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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9, Oct 2015

잇 아트 아이템_큐레이터 63(1-30) ①

It art item 63

“잇 아이템(it item)”이라는 말이 있다. 주로 패션·쇼핑 분야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인데, 스타일 아이콘으로 주목받는 셀러브리티나 스타의 패션을 본 대중들이 “바로 저거야!(That's it!)” 라고 외치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트렌디 한,’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꼭 사야만 하는’ 등의 의미로 쓰이며 어느새 보편적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퍼블릭아트」는 큐레이터와 기획자 63인의 잇 아트 아이템을 모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단 순서는 랜덤이다.) 기획자야말로 문자 그대로 큐레이팅, 모으고 선별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다. 전문가를 만족시키는 안목과 대중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감각을 지닌 이들의 잇 아트 아이템을 살피는 것은 어쩌면 현대미술의 지형도를 꿰뚫는 지도일지 모른다. 이들의 잇 아이템은 자신을 미술로 이끈 스승이 될 수도, 감명 깊게 본 전시가 될 수도, 가장 좋아하는 작가일 수도 있다. 미술용어, 키워드, 전시, 작품, 예술도서, 작가 등 현재 가장 핫한 이슈에서부터 지극히 사소한 기억까지, 미술인들이 꼭꼭 숨겨온 솔직한 ‘바로 그 예술!’은 시대를 넘나드는 생생한 자극을 전달할 것이다.
● 기획·진행 백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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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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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

손엠마 갤러리EM 디렉터

<채지민_Unspecified Space>(2015, 갤러리EM), <박미나_24&36 Grays>(2015, 갤러리EM) <이진한_Your Night My Day>(2015, 갤러리EM) 등 기획


[마티아스 바이셔]


지난 9 8일 홍콩 리만모핀 갤러리(Leman Maupin)에서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마티아스 바이셔(Matthias Weischer, b. 1973)의 개인전 <Traces to Nowhere>가 열렸다. 10여 년 전 아라리오 갤러리 그룹전을 통해 한국에도 소개된 바 있는 작가는 신라이프치히 화파의 일원 중 한 명으로 3차원의 공간을 회화의 주제 혹은 매개로 삼아 회화의 영역, 그 중요성, 그리고 역사적 의미를 표현한 작품들로 잘 알려졌다. 10여 년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바이셔의 신작들을 지난 6월 유럽 여행 중 우연히 방문하게 된 라이프치히의 작가 작업실에서 미리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던 여러 점의 작품들을 살펴보며 작가와 그의 작업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보낸 시간은 깊게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 당시를 추억하며 다시 맞닥뜨린 그의 그 완성된 작품들을 가까운 홍콩의 갤러리에서 다시 한 번 감상하게 되니 그 감회가 참 새롭다. 이번 그의 첫 아시아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이전의 작품보다 더 다양한 풍경과 자연적 요소를 포함하여 더욱 더 자연 발생적이고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 특색이다. 전시에 소개된 총 8점의 작품들은 사이즈에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각각 그 내용적인 면이나 표현에 있어 디테일과 깊이감이 가득하다. 바이셔는 계속해서 인위적 원근법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지만, 그 반면에는 화면에 부유하듯 떠다니는 평면적 인물 혹은 동물 형상들을 동원해 또 다른 차원의 복잡성을 가미한다. 바이셔는 이러한 형상들을 이용하여 사물과 공간의 관계를 조화롭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며 또 표현하고 있다.




No.2

김성호 2015 바다미술제 전시감독

<2008 창원아시아미술제>, <2014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2015 바다미술제> 등 총괄


[짬짜면, 비빔밥, 폭탄주]


필자는 글쓰기나 강연 등에서 오늘날 미술에서의 융복합을 설명하는 말들로 짬짜면, 비빔밥, 폭탄주를 예로 들어 사용하기를 즐기는 편이다. 3가지 유형은 서로 정체성이 각기 다른 상태로 오늘날 미술 융복합의 특성을 매우 잘 드러낸다. 그런 까닭에 필자는 기획자의 입장에서 유념해야 할 미술의 융복합과 그것의 네트워크를 설명하는 잇 아이템으로 짬짜면, 비빔밥, 폭탄주를 소개하고자 한다. 짬짜면이란 짬뽕과 자장면이 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음식이다. 이것은, 짬뽕도 자장면도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복합(complex)의 대표 유형이다. 입안에 들어가는 음식이야 위장에서 뒤섞이면 별 차이가 없어지는 잡탕의 것으로 귀결될 따름이지만, 적어도 미각에 양자의 존재를 각인시키면서 입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양자의 복합적 양상은 의미심장하다. 그래, “짬짜면 하나요라는 주문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그것은 두 개의 결과물이 아닌 하나의 정체성으로 뭉쳐진 결과물이자 복합의 존재인 것이다. 


비빔밥은 또 어떠한가? 백남준 선생이 미디어아트의 본질을 비빔밥으로 천명했듯이, 이것은 각기 다른 정체성들이 한데 모여 만드는 생성적 복합의 세계이다. 달걀 프라이와 각종 채소들이 예쁘게 밥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복합의 덩어리이자, 이내 고추장과 참기름에 뒤섞여 서로의 정체성을 나누어 주고받는 융합(fusion)의 덩어리이기도 하다. 반면 폭탄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과 도수가 낮은 술이 만나 서로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서로의 몸을 뒤섞어 새로운 도수를 표방하는 융합의 세계를 선보인다. 이 세 유형은 오늘날 미술에서 발견되는 융복합의 가치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병렬과 병치로 서로의 정체성을 지닌 채 혼합 체계를 이루는 짬자면이나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복합으로부터 융합의 세계로 넘어서는 비빔밥 그리고 상대방에게 서로의 정체성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개체로 탈바꿈하는 폭탄주는 우리에게 융복합의 다양한 층위를 잘 설명해 준다. 이러한 융복합 모델은 각기 다른 유형의 작품들을 하나의 주제 아래 전시로 만들어 내는 기획자에게 있어 공간의 유형학을 연구하는 데 참조할 만한 자료가 된다. 이 모델들을 자유자재로 응용할 때, 수평과 수직을 아우르면서도 서로를 나누는 사선( / )의 공간학을 전시를 통해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멋진 전시 공간학을 이상으로 그리면서 노력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쉽게도 제대로 구현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후배들이여 그대들이 해보심이 어떠할지.



No.3

강요한 문화기획자·에듀케이터

지역공동체 문화만들기 프로젝트 <속닥속닥 대청>(2014), 공가실험 <수봉다방 프로젝트>(2015), 꿈다락토요문화학교 <속닥속닥 문화학교> 등 기획


[문화예술교육]


필자는 올해 상반기부터 작가들과 함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마을을 주제로 몽상가, 실험가, 탐험가가 되어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지고 이것저것 만들고 나누고 실험해보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제목은 <속닥속닥 문화학교>.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아이들이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꿈꾸고, 실험하고, 탐험하는 과정이 담겨있는데, 기법에 대한 교육보다는 주제를 정해서 생각하고 표현하는데 중심을 두고 있다. 참여한 아이들이 얼마나 잘 그릴 수 있는가 보다 내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기 바라며 매회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처음에는 의도하지 못했던 맥락을 찾기도 하고, 소소한 요소를 덧붙여 가기도 하는 과정 속에서 기획자로서 소소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


프로그램의 키워드는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요소들의 조합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아동, 미술, 지역공동체…. 이런 키워드들이 모여 마을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작가들과 함께 진행하게 된 것 같다. 이번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놀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로 하반기부터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 가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함께하는 작가들과의 대화, 다른 문화예술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 지역의 문화예술교육 기획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지금도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가치관이 변화하고 있다. 아이들이 얼마나 자기스스로 발산하며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전직 사회복지사로서, 지역공동체 프로젝트, 문화예술전시에 참여했던 공동기획자로서 느낀 경험을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고민이다.



No.4

손혜주 독립기획자

<Cipher>(2009, Chuco’s Justice Center, Los Angeles), <Halloween Town Fair>(2010, LAX Coastal Area Chamber of Commerce, Los Angeles), <숨어있는 이야기. 발견하는 예술가>(2015, 오재우 작업실) 등 기획


[로저 하그리브스 『Mr. Men and Little Miss』]


나의 잇 아이템! 이런 질문이 필자에게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집에 들어와서 이것저것 살펴봤다. 미술 잡지에 내려면 또 어떤 예술적인 것을 선택해야 할까? 친구들에게 집들이 선물로 받아 하나씩 모아온 알레시의 주방기구 시리즈 혹은 장식들? 지금 잘나가는 젊은 작가의 작은 액자? 책을 볼 때 쓰는 아이패드 미니 레티나? 지인과 자전거 탈 때 기분 좋게 끌고나가는 스트라이다? 요즘 인스타그램에 활력을 준 아이폰 6? 좋아하는 일러스트 작가들의 화집? 카셀이나 베니스에서 사온 카탈로그나 티켓들? 그동안 진행한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의 사진? 며칠에 걸쳐 이것저것 살펴보는데 마침 책장 한구석에서 재잘거리는 수다양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EQ의 천재들』이라는 조금은 선정적인 제목으로 번역된 동화책 작가 로저 하그리브스(Roger Hargreves; 1935-1988)의 『Mr. men & Little Miss』 시리즈였다. 현대미술을 다루는 잡지에 소개되는 아이템으로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이 책 시리즈를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필자는 어릴 적부터 일러스트를 좋아했다. 그림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림을 좋아하게 된 것도 일러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그림으로써의 매력과 말로 표현되기 힘든 상황들에 대한 위트 있는 표현들 때문이었다. 하그리브스는 6살 난 자신의 아이가 아빠, 간지럼은 어떻게 생겼어요?”라는 질문에서 이 책 시리즈를 시작했다고 한다. 간지럼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행운을 이미지로 나타내고, 너저분함을, 근면함을, 용감함을, 서두름을 캐릭터로 만들어가면서 그의 이야기들이 진행된다. 추상적인 명사들을 캐릭터화 하는 그의 능력과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표현들. 그 이면에 각 캐릭터들의 특징을 각자의 노동으로 승화시키는 영국인 특유의 노동에 대한 우호적이고 유쾌한 해결까지. 지금도 필자가 너절해질 때, 바빠질 때, 골치가 아플 때, 변덕이 생길 때 한번 씩 꺼내보는  영혼의 안식처이자 오래된 친구다.



No.5

송하영 청량엑스포 기획자

<Qbject>(2015, 청량엑스포), <Voluntary control: 수의적 조절> (2015, 청량엑스포), <A Few Feet Away>(2015, 청량엑스포) 등 공동기획


[아이폰 6S]


2015 9 9일 애플이 아이폰 6S’를 발표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발표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 새로운 모델이 아니라 이전 모델의 업그레이드를 알리는 것뿐인데도 사람들은 앞으로 달라질 기능과 그 기능이 바꿔 놓을 시간에 전혀 거부감이 없는 듯했다. 아이폰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생활 전반뿐만 아니라 아이폰 덕에 전시를 보는 패턴도 변화했다. 미술 잡지나 네오룩(neolook.com)이 아닌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전시 소식을 접하고, 메모나 일정을 관리하는 어플리케이션(이하 앱)에 기록해 둔다. 처음 가보는 공간은 일일이 검색해서 찾기보다는 지도 앱을 켠다. 아이폰에 있는 무수히 많은 앱은 전시장으로 향하는 데 필요했던 시간을 단축시켜 주었다.


단지 관람객이 아닌 이제 막 생긴 공간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아이폰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해줬다. 물리적으로 접근성이 낮은 위치에 있어도 관객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여전히 신기하다. 소셜네트워크는 공간에서의 일을 알리는 데 효과적이며, 타임라인 그 자체가 공간을 충실히 기록하는 아카이브 역할도 한다. 확실히 아이폰은 미술 환경 전반을 변화시켜 놓았다. 아이폰으로 미술 환경이 변화한 만큼 작품이나 전시 자체에도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애플은 계속 가능성을 모색하고 기술로 구현해내고 있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기술에 민첩하게 반응하며, 새로운 감각을 획득한다. 이 새로운 기술이 한꺼번에 많은 것을 변화시키진 않는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생활을 가능하게 해준다. 아이폰은 지금 관람객, 기획자, 작가 누구나 갖고 있다. 새로운 기능과 함께 가능할 새로운 미술 생활이 기대된다. 



No.6

신승오 페리지갤러리 디렉터

<Sculpture Spoken Here>(2008, 덕원갤러리), <Retro>(2011, 덕원갤러리), <물질의 경계>(2011,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난지갤러리), <목하진행중>(2013, 아마도예술공간) 등 기획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인간의 조건』(1958, 한길사)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기술시대의근본악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탐구한 책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에서 근대와 그 당시의 현대에 대한 비교 분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특히 예술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유효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책 내용을 살펴보면 저자는 인간의 활동적인 삶을 노동,’‘작업,’‘행위라고 보고, 이 세 가지 조건들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차분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노동과 작업의 구분은 주목할 만한데, 여기서 예술은 노동으로 구분하지 않고 작업으로 분류한다. 아렌트가 말하는 작업은 인간의 동물적인 본성인 생존을 위한 굴레에서 벗어난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을 말한다. 간단히 그가 이야기하는 예술에 대한 고찰을 정리해 보면 예술작품은 일상적인 삶의 절박함과 욕구로부터 분리되어야 하고, 예술작품의 지속성은 자연의 시간을 거스르며 영속성을 획득하며, 예술작품의 직접적인 원천은 인간의 사유능력이고, 이 능력을 단순한 감정과 욕구 필요라는 동물적인 속성과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리고 예술가는 철저하게 사유와 인식으로 행위하는 인간이라고 정의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조건은 현재에 우리의 상황과 완벽하게 부합하지는 않지만, 그가 주장하는 신체적인 활동과 정신적인 활동 그리고 사유와 인식의 구분 그리고 이들이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내용은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꽤 오랫동안 예술이라는 것이 왜 필요하고,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과연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예술을 만들어내고 바라보는가? 혹시 우리는 현실과 괴리되는 이념을 쫓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재의 예술은 사유보다는 인식을,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기보다는 외형적인 표피적인 사건들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보게 한다.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사유와 인식의 경계 그리고 인간으로서 갖게 되는 조건들에 대해 지속해서 고민해 보아야 할 화두를 얻게 되었다. 지금 현재 한국미술계는 세대마다 예술을 규정하는 태도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각자의 정의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가 중요한 시기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위에서 살펴본 아렌트의 분석을 통해 지금 현재 우리의 미술계에서도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을 작업으로 보아야 하는지 노동을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예술의 역할과 정의에 따라 어떻게 예술이 달라질 수 있는지는 생각해 볼 만한 과제다.



No.7

윤두현 갤러리기체 디렉터

<길에게 묻다>(2012, 갤러리 잔다리), <매혹,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2013, 갤러리 잔다리), <미츠노리 기무라, 우국원_Tails>(2014, 갤러리 기체) 등 기획


[미식과 복고]


요즘 미식 열풍이 대단하다. 마치 광장에 나가 시위하듯 미각을 탐닉한다. 복고 역시 여기저기서 깃발을 흔들며 전방위적이다. 그리고 이런 유행이 새삼스러운 건 아마도 그것이 미식이나 복고 그 이상의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듯해서다. 정서적 허기 말이다. 미술시장에는 단색화 바람이 불었다. 팍팍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가 과거를 적극적으로 소환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 시대, 이 순간, 이곳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 그래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는 해야 하는가? 최근 미술계 일선에선 그 어느 때 못지않게 예술 자체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맞닥뜨리고 있는 듯하다. 또 이런 맥락에서 예술가적 태도나 방법에 대한 진지한 추궁 역시 자연스레 뒤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는 특정의 담론이나 형식을 틀지우는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그 관성적인 표피성을 깨트리기 위한 재각성의 차원에서 요구되는 것이라고 본다. 뷰파인더 너머의 피사체가 아니라 사진기 혹은 사진 찍는 사람 자체를 사진의 대상으로 삼은 노순택의 최근작이나 해녀, 줄광대 등 일반의 장인적 삶에서 예술가적 태도와 과정을 발견하고 있는 전소정 등의 작업들은 그런 인식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전환기적 상황에서 비롯한 일련의 징후적 현상이다. 즉 전 지구적으로 고도화된 소외와 갈등은 이전과는 다른 사고와 접근법을 생존의 차원에서 점점 더 강렬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극단에 치닫고 있는 자본과 권력의 폭압적 권위가 자기 정화를 위한 합리적 사고와 접근을 그 어느 때보다도 교묘하고도 집요하게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미술계에서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몇몇 작가들의 예술 자체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나 예술가적 태도와 방법에 대한 재인식은 그런 고민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런 시절에, 예술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자기고민.



No.8

유기태 placeMAK 디렉터

<The 5th 서울똥꼬비엔날레>(2014, MAKSA), <사라진 아름다움> (2014, MAKSA/placeMAK), <공연한 공연>(2015, MAKSA), <MAKSHOW 2015>(2015, MAKSA) 등 기획


[017]


앞으로 필자(유디렉)가 표현할 무엇이 잇 아이템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대상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퍼블릭아트」의 기획의도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스쳐 간 무엇이었다. ‘017,’ 바로 이 번호가 유디렉의 잇 아이템이다. 1994년에 신세기통신이라는 기업을 통해 나온 ‘017’ 번호는, 그 시절 조금 더 비싼 요금제를 내서라도 더욱 발달한 통신기술(CDMA)을 이용한다는 자부심으로 나름 차별화된 번호였다. 여담으로 그때 당시 신세기통신이 VVIP 시스템을 잘 만들어놔, 010 통합 이후 지금도 청와대에선 017 번호를 쓴다고 한다. 유디렉 역시1994년 처음 만난 ‘017’이 지금 이 순간에도 뒷번호 한자리 변화 없이 20년 넘게 나의 명함에 당당히 박혀있다. 2 2개월 군대 때도 떠나보내지 않았고, 2년간 해외 방랑시기에도 살려두었다. 


번호 통합시기, 수도 없는 통신사들의 유혹(“현금으로 80만 원을 주겠다와 같은)전화와, 발달하는 단말기들의 센세이션에도 아랑곳없이, ‘017’ 2G 단말기와 함께 여전히 나의 동지로 함께 하고 있다. 현재 다른 이들과 핸드폰번호를 교환 시 다양한 감탄을 들으며, 친밀한 호감도와 신뢰를 쌓는 좋은 도구로도 숫자 이상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반대로 필자 역시 상대방의 번호가 ‘017’일 때 묘한 매력을 느끼곤 한다. 그야말로 시대를 넘나드는 품격 있는 아이템이 아닌가 싶다. 한때 희귀 핸드폰 번호를 대상으로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는다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이 떠돌아다녔다. 필자는 그 궤변을 아직도 믿고 있다. 재화의 환원으로서가 아니라, 무형의 가치로서 말이다.



No.9

안진국 대안공간 정다방 프로젝트 프로젝트디렉터

<저수지에 싹이 나다>(2010, Cafe Madagascar), <비어있는 실험> (2015,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 <돌은 나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2015, 대안공간 정다방 프로젝트) 등 기획


[미술 예능]


모든 것의 예능화라는 말이 실로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꼼수다>(팟캐스트)의 열풍은 정치 예능을 탄생시켰고, <슈퍼스타K> 같은 서바이벌 경연 프로는 음악 예능을,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의 육아 프로는 육아 예능을, <냉장고를 부탁해> 등 요리 프로는 쿡방 전성시대를 불러왔다. 급기야 예능 드라마를 표방하는 <프로듀사>가 만들어졌을 지경이다.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한젬마를 시작으로, 낸시 랭이 본격적으로 예능계에 진입하여 예능 프로에서 예술가 이미지를 소비했으며, 개인 위성을 제작한 미디어 아티스트 송호준은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의류업자로 희화화됐다. 이후 서바이벌 아트 오디션을 표방한 <아트스타코리아>가 미술을 경연 예능으로 활용했다. 모두 예능의 세계에 작가(미술)를 불러 희화화해 소비하는 양상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미술이 예능을 초대하기 시작하였다. 미술이 예능을 닮아가기 시작했다고 말해야 할까? 그러한 예를 다수 들 수 있는데, 최근 전시에서 찾자면, 지난 8 2일 막을 내린 <시징의 세계>(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9 16일 막을 내린 옥정호 개인전 <Hamartia-과녁에서 벗어나다>(갤러리 조선)가 대표적이다. <시징의 세계>는 서경(西京)이라는 역사적 가상 도시를 기반으로 한··일 작가가 상상력을 풀어놓은 전시로, 작가들의 일탈적 발상이나 행동을 찍은 영상 작업은 (내적 의미와 상관없이) 대단히 무한도전스러운 외피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옥정호 개인전은 작가 자신이 개그 프로에서나 볼 법한 하얀 쫄쫄이 전신 타이즈를 입고 마치 선인(仙人)처럼 뛰어오르는 장면을 찍은 사진 작업들이 진지하면서도 웃기다. 영상 작업은 러닝머신 달리기와 물고문의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변질 시킨다. 함축하고 있는 무거운 주제에 비해 그의 전시는 개그콘서트 만큼이나 희화화를 향해 치닫는다. 전 영역의 예능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미술은 예능에 먹힐 것인가? 예능을 먹을 것인가?



No.10

박상미 Thomas Park 디렉터

<Our Obsessive Selves>(2014, Thomas Park), <Man Made>(2014, Thomas Park), <Duncan Hannah>(2015,  Thomas Park), <Masks>(2015, Thomas Park) 등 기획


[첫 전시]


뉴욕에 미트마켓 디스트릭트라는 지역이 있다. 첼시 바로 아래 있는 곳으로 첼시가 갤러리 지역으로 뜨면서 이 지역까지 갤러리가 들어섰다. 지금은 주요 갤러리가 된 개빈 브라운(Gavin Brown)도 소호에 있던 작은 공간에서 이곳으로 이사 와 있었고, 뒷 블록에는 스페로니 웨스트워터 갤러리(Sperone West water Gallery)가 있었다. 출근이라는 걸 별로 해본 적이 없는 필자였는데, 10시 조금 전 출근해 갤러리 셔터를 올리고 하루를 준비하는 일이 즐거웠다. 매일 매일 작품들을 보고, 작가들을 만나고, 직접 못질을 하고 페인트칠을 하기도 했다. 초대장을 봉투에 넣고, 이미지들을 정리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이 많았지만 별로 힘들지 않았다. 당시 파는 일 이외에 모든 일을 했던 것 같다. 


한 번은 갤러리 대표가 어떤 작가의 작업실에 다녀오라고 했다. 대표는 작가들과 대개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곳에 가는 일이 껄끄러웠던 대표는 필자에게 작가를 만나 얘기도 하고 그림도 한 점 가져오라고 했다. 커다란 갤러리 주 공간 뒤쪽에 별도의 작은 전시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 걸 작품이라고 했다. 그래서 차이나타운 근처 허드슨 강가에 있던 그 작가의 작업실로 가서 작가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는 재미있었고, 그가 수집한 드로잉들도 보았다. 그리고 그림을 골랐다. 그때의 흥분감이란…. 마음에 드는 작업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었던 것이다. 택시에 싣기에는 조금 컸고 작가가 다른 그림을 가져가라고 했지만, 우겼다. 어렵사리 그림을 택시에 싣고 갤러리로 돌아왔다. 작품도 필자가 직접 걸었다. 벽에 걸린 그림을 보더니 대표는 크게 만족했다. 며칠 후 작가가 찾아왔다. “내 그림은 갤러리 벽보다 작업실에서 좋아 보이는데, 이 그림은 예외네요라며 좋아했다. 단 한 점의 그림이었지만 성공적인 전시였고, 그러고 보면 그게 생애 첫 전시였다. 그 경험이 지금껏 필자에게 전시에 관한 중요한 사실들을 가르쳐준다



No.11

이미솔 독립큐레이터

<공가실험 프로젝트>(2015, 용일자유시장)에 기획단이자 작가로 참여했고, <아워몬스터 개관전>(2014, 아워몬스터) <텍사스 사람들> (2013, 미아리 텍사스)에 작가로 참여


[화분]


유난히 전시장에 식물이 많이 등장했다. 조혜진은 <한시적 열대>전을 통해 온난기후로 알려진 우리나라에서의 열대 식물이 자리 잡은 형태를 조명했다. 생태로서의 동·식물에 접근하는 내용도 있었고, 담배를 키우고 가공하는 과정으로 워크숍과 전시를 하기도 했다.(김소철의 <시작은 담배>) 땅에서 화분으로 전이된 식물들은 이국의 정서를 전해주기도 하고 실용적으로도 사용된다. 커먼센터의 <혼자사는 법> 전시에서 전산의 ‘1room’에는 반려동물의 역할을 하는 화분이 등장한다. 1인이 사용할 가구들을 일체형으로 만들어 공간효율을 높이는 순간에도 거의 그 가구만큼이나 큰 식물을 들여놓는다염지혜는 <모든 망명에는 보이지 않는 행운이 있다>에서 고무나무를 비롯한 화분들을 메인 작품만큼이나 인상적인 모습으로 배치했다. 푸르고 건장한 나무들에 그 전시장은 행운의 망명처였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곳이 나무 화분들 덕분에 훌륭한 망명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5>에서 나현은 난지도에서 채집한 식물들을 통해 '바벨탑'을 연출해내기도 했다.


갤러리팩토리의 <동식물계> 전시에서는 서로의 ‘comfort zone’을 지키며 다른 존재와 대면하는 구조로서 동식물계를 상정한다. 약육강식의 피라미드가 아닌, 전 개체가 각자 존재하는 생태계는 자연에서도 인간 사회에서도, 가능할까? 멜론에서 정말 메로나 맛이 난다고 묘사한다. 자연과 인공은 체험 순서가 뒤섞인 채 도시의 환경이 됐다. 그래서 식물이 아니라 화분이다. (earth)에 심어진 식물도 주변에 많지만 그걸 전시하지는 않으니까. 정말 우리가 땅을 밟고 살고 있나? 서울의 산이나 구릉은, 실은 거대한 콘크리트 화분 위에 얹혀진 것이 아닐까.



No.12

이성휘 하이트컬렉션 큐레이터

<2회 아트선재 오픈 콜_쭈뼛쭈뼛한 대화>(2013, 아트선재센터), <두렵지만 황홀한>(2015, 하이트컬렉션),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2015, 하이트컬렉션) 등 기획


[<최윤_ 오늘의 모양>(2015)]


큐레이터로서 필자의 잇 아트는 달리 생각할 것도 없이 작가. 불특정 다수를 지칭하는 것이고, 이미 만난 작가들, 앞으로 만날 작가들 다 포함한다. 어릴 적에는 전시를 업으로 삼게 될지 몰랐고 논리적이고 명쾌한 걸 좋아하도록 교육받으며 성장했지만, 어쩌다 보니 업이 된 미술은 미묘하고 섬세한 데다가 불확정적인 것투성이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꽤 여러 사람이 미술에 대해 애증을 느끼는데, 아직 철이 덜 들었나?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김치 하나만으로도 밥 잘 먹듯, 지루한 것엔 한숨을 쉬듯, 길가다 돌멩이를 헛 걷어차듯 미술을 대하고자 한다. 


현재 필자는 작가와 작품을 소스로 한 2차적인 창작으로써 전시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작가를 최우선에 두는 것을 업자가 지녀야할 윤리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작가들에게 휘둘릴 생각은 없다. 그들의 말을 최대한 경청하고 소통하고자 할 뿐이다. 늘 서툰 것을 자책하면서도 경험이 쌓여 좀 더 노련해지기를 바란다. 뭘 했다고 올 한해가 좀 바빴는데 그중에 3월에 딱 닷새 동안 서울 종로 누하동에서 개최했던 최윤의 개인전 <오늘의 모양>을 잊을 수 없다. 이 전시는 최윤의 남다른 소재 매칭과 도발적 제스처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작년에 처음 제안한 뒤 1년이나 묵혀두었던 전시를 올해 초 급작스레 장소를 결정하면서 개최할 수 있었는데, 그러는 바람에 최윤을 많이 고생시켰다. 어쨌거나 일주일의 설치 기간과 닷새의 전시 기간을 통해서 이전에 최윤에 대해 알았던 것은 다 필자의 선입견에 지나지 않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새롭게 깨달은 것이 더 많았던 전시였다. 앞으로 언젠가 그때의 무수한 순간적 편린들을 지루한 글이나 말로 펼쳐 놓게 될 수도 있겠지만, 삶의 한순간이었던 것으로써 이미 충분히 좋았다. 



No.13

이세영 독립큐레이터

<무나씨_정말이지너는>(2015, 대림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당구장), <빠키_불완전한 장치>(2015, 대림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당구장), <진달래&박우혁_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2015, 대림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당구장) 등 기획


[<Maurizio Cattelan:All>(2011, 구겐하임 미술관)]


커다란 돌에 맞아 붉은 카펫 위에 쓰러진 교황, 두 팔을 활짝 벌린 피카소, 무릎을 꿇고 참회하는 히틀러를 묘사한 왁스 인형들과 박제된 동물들,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작품 128점이 20세기 위대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역사적인 근대 건축물의 아트리움 중앙에 가득 매달렸다. 바로 2011년 가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이탈리아 출신의 아티스트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회고전 전경이었다. 이 회고전의 오프닝에서 카텔란은 새로운 예술작품을 더는 만들지 않겠다고 밝히며 예술계에서의 은퇴를 선언한다. 그는 많은 사람이 회고전을 작가의 커리어가 정점에 이른 순간으로 여긴다는 사실에 사형선고와도 같은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카텔란은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통적인 연대기적 회고전의 형식을 거부하고 무작위로 작품을 공중에 매달아 전시의 외양이 마치 작품들이 밧줄에 묶여 교수형에 처하는 것처럼 보이길 원했다고 밝혔다. 정치적이고 무거운 현실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이를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럽게 냉소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은 예술가들의 무덤이라고도 불리는 압도적인 건축공간에서 그의 의도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를 통해 그 또한 작가로서의 커리어의 끝을 보여주고자 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의 은퇴선언으로 인해 모든 관심은 그가 과거에 발표했던 개별 작품들이 아닌, 작가 본인과 그의 미래에 집중되었다. 결국, 카텔란 본인만이 이 전시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이 영리한 작가가 선언한 은퇴의 의미는 사실 그 자신을 제외하고 아무도 알 수 없다. 이전에도 자신이 아티스트가 아니라고 공공연히 주장해 온 그에게 은퇴선언은 어쩌면 회고전이라는 거대한 또 하나의 새로운 예술작품을 완성하는 일부 혹은 그저 농담처럼 웃어넘길 해프닝과 퍼포먼스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잠잠하던 이 예측불가능한 아티스트가 최근 뉴욕에서 ‘non-curator’라는 새로운 포지션으로 전시에 참여했다. 그가 특유의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며 우리에게 또 어떤 새로운 화두를 던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No.14

이영주 PACE Representative Korea

<Kohei Nawa_Trans>(2012, 아라리오 갤러리), <Graphic Novel: A group show with Sun Xun, Koichi Enomoto, Dongi Lee>(2014, 아라리오 갤러리), <Asian Contemporary Arts> (2015, ArtScience Museum, 싱가폴) 등 기획


[밀라노 프라다 예술재단]


지난 6월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 ‘베니스 비엔날레 그리고 이어지는 수많은 미술관 전시 투어로, 다음 여행은"노아트"를 수없이 다짐을 하고 있던 필자에게 밀라노 프라다 예술재단(Fondazione Prada)의 방문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프라다의 이 새로운 미술관 공간은 평범한 예술보다 도드라진 세련된 건축물이 하나의 작품으로 다가왔는데, 공간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비싼 건축자재나 이름 있는 작가들 작품의 진열이 중점이 아닌 디테일들이 예술로 가장 크게 다가왔는데, 재단 정문의 블랙앤화이트 유니폼을 멋지게 소화하고 있는 가드와 친절한 미술관 스태프들부터, 3개의 공간(미술관, 시네마, 타워)마다 다른 벽자재, 바닥, 조명, 캡션, 그리고 경쾌하고 클래식한 느낌의 까페의 완벽한 인테리어까지 도무지 새로 막 오픈한 새 건물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미흡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간혹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축 디자이너나 소유자의 권위에 위해 지어지는 미술관은, 작품을 감상하기 나쁜 공간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와는 다르게 프라다와 렘쿨하스(Rem Koolhaas)는 프라다 매장 디자인과 함께 수십년동안 호흡을 맞춰오며 그 컬렉션을 깊이 연구하여 공간을 함께 구축해왔다. 프라다의 튀지 않는 미니멀한 컨셉을 잘 구현한 렘쿨하스와의 합작 미술관은, 루이비통 예술재단의 화려함과는 다른 오래된 깊이감을 전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910년 지어진 주류공장 단지를 7년간 공들여 오픈한 이 거대한 단지는7개의 건물과 코트야드를 포함 약 19,000제곱미터 규모이며, 현재 60미터 타워는 내년 오픈을 앞두고 건축 중에 있다. 오래된 건축물의 복원도, 새로운 공간의 제작도 아닌 두 가지가 서로 병행, 공존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는 렘쿨하스의 말처럼, 건축과 현대 예술이 함께 서로 잘 공존하는 할 수 있는 이러한 멋진 공간이 한국에도 언젠가 등장하길 바래본다.



No.15

임경민 독립기획자

<오래된 집 재생프로젝트>(2011-2015, 캔파운데이션), <장마프로젝트>(2014-2015, 캔파운데이션, 2014-2015), <하우스워밍 프로젝트>(2015, 캔파운데이션등 기획


[성북동과 김선문]


예술계에서는 커뮤니티 아트로 칭하는 마을디자인은 지역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며 만들어가는 지역재생의 의미로 소개되고 관련 책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벽화를 그리고 환경을 개선해나가며 문제를 해결해서 지역을 살리는 것보다, 지역의 컨텐츠 즉 장소, 인물, 역사에 주목하고 놓치지 않는 것 그리고 그에 더해 현재의 문화예술 콘텐츠를 쌓아나가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커뮤니티 아트라 생각한다. 그래서  최근17717의 프로젝트 프로듀서 김선문과 성북동이 함께 나아가고 있는 방향과 그 활동을 소개하고 싶다.


쌀쌀함이 공기에 묻어나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다른 곳보다 춥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북악산자락의 성북동. 일로, 혹은 개인적인 이유로 지인이 이 마을에 들어서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감탄의 말을 듣게 된다. 보기에 대단한 외양을 가져서가 아니라, 이곳만의 공기가 있기 때문이다. ‘마을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성북동의 정서적인 특성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과거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문화콘텐츠가 지역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사람들에게로 전해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의도해서 지역을 설계하지 않았으나 지역의 명사는 명소를 남기고, 스스로 마을의 한 요소가 되어 현재까지도 마을디자인의 바탕이 되고 있다. 그 힘을 잃지 않고 지금의 마을 콘텐츠를 쌓아나가는 활동이 성북동에서 진행 중이다. 


성북동은 재생을 한다기보다 그럴 필요가 없이 잘 살아 있음을 서로 나누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김선문은. 그 중심에 있다. 동네공간 성북동천에서 마을잡지를 만들어 마을의 아름다움을 재차 확인하고, 들어서 서술하고,그림으로 그려나간다. ‘17717’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앞날을 도모하고, ‘초록옥상을 통해 문화콘텐츠를 나누는 등 공공의 영역에서 지역 내외의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또 마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모여 확인 미학인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작업세계를 소개하고 자율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러한 활동들에 대해 그는 판을 만드는 혹은 내어놓는 일이라고 한다. 출판분야에서 일해 온 그의 베이스를 짐작케 하는 이야기이며 마을디자이너로서 2013년부터 지금까지 성북동에서 활동하는 그가 끊임없이 기획하고 움직여 나아가는 지향점을 드러내는 말이다. 새로 만들고 다시 살리는 것이 아니라 마을 자체를 주목하고 모두를 위한 자리임을 깨닫게 하는 활동이 일어나는 성북동에서 마을디자인의 새로운 양상이 확산되어 나갈 것을 기대해본다. 



No.16

심소미 독립큐레이터

<모바일홈 프로젝트>(2014, 송원아트센터), <플로베르의 침묵> (2015, 갤러리 스케이프), <신지도제작자>(2015, 송원아트센터) 등 기획


[잇 아트 잔상]


핫한 아이템은 아니지만, 예술에 대한 마음을 핫하게 덥히는 잇 아트 잔상들이 있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 없이 머금은 잔상들로, 일상의 장면들과 미술, 도시, 건축, 영화, 문학, 음악은 서로 얽히어 예술을 바라보는 필자의 시각에 깊숙이 관여한다. 아이디어의 진전이 없을 때 참고하는 필자의 소소하고 구차하기까지 한 일기들, 도시를 걷다 발견하는 좁은 골목길들과 임시 가판대, 키오스크의 공간(항상 새로운 풍경이 발견되는 곳), 추억의 전시공간 갤러리킹과 바이홍, 친정 같은 갤러리 스케이프, 몇 년간 추적했던 프란체스카 우드만(Francesca Wood man), 그녀의 몸이 겪은 경계에서의 공간, 네델란드 작가 바스 얀 아더(Bas Jan Ade), 풀잎처럼 불안하게 흔들리던 그의 기다란 몸(<Fail Better>, 함부르커 쿤스트할레),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가 들추어낸 정지된 시간의 생명력(퐁피두센터), 한여름의 글쓰기와 기관차 소리에 떠올렸던 타르코프스키(Tarkovsky)의 영화 <스토커>, 인물의 심적 묘사를 카메라로 섬세히 담아낸 누리 빌제 세일란(Nuri Bilge Ceylan)의 영화들,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와 보르헤스(Borges)의 글로부터 얻는 사색의 시간, 이상과 백석의 닮고 싶은 시 언어, 도시마다 헌책방을 들러 수집한 옛날 그림책과 전시 도록, 건축 잡지들, 아직 열어보지 않은 책장을 가득 채운 책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율리시스』, 레이몽 후셀(Raymond Roussel)의 『로쿠스 솔루스』 등등 (언제가 영감을 받을 것이라 믿으며…), 그리고 책상 앞에 붙여진 1유로짜리 더블린 트리니티대학 도서관 엽서, 코를 킁킁거리며 맡았던 1,000년도 더 된 책들에 쌓인 먼지 냄새들. 그 시간의 먼지들이 엽서 밖으로 나와 지금도 상상력을 간질인다. 제발 재채기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No.17

이정은 학고재갤러리 팀장

<정현 개인전>(2014, 학고재갤러리) 등 기획


[세라 손튼 『걸작의 뒷모습』]


세라 손튼(Sarah Thornton)의 저서 『걸작의 뒷모습(Seven Days in the Art World)』이 필자의 잇 아트. 현대미술 안에 숨어 있는 은밀한 삶을 7개의 현장으로 묶은 이 책은 옥션부터 비엔날레까지 실제 현장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들과 나눴던 대화부터 현장의 생생함까지 유쾌하게 밝히면서 포장된 모습이 아닌 현실적인 부분을 보여준다. 미술 현장의 기본적인 룰과 생태계를 이끌어 가는 작가, 딜러, 컬렉터, 큐레이터들의 역할과 관계를 보여주는 이 책에서 저자는 좋은 미술은 무엇인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아트 포럼(Art Forum)』에서나 볼 수 있는 실제 인물들을 통해 답을 제시한다. 큐레이터가 뭐 하는 사람인가 라는 물음에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 로버트 스토(Robert Storr) 큐레이터는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못했을 만한 것들에 주목하게 한다. 게다가 작품들을 생생하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라고 답한다. 


이 책은 현대미술을 다양한 각도로 접근하는 태도를 통해 미술에 대한 시야를 넓혀준다. 7가지 현장 중에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아트페어-바젤 아트페어 챕터에서 저자는 주요 컬렉터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작품을 쟁취하기 위한 신경전부터 갤러리를 운영하는 대표들이 말하는 미술시장의 정의에 관해 이야기 한다. 저자가 블룸앤포(Blum&Poe)의 공동 오너인 제프 포(Jeff Poe)에게 던진 좋은 딜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냐라는 질문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작가의 진실한 지능, 독창성, 그리고 의욕이 담긴 작품을 볼 수 있는 학자 같은 능력이 필요하다라는 포의 대답이 필자에게 특히 개인적으로 와 닿았던 부분이다. 현재 위치에서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작가에 대해 다양한 지식을 쌓고 작품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게 도와준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에 출판된 책은 아니지만 잇 아트로 선정한 이유는 가끔 읽어도 현대미술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현대미술 업계에 대해서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No.18

류동현 문화역서울284 큐레이터

<미술기자 Y씨의 뽕빨 111>(2009, 워크룸갤러리), <Here There and Everywhere>(2013, 금천예술공장), <은밀하게 황홀하게>(2015, 문화역서울 284) 등 기획


마르셀 뒤샹 <Fountain>(1917)


1917년은 세계사를 놓고 볼 때 복잡다단한 해였다.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의 포성으로 뒤덮여 있었고, 10월에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우리나라는 일제의 압제에 신음할 때였다. 그러나 미술계에서 보았을 때 1917년은 위대한 해였다. 4 10일 그랜드 센트럴 갤러리에서 개막한 뉴욕 <앙데팡당전>에 남성 소변기가 출품됐다. 이때까지 미술은 그림과 조각이 대세였고, 그 그림과 조각의 형상을 작가의 손으로 만든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던 시절이었다. “그림이 어떻다라는 말이 나올지언정, “이것이 미술작품이다,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남성 소변기가 이 문제를 촉발한 것이다. 이 소변기에는 리처드 머트(Richard Mutt)라는 뉴욕 화장실 용품 제조업자의 이름이 ‘R. Mutt’라는 서명으로 떡 하니 들어가 있고, 제목은 <(Fountain)>이었다. 미술계에서 이 소변기가 미술작품인지 아닌지에 대한 거센 논란이 벌어졌다. 화장실에 설치하고 진짜 소변을 당장 보더라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던 이 소변기는 결국 전시장에서 철거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작은 소동은 위대한 결과를 낳았다. 이른바 태동기에 있던 다다(dada)’의 불꽃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다다는 과학의 발달, 사회의 발전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무너지는 것을 본 예술인들이 이러한 과학과 합리주의를 거부하고 사회적, 도덕적 속박에서 정신을 해방하면서 개인의 진정한 욕구에 충실하고자 한 예술운동이다. 이 소변기를 통해 다다의 정신을 환기하고 동료들과 만든 잡지 『눈먼 사람(The Blind Man)』을 통해 예술이란 더는 손으로 재현하는 테크닉이 아니라 예술가의 정신, 그에 따른 선택의 문제임을 밝힌 작가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었다. 대학교에서 동서양 고전미술에 심취해 있던 필자에게 다다와 뒤샹의 등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기존 세상에 대한 부정, 아방가르드 정신, 자유 등은 필자의 젊은 시절을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게다. 미술전문지 기자로, 전시 기획자로, 작가로, 여행저술가로 항상 인생의 다양함을 추구하고 나름 '스펙터클'한 인생을 사는 것이 말이다. 그래서 필자에게 인생은 다다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No.19

안민혜 독립큐레이터

<진단적 정신 1-파국(동아미술제 전시기획 공모 당선전시-공동기획)>(2012,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다방다방 프로젝트>(2014, KT&G 상상마당), <살찌는 전시>(2015, 공간 291) 등 기획


[사무엘 베케트]


대학원 시절, 수업 중 토론에서 필자는 온건한 도덕주의자라는 타이틀을 얻었었다. 작가의 작업태도에서 나타나는 윤리성이 작품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정확히는 한 작가의 퍼포먼스에 대한- 토론이었다. 그 타이틀에 걸맞게 행동하고 싶었던 건지, 그 후로도 작가의 작업에 대한 윤리성에 어느 정도 가치를 둔다. 필자는 예술이 삶과 분리되어서는 안 되며 그러므로 윤리가 이 시대 작가에게 필요한 덕목임을 믿는다. 그런 필자에게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는 세련된 윤리성을 드러내는 작가 중 하나다. 심정적으로는 그에게 꽤 동조하고 있으나(사랑한다), 아직 언어로 그럴듯하게 표현하지 못하고는 있는 것이 아쉽지만, 베케트의 <쿼드(Quad)>라는 단막극과  <최악의 방향을 향하여(Worst ward Ho!)>에서 보여주고 있는 불가능의 도전 실패라는 키워드를 예술읽기의 실마리로 두고 있다.



No.20

김성우 아마도예술공간 책임큐레이터

<Media Canvas Project in Collaboration: Flow District>(2013, 서울스퀘어 미디어캔버스), <최수정: 무간 無間_Interminable Nausea>(2015, 아마도예술공간), <신지혜_진석씨> (2015, 부산문화재단 홍티아트센터) 등 기획


[백현주]


잇 아이템'이라 하면 1990년대부터 2000년대, 고가 가방들로 트렌드를 주도하던 브랜드를 주축으로 한 패션산업에서 유래된 용어로, 현재는 널리 유행을 선도하는 것들을 지칭하는 것 아닌가. 표피적이고, 감각이 우선시 되며, 더할 나위 없이 빠르게 변해가는 현실 속 유행의 맨 선두에서 깊이 있는 사유보다는 오히려 소비를 조장하고 종용하는, 한마디로 끊임없이 욕망하게 만드는 그런 것. 그렇다면 동시대 예술을 통한 대안적 지식 생산을 위한 방법론을 고민하는 필자는, 이 잇 아트가 잇 아이템의 대안으로써 감각으로 소비되기보다는 깊이 사유하게 하는, 유행의 최첨단에 역행하며, 하나의 코드로 수렴되지 않고 다양한 주변의 가치 회복을 위한 예술적 리스트로 작성되길 바래본다. 


어쨌든 사족은 이만 각설하고, 그래서 필자가 추천하고 싶은 잇 아트는 백현주다. 큐레이터라는 직업 탓에 부단히 전시를 찾아다니던 중 <친절한 영자씨>(2013)를 보게 되었고, 본 기사의 표현을 빌자면 그때부터 백현주는 필자의 잇 아트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것은 당시, 그리고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필자의 관심사인 특정 장소나 사건에 대한 개인의 기억 (여기서 기억이란, 개인이 직접 경험한 것과 다른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 혹은 풍문 등 파편적이고 불확실하지만 기억 저편에 남아있는 것을 의미한다)이 언어로 구술되며 드러나는 개별적인 차이와, 그것이 모여 어떻게 집단적 기억의 차원에서 특정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역사적/공식적 기록/기술의 대안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예술의 언어로 치환될 수 있는지에 하나의 단서를 제시했던 것 같다. 


특정한 장소와 사건을 기억하는 일반인들-타자의 언어로부터 시작한 백현주의 작업은, 어느 조용한 마을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했다. <친절한 영자씨> (2013). 그 후로 <we;within us-우리에서 우리>(2014)에서는 너와 나를 포함한 우리 일반의 기억으로 확장하며, 우리사회 속 다양한 사회적 공동체의 형성에 대해 탐구한다. 그리고 이번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는 단체전 <소리공동체>에서는 구술되는 언어가 사회적으로 공식화되는 메커니즘에 주목하고, 일반개인의 언어와 공식적 권위가 부여된 언어의 간극 사이에 내재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이렇듯 백현주는 기존의 작업을 관통하는 명확한 주제 위에 작가만의 명민함으로 관심의 외현을 유효하게 확장해 가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는 기억을 정서적 작용을 동반하며 과거를 다시금 생동하게 하는 기제로써 칭한 바 있다. 거대서사와 전통이라는 구조 속으로 각 개인들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하나의 목소리로 통합한 역사에 대한 대안으로써, 개인의 기억과 그들의 언어를 회복시키고 현재적 맥락에서 그들을 생동하게 하는 백현주의 작업은 동시대 한국예술에서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No.21

손세희 독립큐레이터

<건너편의 시선-한국 핀란드 미디어아트 전>(2014,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공동기획), <기억의 장소1-환영의 풍경: 권혜원>(2015, 미디어극장 아이공), <2015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기획전_춤 추실래요?>(2015) 등 기획


[윗스터블 비엔날레]


비엔날레가 너무 많다고들 한다. 더구나 비엔날레라는 이름에 자못 걸게 되는 기대에 미달하는 내용과 정치, 권력의 부당한 개입으로 실망감을 안겨주는 일도 간혹 있어 비엔날레라는 이름이 더 이상 설레지만은 않게 된 건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나의 몇몇 - 목록 중에 이름도 낯선 작은 바닷가마을의 비엔날레가 들어있는 것은 아마도 순전히 3년 전의 예상치 못했던 즐거운 기억 때문일 것이다. 과거 미술잡지로부터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윗스터블 비엔날레(Whitstable Biennale)’에 대한 글을 부탁 받고, 큰 기대감 없이, 런던에서 조금 떨어진 켄트 해안 마을로 향했다. 파빌리온도 대형 미술관도 없는 윗스터블 비엔날레는 대신, 커뮤니티 센터, 지역도서관, 해안가, 선박창고, 어부들의 휴게소 등 지역 내 다양한 장소들을 이용한다. 도시의 풍경과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이 장소들은 외부관람객들에게는 개성과 흥미를, 지역주민들에게는 친근함을 불러일으키기에 좋았다. , 비디오, 필름, 사운드, 라이브 퍼포먼스, 공공미술에 중점을 두는 윗스터블 비엔날레의 프로그램들은 이 매우 일상적인 장소들과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내는 듯 보였다. 


토속적 간식거리를 손에 들고 탁 트인 해변을 따라 걷거나 아기자기한 소품가게들이 늘어선 골목을 기웃거리는 재미는 덤이고, 비엔날레가 아니라면 이 작은 어촌에 올 일 없어 보이는 이들끼리는 종종 눈에 보이지 않는 동료의식 같은 게 생기기도 해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필자는 운이 좋게도 이 덤과 기회를 모두 챙겼다. 하루 일정이었던 비엔날레 방문은 그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쓸데없이 부풀리기보다 참신하고 실험적인 프로그램에 집중했던 2012 윗스터블 비엔날레는 신선한 기억으로 남아 있고 여전히 나를 윗스터블로 향하게 한다.



No.22

문예슬 아트팩토리 큐레이터

<아트로드77 아트페어>(2011-2015, 헤이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모기획전>(2013), <나는 우리, 우리가 그리는 안식처>(2013, 아트 팩토리) 등 기획


[아트페어]


잇 아이템이라 하니 아트페어가 떠올랐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한 공간 안에서 여러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이자, 작품의 실제 거래가 가장 잘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트페어는 외면할 수 없는 미술 시장을 확인시키는 시공간이다. 흔히 매매에 주력한 미술 행사라는 비평을 받기도 하지만, 아트페어는 시장경제 사회에서 유통되는 미술 현상을 보여주며, 작가와 갤러리가 상생해야 한국미술이 발전할 수 있다는 미술계를 확인시키는 값진 자리라고 생각한다. 수준 있는 아트페어는 국공립미술기관에서는 할 수 없는 현재 미술 시장의 바로미터이자 견본시장이 된다. 


필자도 아트페어를 다녀오면 생생한 기운을 받는다. 페어 동안 같은 말을 수차례 반복하여 몸은 지치지만 지금 현시점에서의 유통되는 미술 현장을 정면으로 톡톡히 느낄 수 있어서 미술의 저력을 확인하는 기회라고 느낀다. 각 지역의 아트페어를 비롯하여 서울에서는 키아프(KIAF)’ 등 지속 단발성으로 아트페어에서도 컬렉터를 위한 수준 높은 교육과 작가와의 대담, 여러 특별전도 준비되어 있다. 아트페어, 곧 개최하는 한국미술 시장을 대표하는 KIAF를 추천한다. 이곳에 방문해서 적어도 3시간은 투자해보자. 관람 시, 작품에 관해 물어보는 것을 쑥스러워하지 말고 물어보면 웬만하면 친절히 답해줄 것이다. 큐레이터는 미술에 대한 친절한 안내자이면서 새로운 감흥을 끌어내는 것을 소임으로 하기 때문에…. 


미술이라는 이 낯선 세계에서의 모험을 조심스레 시작하고자 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저가의 작품이면 사람들이 많이 사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들었는데, “작품이 저가라고 해서 마음이 끌리지 않는 작품을 적어도 몇 십, 몇 백이나 되는 집에 걸어둘까?” 라고 되물었다. 작품에 대한 가치평가가 돈으로 전부 환산되는 것은 아니지만, 소장하고자 하는 것이 세상에 하나뿐이고 그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의 혼이 오롯이 담긴, 미술에 대한 작가의 철학과 재능을 돈을 주고 살 기회를 갖게 된다고 생각해보자. 그게 과연 비싼 것인지. 미술애호가도 그 고귀한 작품을 갖고 싶은 것이지, 할인물품을 사려는 게 아닐 것이다. 서로의 격을 맞춰 작품이 소장자를 찾아가고, 작가, 갤러리, 애호가의 소망이 하나 될 때, 비로소 그 순간 작품은 나만의 잇 아이템이자, 그렇게 시대의 작품이 될 것이다. 작품이 거래되는 상황조차도 작품에 얽힌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되어 먼 훗날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하니 스스로 새로운 미술역사를 세우는 기회를 얻길 바란다. 정말 미술애호가들은 그림에서 사랑을 느끼고, 자신의 현재 삶과 존재를 느낀다. 실제로 그림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은 전문가만큼이나 상당한 수준으로 그림을 읽어내기도 했다. 


나아가 아트페어에서뿐만 아니라 어떤 패션의 유행만큼이나 민감한 미술현장을 스스로 점검하는 것을 생활화하고 작품의 흐름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는 혜안과 능력을 갖춘 갤러리, 작가, 미술애호가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지금, 현재 이 시점에서도 그런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꿈을 갖고 책임감과 행복감으로 미술현장에 몸담은 것일 테니까.



No.23

황록주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선의 아름다움-현대 가구의 시작>(2012, 경기도미술관), <동네미술>(2012, 경기도미술관), <공간을 열다>(2013, 경기도미술관), <콜라주 아트>(2014, 경기도미술관) 등 기획


[그림 달력]


스마트폰이 손안에서 떠나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매일 아침 식탁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며 눈길이 가는 곳은 벽시계, 그리고 달력. 오랜 습관이 만들어낸 이 아날로그의 풍경은 비단 우리집만의 일일까? 그렇다 보니 매해 연말이면 한 해를 두고 눈을 맞추게 될 달력을 어떤 것으로 걸어둘지 고민스럽다. 큐레이터로 일하는 큰 기쁨 중 하나는 12월이 되면 고맙게도 여기저기서 좋은 작품이 인쇄된 달력을 보내준다는 사실이다. 다음 한 해를 함께 할 달력을 고르는 순간은 마치 집에 걸어둘 작품 한 점을 선택하는 것 같은 짜릿한 희열과 마주하는 일이다. 게다가 이렇게 하면 큰 부담 없이 매해 다른 작품을 걸어두고 진득하게 감상할 수 있으니, 작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간편하게 좋은 예술을 곁에 두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실 필자의 인생을 미술작품의 전문적인 감상자로 이끌었던 첫 번째 동기 역시 1990년에 대학을 다니던 언니가 보여준 변종하의 작품이 실린 달력이었다. 그 달력 속 작가의 작품을 보며 현대미술이 갖고 있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따뜻함에 감동했고, 그 달력을 계기로 정말 뭘 하나도 모르던 시절부터 마음속에 예술 작품을 품게 되었다. 식탁 옆에 걸린 그 그림이 진짜 작품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하지만, 매일을 함께 하는 달력에 실린 인쇄된 작품이어도 크게 상관할 바 없다. 하루를 예술과 함께 시작하겠다는 의지, 그거면 충분하다.



No.24

방소연 대림미술관 큐레이터

<위영일_기네스 욕망>(2012, 카이스 갤러리), <이강원_풍경의 이면> (2014, 갤러리 플래닛), <민병헌_Monolouge>(2015, 갤러리 플래닛) <헨릭 빕스코브-패션과 예술, 경계를 허무는 아티스트>(2015, 대림미술관) 등 기획


[안드레아 로젠 갤러리]


뉴욕 첼시 24번가에 있는 안드레아 로젠 갤러리(Andrea Rosen Gallery)는 필자에게 두렵지만 설랬던 미술계로의 첫걸음에 대한 기억인 동시에 미술계에서 유행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최고를 지향하는 차별화된 포지셔닝을 상징한다. 당시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 늦은 나이에 미술계로 진로를 변경하고자 유학을 와서 안드레아 로젠 갤러리에서 1년가량 인턴으로 일했다. 안드레아 로젠 갤러리는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재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존 커린(John Currin), 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의 첫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뉴욕 탑 갤러리 중 하나다. 하지만 당시에는 유학 초반이라 영어도 부족했고 뉴욕 미술 신(scene)에 대해서 무지했던 탓에 이런 좋은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업무에 대한 메뉴얼이라던가 아카이빙, 작가 관리, 데이터베이스 솔루션의 사용 등 모든 것이 한국과 비교하면 선진적이었다. 연말에는 갤러리 소속 작가들에게 선물을 배달하러 작업실을 방문하고, 전시 오프닝 전 갤러리 전 직원이 함께하는 갤러리 토크도 기억에 남는다. 


인턴이 끝나는 마지막 날 카드와 함께 샴페인을 선물 받았는데, 작은 부분까지 챙기는 세심함이 안드레아 로젠 갤러리가 25년 동안 차별화된 명성을 쌓아온 비결이 아닐까 싶다. 업무와는 별개로 그리운 기억들도 많다.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갤러리로 걸어가는 길에 가끔 카페 조 커피(Joe coffee)’에서 커피를 사 가면서 첼시의 갤러리스트가 된 듯한 느낌. 갤러리에서 케이터링으로 제공되던 점심 메뉴 가운데 좋아했던 그리스 음식 무사카(Moussaka). 아카이빙 팀의 동료가 듣던 뉴욕 퍼블릭 라디오 등. 가끔 매너리즘에 빠졌다 생각이 들 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을 채찍질한다. 얼마나 의욕적이고 꿈으로 가득 찼던가 하고 말이다.



No.25

희정 P&Co 디렉터

<임선이_걸어가는 도시-들리는 풍경_SUSPECT>(2014, 갤러리 잔다리), <금민정_.>(2014, 갤러리 세줄), <KLPGA 넵스 마스터피스 아트 프로젝트_Tracing Traces>(2014), <우민아트센터&()서울문화재단 교류전_>(2015, 우민아트센터) 등 기획


[이병호 <Childhood>(2007)]


전시나 포트폴리오를 보다가 또는 작가의 작업실에 갔다가 (it)’을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필자는 그때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편이다. 여러 만남과 인연 중 지금도 그 순간의 기억이 생생한 필자의 잇아트 중 한 점과의 만남은 2007 <중앙미술대전> 선정작가 전시에서였다. 이미 이름도 작품도 익숙한 작가들이 대부분이었던 터라 오프닝에 갔던 건 기획전에 함께 했던 모 작가가 본 전시 선정작가가 되어 작가도 만나고 전시(신작들)도 볼 요량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전시장을 돌아보던 중 시선도 발도 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을 만났으니! 전시장의 많은 작품 중 유난히 조용히 자리 잡고 있던 그 작품은 처음엔 너무 조용해서 관심이 갔다. 


석고상 또는 대리석으로 만든 두상 같기도 한 그 작품은 아마도 너무 얌전해 보여서 관객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듯 보였다. 모두 큰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있는 그런 조용함이 오히려 나의 호기심을 끌었다. 이 석고상(?)이 왜 여기 있느냐고 생각하며 좀 더 가까이 다가간 순간 작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간 예상치 못했던 움직임에 놀라 인터랙티브인가 싶었는데, 실은 타이머에 맞춰 에어 컴프레서가 작동되는 것이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나의 시선과 작품의 움직임이 만난 그 기막힌 찰나, 그리고 그 순간 그 미세한 움직임에 의해 작동한 나의 긴장과 흥분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 본 작품이었고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작가였다. 그 전시장의 어떤 작품보다도 크고 강렬하게 다가온 그 작품은 이병호의 <Childhood>였다. 그 작은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아이의 얼굴이었다가 서서히 해골이 되고 다시 공기를 얻어 아이가 되기를 반복하는 그 작품 앞에서 오히려 필자가 석고상처럼 굳어 버렸다. 


그렇게 작품을 만나고, 작가 이병호를 만났다. 그날 이후로 꽤 오랫동안 내 컴퓨터 바탕화면은 <Childhood>였다. 출근해서 처음 만나고, 퇴근할 때 인사하는 사이! 이후 몇 년 동안 그의 여러 작품을 만났다. 그때마다 처음<Childhood>를 만났을 때처럼 약간의 긴장과 흥분이 인다. 그리고 그날 그때, <Child hood> 앞에서의 순간으로 소환된다. 매번 그 순간의 경험과 느낌을 나에게 다시 안겨주는 작가도, 그 첫 만남의 절묘한 타이밍을 선사한<Childhood>도 필자에게 잇 아트.



No.26

최윤정 지리산프로젝트 큐레이터

<민성民性>(2012, 대구미술관), <지리산프로젝트 2014: 우주예술집> (2014, 경남 산청 성심원), <1회 저항예술제>(2015, 성남 일대) 등 기획


[캠핑! 캠퍼?]


캠핑은 도시인의 산책이자 놀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말하자면 자연을 늘 접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캠핑은 그저 집 떠난 노숙 내지는 사서 하는 고생과도 같은 이미지임에 반해, 도시인들에게 있어 캠핑은 일상으로부터 탈주하는 피난처, 도시의 때를 벗기는 것과도 같은 로맨틱한 일탈임을 보여주는 말이다. 필자는 현재 지리산 경남권에서 지리산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지리산은 예술가들에게는 힐링의 장소이면서도 그것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 특유의 대자연 그리고 옛 마을이라는 환경을 창작 모티브로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곳이 필자에게는 도시와 다르지 않은 일터로 여겨지는 탓에 예술가들처럼 사색과 관조를 즐기는 일은 애당초 어렵고 버거운 일이기도 했는데…. 


지난해 <전국예술가캠핑대회>라는 타이틀로 지리산프로젝트 참여작가가 캠핑을 작업화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함께 참여하게 되면서 캠핑은 나에게 일터로서의 지리산을 힐링의 지리산으로 전유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역할을 했다. 그래서 필자는 캠퍼가 되었다. 이에 지리산프로젝트 안에서 둘레길도 걷고 세미나도 하고 캠핑도 하는 프로그램(‘지프달모’)을 함께 고안해 매달 지리산권 각 사이트를 돌며 꾸준히 캠핑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일의 연속이지만, 캠핑사이트를 구축하기 위한 노동과 늦은 밤 불멍(멍하게 아무 생각없이 장작불에 시선을 맞추고 있는)’의 경지도 경험하면서, 그리고 입소문을 따라 예술가뿐 아닌 전문캠퍼들도 참여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캠핑에 대한 정보도 나눌 수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지난 6월 몽골캠핑에도 참여하게 되었는데(이후 새로운 별칭 몽골유학생 캠퍼 최큐’) 이 캠핑을 주관한 여행잡지의 8월호 표지모델이 되는 재미난 경험도 하였다. 


어느 곳이든 자신만의 캠핑사이트를 구축하면 그 사이트는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가 된다. 불멍은 정신을 몽롱하게 하면서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게 하고, 그렇게 구축한 작은 세계에 가만히 앉아 주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 급할 게 없을 것 같다는, 약간의 인생무상 그리고 약간의 호연지기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마음의 복잡한 지경을 비워낸, 아쉽지만 짧은 일정이 마무리되는 순간, 다시금 현실로 복귀해야 하는 약간의 우울감이 살짝 독이다. 그러나 일상은 그렇게 유지되고 견디어진다. 기획자에게는 캠핑이 필요하다. 캠핑은 인문학적 사유에 버금간다.



No.27

정다경 갤러리조선 큐레이터

<송지윤, 윤상윤_You were, you are>(2012, 갤러리조선), <칼 오마슨_사계절>(2013, 갤러리조선), <박보나_친구들>(2013, 갤러리 조선), <김동윤, 이정배_Space is the place>(2014, 갤러리조선) 등 기획


[현재]


갤러리조선에서 2010년 부터 약 5년 동안 전시를 기획하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면, 그것은 현재 라는 단어다. 갤러리라는 상업 공간이 현재 한국 미술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고, 작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함께 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진행 중인 전시가 지난 전시들과 만나면서 한 갤러리의 성격이 서서히 규정되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예술은 만들어진 시기와 상관없이 현재 일어나는 일이다. 지금 우리의 삶과 예술이 마치 장르가 다른 두 영화처럼 보이지만, 많은 경우 예술 작품은 당대의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고, 한 작가의 삶을 통해 긴 호흡으로 마무리되는 예술 세계는 그 작품이 훌륭하면 훌륭할 수록 시간의 스펙트럼을 뛰어 넘어 전시를 보는 이들의 현재와 만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전시 중의 하나였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The Artist is Present>를 예로 들면, 아브라모비치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퍼포먼스를 통해 동시대의 사람들과 직접 마주하게 되는데, 작가는 그 중 단 한 사람에게 흔들리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다름 아닌 옛 연인 울라이였고, 그 둘은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를 통해 22년 만에 재회한 뒤 다시 말없이 헤어진다.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가 두 손을 맞잡았던 순간에는 22년 이라는 과거의 시간 대신에 서로가 눈을 마주보며 앉아 있었던 현재 만이 있었을 것이다. 작품이 전시를 통해 관람객과 만나는 순간은 수많은 잡지 중에 「퍼블릭아트」를 펴들고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의 지금과 다르지 않다. 한 달에 한 번, 이 책 한 권을 서점에 비치하기 위해 기사를 쓰고, 사진을 편집해 인쇄를 넘겨 최종 본을 받는, 쉽지 않은 공정을 가능하게 한 보이지 않는 이들의 노력이 빛나는 이유다. 미술 잡지로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켜주어 고맙고, 현재 우리와 함께 있어 고맙다. 퍼블릭아트.



No.28

정소라 KAIST 경영대학 전시 담당 큐레이터

<공간원예>(2014, 갤러리 플래닛), <이은선_접선>(2015, KAIST 경영대학 Research&Art Gallery), <금민정_생의 규칙>(2015, KAIST 경영대학 Research&Art Gallery) 등 기획


[유럽 미술관의 분위기]


미술과 함께 했던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면 수많은 전시와 작품들, 예술가들, 장소들 그리고 서적들과 스승들이 필자를 스쳐 지나갔고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어떤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울림을 일으켰고, 또 다른 것은 반짝이는 영감을 주었고, 어떤 분들은 나를 이곳까지 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 모두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들이다. 그래도 딱 한 가지를 꼽으라면 20여 년 전 유럽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처음 방문했을 때 필자를 사로잡았던 그곳의 분위기. 대학생이 되자마자 떠난 유럽의 배낭여행에서 만난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알 수 없는 흥분과 설렘을 주었다. 그 당시 국내에는 예술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트북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진품들이 가득했고, 예술 감상을 일상처럼 여기는 관람자들이 정말로 많았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브리튼, 대영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그리고 피카소 미술관 등 여러 공간에서 고갱과 고흐와 같은 대가들의 작품을 만났고, 전시장 바닥에 앉아 편하게 드로잉하던 초등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그곳의 미술관들은 내, 외부 시설 곳곳에서 예술작품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아마도 그 속에서 예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예술 기관들이 지향해야 하는 바를 어렴풋하게나마 배웠던 것 같다. 필자가 경험했던 그 분위기는 예술품과 사람 그리고 장소와 제도가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필자의 잇 아트는 딱히 어떤 미술관이거나 어떤 특정 작품이 아니다. 여러 요소가 만들어내었던 바로 그 당시의 그 장소에서 경험했던 예술적 분위기이다. 그 후에 다른 많은 미술관과 갤러리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유럽의 기관들에 필적할 장소들이 많아졌다. 국내 관람자의 수도 많이 증가했고 대중들은 예술을 예전보다 더 가깝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젠 더는 유럽의 미술관이 자아내던 그 분위기가 마냥 부럽지만은 않다. 그래도 그때 그곳에서의 황홀했던 경험들이 가끔 생각난다. 



No.29

정은빈 청춘여가연구소 대표

<뜨거운 스물아홉 그리고 서른>(2014, 옥수동 스케치북), <소셜오케스트라 브레멘음악대>(2014), <여가살롱>(2014) 등 기획


[산책, 시립미술관]


도시 삶에서 여유를 찾는 일은 노력 없이는 얻기 힘든 일이다. 점심을 쪼개서 모자란 잠을, 소통을, 일상을 처리하다 보면 더부룩한 속을 소화하기도 전에 오후의 깊은 직무에 빠져들고 그렇게 하루는 저물어 야심한 밤의 영역을 맞이하게 된다. ‘여유라는 상큼하고 영감 넘치는 단어가 내 삶에 돌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필자에게는 하루 30분 산책이 그 답이다. 그것도 화이트큐브(미술관)’로의 여행. 고색이 깃든 오래된 길이면 더욱 좋은 시간, 필자가 아끼는 시립미술관의 산책을 소개한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작은 로터리를 만난다. 로터리 분수대를 살짝 비켜 낮은 언덕을 돌아 길을 오르면 마주하게 되는 벽돌건물이 유독 환하게 느껴진다. 몇 번을 와도 어서 이 문을 열고 싶다. 옛날에는 나무문이었을까? 아치형의 입구를 들어서면 오히려 이 안이 밖인 것처럼 쾌적한 공기가 감돈다. 들어서자 바로 마주하게 되는 넓은 홀은 하얗고 높은 벽을 기둥 삼아 건물의 내면을 한눈에 보여준다. 어서 내 안을 들여다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입구 양옆으로 홀이 길쭉하게 오픈되어 있고 정면 오른쪽으로는 정직하게 손을 내민 듯 쭉 뻗은 계단이 상층으로 연결된 것이 사뭇 오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사방이 밝은 외광으로 고요히 빛나고 맑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입구 왼쪽에서 은은한 커피 향이 느껴진다. 듬성듬성 테이블을 차지한 사람들의 어깨 위로도 밝은 빛이 가득하다. 여기에 앉으면 여유도 덤으로 얻게 되는지 대화하는 연인도, 혼자 앉은 워킹걸도 편안한 표정으로 각자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다시 오른쪽을 돌아보면 넓은 홀을 지나 외부로 나가는 유리문을 마주하게 된다. 커다란 문에 걸린 초록이 좋다. 새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싱그러운 초록이다. 이쪽 홀에는 커피 향이 아닌 넉살 좋은 휴식이 가득하다. 메인 현관 벽을 따라 늘어선 황금빛 소파가 몸을 눕혀야만 앉기 편해서일까? 가끔은 여기서 긴 시간 들여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옆으로 나누는 시선과 대화는 느슨한 법이다. 이제는 홀 정면 왼편에 조용하게 위치한 안내데스크를 향한다. 고요함을 털어내고 또박또박 밝음 속으로, 그리고 오롯하게 드러낸 속을 봐주길 기다리는 오늘의 산책 속으로 잰걸음을 옮길 시간이다.



No.30

주민선 서울대학교미술관 학예연구사

<에어월드: 하늘 위 디자인의 모든 것>(2008, 대림미술관), <Henry M. Buhl 컬렉션: Speaking with Hands>(2009, 대림미술관), <숭고의 마조히즘>(2015, 서울대학교미술관), <덴마크의 보석함>(2015, 서울대학교미술관) 등 기획


[중동 현대미술]


중동(The Middle East) 지역이 예술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으며 제2의 도약을 꿈꾸었던 것이 최근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 오랜 기간 끌어왔던 글로벌 프로젝트들이 그 최종 결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우선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장 누벨(Jean Nouvel)이 설계를 맡은 루브르박물관의 분관인 루브르 아부다비가 2016년 말에,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맡은 구겐하임 아부다비는 2017년 개관을 앞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일대는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공연예술센터, 안도 타다오(Ando Tadao)의 마린타임 뮤지엄과 함께 현대미술과 건축이 집결지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이런 굵직한 글로벌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두바이의 공장 단지였던 알쿠즈(Al Qouz)지역에 자리 잡은 갤러리 밀집 지대인 알세르칼 에비뉴(Alserkal Avenue) 아트 두바이,’‘디자인 데이 두바이(Design Days Dubai)’등 연중 다채로운 예술 행사를 중동 지역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외에도 샤르자(Sharjah)에서 개최되는 샤르자 비엔날레나 마라야 아트센터(Maraya Art Center)의 움직임도 눈여겨볼만 하다. 또한, 미술품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카타르 왕족, 특히 그 중에서도 셰이크 알 마야사(Sheikha Al-Mayassa) 공주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카타르 국립미술관과 이슬람 미술관(Mathaf, Arab Museum of Modern Art)의 컬렉션도 계속해서 그 양과 질 면에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중동으로의 아트투어를 계획해야 하지 않을까









*잇 아트 아이템_큐레이터 63(1-30) ②에서 내용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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