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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10, Nov 2015

무빙 이미지의 경계 없는 무빙

Moving of Moving Image

무빙 이미지는 소위 아방가르드라 불리는 예술가 혹은 집단에 의해 연구되고 탐구되어 왔다. 뉴 미디어로 인식된 이것은 오히려 대중문화 영역 안에서 상업 영화나 TV에 최적화된 작업 방식으로 발달하기도 했다. 하여 이것은 필름, 비디오, TV 등의 이름들로 불렸다. 예술영역 안에 놓고 보자면, 스크린에 움직이는 환영을 보여주는 이 작업은 실험이라는 태제 아래 멀티스크린,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작품, 라이브 상영 이벤트 등으로 확장되기도 하였고 과거 실험영화를 지나 오늘날 디지털의 힘을 불러들이며 예측 불가능한 시각적 표현, 그리고 전시공간과 상영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구성되고 구축되는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폭 넓은 스펙트럼은 “무엇이 무빙 이미지인가?”라는 의미를 따지기 보다는 무빙 이미지라 불리는 것들이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지,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현상을 들여다보는 것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무수한 무빙 이미지들이 펼쳐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단순한 감상을 넘어 무빙 이미지의 현재를 빌어 이해하고 탐구하는 기회가 필요한 것이다.「퍼블릭아트」는 무빙 이미지의 모호한 경계가 발생시키는 오늘의 현상을 다룬다. 우선 실험영화에 대해 줄곧 연구해 온 김지하가 무빙 이미지의 현재와 고민, 그리고 가능성에 대해 서술한다. 이어 영화와 미술 사이에서 무빙 이미지 작업들을 생산하는 작가들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이들의 무빙 이미지 작업이 어떠한 시각적 표현과 연출들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어떻게 소비되고 보여 지고 다뤄지는지를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본다. 마지막으로 무빙 이미지의 매체성에 집중하여 이것이 야기하는 보존, 구매, 관람 되는 오늘날의 방식과 고민들을 살펴본다.
● 기획·진행 최형우 수습기자

박형근 'Tenseless-79, Fallen' C 프린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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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 수습기자, 김지하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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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Ⅰ

재귀적 미디어_무빙 이미지_ 김지하


SPECIAL FEATURE 

작가 증언으로 수집한 무빙 이미지 실재_ 최형우

Park kyung kun 박경근

Oh min 오민

Oh yong seok 오용석

An jung ju 안정주

Cha mi hye 차미혜

Park june bum 박준범


SPECIAL FEATURE 

영상예술이 소환하는 여러 조건들_ 최형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실험영화 아카이브






Special feature Ⅰ

재귀적 미디어_무빙 이미지

 김지하 미술학 박사



미술과 영화의 상호교류


무빙 이미지는 말 그대로 동영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화, 비디오(미디어)아트, 게임, 광고, 뮤직비디오 등으로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주프락시스코프(Zoopraxiscope)가 움직이는 이미지의 초기라고 감안한다면 무빙 이미지는 현재의 용어라기보다는 고고학적 의미에 더 가깝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무빙 이미지들을 포괄한다면 현 시대의 모습 대부분을 말해야할 만큼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 되었으며, 본 글에서는 광학적 장치를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들, 그리고 그 안에서 영화와 비디오아트(현재는 미디어아트로 통칭되어 얘기되기도 한다)의 관계, 그리고 현재까지의 흐름을 중심으로 얘기해보고자 한다. 


현재는 미술관에서도 무빙 이미지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이 작품들이 영화가 아닌 비디오 작품 혹은 설치작품이라고 설명한다면, 과연 그 차이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은 미술관(화이트 큐브), 영화관(블랙박스)이라고 하는 공간의 차이와 관람방식으로 구별하고 이에 대한 논의들을 해왔지만, 실제 보이는 이미지들이 그러한 공간에 적합한 작품이냐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듯 보인다. 1960년대 중반 소니 포터백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무빙 이미지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초기 많은 연구자들은 비디오와 텔레비전의 도래로 영화의 쇠퇴를 우려하였지만, 30년이 지난 후,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싱글채널 작품들이 늘어났고 아이러니하게도 평론가들은 많은 작품들에 대해 영화적(The Cinematic)’이라고 평가하였다. 


미술작품으로서 영상이 적극적으로 소개된 것은 1995 베니스 비엔날레, 각국의 비디오 작가들이 참여하여 캔버스가 스크린의 형태로, 조각이 인스톨레이션의 형태로 전시하면서 이후 미술이 영화와 긴밀한 관계로서 상생해나갈 수 있음을 예견하였다. 더욱이 1995년은 영화가 탄생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로서 영화관뿐 아니라 미술관에서도 다양한 이벤트들이 개최되었다. 미술과 영화의 관계는 이미 1920년대 전후에 시작된 것으로 베를린과 파리 중심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당시 새로운 미디어로서의 영화장치와 기법들을 차용하면서 시간과 움직임의 관계, 현실과 무의식의 관계를 고민했던 것이 발단이 된다. 이 당시 동참했던 예술가 대부분은 미술과 영화를 크게 나누지 않고 필요에 따라 미술가 또는 영화감독으로 활동하였고, 당시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실험을 계승한 영화는 추후 아방가르드 영화, 실험영화로 분류가 되며 내러티브 영화 혹은 상업영화와는 다른 한 축을 형성하며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니까 1920년대만 하더라도 영화와 미술의 장이 세분화되었다기보다 회화든 무빙 이미지든 작가의 예술적 표현에 따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여지는 있었다. 


영화가 하나의 문화예술의 장이 된 것은 상업영화의 생산과 소비의 메커니즘이 형성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상업영화가 일반적인 영화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면서 실험영화는 유사 하위범주인 예술영화, 독립영화와 함께 용어의 당위성을 가지기 위해 시대와 지역, 매체의 변화에 따라 재정의 되어왔다. 한때 예술영화, 독립영화, 실험영화가 상업영화의 대항영화로서 영화 장 내로 진입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방가르드라는 정의자체를 만족시키기에는 시대와 그에 따른 제도가 유동적이며, 각 장르마다의 미학적 목표와 제작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로 묶어 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1) 그나마 아방가르드 영화의 실천과 맥을 같이 하는 장르는 실험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초기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미술과 영화의 구분을 크게 두지 않은 것과 같이 횡단적으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간영역의 장르라고 볼 수 있다. 영화비평가 아서 나이트(Arthur Knight)는 실험영화를 주관적 영화 추상적 영화로 나누고 매체실험에 따른 시각적 효과를 보여주는 것은 주관적 영화’, 무의식, 꿈과 같은 초현실적 소재를 통해 주류 내러티브 형식과는 다른 내용적 측면을 보여주는 영화를 추상적 영화로 구분하여 설명한다.2) 현재까지 실험영화가 가지는 궁극적 목표는 주관적이든 추상적이든 무빙 이미지로서의 영화를 구현하는 것이며 문학, 연극에서 빌려온 것이 아닌 시각영화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백정기 <The Palimpsest Of The City> 2014 

싱글채널비디오 전시전경 사진: 경기도미술관 제공




제도 내에서의 무빙 이미지


영화 안에서 예술이냐, 실험이냐의 논쟁은 비교적 오랫동안 이어지고 검증되어 온 데에 반해, 미술영역에서 무빙 이미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붓을 사용하듯 카메라를 표현의 도구로 간주되어, 이와 관련한 제작방식과 재현된 이미지에 대한 적극적인 비평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최근에는, 형식미학에 치우친 영상은 실험영화의 축으로, 내러티브를 가진 영상은 예술영화의 축(The Cinematic)으로 간주되면서, 실험영화가 영화의 하위 장르로 불리는 것과는 다르게 미술범주의 확장으로 이해되고 있다. 특히 싱글채널 미디어아트 작품들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소위 예술영화라고 불리던 형식들이 발견되는데, 당시 예술영화의 경우 상업시스템을 크게 적대시하지 않으면서도 감독의 미학적 측면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오락거리보다는 교육적 측면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형식의 무빙 이미지들은 영화계에서는 이미 예술영화보다는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평가되고 있다. 이미 익숙한 형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미술계에서 이러한 카메라를 도구로 사용하면서 내러티브를 가진 무빙 이미지 작품들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무빙 이미지를 영화와 미술로 분리해서 평가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두 예술의 장(field)은 아직까지도 상호 독립적인 영역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영화제로 나가느냐 전시회로 나가느냐에 따라 평가의 기준과 양상도 달라진다. 가령, 실험영화와 같은 영상작품들이 흥행으로 인해 수익을 낸다는 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에 일부 실험영화 감독들은 미술계 진출을 더욱 희망적으로 보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영역간의 크로스오버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무빙 이미지 작가들이 공방에서 배고프게 작업해야할 이유는 전혀 없으며, 어느 영역에 속하든지 작가들이 선택한 작업이 예술적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영화와 미술의 경계를 교차하면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영역을 교차하더라도 여전히 남아있는 제도적 관행들로서, 이러한 오랜 관습들은 상호 교차점을 형성해가는 두 영역의 자유로운 예술적 흐름을 방해한다. 


가령, 무빙 이미지의 경우,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으면 미술관의 컬렉션이 되기도 하는데,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컬렉션 활동은 대상 작품에 대해 가치를 부여함과 동시에 희소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때, 컬렉션으로 소장되는 작품들은 에디션을 붙여 여러 곳에서 복사, 유통되는 것을 차단하는데, 이러한 작업은 디지털 매체 환경에서 예술작품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디지털의 장점이 보존이 아닌 액세스의 편리와 확대에 있음에도 디지털 작품을 가시화된 작품의 형태로 존치시키려는 노력들, 그리고 진품의 가치를 특정한 가시적 사물에 부여해야 한다는 태도와 방식은, 쉽게 말하면, 구체적인 사물의 형태가 아닌 디지털 작품을 고가에 사들여 가시적 물질의 형태로 미술관 수장고에 보관하려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인 것이다. 오히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매체와 물성을 직시한다면, 디지털의 장점인 접근성을 확대하여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을 알리고 제작·상영·유통을 활발하게 만드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이미지 페스티벌(Image Festival)’ 1988년에 일찍이 필름과 비디오를 모두 같은 무빙 이미지로서 묶어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냈는데, 실험성을 강조하는 무빙이미지 작품들은 매체와 경계를 끊임없이 초월해야하는 사명 때문에 가장 새로우면서도 동시에 멸종위기에 처한 작품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들은 새로운 무빙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며 이를 격려할 수 있는 관객과 연구 역시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한다.3) 미디어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영화관 뿐 아니라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도 디지털 상영, 디지털 아카이브와 같은 논의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정작 미술관과 필름센터에서 보관해야하는 것은 디지털 필름의 실체없는 원본이 아니라 셀룰로이드 필름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실제로 사라져가는 것을 발굴하고 디지털화하여 원본은 유지시키고 디지털본은 유통시키면서 무빙 이미지의 과거·현재·미래를 이어나가야 한다. 





도미니크 곤잘레즈-포에스터(Dominique Gonzalez-Foerster)

 <Belle comme le jour> 2012 컬러 13분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필름&비디오 제공




무빙 이미지의 재탄생


무빙 이미지의 역사를 연속과 단절의 키워드로 연결해나갈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업주의에 대한 저항과 대안적 예술운동의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실험영화, 비디오아트가 아방가르드의 행동주의(activism)가 지녔던 과거의 반상업주의적 저항을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요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지만, 적어도 무빙 이미지의 역사에서 아방가르드 미학이 죽었다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반드시 이데올로기적이지는 않지만) 미학적, 매체적 탐구의 선두에 서 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무빙 이미지의 역사는 적어도 상업자본주의에 대한 반작용, 인간의 의식과 욕망을 통제하려는 통치 권력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렇게 본다면, 무빙 이미지의 역사는 이미 서술된 문화예술사에서 영화, 이미지와 예술가 갖고 있는 자기부정성과 재귀성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요나스 메카스(Jonas Mekas) 1996년 파리 아메리칸 센터에서 영화탄생 100주년을 맞아 선언문4)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선언문은 다름 아닌 영화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 미술관과 영화관에서 영화탄생 100년을 기념하는 특별전들이 열렸다. 메카스는 이러한 이벤트들 대부분은 상업영화, 스펙터클한 영화들이 중심이었으며 아방가르드 영화와 같은 작은 영화들은 배제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초기 무빙 이미지들이 볼거리로서의 영화를 만들어냈지만 회화와 사진과는 다른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실험들이 반영되었고 이는 소위 아방가르드 영화, 실험영화의 발단이자 지속적으로 새로운 무빙 이미지들이 나오게 되는 발판이 된다. 메카스는 작은 영화들이 인간의 실험정신을 담아 미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냈으며 이러한 과정들은 흘러지나가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지속되고 다시 시작된다고 말한다. 




기슬기 <Post Tenbras Lux_01> 2014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90×135cm 

사진: 경기도미술관 제공




곧 영화는 100년이 지난 것처럼 낡은 것이 아닌 매우 젊은 것이며 이들이 기념하고 있는 영화들로 역사를 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메카스는 현재까지도 매일같이 카메라를 들고 소소한 사건들을 일기처럼 기록해나간다. 미디어/이미지를 실험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미국 실험영화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메카스의 작품 대부분은 자신과 주변의 일상들이 담겨있다.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가 촉각적임을 시사한 바처럼 카메라라는 미디어를 삶의 도구로서 일치시킨 메카스의 작품에서는 아방가르드가 거대담론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며 삶의 모습이 보편적 의식이자 미학적 실천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필름만 있던 시절에는 메카스와 같은 실천을 불가능했을 것이다. 


포터백 카메라 이후 미술과 영화에서 무빙 이미지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되었고 디지털 카메라로 오면서 교차되기도 하고 공생해나가고 있다. 전술한 것처럼, 무빙 이미지의 초기는 미술이든 영화든 움직이는 이미지 하나로 즐거워하며 종이에 그림을 그려 흉내 내기도 했던 것으로 기록된다. 그 안에서 예술과 상업이 분리되었고 아방가르드 예술이 탄생했다. 누구나 카메라를 들 수 있는 현재에서 다시 무빙 이미지를 만들어낼 때 과연 예술 영역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새롭게 복구된 포스트 아방가르드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으며 앞으로 100년 후 역사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작품들이 나와야하며 작가와 관객의 삶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90세가 넘은 메카스의 영화는 결코 100세가 아니며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것이라는 메시지는,  1세기가 지난 무빙 이미지의 재탄생을 낙관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각주]

1) 특히 독립영화의 경우 미술 영역에서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영화 장르 내에서의 용어로, ‘독립이라는 의미가 예전처럼 반기업, 반정부를 말하는 것인지 대형 프로덕션 외부를 말하는 것이지 모호하며 현재 독립영화라는 것이 상업영화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음에 따라 아방가르드의 범주 내에서 말할 수 있는 유용한 용어는 되지 못한다. 

2) Arthur Knight, The Liveliest Art: A Panoramit History of the Movies, 김무현, 최창섭 역, 『영화예술로서의 성장』 영화진흥공사 1989

3) Andrew James Paterson, Expanding Moving Pictures, 25th Image Festival Catalog 2012

4) Jonas Mekas, Anti-100 Years of Cinema Manifesto, point d'ironie, no. 1 Paris 1996



글쓴이 김지하는 일본 타마미술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고, 홍익대에서 '한국 실험영화의 문화적 형성과정 연구'로 박사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국영화학회 국제학술이사로 있으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 실험영화 아카이브 책임연구원으로 자료 구축 및 전시 기획을 하고 있다. 저서는 『차학경 예술론』 등이 있다.




알베르트 세라(Albert Serra) <Birdsong> 

2008 B&W 98분 사진: IIff 제공





Special feature Ⅱ

moving of moving image

작가 증언으로 수집한 무빙 이미지 실재

 최형우 수습기자



무빙 이미지에 관한 최초의 개인적 기억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작품이 다른 곳에서도 전시가 되고 있다는 전시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뭔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것 같기도 한 그 때의 감정은 아무래도 데이터 형식의 매체가 가지고 있는 복제라는 속성이 예술과 만났을 때 느껴지는 양가적 태도였을 것이다. 과거 20세기 초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는 수작업의 물건들이 대량생산의 상품을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감정이었을까. 미술로서의 무빙 이미지 작업을 보기 훨씬 전 이미 비디오나 영화라는 이름으로 먼저 접했던 대다수의 대중들은 아직도 무빙 이미지 예술을 회화 같은 미술로 바라보기엔 공존하기 어려운 비디오 매체의 성격이 먼저 떠오를지 모른다.  


이에 작가들을 찾아 나섰다. 영상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머리를 붙잡고 곱씹어 봤을, 자신의 피붙이 같은 작업을 아이디어 단계의 발아 직전 상태에서부터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 밖으로 태어난 날까지 쭉 함께 해 왔을, 물질인지 비물질인지 뭐라 말하기도 애매한 영상이라는 매체에 대한 현실적 고민을 항상 해왔을 작가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궁금했다. 촬영을 기반으로 무빙 이미지 작업을 진행해 나가는 작가들을 찾았다. 시각예술과 영화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영상을 통한 그들의 표현과 방식은 미술은 맞을지언정 어째 전통적인 조형물처럼 콜렉터들의 컬렉션 안에 들어오기는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이고 그렇다고 영화 영역 안에서도 환영을 받는 입장 또한 아니다. 그들의 표현 방식은 영화 너머의 어딘가에서 영상 매체에 대한 실험적이고도 탐구적 태도가 전제 되어 있기에 애초에 보수적인 영화 시장의 룰에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땅을 사들인 고든 마타 클락(Gordon Matta-Clark)이나 노는 땅에서 노는 고승욱의 작업처럼 이들은 영역과 영역 사이에서 낯선 내용적 연출과 기법들을 창안해내고 다루기 애매한 매체적 물성을 앞서서 경험하고 연구하는 또 다른 생산자들일지 모른다. 


이번 섹션에서 작가들에게 던진 질문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작가들의 현재 상황들을 보여주고 이것들이 오늘날의 무빙 이미지에 대한 어떤 지표를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그들이 영상이라는 툴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 안에서는 어떤 것들이 가능한지를 작가의 입으로 듣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들이 상영관에서 틀어지는지 전시장에서 보여 지는지, 각각의 상황 속 관람객, 작품, 공간 사이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무엇이 있었는지 또는 어떤 제3의 공간에서 보여 질 수 있는지를 증언해주길 바랬다. 결국 영화가 될 수도 혹은 비디오 작업이 될 수도, 아니면 그냥 통칭해서 무빙 이미지라고 불리는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중요한 표상이 되길 바랐다. 더불어 데이터 파일이라는 그들의 작품을 담고 있는 그릇에 대한 이야기 역시 듣고자 했다. 


이는 복제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쉽게 전송이 가능하고 핸드폰이든 상영관이든 자유롭게 상영될 수 있고 작품의 조작 또한 클릭 몇 번으로 가능한 디지털의 성격들이 예술과 만났을 때 발생하는 상황들을 알기를 원했고 또한 이러한 특성들이 영상 작업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과 태도들을 스스로 돌아보는 기회가 만들어지길 원했다. 무빙 이미지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고민들을 독자들과 작가들이 함께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영상예술이 가지고 있는 속성과 특징들을 작가와 관람객이 같이 이해하고 영상예술의 성격에 맞는 맞춤식 발전과 무빙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시작되기를 바라본다. 





박경근 <철의 꿈> 2014 컬러 100






No.1

박경근 Park kyung kun 

http://vimeo.com/kkkpstudio 


전반적인 작업이 궁금하다  영화와 비디오작업, 비디오설치를 해오고 있다. 작품은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이 프로젝트를 가지고 영화, 싱글채널, 멀티채널 등 다양한 장르로 풀어낸다. 영화의 장르 안 작업보다 영상을 매체로 쓰는 미술작업이 내게 더 잘 맞는다.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제작되나  영화에서 편집은 스토리구조에 이미지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에 감각적인 순서와 시간의 흐름을 통해 서사구조를 만드는 과정이다. 설치작업은 여러 개의 이미지가 서로 충돌하거나 동시에 나타남으로써 만들어내는 긴장감을 상상하며 만든다. 


본인 작업이 어떤 장르()에 있다고 여기나. 더불어 영상예술의 장르 구분, 경계에 대한 생각은  내 작업은 다큐멘터리적 이지만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결국, 장르 밖으로 벗어나게 되는데 이는 보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서양에서는 내 작업과 같은 부류의 작품들이 더러 있는데 딱 꼬집어 무슨 장르라 일컬어야 될지 모르겠다. 영화의 틀에서는 각 장면의 이미지에 분명한 이유와 의미가 있어야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작업은 영화의 틀 안에서 읽히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이 때문에 가령 맥거핀(macguffin, 속임수·미끼)’이라는 기법을 이용해 가상의 스토리를 만들기도 한다.


작품에 대한 관리, 홍보는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시간성이 있는 작업물이라 회화와는 달리 홍보도 어렵고 관리 또한 다를 거라 생각한다)  영화는 복제가 불가능한 DCP, IPTV나 인터넷 유료상영으로 관리되지만, 토렌트 파일 등은 작가 컨트롤을 떠나 자유롭게 유출이 되고 또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는 게 내 입장이다. 반면에 설치 작업은 영상, 사운드, 공간을 직접 컨트롤해야 하기 때문에 에디션을 만들고 관리하고 있다영상 작품에 대한 소유권이나, 저작권, 상영권, 전송권 혹은 전시 디스플레이 방식에 대한 생각이나 고민을 듣고 싶다  비디오 작업이 거래되는 룰은 있지만 아직 정확히 모르므로 배워가고 있다. 설치공간에서 에디션을 정해 판매를 하고, 판매가 되면 설치되는 조건들 프로젝터 사향, 음향, 스크린 크기, 벽면의 색, 등 을 최대한 디테일하게 정해서 메뉴얼을 포함해서 판매를 하고 컬렉터 또한 내가 제시한 조건에서만 전시하는 원칙을 세웠다.





박경근 <철의 꿈> 2014 설치전경 100





영상 작업에 대한 수입 구조가 궁금하다(배급사가 있기도 한가. 판매나 전시를 위한 대여 과정도 궁금하다)  영화는 배급사가 극장 티켓판매, 공공상영료, 부가판권을 통해 수익을 내고 있다. 비디오 설치는 기존 미술시장의 거래방식처럼 에디션에 따라 가격을 정하고 컬렉터는 설치를 전시할 수 있는 권리를 구매하게 된다. 예를 들어 5개의 에디션을 만들면 5개의 설치만이 전시될 수 있다. 그리고 컬렉터는 전시권리를 다시 세컨더리 마켓에서 다른 이에게 되팔 수 있는 권리도 사게 된다. 사실 난 비디오의 판매 방식은 에디션과 함께 부동산처럼 공간에 의해 (평당 얼마…) 결정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생각도 하고 있다. 영상 작업을 해오면서 만들어 보고 싶은 장르나 형식은 무엇인가  앞으로는 더욱 더 내러티브 베이스가 아닌 체험 위주의 영화와 비디오 작업을 하고 싶다. 기존 작업의 확장으로서 컴퓨터와 디지털 이미지에서 조금 벗어나 손으로 물질 다루는 작업을 하고 싶다. 실험적으로 키네틱 조각을 만들어서 디지털과 물리적인 공간에서의 관계에서 또 다른 영상과 공간을 상상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영상 작업을 제작할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편집하거나 생각난 아이디어가 좋은 것인지 아닌지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 내가 해 놓은 작업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내 자신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그렇다고 거리를 두고 작업을 할 수는 없다. 나를 냉정하게 보는 법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항상 오픈되어 있어야 하고 내가 망가질 수 있는 여지를 항상 열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움의 자세 없이 닫힌 상태에 갇히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로서의 중요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앞으로의 작업은  현재 군대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다. 아마도 한국 남성 원형 프로젝트의 마지막 작업이 될텐데 처음으로 사람을 집중적으로 찍고 있다. <인간극장>처럼 어떤 심리적인 드라마가 아닌 사람의 육체와 정신, 욕망, 개인과 집단 등등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지만 작품이 어떻게 나올 지는 나도 궁금하다. 작가 박경근은 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에서 학사학위를, 캘리포니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옵시스 아트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국립현대미술관, 아라리오 갤러리, 일민미술관, 대구미술관, 뉴욕 MoMA 등에 초대됐으며 로마 아시아 영화제, 베를린 국제 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바 있다.





오민 <Plants> 2015 비디오 스틸 이미지 






No.2

오민 Oh min

http://min-oh.net


작업을 직접 설명한다면  내 작업들 대부분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하며 주로 달콤하지만 불편하거나, 논리적이지만 이치에 맞지 않거나, 순진해 보이면서도 기만적일 수 있는, 경계가 모호한 상황들을 그 출발점으로 한다. 이렇게 불투명한 경계들은 인간이 본래 불안정한 존재지만 동시에 그것을 인식하고 보완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순작용과 부작용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 두 가지 사이의 미묘한 균형과 긴장을 관찰하고 있다. 작업은 어떤 과정으로 완성되나  이미지와 소리는 대부분 직접 만들지만 혹 전문가와 협업하기도 한다.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는 방식을 주로 택하지만 때때로 스탑모션기법을 결합한다. 비디오 촬영을 하는 경우 연출과 기록의 두 가지 다른 축 내 어느 지점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는데, 두 축 중 어느 쪽에 가까운가는 프로젝트마다 달라지는 것 같다. 이때 연출이든 기록이든 관찰대상이 되는 공연자/배우가 존재하며,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고 어떤 방식으로 연출할 것인가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프로젝트 리서치의 일부가 된다.  


본인 작업이 어떤 장르()에 있다고 생각하나. 더불어 영상예술의 장르 구분, 경계에 대한 생각은  내 작업을 어떤 특정 장르로 구분하고 싶지 않다. 내 작업적 관심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속도가 느리더라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살아있는 것에 포커싱돼 있으며 각 작업 내용에 따라 가장 적절한 형식을 찾아내는 것을 목표하기 때문에 그 형식 또한 늘 변할 수밖에 없다. 최근 관심 있게 관찰하고 있는 비디오작가들을 비추어 설명하자면, 에르노트 믹(Aernout Mik)의 비디오 조각(video sculpture)이나 방향 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알렉스 프래거(Alex Prager)의 무빙 이미지보다는 오머 패스트(Omer Fast)의 비교적 분명하고 엄격한 내러티브 구조나 예스퍼 유스트(Jesper Just)의 파편화된 구조에 더 흥미를 느낀다. , 시간의 구조를 만드는 방식에 관심이 있으며 이때 구조 자체가 내용을 내포하는 가능성을 고민한다. 현재는 음악의 형식을 어떻게 비디오로 끌어올 수 있는가에 대한 자료를 수집 중이다.


작품에 대한 관리, 홍보는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시간성 있는 작업이라 회화와는 달리 홍보도 어렵고 관리 또한 다를 거라 생각한다)  안정적으로 데이터를 백업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기술 발전과 함께 영상의 표준 해상도가 점점 높아지고 따라서 데이터의 크기 역시 커지고 있으며 이 데이터들을 저장할 외장하드의 수가 늘어나면서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디지털 데이터들이 실제로 눈에 보이는 물리적 공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작품의 대표이미지를 통해 홍보가 주로 이뤄지는데, 비디오의 모든 장면은 움직임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보니 스틸이미지로 보일 때 종종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불완전한 이미지로부터 유발되는 궁금증 또한 나쁘지 않겠다 싶다영상 작품에 대한 소유권이나, 저작권, 상영권, 전송권 혹은 전시 디스플레이 방식에 대한 생각이나 고민을 듣고 싶다  작업마다 이상적인 상영방식, 장비의 종류, 영상 및 소리의 크기와 위치를 계획하며 이 계획이 가능한 한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물론 쉽지 않다. 불필요한 시각적 간섭이 적은 심플한 공간, 그리고 독립적이면서도 오픈된 공간, 즉 관객들이 정해진 시간표 없이 편한 시간에 들어와서 원하는 만큼 보고 나갈 수 있는 자율성이 있는 공간을 선호한다. 작업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하여 작가가 최종 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업의 파생물(이미지, 작가노트, 인터뷰 등)도 철저하게 관리하려 노력한다.





오민 <Daughter> 2011 비디오 스틸 이미지





영상 작업들에 대한 수입 구조가 궁금하다  고정적인 수입구조가 있다기보다는 늘 상황에 따라 다른 계획과 대응이 필요하다. 전시를 주최하는 기관으로부터 제작지원을 받거나, 아티스트 피(Artist fee)와 같이 작가의 작업 자체에 관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국립·사립기관으로부터 추가적인 펀드를 받기도 한다. 대부분 펀드는 작업 결과물로 만들어지는 수익이라기보다는 앞으로 만들어질 작업을 위해 곧 지출될 미래의 비용이 주를 이룬다. 영상작업에 대한 수입구조를 생각하기보다는 새로운 영상작업을 위한 지출 원천을 찾는 것이 급급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영상 작업을 해오며 만들어 보고 싶은 장르나 형식이 있다면  한 가지 방식에 고정하지 않고 여러 가지 방식의 시간 구조를 계속해서 테스트해보려고 한다. 엄격한 구조가 있는 형식에서부터 방향을 알 수 없는 흐름까지, 당분간은 가능성을 열어놓고 최대한 다양한 실험할 계획이다. 한동안 내러티브가 강한 형식을 만들지 않았다는 생각도 머지않은 미래에 단편영화와 유사한 형식을 시도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작품을 제작할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작업의 모든 단계마다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계속해서 발생하지만, 해결하는 과정 자체를 리서치의 일부로 보며 긍정적으로 대처하려 노력한다. 다만, 각 시행착오 이후 빠르게 만회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충분한 예산을 마련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 프로젝트마다 가장 애가 타는 부분이다. 앞으로의 작업은  최근 여러 가지 양상의 제스처에 대해 리서치하고 있다. 오랜 훈련에 의해 거의 자동으로 발현되는 제스처, 그 움직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나타나는 제스처, 위기의 순간에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제스처, 그리고 상황의 결과물이자 그 상황을 해독하는 열쇠가 되는 일련의 제스처 등 통제 및 제어와 관계된 몸의 움직임에 관해 이야기하는 프로젝트들을 계획하고 있다. 작가 오민은 서울대학교에서 피아노와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예일대학교에서 그래픽디자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 라익스 아카데미, 금천예술공장, 삼성문화재단 파리국제예술공동체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하고, <젊은 모색 2014>, <2015 랜덤 액세스> 등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제6회 두산연강예술상(2015)을 수상했다.





오용석 <Drama No.6> 

2011 2채널 비디오 무작위 반복재생




No.3

오용석 Oh yong seok

https://vimeo.com/user5927509


전반적인 작업이 궁금하다  콜라주 기법을 이용해 작업한다. 앨범에 있는 옛날 사진을 가지고 사진 속 장소를 직접 찾아가서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옛날 사진과 동영상을 콜라주해 현재와 과거, 동영상과 사진이 함께 공존하는 작업을 했다. 그 후에는 옛날 사진뿐만 아니라 영화의 한 장면을 이용해서 영화 속 장소나 비슷한 장소를 촬영하여 마치 하나의 공간인 것처럼 콜라주로 엮어내는 작업을 주로 한다.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제작하나  촬영, 편집, 로케이션 조사를 혼자 진행한다. 영화를 이용한 작업인 ‘Drama’ 시리즈를 예로 말하자면 우선 영화를 보면서 전경들을 수집한다. 일상적인 구도로 찍혀진 전경들만을 수집한 후 그 장소를 찾아다닌다. 비슷하거나 같은 장소를 찾아 촬영한 후 최종적으로 같이 모아 콜라주 편집을 통해 완성한다.


본인 작업이 어떤 장르()에 있다고 생각하나. 더불어 영상예술의 장르 구분, 경계에 대한 생각은  일반적으로 미술계에서 만들어지는 비디오 작업들은 많은 용어 변천을 겪었다. 내가 처음 활동할 때는 비디오 또는 영상으로 불렸다. 그러다 2000년 후반부터 미디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비디오, 카메라로 찍고 편집하는 것이 다였기 때문에 영상작업에 대해 비디오라 불리는 것이 맞았던 것 같고 그 이후에 매체들이 발달하면서 웹 아트도 나오고 인터랙티브도 나오고 좀 더 복잡한 기술의 작업들이 파생했기 때문에 미디어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됐다 생각한다. 내 작업을 굳이 구분하라면 비디오, 그 중에서도 로우테크에 가까운 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에 비디오나 영상이라 불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 회화도 무빙 이미지로 볼 수 있다. 관람객 입장에서, 물론 하나의 장면이지만 한 번에 다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구석구석 관찰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작품에 대한 관리, 홍보는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내 작업 대부분은 데이터로 된 영상이다. 그래서 데이터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통사람들과 같이 하드를 여러 개 두고 백업을 여기저기 해둔다. 예전 비디오테이프 같은 경우에는 온도나 습도에 따라 훼손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데이터만 잘 보존하면 된다. 





오용석 <Drama No.6> 

2011 2채널 비디오 무작위 반복재생





최근 홈페이지를 만들고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온라인 스크린이라는 메뉴를 만들었다. 지금은 시험하는 중이라 프리뷰만 올렸는데 향후 풀 영상을 올릴 계획이다. 특정 상영 날짜를 정해 작품을 관람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영상 작품에 대한 소유권이나, 저작권, 상영권, 전송권 혹은 전시 디스플레이 방식에 대한 생각이나 고민을 듣고 싶다  상영권이나 전송권은 영화에 해당되는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술계의 시스템에 따르고 있다. 내 작업 내용이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에 영화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이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컬렉터가 내 작품을 회화처럼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자 한다면 그 또한 반대하진 않는다. 다만 입장료를 받는다면 수익의 일정 부분은 작가의 몫이라 여긴다. 디스플레이는 공간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하는 편이나 작품  <거의 모든 수평선>(2013)의 경우 반드시 스크리닝 형식을 갖춰야 한다. 


영상 작업들에 대한 수입 구조가 궁금하다  기존 회화나 조각 작품처럼 영상도 판매가 이뤄진다. 외장 하드에 데이터를 넣어 패키지의 형태로 에디션을 붙이고 조각 작품과 유사한 형태로 거래한다. 그리고 보증서, 서명으로 작품의 진품성을 가린다. 하지만 이상적인 방법은 아니라고 늘 생각한다도전하고 싶은 장르나 형식은 무엇인가  영상이란 장르는 비물질인 까닭에 무한 확장이 가능하다. 물리적 프레임이 있는 회화와는 달리 영상은 틀이 없다. 가령 러닝타임을 계속해서 늘려나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기존 작업의 개념에서는 선별, 구축, 배제라는 개념이 있는데 영상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이용하여 선별, 랜덤, 확산, 비구축의 개념에 맞는 작업을 고민하고 있다작업할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것이 최선인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럴 때면 거리를 두고 반복해서 보고, 확신이 들 때 비로소 제작하고 공개한다. 작가 오용석은 수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대안공간 풀, 16번지 갤러리 현대, 호주 페더레이션 스퀘어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상하이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갤러리 현대, 아라리오 갤러리, 아트플레이 디자인센터, 삼성미술관 플라토, 국립현대미술관 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안정주 <행진> 2015 5채널 비디오 루프 2 20초 

사진: 두산갤러리 제공 



No.4

안정주 An jung ju

http://www.anjungju.com


작업을 직접 설명한다면  주로 사회 현상을 촬영하고 그 소스를 편집하는 과정으로 작품을 만든다. 그 안에서 소리가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소리 역시 가시화될 수 있는 상황으로 끌어올린다. 내가 바라보는 이미지에 대한 변주를, 소리를 이용하여 다른 의미를 형성하거나 이미지의 기존 의미를 덜어내는 형태로 작업을 진행한다. 작업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나  작업 초반에는 먼저 촬영한 후 그 소스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지 일종의 퍼즐 맞추기 방법을 사용했다.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덩어리의 아웃라인이 정확하게 잡혀있지 않은 상태에서 관심이 가는 부분의 대상을 찾아 컬렉션 하듯이 영상을 모은 후 그 소스들을 보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 고민하고 작업한 것이다. 최근에는 이와 반대로 미리 기획을 세운 후 명확하게 작업을 진행하는 방법을 병행하고 있다. 컷 편집 위주로 작업이 진행되고 그 안에 들어갈 소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면밀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소스를 모아두는 방식과 미리 준비를 한 후 촬영하는 방법 두 가지를 같이 사용함으로써 주제를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지고 작업의 경향이 다르게 나오는 부분이 재미있다.


본인 작업이 어떤 장르()에 있다고 생각하나. 더불어 영상예술의 장르 구분, 경계에 대한 생각은  지금은 순수미술을 기본 배경으로 작업하고 미술관의 구조 안에서 작품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작업이 어떤 환경에서 보이느냐에 따라 내 작업의 분류가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영화관이나 전시관 혹은 전광판 등의 공공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이면 영화나 비디오 아트, 미디어 아트라고 불리는 것 같다. 처음에 보여주는 형태는 비디오 아트, 미디어 아트일지는 모르지만 소비하는 형태에 따라 분류가 달라지기도 한다. 내가 장르를 한정할 필요는 없다. 경계를 나누는 것 자체가 이제는 무의미하다고 여긴다. 작품에 대한 관리, 홍보는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시간성이 있는 작업이라 회화와는 달리 홍보도 어렵고 관리 또한 다를텐데)  이 부분이 제일 어렵다. 내가 영상작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고 앞으로도 달라질테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관리는 촬영했던 원본보다 훨씬 좋은 퀄리티의 영상으로 남겨 놓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차후 확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서 웹용 버전을 인터넷에 올려놓는다. 이 과정에서 다채널의 작업을 하나로 묶어 보여줘야 하는 것이 제일 안타깝다. 또 작품이 가장 이상적으로 설치되는 처음과 달리 영화관에서 보일 때나 기타 장소에서 상영될 때 혹은 단체전에 전시될 때 작품 본의가 변형되기도 한다. 





정주 <톱과 드럼을 위한 협주곡> 2015 

2채널 비디오 10 5초 사진: 두산갤러리 제공





영상 작품에 대한 소유권이나, 저작권, 상영권, 전송권 혹은 전시 디스플레이 방식에 대한 생각이나 고민을 듣고 싶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구매할 경우 트레일러 제작을 위한 편집이나 아트 상품을 위해 작품 속 이미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계약 조항을 넣을 때가 있다. 상의를 전제로 한 편집이나 웹상에 보이는 방식은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디스플레이 방식 자체는 개인전에서 가장 이상적인 설치를 구현할 수 있지만, 이후 작품이 온전히 선보이는 상황은 많지 않았다.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상태의 전시에서는 내 작업에 어느 정도 손실이 발생한다. 영상 작업들에 대한 수입 구조가 궁금하다(배급사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판매나 전시를 위한 대여를 해줄 때의 과정도 궁금하다)  최근, 전시를 위해 작품을 대여할 때 아티스트 피를 준다. 예전에는 이런 경우가 없었지만, 점차 인식이 바뀌어 아티스트 피가 예산에 책정되는 듯하다.


영상 작업을 하며 만들고 싶은 장르나 형식은 무엇인가  더러 작품을 관람하는 형식을 벗어나 외부적인 것을 이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프로젝트 작업으로 팀을 만들어서 공연하는데 일종의 음악극처럼 영상과 공연을 같이 보여주는 형태로 확장하고 있다. 음악과 영화 사이의 애매한 위치 안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개념적인 음악과 퍼포먼스로서의 공연을 하고 있다. 작업을 제작할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내 작업에서는 두 가지의 콘셉트가 있는데 그중 계획을 짠 후 한꺼번에 예산을 투입할 때 제작비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리고 작업을 혼자 하기보다는 스텝과 함께 완성도를 높이는 경우가 많은데, 혼자 촬영했을 때 드러나는 날것의 느낌과 작업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문제는 작업을 거듭할수록 감소될거라 믿는다. 또 예전엔 오히려 쉽게 내놓은 작품 속에 핵심을 관통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지금은 쉽게 내놓는 것 자체가 부담된다. 중간의 여러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 되려 부담으로 작용하고 기존처럼 날 것의 작업을 제작하기가 어려운 입장이 돼가는 것 같다. 이것이 두 가지 콘셉트작업을 병행하는 이유다.


앞으로의 작업은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했고 군악대에서 행진지휘를 맡은 덕분인지 내 작업은 자연스럽게 음악과 연관이 되어 있었다. 이런 정체성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주제로 2004년에 전시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이는 이미지 탓에 정치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이미지의 의미를 탈색하는 작업을 의도적으로 했지만 이제는 의미를 부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배제하고 내가 체감하는 사회의 구조나 시스템에 대한 포커스를 다른 형태의 상징으로 나타내며 좀 더 유희적인 이미지를 정치적인 것 대신 보여줘야겠다는 의지가 든다. 그래서 작가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가 과연 무엇을 지시하는가?”란 의문이 들도록 만들 계획이다. 


작가 안정주는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미디어아트 전공으로 석사를 마쳤다. 후쿠오카 아시아 트리엔날레, <젊은모색 30> 등에 초대되었으며 아트포럼뉴게이트, 금호미술관, 쿤스트하트베타니엔,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갤러리잔다리, 두산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차미혜 <바다> 2015 2채널 비디오 15




No.5

차미혜 Cha mi hye

http://www.chamihye.com 


전반적인 작업이 궁금하다  오래전 했던 작업부터 연결되었던 지점이 분명 있다. 이 점으로부터 다른 작업이 변주, 확장되는 느낌이 든다. 나는 소멸하는 것들에 집중한다. 내가 감각하는 시공간 속에서 소멸했다고 보이는 것(달리 보면 소멸이 아닐 수도 있다), 비선형적인 시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목격하고 채집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각 작업의 영감과 시작은 다르다.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제작하나  작업마다 방식은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어떤 작업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우연히 본 공간이나 이미지에 매료되었을 때 찍기도 하고 혹은 예전에 갔었던 공간이 계속해서 생각날 때가 있는데 그러면 그 공간을 찾아가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무언가를 기다리기도 한다. 최근 작업은 바다극장이라는 공간에서 후각, 청각 등 몸이 감각한 것을 담았다. 인물을 통해서 그 공간에서 표현할 수 있는 방식들, 정서나 느낌 등을 퍼포머들과 소통했고 이후 그들에게서 나오는 몸짓을 포착했다. 떠오르거나 상상 역시 연출에 포함시켰다본인 작업이 어떤 장르()에 있다고 생각하나. 더불어 영상예술의 장르 구분, 경계에 대한 생각은  보이는 환경을 의식하기는 하지만 나 자신은 경계가 없고 경계가 허물어지는 지점에 내 작업이 있다. 그런 까닭에 각각의 환경에 따라 비디오 아트, 혹은 영화로 불린다. 장르를 구분 짓는 것은 편리나 관객과의 호흡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기는 나는, 내 작업이 어떻게 보이고 해석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작품에 대한 관리, 홍보는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작업이 데이터 파일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외장하드에 보관한다. 하지만 외장하드도 소모품이고 고장이 날 수 있기에 백업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홍보의 경우 영화제나 미술관에서 상영하는 것인데, 영화제에 적극적으로 출품한다. 영상의 시간성을 경험할 때 갤러리보다는 극장에서의 집중도가 높고 제약된 조건을 이용하는 차원에서 영화제가 적합한 경우가 있다. 또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다양한 요건을 따져 작품을 상영하는 것을 결정한다. 이런 식으로 관객과 만남의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갤러리에서는 큐레이터와의 만남이 아닌 경우에는 공모 방식을 이용한다. 이를 통해 전시기회, 즉 작업을 보여줄 기회를 얻는다. 영상 작품에 대한 소유권이나, 저작권, 상영권, 전송권 혹은 전시 디스플레이 방식에 대한 생각이나 고민을 듣고 싶다  작업이 잘리거나 늘려지는 경우 혹은 다른 내레이션이 삽입되는 경우가 가장 조심스럽다. 영상은 시간성에서 이미지, 사운드 등의 통합적인 덩어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요소는 원본대로 유지돼야 맞다. 작품의 시간도 서로 충분히 협의된 경우에만 편집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차미혜

 <사라진 인물들과 사라지지 않은 세계 혹은 그 반대>

 2015 비디오 설치 30





에디션 작품을 소유한 컬렉터가 원할 때 상영하는 것은 문제없다. 하지만 상영의 방식 면에서, 가령 집중도 있는 공간에서 시간성이 필요한 작업일 경우에는 상영 전에 미리 충분히 이야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송권 경우 인터넷이라는 매체에서 익명의 관객과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갤러리나 영화관에서처럼 멀티채널 설치를 통한 공간성을 느끼게 하거나 집중도를 체험하게 하는 점에 흥미가 있기 때문에 아직은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디스플레이 방식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어느 공간에 매료되어서 시작된 작업이 많은 까닭에 공간이 정말 중요하다. 가령 최근 전시했던 갤러리를 예를 들자면 이번 작업의 중요 장소였던 바다극장과 근접한 곳을 찾아 연동시키고 관람객들에게 바다극장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의도가 있었다. 또한, 그 갤러리가 위치한 건물이 예전에는 붐볐던 곳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낡아져 버린 점이 바다극장과 맥락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전시 공간 역시 영상을 상영하기 위한 단순한 스크린 공간이 아니라 바다극장에서 느꼈던 구조적인 측면이나 빛의 감각들을 공간 구성과 연결 짓기 위해 애썼다. 영상 작업들에 대한 수입 구조가 궁금하다  갤러리에서는 아티스트 피를 받고 영화제에서는 상영료를 받는다향후 만들고 싶은 장르나 형식은 무엇인가  장르를 정하고 작품을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장르에 규정짓고 싶지 않다작업을 제작할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공간의 특성이나 촬영 가능한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공간의 이해와 섭외가 우선돼야 한다. 또 작업하면서 인물들이 작품에 등장하고, 스텝이 필요한 점 등 촬영은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정적인 고민이 있다. 그리고 촬영 환경상 작업 외적으로 신경 쓸 점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작업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앞으로의 작업은  바다 작업을 하면서 사라질 위기에 있는 또 다른 공간을 알게 되었는데 그 공간에서 만난 사람이 아무한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가지고 작업을 할 생각이다.  


작가 차미혜는 최근 케이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백남준 아트센터, 아트스페이스 풀 등에서 열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또한 아시아 필름 앤 비디오아트 포럼(국립현대미술관), 마드리드 컨템퍼러리 오디오-비주얼 아트 페스티벌(MADATAC) 등에서 작품을 상영했다.





박준범 <대피소 리허설> 2015 FullHD 2채널 비디오 27




No.6

박준범 Park june bum

http://www.junebumpark.com/2011/

Theroominaccessible/ 


전반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나  카테고리별로 나뉘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 즉 내  주변의 작은 범주 안에서 수집된 소재들을 믿고 따르는 중이다. 믿는다는 이야기는 이것들이 모이면 어떤 역사가 되겠지, 추출되겠지.”하는 것인데 가령 지질표본조사 같은 경우를 생각하고 있다. 훗날에 이 시대를 쿡쿡 찔러 무엇이 있었고 무엇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이 사회에 사는 라는 작은 사람이 지금의 단면을 보여주려 한다.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만드나  대부분 마지막 장면을 예측해서 작업해왔다. 그 과정과 화면의 요소들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우연적인 효과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다. 최종적인 편집과정까지 생각한 후에 될 수 있으면 편집의 힘을 빌리지 않으려고 사전에 준비를 다 해놓는데 이 부분이 아날로그적인 작업 성격에 도움을 주는 것 같다. 


그런데 예를 들어서 피사체의 자율적인 운동을 포착할 때는 좀 다르다. 그런 상황에서는 개입할 부분과 개입하지 않을 부분을 정해놓는다. 그러니 이 부분도 예측한 대로 작업하는 의미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본인 작업이 어떤 장르()에 있다고 생각하나. 더불어 영상예술의 장르 구분, 경계에 대한 생각은  처음에는 싱글채널 비디오라는 것에 매료됐었다. 이것은 주변의 다른 요소로부터 독립적으로 화면 안의 내용만으로 기승전결이 완성되고 내용 자체가 종결되고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 싱글채널 안의 서술방식은 다 다르겠지만, 싱글채널비디오의 이러한 형식적인 면에 매료되어 있었다. 지금은 다채널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 속성은 유지하려 하고 있고 싱글이든 다채널이든 그 안에 내용이 다 담아져 있기를 원하고 있다. 어느 장르에 있었느냐고 이야기를 한다면 단채널 비디오라는 처음 지점에 아직 있는 것 같다. 


작품에 대한 관리, 홍보는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이는 작업을 처음 할 때부터 고민한 문제다. 점차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기는 하다. 처음에는 폐쇄적으로 움직이려 했으나 오늘날 시스템과 환경은 결코 데이터 파일을 보호할 수 없다. 윤리적인 부분에 치중되어 있고 그렇지 못한 사회나 사람에게서는 복제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한정된 에디션이라면 작품에 대한 로케이션 표시를 웹에 공개하는 방식이 맞을 것 같다. 작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검색했을 때 정말 많은 복제품 중 권한을 지닌 작품이 어느 장소에 있다고 소통 가능한 것이다. 작품을 보여줬던 방식은 스크린 샷, 하이라이트 15, 하이라이트 스크린 샷 등 작품에서 중요한 컷을 보여주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웹에 워터마킹 된 상황에서 작품을 보여준다. 작품에 따라 시놉시스의 텍스트나 풀 영상을 선보이기도 한다.


영상 작품에 대한 소유권이나, 저작권, 상영권, 전송권 혹은 전시 디스플레이 방식에 대한 생각이나 고민을 듣고 싶다  상영하는 것은 소유하는 것하고는 카테고리가 나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미술은행이나 미술관에서 구매할 때 영내에서 이뤄지는 기획에는 자유롭게 상영한다는 조건이 있다. 하지만 개인이든 공공이든 불특정한 관람객에게 보이는 상황에서는 허락이나 리포트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가령 기업의 경우 기업 컬렉션이 사원의 문화적인 향수 제공을 이야기하면서 로비에 틀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어떤 기획을 하게 되면 이것은 기업의 2, 3차적인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는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반대할 작가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작품의 소스를 건드릴 때는 자막을 넣는다든지 부분을 짧아 발췌해서 보여주는 정도의 행위로 작품을 변형할 텐데 이 과정에서는 검수가 필요할 것 같다. 또한, 지역이나 매체가 달라지면서 인코딩이나 디코딩을 할 텐데 이 과정 중 파일의 속성이 변하거나 속도가 변하거나 등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누가 이것을 검증하고 책임을 누가 지는지에 대한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설치방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누적이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부감으로 찍은 비디오는 바닥에 상영한다거나, 미니어처처럼 보여야 하는 비디오는 작은 크기로 상영한다거나. 그래서 작품의 내용과 속성에 따라 디스플레이를 하고 이러한 설치 방식은 누적되고 이후 작품마다 선호되는 디스플레이 방식이 생겨날 것 같다. 그리고 시대가 지나고 작가가 작고한 후에는 많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작가가 고집을 부리는 사안이 없어지기 때문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이는 것이 재밌을 것 같기도 하다. 3자가 할 수 있는 기획력이고 이러한 분들의 감각을 믿는 것이고 이러한 것이 비디오 작업이 가지고 있는 유연함의 장점인 것 같다. 영상 작업들에 대한 수입 구조가 궁금하다(배급사가 있을 수도 있고, 판매나 전시를 위한 대여 과정도 궁금하다)  비디오는 소유하는 것보다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관람객에게 영상은 가졌어가 아닌 봤어가 된다. 


기획자에 따라서 작품은 작게 보일 수도, 아주 크게 보일 수도, 바닥에 놓일 수도 귀로 들을 수도 있는 등의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므로 중복해서 경험시켜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즉 원본성을 유지하되 재차 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소유가 아닌 상영이 중요하다고 나는 여긴다. 이것은 수익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상영할 때마다 상영권한이 생기게 되는데 그 권한이 누구로부터 누구에게 오는가, 그리고 계속 상영을 해도 괜찮은가 같은 것들을 야기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비디오 작품의 재화가 작가에게로 돌아오는 방법은 상영료이다. 


작품을 전달하는 방식은 최초에는 DVD로 전달을 했고 6mm 테이프나 디지베타 테이프(Digibeta Tape)로 전달했고 어떤 경우에는 미니맥의 하드에 넣어 설치를 동반하거나 TV 속에 심는 경우도 있었다. MS나 애플에서 운영체제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판매하는지 대입해보면 된다. 예전에는 CD 패키지로 구매를 할 수 있었는데 현재는 라이센스가 판매가 되고 코드 번호가 오거나 대용량의 경우, 내려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런 변화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방식은 계속 변화할 것이고 이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전달을 해줄 때는 현재 가장 좋은 퀄리티로 전달해주는 방법과 두 번째는 그가 사용하기 좋은 방법 중의 하나를 선택하면 될 것 같다. 만들어 보고 싶은 장르나 형식이 있다면  사람들이 등장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관람객들은 그 상황을 촬영한 비디오작품을 보면서 연극적으로 움직인다. 계획되어 있는 행동을 하는데 애매하다라고 느끼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제가 연극을 시키고 그것을 비디오로 찍음으로 인해 연극을 찍은 비디오 작업이 연극보다 중요한 것이 된다. 연극적인 상황을 주고 사람들이 그 규칙 속에서 행동하게 한다. 그것을 촬영하여 비디오 작업으로 남기는데 결국 현장에 관객이 있는 것이 아닌 비디오 작업에 관람객이 있는 것이다작업을 제작할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매 시간마다 새로운 기술과 더 좋은 장비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것을 따라가기 힘든 까닭에 촬영감독이 필요하고 편집인 같은 조력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이 작가와 얼마나 긴밀한 소통이 되는지가 첨예한 문제다. 그래서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부분도 있다. 기존에 해왔던 방식은 작업에 대한 느낌을 후반까지 이끈다는 장점이 있다. 조력자는 분명 장단점이 있다.   


작가 박준범은 성균관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했으며 사진과 비디오를 주요 매체로 2000년대 초반부터 활동했다상하이비엔날레리버풀 비엔날레 등에 참가했으며갤러리현대맨체스터 큐브(CUBE) 등에서 개인전과 호주영국독일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함께 작품제작지원을 받았다국립현대미술관마이크로소프트아트컬렉션키아즈마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박준범 <8개의 언어

2015 FullHD 4채널 비디오 1 33-10





Special feature Ⅲ

영상예술이 소환하는 여러 조건들

 최형우 수습기자   일러스트 이정헌 객원기자



이 기획은 키워드 무빙 이미지를 영상예술 혹은 영상작업으로 포괄해 다양한 이슈를 훑는다. 특히 이 섹션에서 영상 작업을 둘러싼 상황과 특징을 소개하고 독자들과 공유하려 한다. 회화나 조각과는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는 영상 예술이기에 이들만의 또 다른 이해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진품성(authenticity)과 아우라(aura)를 언급하며 미술사 안에서 기술 발전이 불러들일 새로운 패러다임을 역설한 것처럼 영화나 비디오 같은 아날로그 기술을 시작으로 오늘날 컴퓨터 그래픽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영상 예술의 발견은 예술가들에게 또 다른 성질의 생태계를 만들어 주었고 그들의 창작활동 스펙트럼을 확장시켜 주었다. 회화 못지않게 중요한 창작의 툴로 사용되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특히 시간성과 기술의 속성들을 내포하고 있는 영상 예술은 필름, 비디오 작업, 다큐멘터리, 확장영화, 실험영화 등의 다양한 예술장르로 우리의 삶에 밀접하게 위치하고 있고 이러한 영상예술은 무빙이미지, 필름&비디오, 아티스트필름 등의 이름들로 통칭하여 불리 우는 현재에 놓여 있다. 예술이라는 인간의 창작물을 제대로 향유하기 위해서 영상 예술 역시 중요한 생산물임을 인지하고 이것이 가지는 성질과 특징을 잘 이해해야 함은 당연하고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퍼블릭아트」는 영상예술의 현재 상황에 접근하여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할 점들을 보존과 관리, 구입 및 대여, 관람형태의 세 가지로 파악하고 소개하려 한다. 





작품들은 각 영상 작업마다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관람 형태가 있을 것이고 상관없다 한들 

관람객에게는 선보이는 장소에 따라 작품으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이나 해석은 달라진다. 




보존과 관리


영상 작업들은 기본적으로 기술매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전제를 가지고 있으며 작업물 자체뿐만 아니라 틀어주는 플레이어와 보여주는 모니터를 같이 수반해야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점은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 준다. 시대를 거듭할수록 빠른 속도로 진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오늘날 기술의 환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낙후하거나 새롭게 발전하는 가변성을 보여주고 있다. 기술의존성이 높은 영상 예술은 기술매체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쉽게 예를 들면 백남준이나 박현기 같은 초기 비디오 아트 작가들의 영상 작업을 보여주는 플레이어와 모니터는 현재 단종되어 오늘날의 기술매체에 맞게끔 원본을 변환해야만 하는 난점을 가지게 된다. 단순히 과거의 TV 모니터를 수 십대씩 보관하는 방법은 한계를 가진다. 


특히 아날로그 매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만큼 훼손될 여지가 다분하기에 이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매체로 바꿔 주어야 한다. 또한 매체의 변환 과정에서 생기는 고민들은 새로운 매체로 바꿈에도 이 매체 역시 훗날에는 낙후된다는 기본 전제와 바꾸는 과정에서 원본의 변화를 배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컴퓨터의 혁신과 함께 등장한 플로피디스크를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고 4:3의 브라운관 TV역시 단종 된지 오래다. 4:3의 비율에 맞추어 작업된 영상 작업을 틀어줄 TV 대신 16:9 LED TV가 원본성을 얼마나 잘 수반하고 있을지는 미지수이고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의 변화로 인해 작품의 형태와 내용이 변하게 된다면 작품의 심미성은 물론이고 작품으로의 효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작품 본연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다는 생각으로 매체의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으려는 태도 역시 작품이 훼손되거나 작품을 훗날 보여줄 기기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작품을 보존하기 위한 매체의 업그레이드 과정은 필수이다. 


보존의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해결할 확실한 방법은 현재도 연구 중이지만 가변적 미디어의 성질을 내포하고 있는 영상 작업물의 보존과 적절한 관리를 위해서 1차적으로는 큐레이터, 테크니션, 작가들 간의 협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유동적인 변화가 가능한지를 매뉴얼처럼 기록하고 작품의 성질에 맞추어 작품의 형태나 느낌의 변화를 감안하면서 현재의 기준에 맞는 매체로 이동 할 것인지, 작품의 비주얼 효과에 중점을 두면서 다른 매체로 새로 재작업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작품의 내용을 위해 새로운 매체로의 변형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을 짜두는 것이 작품 관리에 있어서 병행해야 할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오늘날 영상 예술을 생산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디지털 파일의 형태로 작품을 관리하고 이를 하드에 저장해두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현재 가장 효율적이고 일반적이며 관리하기 쉬운 방식이지만 몇 년이 지난 뒤엔 이를 컴퓨터에 연결해줄 포트단자의 형태가 바뀌어 하드웨어로의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 올 수 도 있다. 또한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은 작가가 예전에 사용했던 소프트웨어를 더 이상 지원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영상 작업물의 기술 의존적 성질을 기관이나 작가, 컬렉터 역시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하고 앞으로 도래할 상황에 맞는 맞춤식 대응을 설계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영상 작업의 기술 의존적 성질을 기관이나 작가, 

컬렉터 역시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하고 

앞으로 도래할 상황에 맞는 맞춤식

 대응을 설계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구매 및 대여


영상 작업은 영화계의 속성과 미술계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래하는 방법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미술의 방식으로 거래가 될 때에는 에디션 넘버를 정해 컬렉터이나 기관에게 전달이 되지만 영화의 방식에서는 배급의 성질을 띠게 되면서 방송국이나 극장 상영관에 작품이 배포 된다. 배급사를 거치지 않더라도 작가로부터 직접 작품을 받은 후 스크리닝 피(Screening Fee)를 책정하여 한번 상영될 때 마다 일정 금액을 주는 경우도 있다. 루핑(Looping)의 방식으로 전시되는 미술관에서 보일 때에는 스크리닝 피와 비슷한 개념의 아티스트 피를 주기도 한다. 이처럼 영상 예술은 작품의 콘텐츠나 러닝타임 같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나 작가나 큐레이터의 작품 해석 방식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거래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과정 중에는 클릭 한번만으로 복제가 가능한 데이터 파일의 특징이 중요한 문제인데 복제를 막기 위해 보통 기관에 대여를 해주는 경우에는 DVD, 외장하드, USB에 잠금을 걸거나 암호코드를 설정하여 복제를 방지하고 일정 기간에만 볼 수 있게끔 하는 방식을 취한다. 혹은 원본보다 화질을 한 단계 낮추어 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암호를 풀 수 있다는 불안정한 요소를 가지고 있고, 관람객이 원본을 보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방법 없이 인터넷을 이용해 전달되거나 안정장치가 없는 상태로 전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적절한 형태의 방법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복제에 관한 재미있는 부분은 영상예술의 물질성이 데이터 파일이라는 특징을 이용하려는 작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작가는 작품을 무료로 자유롭게 배포하고 무한 복제와 자유로운 편집까지도 허용한다. 즉 영상 작업에 대한 메타 속성을 드러내고 예술과 예술을 담는 오늘날 디지털 파일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영상 예술을 거래하는 방식은 어떤 표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래 되고 있는 영역이나 환경, 생산하는 작가의 의도나 큐레이터의 해석, 또는 관람객의 수요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이 공존하고 있다. 구입한 영상 작업에 관한 소유권이나 작가의 저작권, 작품의 상영권, 전송권 등의 법적 권리 역시 작가에 의해 자유롭게 변형된다. 컬렉터나 기관과 작품 관련 계약을 할 당시 계약서에 명시가 되는 경우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명시가 안 되어 있을 경우 상영이나 편집, 전송에 관한 상황이 발생하면 작가와 합의를 통해 동의를 구하거나 새로운 계약을 맺어야 한다. 작가에 따라 자유로운 상영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고 편집을 하여 예고편 형식의 가공도 가능하다. 물론 이 자체를 싫어하는 작가도 있다. 또한 구매한 작품을 영리의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민감한 문제인 만큼 더욱 철저하고 세부적인 작가와의 상의와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영상 예술은 작품의 콘텐츠나 러닝타임 같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나 작가나 큐레이터의 작품 해석 방식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거래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관람 형태


누구나 하나씩 휴대하고 있는 핸드폰부터 전문가들만이 다룬다는 초고화질의 고급사양 카메라까지, 촬영을 하는 툴은 작가마다 각양각색이다. 자신의 애마로부터 나오는 작업의 비주얼 표면은 첨예하게 다양할 수밖에 없다. 컴퓨터 작업까지 첨부한다면 이들의 영상 작업물을 애초에 어느 한단어로 규정짓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여기에 작가 고유의 태도와 정서, 개성이 표현되는 수만 종류 콘텐츠는 영상작업의 복잡다단한 결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결과물을 담아두기 위한 적절한 공간을 구상하기가 쉽지 않음은 당연하다. 특히 작가들의 경계를 허물고 영역 밖으로 나가려는 실험적 태도는 영상 작업이 보일 알맞은 전시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영화관의 상영방식이 알맞을 수도 있고 혹은 관람객 개개인이 헤드폰을 착용하고 작품과 밀착하여 감상하는 태도가 적당할 수도, 아니면 이 두 가지 방식을 같이 혼용한다 한들 별 문제가 안 되거나 또 다른 제3의 공간을 원하는 작품들이 있을 것이다. 단순한 영상이 아닌 사운드나 텍스트가 동반되는 점이나 화면 사이즈 조정이 가능하고 시간성을 포함하고 있는 영상 작업의 속성들도 다양한 방식의 전시 형태를 고려해봐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필름&비디오에서 기획한 전시 <섬광 혹은 소멸>(2014)에서는 미술관의 전시 방식을 상영관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관람 형태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박경근의 <철의 꿈>(2014)을 상영 시간을 정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닌 전시장과 같이 연속해서 틀어지는 루핑의 방식을 상영관 안에서 실현해 보였었다. 관람객들은 상시 개방된 상영관 안으로 들어와 미술관의 전시방식처럼 작품을 접함과 동시에 영화관의 거대한 스크린과 오랫동안 관람할 수 있는 좌석을 이용함으로써 작품과 새로운 방식의 만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영상 예술은 공간에 대한 고민과 관람객들과의 만남의 방법에 대한 여러 가지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중이다. 관람객들이 밀폐된 어두운 영화관 속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작품을 대할 때와 화이트 큐브 안에서 돌아다니면서 감상할 때의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작품들은 각 영상 작업마다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관람 형태가 있을 것이고 상관없다 한들 관람객에게는 보여 지는 장소에 따라 작품으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이나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작가들 역시 이러한 공간성의 특징을 인지하고 상영관에서 보여 질 때와 전시장에서 보여 질 때를 구별하여 버전을 달리 하여 전시하기도 한다. 영상 작업을 전시한다는 점은 단순히 모니터나 헤드폰만 있으면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사운드가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혹은 상영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화면의 사이즈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등의 영상 작업물의 기본적인 특징을 파악하고 그 안의 콘텐츠가 내러티브가 있는지 혹은 미술의 조형적 미를 중시했는지 등의 구성요소를 짚어가며 관람공간을 고려하는 것을 중요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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