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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5, Jun 2015

2015 베니스 비엔날레

Venice Biennale

과연 베니스 비엔날레다. 매회 놀라우리만치 규모를 키우고 있는 행사는 올해도 역시 블록버스터급 위엄을 자랑했다. 미술, 건축, 영화 등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는 행사를 총괄하는 라 비엔날레(La Biennale)의 파올로 바라타(Paolo Baratta) 회장은 “베니스 비엔날레는 절대 유료광고를 하지 않는다. 자르디니(Giardini)에 참가하는 약 90여개의 국가가 자신들의 역량으로 홍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본 전시와 각 국가관을 후원하는 기업들이 베니스 비엔날레의 권위를 세울 뿐”이라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행사 기간, 베니스 곳곳의 건축과 시설에 붙는 (도시가 제작한) 광고 이외에 그 어떤 매체와 방송에서도 비엔날레 재단이 직접 의뢰한 광고는 찾아 볼 수 없다. 파올로 회장의 말대로 세계 제일의 미술축제 베니스 비엔날레는 기업과 국가의 공력까지 덧붙어 번성하고 있다. 여러 글로벌 그룹이 본 전시를, 각 나라의 대표 브랜드가 자신들의 국가관을 후원하니 ‘황금사자상’과 ‘스페셜 멘션’ 이외에 각 국가관 전시에 특별한 순위가 매겨지지 않음에도 ‘현대미술 경연장’, ‘올림픽’이란 별명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늘 따라붙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쉰여섯 번째 베니스 비엔날레를, 이제 곧 참관을 계획하거나 혹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지면으로 만끽하려는 독자들께 「퍼블릭아트」 편집부가 낱낱이 소개한다. 특집1. 총감독이 기획한 본전시를 신보슬 큐레이터가 소개한 후 특집2. 90여개에 달하는 국가관 중 유독 스토리가 강한 7개의 국가관 전시에 이어 특집3. 베니스를 휘감고 있는 다양한 위성전시가 배치된다. 그리고 이 중간에 개관 20주년을 맞은 한국관의 이슈와 은사자상을 거머쥔 임흥순 작가의 기사가 녹아있다. 지면과 맞닿은 바닷물이 찰랑이는 베니스, 그 한 중간에 뿌려진 미술들의 진중함을 여러분께 고스란히 전달한다.
● 기획·진행 편집부 ● 사진 la Biennale di Venezia 제공

Xu Bing 'Phoenix' 2012-2013 56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la Biennale di Venezia All the World’s Futures Photo by Alessandra Chemollo Courtesy by la Biennale di Venez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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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슬 큐레이터, 문선아 객원기자,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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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Ⅰ 

관객의 자리가 빠진 현대예술, 그리고 미래가 빠진 모든 세상의 미래’_신보슬


SPECIAL FEATURE Ⅰ-Ⅰ 

Leone d' argento, 임흥순의 <위로공단>_문선아


SPECIAL FEATURE Ⅱ 

Republic of Korea

Republic of Armenia

United States of America

Great Britain

Hong Kong

Belgium

Japan


SPECIAL FEATURE Ⅲ 

이토록 매력적인, 미술들_편집부




Special feature Ⅰ

관객의 자리가 빠진 현대예술

그리고 미래가 빠진 모든 세상의 미래

 신보슬 큐레이터



2013 6. 외국 큐레이터들과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를 둘러보고 아카데미아 뒤에 있는 작은 노천카페에 모여 앉아 본전시는 어땠는지, 어느 국가관이 좋았는지에 대해서 수다 비슷하게 비엔날레 프리뷰를 본 느낌들을 이야기했다. 아침 10시부터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베니스를 걸어 다녔던 터라 오후 4시가 되었을 때는 이미 지쳐있었지만, 그래도 혹여 놓친 전시는 없는지, 다른 사람들은 전시를 어떻게 보았을지 궁금하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좋았던 전시에 대한 개인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인 의견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는 새로울 것이 없다면서, 아무래도 다음번 베니스는 아마 안 올 것 같다는 것이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고 보니2011년에도 비엔날레 프리뷰 마지막 날, 우리는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이다.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은 매번 프리뷰에 나타난다. 사실 프리뷰는 전시 보기 그리 적절한 환경은 아니다. 전시장은 사람들로 발 딛을 틈 없고,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오프닝 행사 때문에 어수선한 분위기는 한층 더 어수선해 진다. 작품에 시선을 좀 줄라치면, 어디선가 아는 사람이 나타나 이런저런 인사말을 건네다 보면, 전시를 보는 맥락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베니스 프리뷰를 찾는 이유는 각자의 감상을 공유하고, 새로운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네트워킹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다시 2년이 흘렀고, 우리는 그렇게 다시 모여 전시보기에 나섰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나의 베니스 비엔날레 투어는 국가관을 보기에 앞서 자르디니(Giardini)에 있는 본 전시관이라 할 수 있는 센트럴 파빌리온에서 시작한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그 해 커미셔너의 기획력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국가관의 경쟁과 무관하게 좋은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올해의 커미셔너는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그는 ‘2008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었고, ‘카셀도쿠멘타를 비롯한 굵직한 전시들을 통해 그의 전시 스타일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어떤 큰 변화나 새로움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뉴욕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아프리카 사회와 예술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던 그가 바라보는 혹은 제시하는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는 어떤 모습일지가 자못 궁금해졌다. 




 Katharina Grosse <Das Bett>

 2004 Acrilico su parete, pavimento eoggetti vari

 280×450×400cm 56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la Biennale di Venezia, All the World’s Futures

 Photo by Alessandra Chemollo Courtesy by la Biennale di Venezia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이례적으로 자르디니 입구에 설치된 거대한 조각상에서 시작된다. 거대한 기단위에 위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목이 잘린 석상은 델리 기반의 콜렉티브 그룹인 락스미디어 콜렉티브(RAQS Media Collective) 코러네이션 공원(Coronation Park)’ 시리즈 중 하나이다. 자르디니 공원에 설치된 총 9개의 석상은 각각 인도의 영국식민 역사에 언급되는 인물인데, 조지 오웰(George Owell)의 『코끼리를 쏘다(Shooting and Elephant)』의 인용구를 가지고 있다. 실제 델리에 있는 코러네이션 공원을 직접 참조하여 만든 이 조각 작품은 대리석이 아닌 아스팔트재료인 역청과 파라핀을 사용하여 작품의 의미 층위를 정치/사회적인 것에 국한시키지 않고, 글로벌 자본주의, 나아가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상상과 산업화에 대해서까지 과감하게 언급한다는 측면에서 락스 미디어 콜렉티브의 작업은 엔위저의 전시 기획 의도를 가장 잘 보여준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엔위저의 전시를 살펴보면 그가 이번 전시에서 내용적인 측면보다는 형식적인 실험에 꽤 많은 고민을 한 것처럼 보였다. 전시장 인트로에도 언급했듯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단일화된 형식 안으로 통합시키기 보다는 다양한 형식들로 풀어내려고 했던 것 같다. 각기 다른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와 예술적 맥락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작품과 담론들을 전지적 입장에서 큐레이터가 통합시키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다양한 형식을 전시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모든 세계의 미래라는 제목을 결정했을 때 이미 예정된 결과였을 수도 있다. 그의 솔루션은 <Garden of Disorder>, <Liveness: On Epic Duration>, 그리고<Reading Capital> 이렇게 세 개의 필터들이 상호 교차하고 참조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소위 말하는 시각 예술가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와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을 포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의 해결책은 그다지 성공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다양한 레이어를 살리는 기획을 통해서 자신이 제기하고자 했던 두 가지 질문을 명확하게 언급한다. 다소 긴 감이 없지 않지만, 이후 그의 전시를 이 두 가지 문제에 집중하여 살펴보기 위해서 전문을 인용해보기로 하겠다.





Adel Abdessemed <Also sprach Allah> 2008 Pietranera 

su tappeto e video, colore, suono Dimensioni variabili

(tappeto: 145×215cm) 56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la 

Biennale di Venezia, All the World’s Futures Photo by Alessandra

 Chemollo Courtesy by la Biennale di Venezia




 이번 전시가 제기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대중들이 오늘날의 이 격변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예술가, 사상가, 글을 쓰는 작가, 작곡가, 안무가, 그리고 가수와 뮤지션들은 어떻게 이미지, 사물, 단어, 움직임, 활동, , 사운드를 사용하여 대중들이 듣고, 반응하고, 참여하고, 말하는 과정을 함께 하게 할 수 있을까? 관습적인 디스플레이 형식에 안주하려하지 않는 (새로운) 전시형식을 만들어내기 위한 이처럼 변증법적으로 상호 참조하는 영역에서 어떤 상징적이거나 심미적인,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행위가 만들어 질 것인가?” 정리하면, 첫째,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에 국한하지 않고, 사상가, 활동가까지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전시 뿐 아니라, 퍼포먼스 공연도 전시장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여 기존의 일반적인 전시와는 다르게 해보겠다. 둘째, 이런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어떤 새로운 행위가 촉발될 수 있는지를 보겠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실험은 전시 전반을 거쳐 아주 일관되고 성실하게 진행되었다. 전시장에 마련된 아레나(arena)’라 불리는 무대공간에서는 칼 막스(Karl Marx)의 『자본론(Das Kapital)』 에서 제기된, 그리고 지금도 유의미한 질문들을 다양한 관점과 장르의 작업에서 제시한다. 아이작 줄리앙(Isaac Julien) <자본론 오라토리오(Das Kapital Oratorio)> 퍼포먼스, 시리아 내전이 한창일 무렵 시리아의 일반 사람들을 담은 아보우나다라 콜렉티브(Abounaddara collective)의 비디오 시리즈,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의 영화 스크리닝, 안무가이자 아티스트, 저자인 이바나 뮐러(Ivana Mueller)의 작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자르디니 센트럴 파빌리온과 아르세날레(Arsenale)의 전시에서도 이러한 실험은 계속되었다. 회화, 설치에 이어 갑작스레 등장하는 퍼포먼스는 관객의 경험을 다양하게 하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전시장 안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해 들어온 이러한 퍼포먼스와 공연의 형식이 과연 작품을 감상하는데 효과적이었나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아레나 공간에서 주옥같은 작업들이 소개되고 토크 프로그램도 이어졌지만, 별도의 극장이 아닌, 전시장 안에 만들어진 극장형의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다소 과하게 다른 전시 공간에까지 영향을 미쳐 작품의 감상을 방해하는가 하면, 아레나 공간 안에서도 소리의 울림과 반사가 심해서 토론을 집중해서 듣기 어려울 정도였다. 





Barthélésmy Toguo <The New World Climax> 

2000-2014 Installation with wooden stamps, 

tables, ink prints on paper Courtesy Stevenson, Cape Town

 and Johannesburg; Bandjoun Station Cameroun 

Photo Mario Todeschini




이러한 문제는 전시장에서도 계속되었다. 아드리안 파이퍼(Adrian Piper)의 작품 <개연적 신용 등록: 게임의 법칙(The Probable Trust Registry: The Rule of Games #1-3)> 역시 (적어도 프리뷰 기간 동안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세 개의 아주 전형적인 리셉션 데스크와 데스크 뒤 회색 벽면에는 마치 개인적 다짐이나 맹세 같은 세 개의 문장 ‘I will always be too expensive to buy,’ ‘I will always mean what I say,’ ‘I will always do what I say I am going to do’이 금색으로 쓰여 있는 것. 관객은 전체 프로세스를 세심하게 읽고 그에 동의하면 개인 맹세서(Personal Declaration)’에 사인을 한다. 이 서명된 맹세문과 메일링 주소는 개연적 신용 등록이라는 곳에 등록되고, 전시가 끝나면 원본은 베를린에 있는 ARPA 비밀 인벤토리에 보관되었다가, 100년 이후에 개봉된다. 사회적, 개인적인 계약이라는 상황을 둘러싼 퍼포먼스는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세심한 지점들을 다루고 있다. (프리뷰 기간 동안의 어수선함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관객이 제대로 작품의 인스트럭션을 읽고 가기에는 너무나 산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위저의 베니스 비엔날레 2015’에 대한 좋은 평가 중 하나는 초청된 작품들이 대체로 좋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슬로건과 달리 작품 선정은 지나치게 안정적이었다. 한스 하케(Hans Haacke) <세계 투표(World Poll)>,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y) 69년 작품인 <기침하는 남자(L’homme qui tousse)>에 이어, 워커 에반스(Walker Evans)의 사진집 <지금 저 영웅을 찬양하지 않겠는가(Let Us Now Praise Famous Men)>에서 소개되었던 그 유명한 사진들, 이외에도 테레사 버가(Teresa Burga), 로사 바바라(Rosa Babara), 크리스 마커(Chris Marker), 아이작 줄리앙,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 등 이미 이론적으로 검증된 작가들과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지난번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의 전시가 예술 뿐 아니라 고고학적 자료들까지 총 망라한 박물관학적 전시였다면, 이번 엔위저의 베니스 비엔날레 엄선된 현대예술을 총망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법한 전시였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작가들의 훌륭한 작품들로 가득한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전시를 보는 내내 큰 감동은 없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전시를 보기가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왜였을까. 





Cao Fei <La Town> 2014 Video in HD, colore, suono 

42’56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la 

Biennale di Venezia, All the World’s Futures Photo by 

Alessandra Chemollo Courtesy by la Biennale di Venezia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가장 큰 문제로 전시 설치의 문제가 지적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전시장은 무수히 많은 파티션으로 쪼개져 있고, 작품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러다 보니 때론 작품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공간마저도 확보되지 못하곤 한다. 예를 들어 남화연은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시대 튤립포마니아에 관란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2채널 프로젝션으로 <욕망의 식물학(Botany of Desire)>을 출품했다. 차분히 영상의 내러티브를 따라가야 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화면 맞은편에는 Gluklya(Natalia Pershina-Yaki manskaya)  <잘못된 푸틴 선거를 반대하는 시위를 위한 옷(Clothes for the demonstration against false election of Vladimir Putin)> 작품이 긴 행렬을 이루며 서 있었다. 작품의 내용적인 측면에서 어떤 연관을 찾았을는지 모르지만, 두 작품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과 스타일이 너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좁은 공간 안에서 서로 부딪히고 있었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톤에 관한 것이었다. 각각의 작품들이 전달하는 메시지의 강약조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 하나의 톤으로 전달되었다. ‘모든 세상의 미래를 보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하더라도, 대다수의 작품들이 과거와 현재 모든 세상의 갈등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무겁고 심각한 주제와 현실을 끝없이 마주해야 하는 피로감. 그 어느 때 보다 전시를 보는 행위 자체가 물리적으로 힘든 이유였다. 이처럼 과도한 작품의 설치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레이어를 통해서 어떤 상징적/미적, 정치적/사회적 행위들이 촉발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인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떤 감상행위가 이후의 실제적 행위를 촉발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수가 아니라 감상의 밀도와 질이 전제되어야 한다. 열개의 좋은 작품들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간을 가득 채운 작품에 압도되어 관객은 종종 작품 보기를 포기한다. 


개관부터 폐관까지 시간을 꼬박 다 써야 간신히 전시를 볼 수 있다면, 전시를 통한 이후의 행위가 가능할까. 큐레이터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과연 전달될 수 있을까. 만일 관객의 관람을 배제한 전시 만들기라면, 과연 전시는 왜 필요한 것일까. 물론, 이것이 엔위저의 베니스 비엔날레 만의 문제는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불필요하게 커져가는 비엔날레형의 전시들에 관객은 빠져있다. 전시라는 형식이 과연매체로써 여전히 유효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전시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 이번 비엔날레는 전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다시 하게 만들었다. 





Pino Pascali <Cannone Semovente(Gun)> 1965 Legno, rottam

 di metallo e ruote 251.5×340.4×246.4 cm 56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la Biennaledi Venezia, All the World’s Futures 

Photo by Alessandra Chemollo Courtesy by la Biennale di Venezia




2015 5 9. 프리뷰가 끝났다. 이제 각자의 나라로 떠나기 전, 노천카페에 둘러 앉아 이번 비엔날레에 대한 나름의 품평회가 시작되었다. 대체로 의견은 비슷했다. 작품은 좋은 것이 많았지만, 과연 전시로써 큐레이터의 의도가 제대로 구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의문이었다.‘모든 세상의 미래라는 전시에서 보여준 너무 많은 과거와 현재의 갈등이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과연 우리는 전시에서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분명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올법한 그런 미래는 아니었다. 큐레이터가 뭔가 시원한 해답을 주리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자괴감을 떨칠 수 없었다. 예술이 한 때 세상을 앞서 보았던 적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과연 오늘 우리는 미래를 함께 그려보는 혹은 앞서 나가는 예술/전시를 만들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자기 반성적인 이야기도 슬쩍 흘러나왔다. 그리고 또 어김없이 누군가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다음번에는 프리뷰에 오지 말까보다고. 그 옆에 있는 누군가가 일어나며 이야기했다. 아마 2년 후에도 우리는 또 이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그리고는 여기 베니스에서 함께 전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함께 전시를 보고, 의견을 나누었던 이 짧은 시간이 언젠가 내가 만드는 전시에 유용한 자양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베니스를 떠났다.   



글쓴이 신보슬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철학을, 홍익대학교에서 미학을 전공했다. 국내외 미디어아트 관련 학술행사와 전시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작가와 함께 인도, 말레이시아 등지를 여행한 <로드쇼> <Playground in Island>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주요 전시로 독일 뷔어템베르기셔 쿤스트페어라인 공동기획 <Acts of Voicing>, 문타다스 개인전 <Muntadas: Asian Protocols> 등이 있으며, 서울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 전시팀장, 대안공간 루프 책임큐레이터를 거쳐 현재 토탈미술관 책임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Factory Complex> 2014-2015





Special feature Ⅰ-Ⅰ

Leone d’argento

임흥순의 <위로공단>

 문선아 객원기자



자로, 아르세날레 전시장이 꺾이는 공간. 그 한편에 암막 커튼이 마치 인연을 상징하는 듯한 빨간 리본으로 묶여있다. 왠지 모르게 홀려 공간 안으로 들어서면, 3×7m 크기의 대형 스크린에 임흥순의 <위로공단(Factory Complex)>이 상영되고 있다. 총 감독 오쿠이 엔위저의 초청으로 '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에 참여하면서 미술의 경계 안에 확고히 자리 잡은 이 영화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9일 한국 출신(을 내세운) 작가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하면서 이제 미술의 중심에 서게 됐다. 영화는 한국과 아시아에서의 노동 관련 사건 기록과 과거와 현재의 노동 현장 풍경, 노동자나 사건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병치하며 진행된다. 1976년 여성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민주노조를 사수하기위해 알몸 투쟁까지 불사했으나 폭력진압으로도 모자라 인분까지 맞게 됐던 동일방직노동자투쟁이나 1979년 여성 노동자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중 강제 진압과정에서 한 노동자가 사망한 와이에이치무역 여공사건에 대한 인터뷰, 그리고 당시의 노동환경에 대한 자전적 인터뷰들이 번갈아 제시되면서, 그 참혹했던 노동의 현장을 관람객들의 뇌리에 남긴다. 


일면 이야기를 과거 한국의 노동문제에 한정하는 듯 했던 영화는 이내 화면을 전환하여 노동문제가 과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 아시아(나아가 전 세계),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임을 밝힌다(작가는 귀국 후 인터뷰에서 봉제공장 시다로 살아온 어머니와 백화점 의류 매장, 냉동식품 매장에서 판매원으로 일한 여동생의 삶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 결국 그 구로공단 공순이들이 우리 어머니들이었고, 여동생이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서 작가의 넓은 시각과 탁월한 연결 감각이 엿보인다. 한국의 공장들은 그 구조 그대로 캄보디아, 베트남 등 다른 아시아 국가로 이전했고, 그곳의 노동자들 역시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특히, 지난해 캄보디아 약진통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시위 현장에서는 노동자가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한국의 현재라고 다르랴. 너무도 쉽고 빈번하게 성희롱 당하고 감정노동을 요구받는 콜 센터의 여성 노동자와 승무원의 이야기, 그리고 모든 업무가 수치화되어 인사고가에 바로 반영돼 모든 동료를 경쟁자로 인식하게끔 하는 구조에 지쳐버린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현재의 노동 환경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뿐 근본적으로 같은 문제를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Installation view of <Factory Complex>




작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담담하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때로 화면의 중간 중간 연극 장면이나 상징적인 연출 장면들을 배치하기도 한다. 와이에이치무역 여공사건에 가담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연극 <여공 70>의 장면과 연결하고,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삼성반도체 해고 노동자들을 가발공장의 여공이나 마네킹 모습과 병치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화면을 과거나 현재, 한국이나 아시아에 고착시키지 않고 이야기가 주는 여운을 배가시킨다.(관련 인물들의 인터뷰를 주요 형식으로 삼는 이유도 섣부른 주관과 판단을 고착화 시키지 않기 위함이다.) 


한편, 그의 경계 넘기 역시 주목해 볼 만하다. 영화관이 아니라 전시장에서 상영되기에 러닝타임 95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작업은 내용적으로 축약되거나 주의를 분산시키는 특별한 디스플레이를 사용하지 않고, 본편 그대로, 오히려 영화관처럼 꾸민 곳에서 영상에만 집중할 수 있게 그 자체 그대로 상영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크레딧에 올라가는 서울독립영화제 마크를 보고 있노라면 관람객이 위치한 곳이 비엔날레 전시장인지 영화제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어찌 보면 작가의 도전적이자 솔직한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4.3항쟁과 제주 이야기를 다룬 이전작 <비념>이 영화관과 전시장에서 각기 다른 디스플레이를 선보인 것과 대조되게, 경계선상에 있는 작업을 어느 요인에 의해 굳이 한쪽으로 귀속시키지 않고 오히려 경계에선 그대로의 가능성을 밀어붙이는 느낌이다. 귀국 후 인터뷰에서 예술의 역할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질서, 규제, 통념을 해체하는 것이다. 


미술과 영화라는 장르를 해체하고 확장시키는 게 나의 작업이다. 하나의 사례가 되고 싶다.”라고 말한 작가의 포부를 상기시킨다. 가족과 지역, 공동체라는 화두를 회화로 시작해 공공미술 프로젝트, 영상언어로 풀어내온 임흥순. 그의 수상은 노동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작가가 노동당 출신인지에 대한 여부가 수상 이후 인터뷰를 통해 질문되는 국가에서, 묵묵히 소신 있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작가에 대한 국제 미술계의 찬사다.   




The Awards Ceremony 

Photo by Jung, Il-joo 

 


 


Special feature Ⅱ 


No.1

Republic of Korea


현대미술 경연장,’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개관 20주년을 맞은 한국관은 올해 막강한 이슈를 제시했다. 영국 테이트 모던의 이숙경 큐레이터가 커미셔너를 맡고 문경원, 전준호 작가가 완성한 한국관의 주제는 <축지법과 비행술>. 그들은 파빌리온의 외관을 미디어 파사드로 전환해 배우 임수정이 주연한 작품을 상영했다. ‘인간에게 예술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고민에서 비롯된 작품은 머리에 불이 켜지는 촉수를 단 주인공의 미래적 일상을 보여주며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이숙경 커미셔너와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올해 한국관 작품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인터뷰1. 이숙경 커미셔너


한국관 기획시 가장 중심에 둔 내용은 무엇인가 처음 작가들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의논한 것은 이 유리 건물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관은 시각 예술가들이 다루기에 아주 까다로운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특히 영상을 제작하는 예술가들에게는 아주 흥미로우면서도 커다란 도전이 필요했다. 우리는 이 건물의 조건과 작품을 따로 떼어 놓기보다는 어떻게 결부시킬 수 있을지를 의논했다. 그리고 대낮에도 미디어 작품이 잘 전달되는 방법 또한 찾아야 했다이번 비엔날레의 전체 주제가 미래. 한국관 역시 축지법이나 비행술 등 시간과 관련된 주제를 잡았는데, 한국관 주제와 본전시의 그것과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나 애초 문경원과 전준호를 한국관 작가로 선정한 것은 이들의 전작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들이 2012 카셀도쿠멘타에서 선보인 그 영상작업은 종말적인 미래에 관한 것으로, 다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난 상황에서 예술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즉 세상의 종말과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 그들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이런 방향에 대해서 아주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 오쿠이 엔위저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처음 했던 생각은 총감독의 생각과 아주 밀접하면서도 그가 던지는 화두에 대해서 사회, 정치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반응하여 작업할 것인가였다. 


축지법은 공간을 조종하는 아주 도교적인 사상이다. 그리고 비행술이란 고대부터 현대까지 모든 인간문명에 가장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열망이다. 우리는 인간의 이러한 허황된 열망과 야망을 한 가지 종류로 생각했으며 진정 무엇이 인간문명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한 것은 시간과 공간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무쌍하며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관 내부와 외부에서 이 미디어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여다보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스펙트럼을 제시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미래란 어떤 것인가 미래란 우리 모두가 알고 싶어 하지만 결코 손에 닿지 않는, 굉장히 흥미로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시점에서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2015년의 자르디니에서 영상 작업이 끝나는 이유다. 우리는 지금, 여기로 돌아온다. 





문경원, 전준호 <축지법과 비행술> 2015 

설치전경 HD Film Installation 10min 30sec




인터뷰2. 문경원·전준호 작가


그 어느 나라보다 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 주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축지법과 비행술이 애초에 어떻게 기획이 되었으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사실 축지법과 비행술은 불가능한 것을 염원하는 인간들의 꿈과 열망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알다시피, 우리 인간들은 항상 이런 것들을 꿈꾼다. 인류는 하늘을 날 수도 없고, 또한 웜홀이나 시간여행 같은 것들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항상 이런 것들을 꿈꾸고 열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일종의 예술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의 제목이 축지법과 비행술이라 붙여진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관의 건축적인 특징에 맞추어 여러 개의 채널로 설치됐다. 


주제는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고 있고 전시 형태는 파빌리온 외관을 미디어파사드로 전환해 선보여졌다. 형태와 시간을 함께 아우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구현하려 노력했나  시각적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베니스에 있는 한국관 모형을 서울의 한 촬영장에 지었다. 이 세트는 실제 한국관과 크기와 형태가 같았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우리는 베니스 한국관에 다시 설치했다. 그렇기 때문에 베니스와 한국은 일종의 축지법으로 연결되어 시간과 공간을 포괄하는 또 다른 종류의 축지법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국관의 건축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한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었을 때 가장 중요하게 논의하고 수행하고자 했던 점은 무엇인가 전준호 전혀 없다. 한국관을 대표한다는 것에 대해 이런 종류의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사실 이 역시 많은 전시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랬듯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문경원 우리는 상당히 특정한 이 공간에서 우리의 아이디어를 확장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래서 우리의 이전 작업과의 연관성을 더 견고하게 만들고 확장시키고자 했다. 그것이 전부다.



두 작가에게 미래란 무엇인가


전준호 미래란 현재의 일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작품을 통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우리는 현재에 아주 관심이 많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미래 개념을 (작품에) 빌려왔지만 사실은 현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뭐라고 해야 할까? 문경원 우리가 선택한 방법론은 미래에 대해 회고해 봄으로써 현재 우리들의 삶에 대한 것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Nigol Bezjian <Witness.ed> 

2015 Installation view Mekhitarist 

Monastery of San Lazzaro degli Armeni, Venice Courtesy 

the artist ⓒ Piero Demo 



No.2

Republic of Armenia


2015년은 오스만투르크가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을 살해한 아르메니아 대학살(Armenian Genocide)(1915)’ 100주 기가 되는 해로 세계 곳곳에서 이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메니아 국가관 역시 <Armenity>라는 이름으로 이 사건을 기리는 전시를 선보이며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하지만 이 전시는 자국의 비통한 사건을 재조명하며 정치, 사회적이고도 지극히 개인적인 접근을 함으로 추모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세계의 미래를 묻는 56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들에게 최고의 영예인황금사자상을 헌정했다. 현재 아르메니아는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한 해를 지내고 있다.    


아르메니티(Armenity)’라는 특정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 아르메니아관은 저명한 큐레이터 아델리나 폰 퍼스텐버그(Adelina von Furstenberg)를 선택했다. 퍼스텐버그 역시 아르메니아에 기원을 두고 있는 스위스 인으로, 누구보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는 당사자다. 그리고 아르메니아 문화부(The Ministry of Culture of the Republic of Armenia)가 전시의 커미셔너를 맡아 시리아, 레바논, 이집트, 터키, 아르헨티나 등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아르메니안 디아스포라 작가들을 한곳에 모으며 그 거대한 서막의 초석을 놓았다. 이들의 전시 장소인 산 라자로(San Lazzaro degli Armeni)’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곳은 1715년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을 피해 이주한 아르메니아 수도승들이 머문 곳으로, 이들은 이 외딴 섬에서 자국의 언어로 신학 서적, 고전 문학 등을 출판했다. 그리고 200년이 지난 지금은 국가의 부름을 받은 16명의 예술가들이 가장 빛나는 자리에서 그들의 작품을 전 세계에 선보이고 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16명의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 작가들은 각각 영상, 사진, 설치 등으로 섬을 꾸몄는데 특히 <When counting loses its sense>(2015)라는 작품으로 참여한 아이린 아나스타스(Ayreen Anastas)와 르네 가브리(Rene Gabri) ‘2006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며 한국에서 이미 영토와 이주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또한 이집트 출신의 안나 보히귀안(Anna Boghiguian) <ANI>는 무덤처럼 만든 먼지더미에 꽃을 심는 작업으로 치유의 제스쳐를 취했다. 이 외에도 전시는 강제 이주, 영토, 정의와 화해, 회복 등의 많은 내용을 포괄하며 정서적·역사적·정치적·사회적인 관점들을 제공한다.     


이중에서도 아르메니아 국가관과 이를 넘어 전체 전시에서 가장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가는 터키 국적의 아르메니아인 사르키스(Sarkis)였다. 그는 올해 비엔날레에서 터기관과 아르메니아관 모두를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되었는데, 아직까지 터키정부가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르메니아관의 전시 주제 자체로 이미 두 나라의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당히 민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세계 미술 축제의 장은 두 국가에게 새로운 담론의 장을 제공했다. 그리고 현재의 눈으로 이토록 어려운 정치적인 상황의 잔해들을 다루면서 새로이 역사, 정치적인 문맥을 해석해냈다. 사르키스는 그렇게 4개의 작품을 아르메니아관에 전시함으로써 터키관과 아르메니아관, 두 전시를 통해 사건에 대한 열린 대화의 장을 제공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두 국가관의 시도는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와 심사단들의 호평을 이끌어냈고, 나아가 아르메니아관은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학살이후 100년이 지난 지금, 두 국가는 전쟁터나 재판소가 아닌 비엔날레에서 만나 아르메니아 수도승들이 거주했던 그 섬에서 다시 대화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정치적인 갈등이 존재하고 있지만 현재 예술가들이 이 과거의 사건을 대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모든 세계의 미래가 가야할 방향을 가리키며 그 미래의 모습을 2015년 우리 눈앞에 가져다 놓은 것 같다. 전시는 결국 개막과 동시에 엄청난 관심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열렸다.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을 피해 수도승들이 자리 잡은 고독했던 섬은 이제는 예술가들의 무대가 되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Mekhitar Garabedian

 <Untitled (Gurgen Mahari, The world is alive, Venice)> 

2015 Neon Site specific installation Installation view, 

Mekhitarist Monastery of San Lazzaro degli Armeni, Venice Courtesy 

the artist and Albert Baronian Gallery, Brussels ⓒ Piero Demo

 



No.3

United States of America


“Although the idea of my work involves the question of how the world is so rapidly and radically changing, I do not address the subject directly or didactically.”

저의 작업은 세계가 어떻게 이토록 빠르게 급변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지만, 저는 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다루거나 설교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2015 베니스 비엔날레의 미국관이 선택한 작가는 영상과 행위 예술의 선구자로 평가 받고 있는 조안 조나스(Joan Jonas). 조안 조나스는 1960년대부터 퍼포먼스를 시작한 1세대 예술가로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설치와 영상, 퍼포먼스를 포함하여 소리, 텍스트 그리고 드로잉까지 아우르는 작업을 하면서 현대 미술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MIT 리스트 시각예술 센터의 수장으로 실험적인 전시들을 기획하고 있는 폴 하(Paul C. Ha)가 커미셔너와 큐레이터를 맡았으며 베테랑 큐레이터 우테 메타 바우어(Ute Meta Bauer)가 공동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특히 우테 메타 바우어는 이미 2002 카셀 도쿠멘타 11’을 오쿠이 엔위저와 함께 기획한 이력이 있는데,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총감독과 국가관 큐레이터로 만난 셈으로 중요한 국제전에서 또 다른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Joan Jonas <They Come to Us Without a Word> 2015

 Installaion view Photo credit: Moira Ricci. ⓒ Joan Jonas 





사실 국가관 전시는 총감독이 진두지휘하는 국제전과는 개별적으로 기획되지만 올해 비엔날레에서는 한국관과 미국관을 포함한 많은 국가관들이 전체 비엔날레의 지향성을 따르는 추세였다. 오쿠이 엔위저의 모든 세계의 미래라는 질문에 미국관은 <그들은 말없이 우리에게 온다(They Come to Us without A Word)>라는 전시제목으로 답했다. 조나스는 이번 전시에서 영상과 드로잉, 오브제 설치와 사운드 등을 펼쳐놓으며 5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미국관을 충분히 사용했다. 할도르 락스네스(Haldor Laxness)의 문학 작품에서 자연의 모티브를 가져왔으며 오랜 시간동안 협업해온 제이슨 모란(Jason Moran)의 음악을 이번에도 역시 활용했다. 각 방은 모두 자연과 생명에 관련된 요소들로 꿀벌, 물고기 등의 이미지가 투사되고 있고 이 위에 바람 소리와 흐느끼는 듯한 음악소리 같은 요소들이 덧입혀져 있다. 또한 캐나다 케이프 브리튼 섬의 구전 설화의 귀신 이야기를 작품에 도입하며 미국관 자체를 귀신에 홀린 것처럼 꾸몄다. 아이들과 조안 조나스는 흰 옷을 입고서 직접 투사되는 영상 앞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자연이 쉽게 파괴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데 이 외에도 작품과 연관되는 샹들리에, 거울, 연 등의 오브제들이 미국관에 설치되어 작가의 종합 예술적인 성격이 잘 드러나고 있다.      


표현방식이 시적이라고 해서 그 주제마저 개인적이고 사변적이지는 않다.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관의 전시는 전체 비엔날레 주제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 경우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해서 작가만의 감수성과 평소 사용해오던 오브제와 재현방식 등을 사용해서 풀어냈다고 볼 수 있으니 그녀가 내린 세계의 미래에 대한 대답은 분명 들어볼 만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전시를 가능하게 한 MIT 리스트 시각예술 센터와 조나스의 끈끈한 관계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는 15년 동안 MIT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전시 기획자 우테 메타 바우어와 인연을 맺었다. 게다가 이번 작품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Reanimation> 2010년에 MIT에서 전시한 바 있다. 


작가의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가 몸담았던 MIT의 든든한 후원이 있었기에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작업을 해온 고령의 작가의 전시가 회고전이 아닌, 당당한 신작 전시로 베니스에서 선보여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연대 때문인지 미국관은 일찍이 뜨거운 주목을 받으며 덴마크관과 함께 수상의 가능성이 점쳐졌다. 결국에는 조안 조나스를 내세운 미국관이 특별 언급상을 받고 역시 미국 작가 아드리안 파이퍼(Adrian Piper)가 본전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니, 2015년은 미국 미술에 있어서 분명 뜨거운 한 해다.  




Joan Jonas <The Shape, the Scent, the Feel of Things> 

2005 Performance at Dia Beacon Photo by Paula Court

 



No.4

Great Britain


영국관의 오프닝은 화려했다. 2013년 제레미 델러(Jeremy Deller)에 이어 올해 영국관을 장식한 주인공은 사라 루카스(Sarah Lucas).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영국 테이트 모던의 시니어 큐레이터를 역임했으며 현재 티모시테일러갤러리의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 엠마 덱스터(Emma Dexter)가 커미셔너를 맡았고 리차드 라일리(Richard Riley) 2005년 길버트 앤 조지(Gilbert and George), 2011년 영국관의 마이크 넬슨(Mike Nelson) 전시에 이어 올해도 영국관 큐레이터로 활약했다. 골드 스미스를 졸업한 사라 루카스는 영국의 yBas(Young British Artists)의 멤버 중 한 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yBas 1980년대 말 이후 나타난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의 집합으로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마크 퀸(Marc Quinn), 채프먼 형제(Jake and Dinos Chapman), 트레이시 예민(Tracy Emin), 게리 흄(Gary Hume), 제니 샤빌(Jenny Saville) 등 현대미술의 주역들로 평가받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중에서 트레이시 예민과 사라 루카스는 특히 성(Sex)을 상당히 도발적으로 다루는 작품들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한데, 올해 영국관의 전시 역시 이러한 작가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사라 루카스는 일상적인 오브제인 과일, 스타킹, 담배, 오래된 가구 등을 갤러리에 설치하고 인체와 오브제들을 결합시킨 사진을 통해 성적인 암시를 강하게 담아내는 작업을 해왔다. 올해 영국관을 위해 그가 준비한 전시는 <I SCREAM DADDIO>. 사실 영국관 전시는 오프닝 직전까지 철저히 비밀에 붙여져 그 내막을 알 수 없었다. 전시는 밴드 공연을 시작으로 성대하게 열렸는데 커스타드 옐로우 빛의 벽이 내부를 가득 채웠고 거대한 설치물과 석고 캐스팅 작품들이 영국관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Sarah Lucas <20 Tits> 2011 Concrete, wire mesh,

 tights, fluff 208×160×60cm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영국관의 가장 큰 방에는 두 개의 노란 조각들이 설치되어 있다. 남근을 연상시키면서 마치 거미와 같은 형태로 천장을 뚫을 듯 높게 솟아있는 작업은 <Deep Cream Maradona>. 밝은 노란 빛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 외에도 석고로 캐스팅한 인체 조형물들도 발견할 수 있다. 상체는 없고 하반신만 있는 작품은 의자 끝에 다리를 꼬고 도발적으로 앉아서 관객들을 마주하고 있는데 이는 작가의 지인과 본인의 몸을 캐스팅한 것이다. 담배 하나를 배꼽이나 엉덩이에 폭 꽂아놓은 모양이 <Anyone got a light?>라는 제목과 잘 어울린다.


발칙하다고도 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은 사실 감상하기가 편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작품을 마주한 관객들은 작품의 적나라한 모습에 심기가 불편해지다가도 이것이 사라 루카스의 작품임을 다시 기억해낸다. 그녀는 성에 대한 관념, 터부시 되는 것들을 갤러리에 그야말로 가져다 놓는다.’ 하지만 유머러스한 표현방법으로 사회 관습에 도전함으로써 방문객들은 작품을 통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자신의 가슴에 계란 후라이를 얹어놓고 카메라를 응시하던 사라 루카스. 학부시절 동료들과 공장에서 전시를 열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작가는 어느덧 50대가 되었다. 기성세대라 불릴 수 있는 나이가 된 작가의 작품에서는 여전히 정치적인 맥락 같은 것들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에 베니스의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도발적이며 말장난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기괴하고 발칙해 보이던 영국관의 노란빛은 마치 사라 루카스의 이렇게 변하지 않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Sarah Lucas <I SCREAM DADDIO> 2015 Installation 

view, British Pavilion 2015 Photo by Jung, Il-Joo

 


No.5

Hong Kong


홍콩예술발전국(The Hong Kong Arts Development Council)과 홍콩 카오룽에 위치한 현대미술박물관 M+는 창킨와(Tsang Kin-Wah)를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홍콩미술 대표주자로 제안했다. 그를 선정한 M+는 쟁쟁한 스텝을 갖춘 박물관으로, 테이트모던의 초대관장을 지낸 스웨덴 출신의 라를스 니트브(Lars Nittve)가 실행관장으로, 한국인 최초 MoMA 부큐레이터로 일했던 정도련이 수석큐레이터로 초빙되었다. 라르스 니트브는 창킨와를 일컬어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으로 소통될 수 있는 성숙한 예술적 언어를 다루는 작가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의 작품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홍콩 현대미술 현장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덧붙이며 창킨와를 선택한 것에 대한 당위성을 강조했다.


창킨와는 주로 텍스트들을 사용하여 작업한다. 그중에서도 <I love you more than anything else in the whole world and I would never do anything to hurt you>(2008)가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패턴에 영향을 받은 작업으로 전시 공간 전체를 아름다운 꽃의 패턴으로 꾸민 것이다. 하지만 꽃의 패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그의 강렬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영어와 중국어 텍스트의 조합으로 되어있다. 또한 갤러리의 유리에 텍스트의 패턴들을 설치하는 등 꾸준히 언어를 사용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외에도 회화와 벽지 비디오 등의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성과 종교, 인간성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 탐구해오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작품세계는 이미 널리 인정받아 국제적으로 많은 전시에 초대받게 되었다. 대표적으로는 헬싱키의 키아즈마현대미술관(2008), 일본의 모리아트뮤지엄(2011)에서의 전시 등이 있고 특별히 2010년에는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한국 관람객들과 만난 바 있다. 





Tsang, Kin-Wah <The Infinite Nothing: 0> 

2015 Single-channel video and sound

 installation 6min 20sec Dimensions variable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해서 그가 준비한 전시의 이름은 <The Infinite Nothing>. ‘The infinite nothing(무한한 무)’이란 독일의 철학자 니체(Nietzsche)가 그의 저서 『The Gay Science(1882)에서 신의 죽음을 두고 한 말이다. 이는 작가의 종교적인 배경이 니체를 만나면서 흔들리고 변화해 온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그는 이 철학 개념을 은유와 알레고리의 방법론으로 표현하여 4개의 비디오 작업에 각각 담아냈다. 어두운 홍콩관 건물 내부를 비추는 것은 오직 이 영상들로, 니체의 글과 함께 기독교, 불교, 도교 사상을 담은 움직이는 문장들은 전시장의 벽과 바닥 등에 투사되며 관객들을 맞이한다. 문장들은 일정한 패턴을 보이기도 하고 속도감 있게 펼쳐지기도 한다. 관람객들은 움직이는 문장들을 읽으며 자신의 발아래에 놓인, 혹은 주위를 둘러싼 글자들 속에서 헤엄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니체의 철학과 동양과 서양의 여러 사상들을 다루고 있다고 해서 그의 작업이 학술적이고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사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의 작업의 시작점은 아주 개인적이고 경험적이다. 유학시절 동양인으로 살아오며 빚은 갈등과 니체를 만남에 따라 본인의 종교적인 기반이 뿌리 채 뒤흔들렸던 경험들은 작가로 하여금 오랜 시간동안 삶의 이유와 목적에 대한 질문을 품게 했다. 이것들이 고스란히 그의 작업의 기반이 되어 현재 전시장에 투사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것이 응축된 은유적인 문장들을 만나며 각자가 가지는 기억과 경험들을 마주하게 된다. 빛이 차단된 공간에서 글자들로만 이루어진 공간을 지나치는 것을 여정이라고 표현하는 작가의 설명처럼, 관람객들은 어두운 홍콩관을 들어서면서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 그의 어지러운 질문들과 그가 겪은 경험들과 기억들 속을 부유하듯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Tsang, Kin-Wah <The Infinite Nothing: 1> 

2015 Multi-channel video and 

sound installation 6min 19sec Dimensions variable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No.6

Belgium


올해 벨기에관은 보다 더 특별했다. 빈센트 미센(Vincent Meessen)을 포함한 총 10명의 작가들이 벨기에관 전시에 참여했기 때문. 기존에 한 명의 개인전, 혹은 두 사람 정도의 작가만을 초대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전시로 관람객의 주목을 끌었다. 더 놀라운 것은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중 벨기에 토박이가 아닌, 전혀 다른 대륙에서 온 외국작가들도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은 카트리나 그레고스(Katerina Gregos) 큐레이터다. 그는 54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덴마크관, ‘Manifesta 9’ 등 다수의 큰 전시를 기획한 경력이 있는 기획자로 이번 전시 <PERSONNE ET LES AUTRES>를 위해 이처럼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사실 카트리나 그레고스와 빈센트 미센이라는 라인업만 보더라도 벨기에관의 방향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그레고스는 다수의 전시를 통해 영토, 정치, 인권 문제를 드러낸 인물이고, 빈센트 미센 역시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작품으로 역사와 식민지 문제 등을 다뤄온 작가이기 때문이다. 


<PERSONNE ET LES AUTRES, Vincent MEESSEN and guests> 식민지 근대성(Colonial Modernity)’을 키워드로 하여 식민지 근대성에 의해 파생된 역사와 산물들을 되짚어보는 전시다. 여기서 벨기에관이 특별하게 선택한 방법론은 자국의 시각이 아닌 여러 나라들의 시각, 즉 다양한 국적의 작가라는 렌즈를 통해서 보고자 한 것이다. 전시 제목인 ‘Personne et les autres’는 거칠게 번역하면 사람과 타자들이란 뜻으로 앞서 말한 벨기에 작가와 외국인 작가들의 만남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큐레이터와 아티스트들은 올해 비엔날레에서 국가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린 토론의 자리를 도모한 것에 가깝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는 자국의 역사적 사건을 다룬 아르메니아관에 황금사자상을 수여함으로 <All the World's Futures>라는 주제의 정치적인 성격을 숨길 수가 없게 되었다. 본전시를 포함하여 적지 않은 국가관들이 각국의 역사, 정치적인 문제들을 조망하는 가운데 그 중에서도 이를 넘어 다른 국가의 시각조차 포함시키려 하는 벨기에의 시도는 분명히 눈에 띈다. 그렇다고 해서 벨기에가 국가관의 성격을 아예 버린 것은 아니다. 사실 벨기에관은 베니스에 생긴 첫 국가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벨기에가 당시 콩고를 식민지화 했던 역사적 배경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전시는 이것에 대해서도 국제적인 맥락을 도입하여 다루었다.

   

벨기에 출신 작가인 빈센트 미센은 본 전시에서 신작들을 선보인다. 그의 작업 <One, Two, Three> (2015)3개의 채널로 된 영상작업으로 1957년에 결성된 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tuationist International)’에 속해있던 콩고의 지식인들을 다룬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이들의 활동을 재해석하며 사운드 아트로 승화시켰다. 이를 통해 작가는 근대성(Modernity)’에 대하여 유럽과 아프리카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파생된 예술적, 지적인 산물들을 보여주며 유럽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리고 이외에도 4대륙에서 온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은 각자의 방법론과 관점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비디오, 설치, 프린트, 음악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리서치와 작품을 병행해오던 빈센트 미센은 이미 여러 작가들과의 협업을 즐겼다. 


더욱이 올해 비엔날레에서는 그와 같은 지향성을 가진 큐레이터와도 만났으니 이 견고한 만남과 여러 작가들과의 예술적 소통은 올해 벨기에관의 전시를 더 짜임새 있게 만들어주었다. 전시가 다루는 것이 무겁고 어렵지만 작가들은 결국 예술이라는 형식과 비엔날레라는 플랫폼에 있다. 작가들이 작품의 시각성에도 각별하게 신경을 썼고 무료로 배포하는 안내문이 작품의 키워드들을 잘 소개하고 있다고 하니 벨기에관을 방문하면서 미리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식민지 문제는 한국과도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국 근대화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문제와 식민지의 잔재 처리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뿌리 깊은 것들이니 벨기에의 전시가 어쩌면 하나의 좋은 제안이 될 수도 있겠다.  




Tamar Guimaraes and Kasper Akhøj

 <Personne et les autres> 

2015 Installation view, Belgian Pavilion at La Biennale di

 Venezia 56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No.7

Japan


한국관과 이웃하고 있는 일본관. 매년 가까운 지리 때문에 필연적으로 경쟁구도를 펼치고 있는 두 관은 올해 상이한 행보를 보였다. 한국관이 예술에 대한 치밀한 리서치에 기반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협업으로 예술의 미래를 그려냈다면 일본은 상대적으로 관람객의 시각과 감성에 호소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2015년의 일본관에 들어서면 거대한 붉은 색이 먼저 방문객의 눈을 압도한다. 벽과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붉은 실과 얽히고 설킨 약 5만개의 열쇠는 치하루 시오타(Shiota Chiharu)의 작품 <The Key in the Hand>.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하여 가나가와 예술재단의 나가노 히토시(Hitoshi Nakano)가 큐레이터를 맡았고 치하루 시오타가 올해 일본을 대표하게 되었다. 나가노 히토시는 2007년 가나가와에서 치하루 시오타의 개인전을 연 것에 이어 2015년 베니스에서 다시 한 번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게 되었다. 


치하루 시오타는 베를린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 설치 작가로, 한국에는 2014 부산비엔날레에 참여하며 그 작품세계를 선보인 바 있다. 당시의 전시 <축척-목적지를 찾아서>(2014)는 여행가방을 붉은 실로 매단 작업인데 떠돌이 생활을 하는 작가의 삶과, 그러면서도 동시에 붉은 핏줄로 작가와 이어져 있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표현한 것이다. 전시장을 넓게 사용하며 실과 오브제로 공간을 거의 뒤덮다시피 하는 설치로 관람객을 압도하는 작가의 표현 방식은 이때부터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56번째 베니스 비엔날레의 전시를 위해 이번에 작가가 선택한 오브제는 두 척의 조각배와 열쇠. 그리고 이 오브제들을 엮은 것은 역시나 붉은 실이다. 그는 어마어마한 물량의 열쇠를 공수하기 위해서 전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터넷에 공고를 냈는데 그가 낸 공고만 보아도 어느 정도 작품의 내용을 짐작해볼 수 있다. 작가는열쇠란 아주 친숙하고도 귀중한 것으로 사람과 공간을 지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중략)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저는 여러분들이 오랜 시간동안 사용하면서 축적된 소중한 시간과 기억이 담긴 열쇠들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 열쇠를 공간에 설치함에 따라 저의 기억들과 여러분의 추억은 맞물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처럼 그는 열쇠라는 오브제를 사용하여 사람들 간의 어떤 유대를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쏟아질 것만 같은 수많은 열쇠,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기억들을 소중하게 품고자 하는 마음에서 열쇠를 담는 두 손을 상징하는 두 척의 조각배를 그 아래에 설치했다. 결과적으로 전시장의 천장을 뒤덮은 붉은 색과 수 없이 많은 열쇠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각적이면서도 정서적인 커다란 자극을 준다.  사실 2011년 일본의 쓰나미 이후로 국제 전시에서 일본 작가들이 선보인 작업들은 대부분 죽음에 관한 것으로, 대체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였다. 작가들은 그들이 받은 정신적인 충격은 물론 일본 사회와 정치를 함께 비판하며 상당히 투쟁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에 비해 치하루 시오타는 이들, 그리고 기존에 일본관이 선택한 작가들과는 조금 다르다. 일본인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베를린에서 17년을 거주하고 있고 그동안 언어와 문화, 역사, 사회적인 맥락들을 초월하는 작업들을 선보여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인의 떠돌이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한 편, 이번 전시에서는 본인과 여러 사람들의 기억들의 만남을 그리는, 어쩌면 상당히 개인적인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시오타 역시 일본관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정체성으로 작업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고 밝혔는데 이러한 일본관의 선택에 대하여는 일본 예술이 더 넓고 열린 시각을 가지려는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붉은 실이라는 모티브는 일본에서 ‘눈에 보이지 않은 사람 간의 연결고리를 상징하는 것으로그는 일본인의 감성으로 전시를 풀어냈다어쩌면 일본인들이 가진 인간관좀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그들의 속마음을 일본인 작가로서 눈이 시리도록 표현해 냈는지도 모르겠다. <The Key in My Hand>. 일본관을 방문하여 그녀의 두 손에 있는 열쇠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도 이번 비엔날레에서 누릴 수 있는 경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Chiharu Shiota <The Key In The Hand> 

2015 Installation view, 

Japan Pavilion at La Biennale di Venezia 

ⓒ 56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Special feature Ⅲ

이토록 매력적인, 미술들

 편집부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모든 세계의 미래에 대해 내놓은 의견들로 떠들썩해진 베니스, 이 도시의 미술관과 유서 깊은 건물들도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매력적인 전시로 관객을 유혹한다. 잔잔한 녹색 운하 위를 검은색 곤돌라가 미끄러져 나가는,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도시는 과연 각양각색 다이내믹한 현대미술을 어떻게 품었을까.



언제나 그랬듯, 피노 컬렉션  


아르세날레와 자르디니 못지않게 늘 화제를 낳는 공간, 세계적인 컬렉터 프랑수와 피노(Francois Pinault)의 두 미술관부터 살펴보자. 팔라초 그라시(Palazzo Grassi)는 오는 11 30일까지 <Martial Raysse>전을 개최한다. 2012 <Urs Fischer>, 2013 <Rudolf Stingel>에 이어 현대 미술작가 개인전을 선보이는 것이다. 프랑스 태생의 신사실주의 미술가로 앤디 워홀(Andy Warhol),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 stein) 등 전후 미국 예술가들과 동시대에 등장해 니스, 파리, 뉴욕 그리고 LA 등지에서 활동해 온 마르샬 레스(Martial Raysse)가 그 주인공. 마르샬 레스는 그가 살고 있는 소비 사회를 대표하는 대량생산 물품과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였으며, 이는 팝아트와도 맥을 같이 한다. 이후 네온, 비디오 등을 이용해 현대 도시문명을 표현했고 단순한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냉정한 비판과 풍자를 더해 왔다.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주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들어서야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가 팔라초 그라시의 회고전을 통해 이목을 끄는 것이다. 1958년부터 최근까지의 회화, 조각, 비디오, 그리고 네온 작품 등 300여 점에 이르는 작품들을 한 데 모은 전시는 출품작 중 절반 이상이 대중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작품인 까닭에 더 의미 깊다. 





Martial Raysse <America, America> 1964 Neon, 

enamelled metal 240×165×45cm Photo: ⓒ Centre Pompidou, 

MNAM-CCI, Dist. RMN-Grand Palais/Philippe Migeat Paris, 

Centre Pompidou-Musee nationald'art moderne-Centre de creation

 industrielle ⓒ Martial Raysse by SIAE 2015 




역시 피노 컬렉션으로 운영되는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에서는 12 31일까지 <Slip of the Tongue>전이 마련된다. 베트남 출신 작가 단 보(Danh Vo)가 기획하고 총 52명의 다양한 현대미술 작가들을 망라한 전시는 약 12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단 보는 이번 전시를 통해 전시 기획자로 영역을 확장했는데,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작가를 큐레이터로 초빙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그는 피노 컬렉션의 큐레이터인 캐롤라인 부르주아(Caroline Bourgeois)와 면밀한 협업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진화하고 목적에 따라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오브제에 대해 다양한 구상을 펼쳤다. 전시 타이틀인 <Slip of the Tongue> 실언이라는 뜻으로, 단 보와 활발하게 교류해 온 예술가 내리 바라미안(Nairy Baghramian)의 작품 제목 중 하나를 빌려온 것이다. 그는 13세기 중세 예술의 대가들부터,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마틴 왕(Martin Wong) 그리고 줄리 얼트(Julie Ault) 등 현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모아, 광범위한 지평을 전시로 구현했다.  



마조레 성당에 흩뿌려진, 얼굴


산 지오르지오(San Giorgio) 섬의 마조레 성당에는 스페인 작가 하우메 플렌사(Jaume Plensa)의 전시가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모두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건축과 병치된 독특한 설치로 화제를 낳았다. 하우메 플렌사는 시카고, 시애틀, 런던, 도쿄 등 세계 각지를 돌며 공공장소에 작품을 설치하는데, 우리에게는 시카고의 영상 작품 <크라운 분수(Crown Fountain)>(2006)의 작가로 친숙하다. 이번 전시의 기획은 영국 요크셔조각공원의 프로그램 디렉터 클레어 라일리(Clare Lilley)가 맡았다. 그가 선보인 작업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Together>(2014). 성당 천장에 매달린 손과 내부 중앙에 설치된 얼굴, 이 두 조각이 마주하고 있는 작품이다. 두 작품은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빛에 따라 그 이미지가 변하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색적인 분위기에 잠기게 하는데, 이 중 손 형상은 8개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고, 얼굴은 스페인에 사는 중국인 친구의 딸이라니, 평생을 떠돌며 살아온 작가의 삶과 나라 간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그의 꾸준한 관심사가 담겨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섬의 끝자락에 위치한 5개의 얼굴 조각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설화 석고로 만든 작품은 모두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끊임없는 출발과 도착의 지점인 섬의 위치와 소녀들이 가진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연관시켰다. 




Martial Raysse <Beaute> 2008 Tempera sur toile 

92.3×73.4cm Collection particuliere 

ⓒ Martial Raysse by SIAE 2015 




활약, 코리안 아티스트


한편 우리나라 작가들의 활약도 곳곳에서 두드러졌다. 팔라초 로레단 델 암바시아스토레(Palazzo Loredan dell' Amba sciatore)에 마련된 <Jump into the Unknown>은 총 22개국 출신의 작가 40여 명이 참여해 베니스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신작들을 선보였는데, 이 중 한국작가들의 작품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전시를 주최한 나인 드래곤 헤즈(Nine Dragon Heads) 1995년 한국에서 발흥해 국경과 학제를 넘나들며 전시와 행사들을 선보이고 있는 유동적 미술 플랫폼으로, 그간 전 세계 각지에서 지역·상황 특정적 작업들로 이뤄진 작업들을 소개해왔다. 


그 설립의 기원을 이야기해주듯, 구성균, 김동영, 서백이, 서윤희, 송대섭, 신유라, 심재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