재건이었다전쟁의 잔해를 씻어내고 지나간 영광의 시대를 복구해야 한다는 사명감 속에서 메세나의 전통은 부활한다이를 완전하게 성공시킨 나라는 프랑스였다. 1959년 신설된 문화부의 초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인류의 예술적 자산이 최대한 많은 프랑스인에게 개방되고문화적 유산을 보호하며예술의 창작을 장려하는 것이 국가와 문화부의 임무라고 밝히며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을 대중에게 개방했고문화재 복원과 창작활동 지원사업에 힘을 쏟았다. ‘복원(restauration), 창작(création), 보급(diffusion)’의 적절한 균형 속에서 ‘문화예술의 민주화를 이룩한 프랑스는 80년대 이르러 또 한 번 진화를 거듭한다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 대통령 시절 재임한 자크 랑(Jack Lang) 문화부 장관은 우열을 가리지 않고 모든 형태의 창작을 포옹하는 ‘문화예술의 다양화대중화’ 정책을 펼치며예술가들이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안전한 제작환경을 마련하는 한편탈 장르탈 지역탈 세대에 기반 한 프로그램을 통해 창작자와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데 주력한다오늘날 프랑스 곳곳에서 펼쳐지는 문화예술축제예술가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사회보장제도는 자크 랑이 남긴 성과라고 보아도 무방하다수천 년의 역사가 깃든 문화재와 동시대 예술이 나란히 숨 쉬는 곳예술가와 대중이 하나가 되는 곳혁명과 전쟁을 거쳐 왕정에서 공화국으로그리고 문화예술 강국으로 프랑스가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정부의 지원즉 국가라는 거대한 메세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Bassin de Latone <Dorure à la feuille>

 © Château de Versailles, Thomas Garnier

 



아이야공 법(Loi Aillagon)


국가가 메세나라는 거창한 수식어 뒤에 프랑스는 개인과 기업 메세나의 사회적 공헌이 가장 낮은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70년대프랑스에서 메세나가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말이 흘러나왔을 정도다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지원책 아래개인 기부자의 수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였고기업 메세나의 필요성과 효과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프랑스와 유럽영미권 국가들의 메세나 정책을 비교 분석한 기 드 브레비송(Guy de Brébisson) 8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예술 메세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높아졌지만개인과 기업 차원의 메세나 활동이 다른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이라고 지적한다실제로 프랑스 문화통신부의 발표에 따르면, 2002년 미국의 경우 메세나 투자 비용이 국내 총생산(GDP) 2.1%을 차지한 데 비해프랑스는 0.09%,  2억 원에 그쳤다이 수치는 이웃 나라인 덴마크독일영국이탈리아보다 더 낮은 것으로프랑스에서 정부 차원 이외의 더 많은 메세나의 활동을 유치해야 한다는 견해가 잇따랐다


이러한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 것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의 출범이었다. 1980-1990년대 카르티에 그룹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알랭-도미니크 페렝(Alain-Dominique Perrin) 전 회장과 20세기 중반현대조각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며누보 레알리즘의 선봉에 섰던 거장세자르 발다치니(César Bladaccini)의 만남은 프랑스 메세나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다예술가와 수집가로 인연을 맺기 시작한 그들의 관계는 서로에게 둘도 없는 벗으로 발전했고그들의 우정은 1984 ‘까르티에 재단 창설이라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구현하기에 이른다페랑 회장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세자르의 조각을 흉내 낸 작품들이 넘쳐났고나는 까르티에의 모조품들로 고통받았던 시절이었다그러나 그는 예술가들이 모조품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며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자유로운 창작과 그것에 대한 평가라고 했다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다정부는 5년이 넘게 걸릴 일이지만기업은 5주 안이면 가능하다.” 그가 내놓은 이 솔직하고도 명쾌한 답변은 2003년 발표된 일명, ‘아이야공 법’ 제정으로 이어진다개인과 단체기업 메세나의 투자와 재단설립을 용이하게 하고후원에 대한 세금감면이 법안의 골자를 이룬다개인 후원자의 경우 66%, 기업 메세나의 경우 60%, 그 후원의 목적이 문화재 환수와 관련된 경우 90%의 세금감면이라는 파격적인 혜택을 내걸고프랑스는 국내외 수많은 예술 후견인들을 불러 모으는 데 성공했고이름만 들어도 아는 기업들이 줄줄이 문화예술재단을 출범했다프랑스기업메세나협의회(ADMICAL)의 조사에 의하면, 1995 1 4,500만 유로였던 후원금이 2008 25억 유로까지 대폭 증가했다늦은 만큼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 프랑스 메세나는 먼저 복원 분야에서 구체적인 결과를 내기 시작한다특히 프랑스 왕실의 역사와 전통이 담긴 루브르 미술관과 베르사유 궁전은 새롭게 재편된 메세나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왕궁과 문화재 대규모 복원사업이 잇따라 추진되었고, 2007년에는 프랑스 건설업체 뱅시(Vinci) 1,200만 유로를 투자한 ‘거울의 방’ 복원 소식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았다또한 루브르 미술관에 보관된 휘황찬란한 왕관들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복원되었다문화재 복원 사업뿐만 아니라기업 재단 역시 큰 성과를 거두었다여느 국립 미술관 못지않은 방대한 컬렉션과 다채로운 전시 프로그램예술가 레지던시와 공모전 등을 통해 창작자와 대중과 활발한 쌍방향 소통을 시도하는 한편재단 건물 자체도 하나의 건축물로프랑스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Vue de l’exposition <Versailles - Visible / Invisible>

 Château de Versailles, 2019 Courtesy de l’artiste Viviane Sassen

 © Tadzio




21세기 프랑스 메세나의 경쟁력과 과제


아이야공 법’ 제정 15년 후프랑스는 ‘메세나의 엘도라도라 불린다더욱이 작년에는 의료교육스포츠 분야보다 비교적 뒤처졌던 문화예술계 메세나가 25%를 기록하기도 했다그러나 이것은 꼭 수치적인 결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경제적 지원이 확충되는 동안메세나의 내용과 구조 역시 발전했다주목할 것은 메세나의 분야가 점점 더 세분화전문화되고 교육·양성기관의 형태로 구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현재 프랑스 기업 메세나가 가장 주력하는 부분은 인재 발굴 및 양성이다대표적으로 30년간 젊은 감독들을 배출한 간 재단(Gan Foundation), 사진작가들을 발굴해 유명 사진 출판사악트 쉬드(Actes sud)와 협업으로 작가개인집을 출간하는 HSBC 재단해마다 현대예술작가상을 개최해 신인 작가들의 전시를 지원하는 리카 재단(Fondation Ricard)을 꼽을 수 있다예술가들의 데뷔 무대로 통하는 재단의 공모전과 콩쿠르는 곧 재단의 정체성을 대변하기도 한다특정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후원하고인재 육성 인프라를 구축·개발하는 과정에서 기업 재단은 단순히 재정적 후원자의 역할을 넘어 하나의 전문화된 기관으로서 발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메세나의 역할 확대는 프랑스기업메세나협의회에서 주최하는 ‘오스카상(Prix Oscar)’과 포럼 덕분이다훌륭한 메세나를 선별하는 시스템과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메세나 활동이 물질적 차원의 보상과 후원에 머물지 않도록 한 것이다. 1986 ‘오스카상을 수상한 까르티에 재단은 지금까지도 기업 메세나의 모범사례로 꼽힌다경제적 효과보다 예술적·사회적 가치를 우선시했기 때문이다기업 메세나의 개념이 명확하지도 않던 때아이야공 법안이 있기도 전 설립된 까르티에 재단은 진정한 메세나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킨다올해 4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염 속에서 무너졌다이를 복구하기 위해 프랑스 대기업 총수들과 오너 일가들은 앞다투어 거액의 기부를 약속했다


하이패션 브랜드들을 보유한 케링 그룹의 피노(Francois-Henri Pinault) 회장을 비롯해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의 아르노(Bernard Arnault) 회장로레알 그룹과 최대 주주 베탕쿠르 일가(The Bettencourt family)에 이르기까지화재가 발생한 지 하루 만에 무려 85,000만 유로가 모금되었다하지만 현재까지 실제로 걷어진 모금액은 15백 유로뿐이다이 중 대부분은 일반 대중이 100유로 미만으로 소액 기부한 것이다참담한 소식이다설상가상으로 기부금의 세액공제를 90%까지 높여야 한다는 아이야공 전 문화부 장관의 발언으로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은 정치적 논쟁으로 번졌다지원금을 확충하기 위한 방책일 수 있지만기업의 자선 목적이 이미지 쇄신과 조세 회피를 위한 것은 아니냐며 기부자 명단이 조세 회피처 블랙리스트와 같다는 날 선 비판들이 쏟아졌다


아이야공 전 장관은 주장을 철회했고거액 기부를 약속한 기업들은 세액공제의 혜택을 받지 않겠다고 밝히며 논란은 일단락되었다눈앞에서 처절하게 불타는 성당을 보고 프랑스 국민들은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그리고 불과 5개월 후국민의 힘으로 소생될 것이라 믿었던 성당은 존망의 갈림길에 서 있다이처럼 오늘날의 메세나는 더는 예술가와 후원자양자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국가와 개인정치와 윤리사익과 공익의 가치를 대변한다시대가 흘러도우리는 같은 물음 앞에 서 있다과연 진정한 메세나는 무엇인가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을 둘러싼 사회 각층의 첨예한 갈등은 쿠르베가 그랬듯미래의 메세나를 위해 견뎌야 할 진통일 것이다.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동 대학원 현대미술과 뉴미디어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현재 동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 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View of the exhibition <Trees> presented from July 12 

to November 10, 2019at the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Paris Photo © Thibaut Voisin





Special feature Ⅱ-Ⅱ

경제적 가치와 윤리적 가치의 기로에선 예술 후원

● 박은지 독일통신원

 


얼마 전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50년간 변함없었던 박물관·미술관 정의에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 정의세계 평등지구적 웰빙(Well-Being)’ 등을 추가했다현재는 이를 철회하고 재논의 중인데작품 수집과 보존연구해설전시교육 등의 이전 정의와 달리 너무 추상적이고 정치적이라는 비난 때문이다어떻게 문자화되든지 지난 반세기 동안 박물관·미술관의 역할에 많은 변화가 생긴 것만큼은 분명하다전시장이 더는 진공 상태인 화이트 큐브가 아닌 동시대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소로 변모하면서미술관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문화적 책임과 공적 기능을 요구받고 있다이에 따라 기관 운영에 필요한 예술 후원 방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했는데본 글은 베를린에 위치한 전시기관들을 사례로 20세기 이후 독일의 민간 예술 후원의 역사를 개괄하고이와 관련한 이슈들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1)





제임스 시몬 갤러리(James-Simon-Galerie) 입구 전경

 © Ute Zscharnt für / for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미술 애호가의 예술에 대한 헌신


민간의 예술후원은 크게 금전적 지원과 비금전적 지원(작품 기증장소인력 제공 등)으로 이뤄진다이는 독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주로 왕정과 지배계급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예술 후원은 18세기 후반 산업화의 영향으로 부를 축적한 기업가와 은행가신흥 재력가로 확대되면서 본격화된다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민간 후원이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장려되기 시작한 때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다. ‘황금의 20년대라고 불리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적 번영과 문화예술의 발전은 두 차례 전쟁과 나치 집권 시기 자행된 박해 정책으로 크게 퇴보한다특히 나치당은 ‘아리아인이 아닌(Nichtarier)’ 예술가의 활동을 법적으로 금지하고큐비즘과 미래주의다다이즘의 양식을 따르던 작품들을 ‘퇴폐 미술로 규정하여 몰수했다2차 세계대전 당시 조직된 ERR(Einsatzstab Reichsleiter Rosenberg)은 독일군 점령지의 국립박물관과 미술관그리고 유대인 컬렉터가 소장 중인 주요 유물과 서적예술 작품들을 대거 약탈했는데, 1944 ERR이 자체 추정한 약탈품만 해도 42 7,000t에 달했다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등지고 베를린 박물관 섬에 위치한 제임스 시몬 갤러리(James-Simone Gallery)는 제국주의 시대 수집된 작품들이라는 점과 20여 년의 공사 기간그에 따른 과도한 예산지출 등 여러 이슈 속에서도 지난 7월 성황리에 개관했다.





Konrad Lueg <Ohne Titel> 1964, 플릭 콜렉션

(Friedrich Christian Flick Collection)의 작품으로 현재 함부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에서 전시('Local Histories')중이다

© Stefan Altenburger / VG Bild-Kunst, Bonn 2018 / bpk / 

Nationalgalerie im Hamburger Bahnhof, Staatliche Museen zu Berlin, 

Friedrich Christian Flick Collection




제임스 시몬은 19세기 후반 면직물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20대 중반부터 가업 경영에 참여해 모은 그의 재산은 당시 베를린에서 일곱 번째에 이를 정도로 막대했다고 한다그는 자신의 경제력을 통해 유대교 사회에서의 영향력은 물론 카이저 빌헬름 2(WilhelmⅡ) 황제를 위한 여러 협의회와 단체에 소속되어 정치적 지위와 사회적 명망도 함께 얻었다특히 카이저 프리드리히 박물관(Kaiser-Friedrich-Museum, 현재 보데 미술관관장이었던 빌헬름 보데(Wilhelm von Bode)와의 친분은 그가 예술 후원자의 길을 걷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다그는 1885년 프란체스코 디 바누치오(Francesco di Vannuccio) 1380년 작 회화 한 점을 시작으로 1904년에는 15세기 르네상스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의 작품과 기타 회화 작품 450여 점을 기증했으며이후 350여 점의 작품을 추가로 박물관에 이관했다


이처럼 20세기 초 독일의 정치사회예술의 발전을 위해 열성적으로 후원했던 그였지만나치당 집권 시기의 인종차별 정책은 피해갈 수 없었다더 정확히 말하면 1932년 그가 작고한 뒤 예술 후원자로서의 그의 명예와 작품이 겪은 수모다. 1938년 유대인 후원자가 기증한 작품과 후원 내역에 그들의 이름을 새기지 못하도록 하는 법령이 제정됨에 따라 제임스 시몬이라는 이름은 베를린의 박물관·미술관에서 삭제됐으며보데 재임 시기 마련된 카이저 프리드리히 박물관의 ‘제임스 시몬 캐비닛도 철거되었다수십여 년 동안 지속해서 작품을 기증한 만큼 베를린 이곳저곳에 세워졌던 그의 흉상과 명패후원 관련 문헌들 또한 한동안 공개되지 않았다따라서 제임스 시몬 갤러리의 개관은 독일의 문화예술 발전해 헌신했으나 나치당에 의해 그 공로가 은폐되었던 예술 후원자에 대한 베를린시의 뒤늦은 감사함과 존경의 표시로 해석된다.

 



제임스 시몬 캐비닛 전경, 카이저 프리드리히 뮤지엄

(Kaiser-Friedrich-Museum, 현재 보데 박물관

1904년 촬영 © Staatliche Museen zu Berlin / Zentralarchiv




2의 문화예술 부흥기를 위한 노력들


사적이고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예술 후원은 20세기 중반부터 재단과 기업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이뤄진다독일의 문화적 전통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1951년 설립된 독일 경제문화예술 협의회(Kulturkreis der Deutschen Wirtschaft)는 기업가들의 문화예술 지원을 적극적으로 독려했다이듬해 독일연방공화국은 독일문화 보존을 위한 민간 공동체의 기금 조성과 예술음악문학건축 분야에서의 새로운 인재발굴을 위한 기초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덧붙여 일시적으로 서독에 대한 연합군의 점령정책이 완화되면서 문화산업에서 민간이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그뿐만 아니라 기업의 경영구조 변화는 예술후원의 주체와 목적방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18-19세기 가업을 승계한 개인이 회사의 이윤을 통해 예술을 후원했던 방식은 점차 기업이 법인회사로 전환됨에 따라 기업의 공식적인 예술후원사업으로 펼쳐진다후원 목적 또한 예술에 대한 개인의 애호나 공헌이기보다 기업 이미지 제고와 홍보투자 유치가 주를 이뤘으며기업의 컬렉션 운영과 전시 후원수상제도직영 기관 설립 등의 방식으로 추진된다이 밖에도 1970년대 본격화된 공공문화 정책과 민간 자금 유치를 위한 정부의 다층적인 금융지원동독과 서독의 사회적 통합을 위한 문화 예술의 효용성에 관한 연구 등 내외부적인 여러 요인으로 민간의 예술후원은 고무되었다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 방크(Deutsche Bank)의 메세나 활동은 이러한 독일 예술 후원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도이체 방크는 지난해 9월 베를린에 미술과 음악문학패션 분야 등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르는 전시 플랫폼 ‘PalaisPopulaire’를 개관했다


현재 이 은행은 본사가 위치한 프랑크푸르트 외에도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한 컬렉션을 운영 중이며국내외를 막론하고 대규모 국제전시와 미술 행사를 후원하고 있다이와 더불어 매해 젊은 작가를 선발하여 지원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후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도이체 방크의 후원 역사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초기의 컬렉션은 장기적인 계획이나 목표 없이 주로 창업자들의 초상화와 일부 임원진의 취향에 맞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이후 ‘일터에서의 예술(Kunst am Arbeitsplatz)’ 이라는 슬로건 아래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업무의 환경을 조성하고자 수집한 작품들을 사무실 곳곳에 전시하기도 했다현재와 같은 컬렉션의 모습은 1980년대 이후부터 형성된 것이다소위 기업들의 컬렉션 붐이 있었던 당시 도이체 뱅크도 컬렉션을 위한 별도의 건물을 신축하고미술 전문 인력을 고용해 현대미술의 동향에 부응하는 작품들을 수집했을 뿐 아니라 컬렉션 공개를 통해 대중에게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이와 더불어 미국과 유럽으로 국한되었던 컬렉션을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 작가들의 작품으로까지 확장했는데특히 무명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구입함으로써 순수한 작품 수집이 아닌 높은 이윤을 노린 투자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함부르크 반호프 현대미술관과 폭스바겐이 함께 운영 중인

 ‘VOLKSWAGEN ART4ALL’ 프로그램 진행 전경

2019 3월 촬영 작품Marjetica Potrc <Caracas: Growing Houses>

 2012 © Staatliche Museen zu Berlin, Nationalgalerie / 

Courtesy Marjetica Potrc und Galerie Nordenhake,

 Berlin / Stockholm




예술 후원득인가독인가?


물론 개인과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은 당사자만이 그 이유와 목적을 알 것이다앞서 봤듯후원이 후원자의 미술 애호 활동이었을 수도 있고국가적 위기 속에서 싹튼 문화예술 보호에 대한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또 예술적 가치를 이용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경영 전략일 수도 있겠다이유야 어찌 됐든 비영리 목적으로 설립된 문화예술 기관은 설립 취지와 기본 소임에 충실하기 위해 민간 자금 유치에 힘쓰고 있다후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미국만큼은 아니지만독일의 국공립 미술관들도 1990년대부터 감소하기 시작한 정부 지원금과 해마다 상승하는 유지비인건비작품 보험비운송비 등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이를 타개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이다


함부르크 반호프(Hamburger Bahnhof) 1996년 개관한 베를린 주립 현대미술관으로 경제적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개인과 기업 후원컬렉션 유치에 지속해서 노력해왔다미술관 개인 후원자(Freunde der Nationalgalerie)들을 위해 별도의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기업 후원을 통해 전시 기획과 수상제도 운용지역사회 커뮤니티 프로그램 등을 기획한다현재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내셔널갤러리 상(Preis der Nationalgalerie)’은 독일 버전의 ‘올해의 작가상으로 2년에 한 번씩 만 40세 미만의 예술가 가운데 한 명을 선발하는 수상 제도다후보 4인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미술관 후원자들과 BMW의 지원을 통해 이뤄졌다미술관에서 매주 첫째 주 목요일 진행되는 ‘VOLKSWAGEN ART 4 ALL’ 프로젝트는 이름처럼 폭스바겐의 후원으로 진행 중이며관람객에게 무료로 미술관을 개방하고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Near Life: The Gipsformerei-200 Years of Casting Plaster> 

전시 전경 James-Simon-Galerie, 2019 

© Staatliche Museen zu Berlin / David von Becker




이처럼 공공재원 외에 자금 유입과 후원 지지층 확대를 도모하기 위한 미술관의 다양한 시도들은 당연히 환영받아 마땅하다그러나 어떠한 경우에서든 예술 후원은 미술관의 공공성과 객관성그리고 윤리의식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안타깝게도 민간 재원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종종 미술관 운영에 대한 후원사의 간섭이 노골적으로 이뤄지기도 하고비윤리적으로 축적된 기업의 자금이 기부금과 작품 기증이란 명목으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유입되기도 한다함부르크 반 호프는 20세기 초반 회화부터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소장품을 매번 실험적인 방식으로 선보인 명실상부한 베를린의 대표 현대미술관이지만프릭 컬렉션(Frick Collection)의 후원을 비판 없이 수용함으로써 그 명성에 오점을 남겼다. 2004년부터 미술관은 프릭 컬렉션의 작품들을 대거 기증받아 전시 중이다문제는 이 컬렉션이 나치 집권 시기 군수 장비 제작을 위해 유대인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하고살인과 탈세를 일삼던 전범 기업에 의해 형성됐다는 것이다미술관이 프릭 컬렉션의 일부를 소장한 그다음 해 한스 하케(Hans Haacke)와 벤자민 부흘로(Benjamin Buchloh) 등이 참석한 간담회에서 이 문제가 국제적으로 공론화됐다그러나 미술관 측은 이후 이 컬렉션을 위해 6,000m2 달하는 독자적인 공간(Rieckhallen)을 제공했으며컬렉션의 일부는 현재 기획전 <Local Histories>에서 전시 중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여러 미술관을 후원했던 세클러 가문(The Sacklers)이 소유한 제약회사 퍼듀 파마(Purdue Pharma)가 마약 성분이 함유된 진통제 판매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자구겐하임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루브르 박물관 등이 더는 후원을 받지 않겠다고 밝힌 것과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향후 새클러 가의 후원은 받지 않을 계획이지만건물 내 설치된 ‘새클러 계단의 이름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더욱이 함부르크 반 호프와 제임스 시몬 갤러리 모두 정부 소유의 프로이센 문화유산 재단(Stiftung Preußischer Kulturbesitz)을 통해 운영된다는 점을 비춰볼 때유대인 후원자에 대해 감사함을 기리면서 동시에 나치 전범 기업의 컬렉션을 유치하는 기관의 이중성을 더욱더 이해하기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비영리 문화예술 기관들은 기업 메세나의 지원 활동과 후원 지지층의 확대를 통해 재원 조달의 채널을 다각화하고이로써 공공 기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그러나 이제는 후원의 경제적 가치와 기관의 윤리적 가치가 충돌했을 때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방안과 규제 마련도 함께 고심해봐야 할 것이다. (비록 재고 중이라고 하지만미술관이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 정의세계 평등지구적 웰빙을 고려하는 기관으로 재 정의되려면 말이다.

 

[각주]

본 글에 등장하는 1960년대 이후 독일 정부의 정책과 KDW, 도이체 방크의 메세나 활동에 관한 정보는 아래 논문을 참고했다. Anna Weiland Private Kunst- und Kulturförderung i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2017.

 


글쓴이 박은지는 성신여자대학교에서 미술사학과 석사학위 취득 후국립현대미술관 인턴을 거쳐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국제교류를 위한 전시업무를 담당했다현재 베를린 예술대학교(UDK) 미술교육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아티스트 북을 리서치하고 그것에 관한 이론 및 전시기획론을 연구 중이다.

 



<Faro bar and restaurant, Pharos> 

Photo: MONA/ Jesse Hunniford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MONA, Museum of Old and 

New Art, Hobart, Tasmania, Australia


 



Special feature Ⅱ-Ⅲ

미래를 보는 후원자의 안목

● 김남은 호주통신원

 


유서 깊은 예술적 유산을 지닌 유럽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지닌 호주독자적으로 더디게 진화한 호주 미술만큼이나 국가적 혹은 개인적으로 예술에 대한 후원이 시작된 역사 역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중요한 유산이나 개인적인 자본의 힘으로 미술관이나 예술 공간이 만들어지고 수준 높은 자선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불과 지난 30여 년 사이의 일이다하지만 통계적으로 큰 수치는 아닐지라도 예술에 대한 후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1850년대 골드 러쉬(gold rush)는 호주에 갑작스러운 번영을 안겨주었는데 당시 축적된 새로운 부()가 예술 분야에도 다양한 변화를 불러일으키며 후원의 길을 열어주었다. 1880년까지 세계에서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도시였던 멜버른은 전 세계에서 대거 유입된 이민자들과 세계 각지에서 건너온 사업가들에 의해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당시 큰 부를 거머쥐었던 알프레드 펠튼(Alfred Felton)의 사례는 호주 내에서 예술 후원 방식에 대한 본보기가 되었다


1853년 영국에서 호주로 넘어 온 그는 멜버른에서 약제사로 도매업을 하며 큰 돈을 벌었고 회사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여러 회사와의 합병을 통해 호주 전역에 약국을 설립했다이때부터 펠튼은 예술 작품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데미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아마추어 입장에서 작품을 꾸준히 수집했다. 1904년 펠튼이 사망한 이후 그의 유언대로 문화와 공동체를 지원하기 위한 ‘펠튼 비퀘스트(Felton Bequest)’가 설립되었고 자금의 절반은 자선단체에나머지 절반은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Victoria, 이하 NGA)이 미술 작품을 구입하는데 사용되었다펠튼의 기부가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NGA에 소장된 미술품의 약 80%가 펠튼의 유산으로 완성된 것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미술관의 소장품을 풍부하게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펠튼의 뒤를 이어 호워드 힌튼(Howard Hinton), 찰스 로이드 존스(Charles Lloyd Jones), 클로드 호킨(Claude Hotchin) 등과 같은 사업가들이 작은 갤러리를 설립하거나 소장하고 있던 미술품을 지역 미술관이나 공공 기관에 기부하며 자선 활동을 펼쳤다이러한 컬렉션은 20세기 초 호주의 예술적 관행과 기업의 후원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MR-II ferry docking at MONA> Photo: MONA/Stu Gibson

 Image Courtesy of MONA, Hobert, Tasmania, Australia




사업가들에 의한 후원의 역사는 호주의 명망 높은 기업인 트랜스필드(Transfield) 그룹의 활동에서 절정을 이루었다트랜스필드의 설립자 프랑코 벨지오르노-네티스(Franco Belgiorno-Nettis)는 시대를 앞서간 안목으로 호주의 현대 미술을 후원했고 그 전통은 반세기가 넘도록 이어져 왔다그는 호주 예술가들을 장려하기 위해 1961 ‘트랜스필드 미술상(Transfield Art Prize)’을 시행했고 호주 챔버 오케스트라(Australian Chamber Orchestra), 스컬프쳐 바이 더 시(Sculpture by the Sea), 시드니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Australia, 이하 MCA) 등을 후원하며 시드니의 아트씬을 다양하게 변화시켰다한편트랜스필드 아트 컬렉션(Transfield Art Collection)은 현대미술에 대한 벨지오르노-네티스(Franco Belgiorno-Nettis)의 여정을 설명해주는 주요한 개인 컬렉션으로 그가 사망하기 2년 전인 2004년부터 미술품 대여 제도를 도입하여 소장품을 임대 할 수 있게 했다


작품 대여 프로그램의 수익은 2010년 설립된 트랜스필드 재단(Transfield Foundation)에 기부된다하지만 무엇보다도 트랜스필드 그룹의 가장 큰 후원 활동은 1973년 시작된 ‘시드니 비엔날레(Sydney Biennale)’의 창립 파트너로서 호주 현대미술을 세계에 알리고 동시대 미술을 홍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하지만 2014, ‘19회 시드니 비엔날레(19th Sydney Biennale)’ 당시 트랜스필드 그룹이 파푸아뉴기니에 호주 정부의 역외 난민수용소를 운영하기로 하자 작가들이 이를 문제 삼으며 잇따라 보이콧을 선언하며 논란이 일었다이 사건 이후 트랜스필드 그룹은 40년 가까이 굳건히 지켜오던 비엔날레 최대 후원사의 자리를 닐슨 재단(Neilson Foundation)에 넘겨주게 되었다.




James Turrell 

<MONA's Pharos wing, featuring Unseen Seen> 

2017 Photo: MONA/ Jesse Hunniford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MONA, Museum of Old and New Art, 

Hobart, Tasmania, Australia




투자 전문가이자 플래티넘 애셋 매니지먼트(Platinum Asset Management)의 공동 창업자 커 닐슨(Kerr Neilson)이 만든 닐슨 재단은 다양한 예술 기관과 자선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2007년에 설립된 비교적 신생 재단이지만 창립 이래 9,800만 달러 이상을 지원할 정도로 현재 호주 미술 씬의 가장 전방위에서 후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그중에서도 시드니를 중심으로 한 활동이 두드러지는데 ‘시드니 비엔날레를 비롯하여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미술관(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칼도어 공공미술 프로젝트(Kaldor Public Art Projects)’, MCA를 후원하면서 시드니의 문화 경관을 풍요롭게 하고 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하고자 하는 재단의 목표를 이어가고 있다이외에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미술관(Art Gallery of South Australia), 퀸즐랜드 아트 갤러리(Queensland Art Gallery of Modern Art), NGV 등 호주 주요 미술관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위와 같이 사업을 통한 거대한 자본으로 이루어진 기업의 후원 활동이 일반적인 행보이지만 호주 미술을 발전시킨 개인 후원자들도 무수히 존재한다그중에서도 호주 미술 역사상 가장 유명한 후원자를 논하자면 단연코 존 리드(John Reed)와 선데이 리드(Sunday Reed)일 것이다경제 대공황의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부유한 가문 출신이던 두 사람은 1934멜버른 외곽에 있는 부동산을 구입했고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새집을 하이델베르크의 약칭인 ‘하이드(Heide)’라고 불렀다하지만 리드 부부가 이곳의 부지를 사들일 때만 해도 호주 모더니즘의 발상지로 여겨질 유명한 미술관이 될 것이라고는 거의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진보적이고 새로운 예술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이들은 재능 있는 예술가를 육성하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이런 이유로 그들의 저택에는 자연스레 예술가들이 빈번히 드나들었다


시드니 놀란(Sidney Nolan), 알버트 터커(Albert Tucker), 조이 헤스터(Joy Hester), 다닐라 바실리에프(Danila Vasilieff)  ‘하이드 서클(Heide circle)’에 속한 화가들과 당대의 지식인들은 이곳에 모여 작업을 하거나 토론을 하며 호주의 모던 아트를 꽃피웠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식적인 기관의 필요성을 느낀 리드 부부는 1958년 저택을 개조하여 미술관을 설립했고 이것이 하이드 현대미술관(Heide Museum of Modern Art)의 시초가 되었다현재 20세기를 대표하는 호주 미술품 3,400여 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는 하이드 현대미술관은 미술관을 후원하는 수많은 개인과 기업기관들과 함께 하이드 재단(Heide Foundation)을 통해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리드 부부의 귀중한 유산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Siloam MONA's new underground tunnel extension> 

Photo: MONA/ Jesse Hunniford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MONA, Hobart, Tasmania, Australia




리드 부부가 호주의 모던 아트를 발전시킨 후원자로 회자된다면 데이비드 월시(David Walsh)는 동시대 예술 후원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는현재 호주에서 가장 주목받는 후원자일 것이다전문 도박사이자 아트 컬렉터인 그는 현대미술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태즈매니아에 현대미술관(Museum of Old and New Art, 이하 MONA)을 설립하면서 유명해졌는데 개인 컬렉션으로는 호주 최대 규모를 자랑하기 때문에 MONA가 건립될 당시 월시의 성공 신화는 호주 전역에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태즈매니아 거주자들과 18세 이하 관람객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MONA는 방대한 컬렉션과 미술관을 둘러싼 그림 같은 풍경와이너리와 호텔까지 갖추고 있어 태즈매니아의 관광명소로서 지역 경제에도 일조하고 있다하지만 MONA가 단순히 랜드마크에 그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월시는 매번 심오하면서도 독특한 전시를 선보이며 대중의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월시의 사례는 굉장히 파격적인 편에 속하지만개인 차원에서 예술을 후원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은 미술관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지원하는 일이다. MCA의 후원자인 잭슨 부부(Edward and Cynthia Jackson)는 보석 디자이너였던 딸 벨린다 잭슨(Belinda Jackson)이 스물아홉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꿈을 채 펼쳐 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한 그를 기리기 위해 1993년 벨라 그룹(The Bella Group)을 설립하여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특별한 후원 활동을 시작했다. 35세 이하의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는 프로그램 ‘프리마베라(Primavera)’를 매년 진행하고 있으며 잭슨 벨라 룸(Jackson Bella Room)이라는 특별한 전시장을 만들어 MCA를 찾은 관람객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창의적인 프로그램과 다양한 소장품을 소개하고 있다한편 미술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예술가와 협업하여 ‘벨라 프로그램(The Bella Program)’을 수시로 진행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글쓴이 김남은은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에서 장-미셸 오토니엘의 작품연구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9년간 신한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했다현재 캔버라에 거주하면서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호주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Liam Benson Tall Timbers Centre, 

Box Hill, 2019 Photo: Jacquie Manning





Special feature Ⅱ-Ⅳ

예술 지원을 자처하는 도시뉴욕

● 정재연 미국통신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휘트니 미술관의 이사회 부회장 워렌 칸덜스(Warren Kanders)의 사임은 소위 ‘나쁜 돈으로의 기업 후원에서부터 오늘날 진정한 예술 후원이 무엇인지 곱씹는 계기를 제공한다상황이 이러하니 예술가와 예술단체각종 문화 활동을 꾸준히 지원해 온 기관은 더 돋보이기 마련그 중 뉴욕 주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뉴욕주예술위원회(New York State Council on the Arts, 이하 NYSCA)가 있다. 미국은 예술 지원에 대한 기업의 후원이 활발하다또한 지원 기구를 처음으로 조직하여 활동한 국가라고도 할 수 있다미국 기업의 예술 지원은 민간 기부 활동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그리고 1950년대 이후 미국은 경제와 문화예술의 중심축과 더불어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진 미국에서 예술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연방차원의 국가예술지원기관을 창설한다국가가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의 후원자가 됨으로써 문화예술을 꽃피우겠다는 의도를 가진 가장 명확한 목표가 있는 국가일 것이다이 도시에는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정책이 집중되고이를 통해 민간 기금의 후원도 활발하게 이뤄진다실제로 시민들은 뉴욕을 세계 문화의 중심지세계 문화의 수도라고 당당하게 말한다도대체 어디서 이런 당당함이 비롯될까이는 바로 예술가들이 전 세계에서 이곳으로 모이고도시는 질 높은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함으로써 활발한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Guests at the opening reception

 for the Summer 2017 exhibition season

 Photo: Will Ragozzino




예술가와 뉴욕 시민을 위한 NYSCA


뉴욕 주 예술기구(State Arts Agencies) 중 하나로 NYSCA가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으며부설기관으로는 뉴욕예술재단(New York State Foundation for the Arts)이 있다. 1960년에 설립된 NYSCA는 정부재단기업 그리고 개별 후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의 문화예술에 대한 전체 지원에서 지방정부나 사설 재단의 비중이 증가하면서국가와 별도로 사설기금이나 후원자기부자의 중요성이 확대되었다특히공적인 성격을 보이는 고급 공연예술 같은 경우는 상류층이나 기업들의 후원이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 경제 불황의 여파로 문화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이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 와중에 문화예술기관단체가 적극적인 모금 캠페인을 벌여 예산의 45% 이상이 기부와 후원으로 메워진다고 한다이 지점에서 NYSCA에서는 예산 확보를 위해 기부와 후원 활동에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고 있다예술이 갖는 특별하고 역동적인 가치에 대한 인식과 예술 지원을 구축하고 미국 내 예술단체와 예술가들을 위해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발전시키는 것이 이곳의 주된 목적이다. NYSCA의 시각예술 및 예술가 분야 프로그램 책임 디렉터 카렌 헤머슨(Karen Helmerson)의 도움을 받아 이들이 예술가들을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후원하는지 살펴보고또 어떻게 뉴욕이 문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는지 살핀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예술의 중심지인 뉴욕 시는 문화예술의 정책적 지원이 끊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NYSCA는 뉴욕 주의 비영리 문화예술단체 및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뉴욕 주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전달하고 돕기 위한 기금지원기관(Funding Agencies)’이라는 설립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 NYSCA는 보조금 조성 활동을 통해 2018년에는 15개의 프로그램을 지원하고크고 작은 2,400개 기관에 총 5,100만 달러를 후원했다이러한 기금은 시각문학음악미디어 및 공연예술 등 예술가들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며나머지 예술 교육과 이로부터 소외된 지역 사회에 사용된다블록버스터 급 전시나 공연에 집중되던 기업들의 후원 방식과 비교했을 때다소 젊은 예술가와 실험적인 예술가에 대한 지원에도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고 한다현재는 더 많은 비영리 예술단체 및 문화조직들과의 계약체결을 통한 예술 활동 관련 프로그램과 비영리 예술단체 및 소외된 예술 장르에 대한 보조금 지원 사업 및 융자 지원 등도 중요한 업무이다.





Mitsue Kido (Chile/Japan) and Barbara Barreda

 (Chile)  2018 Art Omi: Architecture residents

 Photo courtesy of Art Omi




지난 50여 년간 미국의 문화와 예술이 발전해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조건적인 후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예술을 중요한 사회적 자산창의적 산업으로 간주하여 ‘문화로 자연스럽게 편입시킨 것이 주요했다 볼 수 있다. NYSCA는 문화향유인구 증가와 국제문화교류에 발 맞춰 예술 프로젝트 범위규모 등 다양한 문화영역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NYSCA의 홍보 디렉터(Director of Public Information)인 로니 라이히(Ronni Reich)가 전달해 준 자료를 토대로 살펴보던 중 눈에 띄는 후원 프로그램이 있었다바로 회계 후원(Fiscal Sponsor)이다이를 통해 모금한 기금은 건축(Architecture)+디자인(Design), 미술 교육(Art Education), 무용(Dance), 전통예술(Folk Arts), 각 분야의 예술가(Individual Artists), 문학(Literature), 음악(Music), 특별 예술 서비스(Special Arts Services), 연극(Theatre)까지 총 9개의 부문에 사용되며예술가 개인이나 예술단체 또는 그룹을 대신하여 재원을 조성할 수 있도록 재정 환경을 마련해주고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많은 예술가에게 편의시설과 공간을 내어 줌으로 보다 안정적인 조건에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작가들을 서포트하는 여러 기관들에게도 아낌없는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트 오미(Art Omi), 야도(Yaddo), ISCP(International Studio & Curatorial Program) 외 총 25곳에서 공신력 있는 레지던시를 지원하고 있다그 중 아트 오미의 건축담당 책임자 워렌 제임스(Warren James) “NYSCA의 자금 지원은 레지던시 프로젝트에 어떤 도움을 주었으며어떤 혜택을 주는가란 질문에 “NYSCA의 자금 지원은 아트 오미 내에서 중추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에 속한다건축프로그램의 설립 비전에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학습에서부터 실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 가능성이 보인다또한새로운 커뮤니티 구축에 주력하여 독특한 건축과 디자인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직접 건축가와 설계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NYSCA의 장기 지원은 건축과 디자인이 타 장르 예술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틀을 제공해주고 있다고 답했다건축과 설계 프로그램들을 통해 새로운 시점을 제시하고 이 레지던시에 있는 건축가들은 뉴욕 시민들에게 건축의 창조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제시할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Educators lead a group tour of the Studio Museum

 



예술작품의 가치를 발굴하고 연구해후대에 전할 유산과 지식으로 이를 보존하는 역할은 여전히 미술관인 것이다뉴욕의 미술관들은 꾸준히 정부와 함께 민간 후원의 비중을 늘리고 있고이들로부터 다양한 후원과 더불어 기업 및 단체 협업이 끊이질 않고 있다뉴욕예술위원회는 예술과 문화 그리고 유산 활동에 대한 지원을 아낌없이 지원함으로써 미술관/박물관의 관련 전문 서비스를 제공한다문화예술교육의 공간이 교육 제도를 넘어서 보다 넒은 장에서 실현되고 있는 곳이 미술관/박물관이라고 볼 수 있다. 뉴욕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모여 있고 세계의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인종과 민족에 따라 다양하게 자신들의 문화와 예술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뉴욕예술위원회의 미술관 및 특별예술프로그램의 지원 대상 기관 중 하나인 스튜디오 뮤지엄 인 할렘(The Studio Museum in Harlem)을 살펴보자


스튜디오 뮤지엄 인 할렘은 할렘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지역 커뮤니티를 넘어서 국내외를 아우르는 흑인계 작가들을 위한 무대이자 그들의 문화를 반영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곳이다. 19세기, 20세기를 대표하는 흑인 작가들을 선두로 올해 순수미술 석사(MFA) 학위를 받는 젊은 신진 작가들의 작품까지 폭넓게 소장전시하고 있으며인권과 다양성이 중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유로운 토론하는 장 역할을 하는 뉴욕의 주요 미술관 중 하나이다앤드류 W. 멜론 재단(The Andrew W. Mellon Foundation)과 함께한 리서치 결과를 살펴보면 뮤지엄 인 할렘은 아프리카 미국인들의 문화예술 부문특히 큐레이터와 예술가들에게 다양하고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이곳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지역 사회와의 꾸준한 협업을 함께 기획하고 나아간다는 점에 있다. 2018년 할렘에서는 지역 커뮤니티와의 지속적이고 다양한 협업을 위해 ‘인할렘(InHarlem)’ 프로젝트를 실시하였다뉴욕의 공원과 공공도서관을 비롯해 할렘의 여러 공공기관을 빌려 획기적인 전시워크숍 등을 진행해 시사성 높은 담론을 형성했다이러한 뮤지엄 프로그램은 미술관/박물관이 문화적 생산물을 통해 경제적사회정치적으로 중요한 장소로 자리 잡고더 나은 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는 명확한 중장기 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더불어 대중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뉴욕예술위원회에서는 뉴욕 주에 위치한 미술관/박물관들을 선별해 운영프로젝트후원 및 파트너십 등 다방면으로 후원한다.





Installation view <Radical Reading Room>

 On view at Studio Museum 127, 

May 3–October 27, 2019 Presented by

 The Studio Museum in Harlem Photo: Adam Reich




아무리 뉴욕예술위원회가 체계화세분화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축하고예술가들을 위한 곳이라고 해도 재원이 없었다면 예술을 창출하고대중한테 전달할 수 있었을까이곳의 웹사이트를 살펴보면정부기관기업일반인까지 상당히 많은 후원자의 이름을 확인해 볼 수 있다재원 구성 및 모금은 기업의 성격과 프로그램 성격에 맞춰 스폰서와 파트너십이벤트 스폰서재정 후원현물 협찬 등으로 다양하게 나뉘어져 있다. 2019년에는 박물관미술관예술가와 더불어 특별 예술 프로그램에서는 카네기홀(Carnegie Hall), 라커펠러 브라더스 펀드(Rockerfeller brothers fund), 그레이터 허드슨 헤리티지 네트워크(Greater Hudson Heritage Network), 수도권 예술 센터(Arts Center of the Capital Region) 등 여러 재단과 기업에서 후원 및 파트너십을 맺고청소년들의 교육과 예술가들의 경력 계발에 앞장서고 있다다양한 인종이 밀집되어 사는 뉴욕에서는 최근에 LGBTQ, 여성인권 및 소수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또한장애인과 노인층빈곤 및 노숙자들 죄수들을 위한 예술 참여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보고 왜 뉴욕이 세계적인 문화예술의 수도가 되었는지 그리고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싶어 하는 도시인지 짐작케 한다.

 


글쓴이 정재연은 실내디자인을 전공하고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언어와 텍스트그리고 사회적 맥락과 인간 사이에서의 상호 관계성에 대해 탐구해 전시로 풀어내는 것을 장기 연구과제로 삼고 있다. 2012년 일현미술관에서 퍼포먼스에 대한 교육을 기획 및 진행하였고, 2016-2017년에는 문화역서울 284 <다빈치 코덱스>전의 큐레이터를 맡았다현재뉴욕 첼시의 작가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전시 리뷰를 비롯해 예술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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