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Ⅰ_백아영
세상의 (거의) 모든 금기
SPECIAL FEATURE Ⅱ_편집부
9가지 키워드로 읽는 금기
1. 동물에 관한 금기
2. 행동·제스처에 관한 금기
3. 말·언어에 관한 금기
4. 선물에 관한 금기
5. 색에 관한 금기
6. 숫자에 관한 금기
7. 음식·식사예절에 관한 금기
8. 집·가정에 관한 금기
9. 꽃·식물에 관한 금기
라이언 맥나마라(Ryan McNamara)
<Battleground>
ⓒ Solomon R. Guggenheim Museum
Special feature Ⅰ
세상의 (거의) 모든 금기
● 백아영 기자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완벽하게 들어맞는 짝을 찾아야만 한다는 절대적 규칙이 존재하는 세상. 지난해 개봉한 영화 <더 랍스터>가 상상하는 미래다. 솔로가 금기되는 사회에서 홀로 남은 사람들은 45일 동안 커플 메이킹 호텔에 머무르며 커플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여기서 자신과 어울리는 짝을 만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해 영원히 숲 속에 버려지는 탓에, 이곳에 모인 인간들은 동물이 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짝을 찾아 헤맨다. 호텔에서 쫓겨나지 않고 투숙 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생존방법 중 하나는 호텔을 탈출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것. 이에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드는 것도, 다시 커플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기를 어긴 자들이 벌을 피하고자 애쓰는방식이다. 그런가 하면 커플을 거부하고 혼자만의 삶을 택한 이들이 모여 사는 숲에도 당연히 금기는 존재한다. 숲의 금기는 또 기가 막히다. 그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절대로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 이처럼 솔로가 되는 것을 금기하는 숲 밖 세상과 커플이 되는 것을 금기하는 숲 속 세상, 두 반대의 금기가 하나의 현실에 공존하는 것은 영화 속 상상이 아니다. 현실도 매한가지. 아니 그보다 더하다.
이 세상에는 때로는 어이없고, 어쩌면 당연하고, 색다른 금기가 셀 수 없이 많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금기라는 단어는 언제 어디서 생겨났을까? 금기를 뜻하는 터부(taboo)는 ‘금기된’이라는 뜻을 지닌 폴리네시아어 타부(tabu)에서 유래한 단어다. ‘건드릴 수 없는’, ‘침해할 수 없는’, ‘성스러운’ 등의 뜻을 지닌 ‘타부’를 1777년 영국 탐험가이자 항해사 제임스 쿡(James Cook)이 자신의 여행기에 터부라 표현한 것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이후 그 터부가 지금의 의미로 자리 잡았고 한국에서도 통용된 것. 같은 동양권이어도 한국에서는 금기(禁忌)라고 쓰는 반면 중국은 기휘(忌諱)라고 쓴다. 한자는 다르지만 금하거나 두려워한다는 뜻은 같다. 금기는 기존 어휘가 뜻하듯 특정한 대상 즉, 인물이나 사물 혹은 현상, 언어, 행위 등을 신성시해 신봉하거나 반대로 그 대상을 불길하고 두렵다고 여겨 금지하는 것. 종교적, 정치적, 성적인 이유에서 금지하는 것 등을 나타낸다.
발레리오 카루바(Valerio Carrubba) <Nurses run>
2014 Oil on stainless steel 60×45cm Courtesy
Galleria Monica De Cardenas, milano/Zuoz
터부는 사람, 동물, 사물, 언어 등이 내재하거나 상징한다고 믿는 의미와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인해 발생할 불길하고 위험한 사태들, 그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래서 그 대상을 향한 그 어떤 행위도 삼간다. 예로부터 인간은 알 수 없는 신비한힘이 해가 뜨고 지는 것, 달이 차고 기우는 것, 별의 움직임, 천둥과 번개 등 자연현상을 조절한다고 생각했고 이것들이 인간의 생을 좌우한다고 여겼다. 옛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신 혹은 하늘이라는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존재를 만들어내 의지하고자 한 데서 그것의 발생을 찾을 수 있겠다. 인간 행위에 대해 하늘이 벌을 내릴 것이라고 여겨 두려워하는 심리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금기는 특히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앞서 언급했듯 타부라는 단어가 생겨난 나라다. 하지만 금기는 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고루 나타난다. 먹고, 보고, 걷고, 읽고, 쓰고, 접촉하고, 언급하고, 만지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 금기가존재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국제화 시대를 살고 있다. 금기란 것은 한 나라만의 단독 행보가 아니라 곳곳에 존재하는 것이다. 터부는 사람, 지역, 시대에 따라 다양하고 복잡하게 성행하고 있어서, 금기를 정확히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이 나라의금기는 이것’이라고 확언할 수도 없다. 이야기가 전해지고 시대를 거듭하며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금기, 터부’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무엇인가? 발칙하고 도발적이거나, 다소 잔인한 행위 혹은 탐욕적인 장면, 성적인 쾌락을 상상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금지함이 마땅해 보이거나 타인이 이해하기 힘든 금기를 실제로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근친상간,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라 불리는 식인풍속, 죽거나 죽어서 썩은 동물 사체를 먹는 네크로파지(Necro phagy), 산 인간을 희생해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 자학, 악마숭배, 시체를 언덕 위에 놓아 야생 새들의 먹이로 주는 장례풍습인 풍장·조장(Sky Burial). 불에달군 돌 위를 맨발로 걷는 종교의식 불 속 걷기(Fire Walking), 그리고 태국 푸켓에서 매해 이뤄지는 채식 페스티벌에서는 참여자의 볼을칼, 검, 후크 등 뾰족한 것이나 심지어는 총으로 뚫는 행위가 벌어진다고도 한다. 여느 부족에게는 신성할 행위들도, 외부에서 바라보면야만적이면서도 비문명적인 행위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러한 터부들은 세상 어디선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혹은 레즈비언, 게이, 섹스에 대한 언급마저도 금기하며 수면으로 올리길 꺼리기도 한다.
2014년 2相공간 두들에서 자위와 정상·비정상적 성행위, 달팽이의 성행위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아니! 세상이 어느 땐데 섹스를>이라는 전시가 있었다. 전시내용과 작품도 물론이거니와, 제목에 눈길이 갔다. 아니! 세상이 어느 땐데! 금기가 존재하는가! 하지만 세상이 어느 땐…데도 여전히 존재하며 오래도록전해 내려오는 미신과 약속들이 분명히 있다. 앞서 나열한 터부들과는 종류가 다른, 좀 더 실생활에 가깝고, 친근한 금기들. 본지에서 이어 소개할 터부들은 그래서 단순한 예절이나 태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장난일 수도 있다. 때로는 실소가 터지는 기이한 관습에서부터 등골이 오싹한 금기까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엄청나게 사소하고 믿을 수 없게 놀라운” 이야기들. 이를테면 축의금은 홀수여야 한다거나, 연인에게 신발을 선물하면 도망간다거나, 어느 나라에선 꽃다발을 선물할 때 포장지를 뜯지 말아야 한다는 것들 말이다. 동물, 행동과 제스처, 말과 언어, 선물, 색깔, 숫자, 음식과 식사예절, 집과 가정, 꽃과 식물이라는 익숙한 주제로 금기를 나누어 소개할 테니, 이와 어울리는 다양한 도판으로 예술을 감상하고 각 나라의 약속된 금기를 읽으며 상상력을 펼쳐보자.
<Arnaut Blowing Smoke in His Dog's Nose>
Special feature Ⅱ
9가지 키워드로 읽는 금기
1. 동물에 관한 금기
● 백아영 기자
오래전 회사 회식 자리에서 마치 무림고수와 같은 단 한 번의 젓가락 놀림으로 생선을 완벽하게 뒤집은 직원이 환호(?)를 받은 바 있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중국과 홍콩에서 그와 같은 행동을 했다가는 환대는커녕 야유가 쏟아져 나올지도 모른다. 중국과 홍콩, 특히 이 두 나라의 어촌에서는 절대로 생선을 뒤집지 말아야 한다. 한국과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상당히 가까운 나라임에도 생선을 뒤집는 행위가 금기시되는 이유는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뒤집는다는 것이 곧 바다로 나간 배가 뒤집히는 것을 연상하기때문이란다. 이처럼 나라마다는 물론이거니와 지역마다 특색 있는 금기가 전승되기도 하는데, 한국 부산시 기장군에서는 건축할 때 짐승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부정 탄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또 부산 지역에서 통용되는 동물 금기가 더러 있는데, 도로 위에서 죽어있는 동물 사체를밟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는 보는 것도 금기시된다. 사고와 이어진다는 설 때문이다. 사람이 발로 움직이듯이 차량은 바퀴로 움직이는데, 즉, 사람의 다리나 다름없는 자동차의 바퀴이기 때문에 동물을 밟는 것은 운전 시 장애가 발생함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소방서 안에 동물을 들이지 않는다는 금기도 있다. 이는 동물의 사체(심지어 동물까지도)를 부정의 의미로 여기는 전통에서 비롯됐다.
한편, 동물에 대한 금기에서는 음식재료를 피할 수 없다. 한국에서 개고기를 먹는 것을 공식적으로 반발한 해외스타들 소식은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개를 식용으로 삼는 데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특히 독일에서는 개나 고양이를 소재로 한 음식 이야기마저도 금기다. 애완용과 식용을 엄격히 구분한다지만 사실 나조차 먹기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개에 관한 특이한 금기를 하나 더 설명하자면, 말레이시아에서는 개를 쓰다듬는 행위가 금지라고 한다.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의 강아지나 개를 마주치면 쓰다듬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다수의 한국인에게는 어쩌면 황당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금기이기도 하다. 심지어 말레이시아에서는 장난감 강아지나 개 그림이들어간 물건을 선물하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 할 사항. 개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보통 개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지만부정한 의미를 지닌 지역도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한국에서 박쥐는 다소 징그럽고 두려운 동물로 여기는 사람도 많지만, 중국에서 박쥐는 행운을 전하는 동물이다. 유대인은 문어를 부정한 동물이라 여겨 먹지 않는다고 한다. 여느 국가에서는 문어와 오징어가 아주 보편적인 요리 재료이며 한국에서는 캐릭터로 만들어질 정도로 사람과 가까우나, 북유럽은 문어와 오징어를 괴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니 어제 저녁으로 문어를 삶아 먹은 내 입이 민망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실제로 거대 오징어가 잡혔다는 소식을 인터넷 검색 포털에서 종종 볼 수 있고, 자연사박물관에서 고래 크기와 맞먹는 오징어 모형을 보고 기겁해 뒷걸음질 친 적이 있기에,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는 하다.
종교적인 이유로 동물을 금기하기도 한다. 대부분 식용에 관한 것인데, 이슬람교에서는 돼지고기를 부정하다고 보아 먹지 않으며 힌두교에게 소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신성하게 여겨 역시 먹지 않는다. 소를 이용해 만든 상품도 선물하지 않는다고 하니 아주 엄격한 금기다. 유사한 내용으로 이슬람교도들에게 돼지고기와 술은 절대로 선물하면 안 된다. 돼지가죽으로 된 물건조차도 물론 금기된다. 그리고 나바조(Navajo)족에게 코요테는 가장 신성시되는 동물로 절대로 사냥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농사와 관련된 금기가 있는데 소쩍새가 자주 울거나 들개가 짖으면 그해 농사가 흉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 새와 동물의 울음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울지 말라고 애원할 수도 법으로 금지할 수도 없는 일이다. 큰 구렁이를 잡으면 안 되고 고양이를 괴롭히면 해로운 일이 생긴다는 말도 전해진다. 요즘 동물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끔찍한 가학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는 동물을 아끼고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까지 해를 가하는 사건도 자주 발생하는데, 그런 가해자들에게는 이런 금기가 꼭 사실로 드러났으면 한다.
카스텐 횔러(Carsten Höller) <Soma Series III>
2008 C-prints on Alu-Dibond, wood, acrylic glass frames Five
different compositions Image: 101×114cm, paper: 129×140cm,
frame: 129×140×4.6cm Ed. 1/3
ⓒ Carsten Höller Courtesy Gagosian Gallery
2. 행동·제스처에 관한 금기
● 이효정 기자
영국에서 손짓 하나로 곤욕을 겪은 적이 있다. 무더운 여름날, 목이 너무 말라 한 가게에 들어가 음료 두 개를 주문했다. 혹여나 의사소통이 안 될까 싶어 손가락으로 숫자 ‘2’를 만들어 보였는데 이것이 오해의 불씨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손으로 숫자 2를 만들 때 손등이보이든 손바닥 쪽이 보이든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그 장소가 영국이라면 신경 써야 할 일 중 하나였다. 영국에선 손등이 보이는 브이(V)는, 만국 공통 금기제스처라고 할 수 있는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는 행위와 맞먹을 정도의 욕이기 때문. 만약 이 제스처가 금기란걸 모르고 영국에서 당당히 손등 브이를 한다면, 필자처럼 의도치 않게 영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그 근원은 영국이 프랑스와 치른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우리는 영국인이 아니므로 알 턱이 없다. 이렇게 금기시되는 몸짓은 한 나라의 문화적 배경에 강한 영향을 받아 탄생한다.
그 예를 잠깐 살펴보자면, 태국에선 신체 중 가장 높은곳에 있는 머리를 신성시하고, 더러운 것을 밟고 다니는 발을 열등하게 취급한다. 그렇기에 갓 태어난 아이의 머리를 만지거나 발로 사물을 가리키는 것은 금지된 제스처다. 인도에서는 주로 왼손은 더러운 것을 처리하는 손으로 생각해 오른손에 비해 낮은 존재라 여긴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졌으며, 미국에서 흔히 로큰롤을 상징하는 엄지, 검지, 약지를 동시에 피는 손짓은 브라질, 콜롬비아, 이탈리아, 포르투갈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 제스처에서 엄지손가락 하나만 접는다면 ‘당신 아내는 부정한 여자’란 의미가돼, 자칫 싸움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에 가면 더욱더 혼란에 빠진다. 여기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NO’이며, 좌우로 흔드는 것이 ‘YES’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여행 가이드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해당 나라에서 하면 안 되는 행동’일만큼, 나라마다 각양각색의 금기 제스처를 가지고 있다.
한편, 문화를 초월하는 공통의 금기 제스처가 세계엔 존재한다. 바로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하는 행동 ‘Thumbs down’이다. 이제스처는 주로 상대방에게 야유를 보낼 때 하는 것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 국적 불문 자신의 팀 실수를 하거나 상대 팀의 사기를 꺾기 위해 스포츠 경기에서 관중들이 자주 취하는 행위다. 장 레옹 제롬(Jean-Léon Gérôme)의 <뒤집힌 엄지(Pollice Verso)>(1872) 속 군중들 또한 모두가 엄지를 아래로 향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은 로마 시대 검투사 전투다. 이 시대 검투사 전투는 하나의 큰 스포츠로, 그중 작품에 그려진 장면은 글래디에이터 둘이 사람 대 사람으로 결투를 진행해 생존확률이 거의 없을 정도로 격렬한 종목이다.
두 명의 글래디에이터 중 한 명이 전투 능력을 상실했다 싶으면, 관람객은 엄지손가락으로 투표하는데 ‘Thumbs down’은 패배자를 죽이라는 의견을 뜻한다. 바닥에 짓이겨진 글래디에이터가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애원의 손짓을 보냄에도 불구하고, 로마 군중들은 그에게 뒤집힌 엄지손가락으로 야유를 퍼부어 패배자에 대한 가차 없는 응징의 심판을 내리길 원하고 있다.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는 제스처가 오래전부터 형성된 부정의 제스처라면 현대사회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것은 단연 가운데 손가락을 펼치는 행위다. 미국에선 자칫 중지를 잘못 피면 총기사고까지 일어난다 하니 그것이 얼마나 좋지 않은 행동인지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그런데 체코 조각가 데이비드 서니(David Cerny)는 기형적으로 과장된 가운데 손가락이 펼쳐진 보라색 손 <FUCK him>(2013)을 프라하 블타바 강 위에 띄워 모두를 당혹스럽게 했다. 프라하는 관광산업의 도시로, 작품은 자칫 관광객을 조롱하는 기분까지 들게 해 다분히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니는 프라하 한복판에서 욕을 하고 있다. 그의 행동엔 이유가 있는데, 서니는 반공성향을 지닌 작가이기 때문. 즉, 그의 작품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것이 아닌, 오직 체코 정부를 저격한다.
그는 긴 블타바 강에서도 아주 특별한 위치에 작품을 설치했는데, 그곳은 바로 체코 대통령 밀로시 제만(Milos Zeman)이 업무를 보는자리에서 <FUCK him>을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체코 첫 대통령 직접선거에서 당선된 제만은 중도좌파 성향을 가져 체코 국회의 소수만차지하는 좌파성향 민주주의자를 암묵적으로 지지했다는 의심을 받는 인물이다. 반공성향을 지닌 서니는 이런 대통령이 탐탁지 않았고이미 체코에서 한번 내쫓김 당한 공산성향을 지닌 정치인들이 다시 권력의 맛을 볼 수 있는 것을 우려해, 그에 대한 반발심을 중지를 치켜세운 손을 어디서나 또렷이 보이도록 거대하게 표현한 것이다. 선거에 대해 얼마나 불만을 가졌는지, 명확한 금기의 제스처를 예술을빌미 삼아 나타냈다.
장 레옹 제롬 <Pollice Verso> 1872
Oil on canvas 96.5×149.2cm Phoenix Art Museum
3. 말·언어에 관한 금기
● 백아영 기자
몇 년 전 『시크릿(Secret)』이라는 책이 전국적으로 유행한 적이 있다. 바라는 것에 대한 굳은 믿음이 실제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사촌 동생에게 졸업선물로 받았던 책인데, 읽어 나가다 보면 꽤 실현 가능성 있어 보이기에 몇 번 실천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보며 느낀 건 말과 생각하는 힘에 대한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그만큼 강한 영향을 끼친다고들 한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도 있다시피, 말과 언어는 그만큼 금기되는 것도 많고, 살아가며 조심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에서는 사소한 잡담을 나눌 때도 길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흉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 못한 영향을 가져오므로 금해야한다. 밤 깊은 시간에는 귀신에 관한 이야기를 해서도, 도둑이나 강도 등에 대해 말해서도 안 된다. 이른 새벽까지도 삼가야 한다. 자연현상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인데, 살을 에는 거센 바람이나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비가 원망스럽더라도 함부로 욕해서는 안 된다. 하늘을 원망해보았자 하늘의 노여움만 살 뿐. 하늘을, 그리고 신을 향해 자신의 속마음을 함부로 내뱉지 말아야 한다. 부정한 언어는 부정한 기운을 지녀 퍼뜨리기 때문. 또한, 옛말에는 망자를 옮기는 상여를 멜 때 무겁다는 말을 피하라고도 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나라마다 대화 소재에 대한 금기가 존재한다. 각 나라의 문화가 다르니만큼, 중국에서는 상대방의 신체나 몸에 대한이야기를 서슴지 않는다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절대 금물이다. 특히 삐쩍 말랐다, 혹은 뚱뚱하다거나 살집이 있다는 등 체형에 관한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싱가포르와 중국에서 저녁 식사 도중 이야깃거리랍시고 돈에 관한 소재를 꺼내지 말아야 한다. 두 국가뿐 아니라 대체로 대부분의 나라가 돈에 관해 말하는 것을 금기로 지닌다. 영국에서는 금전은 물론이고 종교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 않다. 가볍게 던진다면 상대방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 주제에 대해 심각하게 파고드는 것은 절대로 삼가야 한다. 영국인은 두 주제를 상당히 사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기 때문.
이처럼 개인적 생활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하는 곳들이 있는데, 스위스인들은 사생활을 상당히 존중하기 때문에, 봉급, 나이, 종교 등을타인에게 물어보지 말아야 한다. 일단 첫 대면이어도 나이부터 묻고 들어가는 한국과는 다른 문화다. 일본에서도 개인의 신상에 관한 질문은 하지 말 것. 스위스에서는 또한 본인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이름을 부르는 것은 금기다. 호칭은 직책이나 성으로만 불러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농담을 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비슷한 내용으로 일본에서도 인간관계가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이름보다는 성으로 사람을 불러야 한다. “백씨” 혹은 “미스 백”으로만 불려야 한다니 한국에서는 오히려 어색한 상황이나, 스위스나 일본에방문한다면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몇 년 전 일본인 친구와 대화 중 의견 차이가 생겼다.
바로 뒷말에 관한 것인데, 한국에서는 앞에서는 웃고 뒷말하거나 안 보는 데서 욕하는 것을 비겁한 행동으로 여기지만, 일본에서는 그 반대라는 말을 듣고 놀랐던 경험이 있다. 물론 앞에서든 뒤에서든 남의 험담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꼭(?) 해야만 하는 경우라면 뒤에서 욕하는 것보다 앞에서 대놓고 말하는 것이 낫지 않으냐는 나와, 자신의나라에서는 보는 앞에 대고 직설적으로 불만을 말하는 것은 금기이며 그 사람 앞에서 직접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생각이었다. 여러 차례 대화가 오갔지만, 각 나라의 금기는 나라 고유의 것이니 침범할 영역은 아니다. 중국에서는 과거 노인이 죽었을 때 망자의 이름이나 호를 말하는 것을 금기했다. 고대 중국인은 사람은 죽더라도 영혼이 살아남아 자손들이 재앙을 피하도록 돕는다고 여겼는데, 이름을 말하는 것 이상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에 속한 글자와 연관된 행위를 삼가기까지했다. 이름에 음악을 암시하는 문자가 들어있으면 자식이 평생 음악을 듣지 않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심한 금기가 전해진다고도 하니 놀라울 뿐.
로레다나 네메스(Loredana Nemes)
<Tuncay, Neukolln> 2009 Silver gelatin
print on baryt paper 50×44.2cm Courtesy of
Podbielski Contemporary
4. 선물에 관한 금기
● 나기 객원기자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마니또(manito)’라는 괴상한 단어가 학교에 유령처럼 떠돌았다. 심지어 정식발음은 매니토라는 ‘비밀친구’란 뜻의 이탈리아어가 왜 지방의 한 초등학교까지 흘러들어왔는지 도무지 모를 노릇이다. 이탈리아에선 비밀친구라는 게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며 대중에 퍼져나갔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선 제비뽑기 등을 해 지정받은 친구의 수호천사가 되어주는개념으로 통했다. 힘든 일을 겪고 있으면 도와주고, 잘 지켜보고 있다가 몰래몰래 챙겨주면서 사이좋게 지내라는 개념으로 학교에서 추진한 일종의 프로그램인 것 같다. 하지만 갓 10살 정도가 된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이 의미는 퇴색되어, ‘잘해주는 것=선물과 편지를 주는 것’이라고 해석된 뒤 온갖 물건과 편지를 주고받는 기묘한 관계가 형성돼 갔다. 좁고 폐쇄적인 학교 안에서, 게다가 입이 가벼운 어린이들 사이에서 비밀친구가 정말로 비밀로 남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말로만 비밀친구에게 주기 위해 집에 있는 온갖 ‘선물이 될만한 것’을 찾기에 분주한 나날을 보냈던 기억이다. 어쨌든 뭔가를 선물한다는 자체가 무슨 놀이처럼 재미가 있었는지, 일주일에 한 번꼴로 정성 들여 쓴 편지와 함께 작은 선물을 비밀친구에게 갖다 바쳤다.
그리고 물론 나도 나를 비밀친구로 삼은 친구로부터 책상 서랍이나 책가방에 몰래 넣어둔 선물을 받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책상 서랍에 몰래 들어있던 선물을 풀어헤친 나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검은색 학 장식품이었는데, 주둥이의 끝 부분이 댕강 잘려져 있었던 것. 분명 쌍을 이루고 있는 장식품이었을 거라는 짐작과 이 주둥이도 원래는 잘 붙어있었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하나의 완전체가 아닌, 그러니까 일종의 상품이 아닌 선물을 받았을 때의 불쾌감이 일차적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왜곡된 선물 주기의 압박과 금전적 문제 사이에서 갈등하다 집에 놓인 ‘없어져도 엄마가 크게 개의치 않아 할’ 아이템을 고르느라 고심했을 나의 마니또가 측은해지기도 했다.
실로 다양한 심상을 끌어내는 인상 깊은 ‘선물’이었다. 하지만 역시, 어린 마음에도 주둥이가 뜯어진 검은 학은 다소 불길한 느낌이었다. 선물이라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집에 있는 콘솔 위에 올려는 두고 오며 가며 볼 때마다 찜찜한 느낌. 선물이란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들이었고, 이런 선물을 또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싫어지기도 하는 이상한 순간들. 그런데 그 찜찜함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나 보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에선 학과 두루미가 죽음을 암시하는 흰색, 검은색, 파란색이 들어있어 불길하다고 여긴단다. 게다가 온몸이 검정인 학이었으니 나의 불길한 직감은 집단 무의식에서 기인한 게 분명하다는 변명에까지 가 닿는다.
중국은 유난히 금기시되는 선물이 많은 국가다. 중국에서 시계는 끝, 죽음이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광둥어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시계는망자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단어와 비슷한 발음을 하기 때문. 2015년을 시작하면서 이런 문화적 배경을 몰랐던 영국 수상이 타이페이의 시장에게 시계를 ‘괜히’ 선물해서 국제적인 빈축을 샀다. 시계를 선물 받은 자리에서 타이완 수도의 시장인 고웬제(Ko Wen-je)는“내게 필요 없는 물건이라 철물상에서 돈으로 바꿔야겠다”고 촌철살인을 했다. 가벼운 친구 사이에도 선물이란 그렇게 중요한데, 하물며 외교적인 자리에선 오죽할까. 반드시! 반드시 국가별로 금기시되는 선물을 숙지하고 매너 있게 선물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필요가 있겠다. 그렇다면, 선물에 유독 까다롭고 예민한 중국을 좀 더 살펴보자. 중국에선 꽃의 짧은 생명력 탓에 장례용으로만 주로 쓰이므로 한국처럼흰색이나 노란색 국화를 선물하는 건 금기 중의 금기다. 과일인 배도 이별의 의미를 담고 있어 부정적인 선물이라고. 한국에선 장수를상징하는 거북이는 또 발음이 중국 욕설과 비슷해 절대 선물해선 안 된다고 한다. 우산도 절대 금기. 중국말로 우산이 이별과 발음이 비슷하단다. 국제화 시대에 혹시 생길지 모를 중국 연인에게 절대 선물해선 안 될 아이템이 바로 우산과 배다.
저녁 자리에 초대받았을 때먹을 것을 사가는 것도 실례. 중국에서 한국을 건너뛰고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보자. 일본에서 칼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고, 하얀색은 죽음을 의미한다. 오미야게라하여 여행 시 기념할만한 아주 간단한 토산품을 사는 것이 문화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간단한 기념품을주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도 중국처럼 홀수 짝수에 대한 금기가 있어서, 짝수를 이룬 것은 선물로 주지 않는다. 꽃도 짝수는 금물이다(안개꽃은?). 계절이 정반대인 지구 아랫동네 호주의 사정은 어떨까. 호주에서 바비큐 파티에 초대받는다면 BYOB(자기 음료는 자기가 들고 가기, Bring your own beverage)를 잊지 말자. 바비(Barbie)라는 사랑스러운 애칭에 걸맞게, 호주인들이 얼마나 바비큐 파티를 즐기고 중요히여기는지에 대해 인식하고, 큰 바비큐 파티가 아니라면, 내가 먹을 고기를 들고가는 것도 방법이다. 챙겨야 할 매너가 많을 유럽권으로 넘어가 볼까. 독일에선 흰색, 검정, 갈색의 포장지와 리본은 사용하지 않는다. 선물할 때도 서구문화에서 금기인 숫자 13과 연관이 있다면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이슬람교도에게는 선물보다 정성이 담긴 카드를 값지게 여기므로 카드를 선물과 함께 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반드시 선물은 오른손으로 주고받아야 한다. 이슬람교도는 메카를 향해 매일 다섯 번 예배해야 하기에 나침반은 유용한 선물이 된다. 러시아 사람은 선물 받는것을 좋아하기에 특별히 금기하는 물건은 없다. 껌부터 담배까지 다양한 선물이 가능한데, 다만 꽃 선물 시 축하의 의미는 홀수이고 애도의 의미는 짝수다. 멕시코에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의 단절을 뜻하는 칼은 피한다. 노란색 꽃은 죽음을 의미한다. 은으로 만들어진 선물도 피해야 하는 것이 멕시코에서는 은을 여행자들이나 사는 값싼 장신구라고 생각하기 때문. 브라질에선 검은색이나 자주색으로 된 것과 인간관계의 단절을 뜻하는 칼을 선물용으로 피한다. 남미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사항으로, 아르헨티나에서도 칼은 역시인간관계의 단절을 뜻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누드화와 애완동물은 격이 낮은 선물로 평가받는다. 손수건은 눈물과 이별을 상징하고, 선물을 주고받을 때는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해야 한다. 이집트에선 선물 받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보석류 등의 화려한 선물을 선호한다. 이 선물을 주거나 받을 때는 반드시 오른손을 사용한다.
독일에서는 꽃에 포장지를 없애야 하지만 헝가리에선 정반대로 꽃은 반드시포장해 선물한다. 폴란드에선 짝수로 선물하는 꽃이 금기다. 짝수만 피한다면, 어딘가에 초대받았을 때 꽃을 선물하는 것은 필수. 쿠웨이트에선 여주인이나 여자 식구를 위해 선물을 사오는 것이 금기다. 여주인의 안부를 묻거나 여인의 사진을 찍어서도 안 된다고. 조심, 또 조심하자. 미국에선 선물은 받은 즉시 풀어보는 것이 예의. 정신없이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고 나열했지만, 사실 어떤 물건이건 진심 어린 정성이 들어있다면 어느 것이든 감동적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유년기에 받았던 주둥이 부러진 학이 찜찜했던 이유는 그 정성을 알기 때문에 차마 버리지 못한 까닭에 기인한다. 어찌 됐든그 학은 25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훌륭한 글감의 소재가 돼 주었기 때문에 그 선물의 가치는 충분히 했다. 교과서적인 정답을 굳이적으며 글을 마쳐 보자. 금기를 요리조리 피하는 것보다 선물엔 정성이 중요하다.
샤를마뉴 팔레스틴
(Charlemagne Palestine) ⓒ Kunsthalle Wien
5. 색에 관한 금기
● 나기 객원기자
아무런 의미도 의도도 없는 순수한 색을 표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브 클랭(Yves Klein) 은 빨강, 오렌지, 금색 등으로 다채롭게 작업을 했지만, <클랭의 국제적인 파란색(International Klein Blue, 줄여서 IKB)>으로 명성을 얻었다. 클랭의 진한 울트라마린은 “색채에서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그것을 형이상학적인 오브제로 전환함으로써 색채를 객관화하는 시도”였다. 젖어 있건 마른 상태이건 같은색상을 발현했던 IKB는 순수한 빛과 공간을 구현해내는 최상의 물감이었다. 1957년에 처음으로 이 색을 완성한 뒤, 클랭은 “모든 기능적 정당화로부터 해방된, 파랑 그 자체”라며 감격해 말했다.
클랭 본인이 완벽에 가깝도록 순수하다고 여기는 파란색을 발명해내기 훨씬 이전에 “일부 추상파가 말하는 ‘순수한’ 빨간색은 없다”고 선언한 작가도 있었다. 1944년 미국의 추상화가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은 “어떤 빨간색이든 그 뿌리는 피와 유리, 와인, 사냥꾼의 모자를 비롯해 무수한 구체적인 현상을 나타낸다. 아니라면 우리는 빨간색과 그에 관련된 것에 대해 아무런 느낌도 못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클랭의 파란색과 마더웰의 빨간색. 이렇듯 색에 대한 전혀 다른 의견을 동시에 듣게 되지만, 판단은 여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클랭의 IKB를 보면서 파란 하늘이나 바다를 ‘감히’ 상상한다면 순수성에 대한 도발인 걸까? 빨간색의 안료를 그 자체로 바라보며, 와인이나 피를 떠올리지 않으면서도 아주 즐거웠다면 불감증인걸까?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지만, 색이란 인간의 상상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자극하며 변형을 겪어왔다.
누가 왜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는 많은 부분 미스터리로 남지만 몇 가지 유명한 금기들이 있다. 당연히 한국에만 있는 금기들도 존재한다. 온갖 종류의 미신은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통계에 근거한 것인지, 그렇다면 그 통계는 누가 낸 것인지 도통알 수 없어서 믿지 않는 것이 또 미신이지만, 개인적으로 유독 거슬려서 웬만하면 지키려 노력하는 미신이 하나 있다. 바로 빨간색으로이름을 쓰면 죽는다는 금기. 목숨과 연관한 사항이라 그런지, 그리고 마더웰이 말한 것처럼 빨간색이 곧바로 피를 연상시켜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줄곧 빨간색으로 사람 이름을 쓰는 것만은 피해왔다. 이 미신의 근거를 열심히찾아보니 실제로 죽은 사람의 이름을 빨간색으로 쓰기도 해서 그렇다는 말이 있다. 또한, 중국에서 어떤 왕이 빨간색을 좋아해서 본인과관련한 모든 것에 빨간색을 썼고, 자신의 색으로 규정한 뒤, 일반인이 빨간색을 사용하면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사형을 시켰다고. 이때부터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는 중국의 미신이 생겼고, 이 중국 미신이 한국에도 흘러들어왔음을 짐작해 볼 수는 있다.
그런데 꼼꼼히 뒤져보면, 한국에서 빨간색을 꺼린 건 국가적인 정책이었다는 단서들이 등장한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서인(庶人) 남녀 모두 홍의(紅衣) 자대(紫帶)와 금은(金銀) 등의 사용을 금한다”고 적혀있는데, 이 말인즉슨 “서민 남녀 모두 붉은색 옷과 자주색허리띠, 금과 은 등의 사용을 금지한다”는 뜻이다.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에도 “유생(儒生) 및 상공(商工) 서인(庶人)은 유무직(有無職)을 막론하고 모두 자색의(紫色衣)를 금지(여자도 이와 같다)한다”고 적혀 있고, 이 말은 “선비 및 상인과 공인은 벼슬이 있고 없음, 여자와 남자를 따지지 않고 모두 자색 옷 입는 것을 금지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서민들이나 관리들이 붉은옷을 입지 못하게 한 이유는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왕의 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엔 염료의 수급 문제도 더해진다. 염색의 재료는 오로지 자연에서만 얻을 수 있던 시기에, 붉은색을 내는 재료 중 단목은 일본에서 전량 수입된 고급 원료였다. 당연히 값비싼 원료였고, 사치를 조장할수 있었다. 그래서 품관과 사대부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 즉 ‘안찝(옷의 안감)’에만 붉은색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했다. 금기나미신처럼 여겨지는 이야기의 원류를 찾다 보면, 역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예를 들어봤다. 게다가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한국 전쟁이후 지속했던 반공 교육에서 붉은색은 공산주의를 가리키는 색으로 삼고, 공산주의자를 묘사할 때 ‘빨갱이’라고 비하해서 불렀다. 빨간색이 완전히 정치적으로 터부시 되는 색으로 태어난 배경이다.
이세현의 <붉은 산수>는 한국인의 레드 컴플렉스를 깨며 붉은색만으로 그린 산수화다. 빨갱이 그림이냐는 비난을 이겨낸 결과는 중국등 세계미술 시장에서의 메가 히트. 금기를 깬 혁신은 그렇게 성공으로 연결됐다. 사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는 것은 금기이지만, 중국과 홍콩 등에서 빨간색과 노란색, 금색은 굉장히 인기 있는 색이다. 무채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화려하고 눈에 들어오는 색을 선호한다. 하지만 빨간색이 흰색, 파란색과 섞이면 죽음을 연상시킨다 하여, 흰색, 빨간색, 파란색으로 이뤄진 황새와 두루미의 이미지가 긍정적이지 않다. 중국에서 녹색 모자는 부정함을 상징하기도 한단다. 일본인들 역시 빨간색 러버들이다. 파란색, 주황색, 노란색도 좋아한다. 녹색과 진회색, 검은색 흰색이 터부시 되는 색. 태국인들도 빨강과 노랑을 선호한다. 갈색은 터부시 된다. 말레이시아에서 녹색은 종교적인 향취를 풍긴다. 빨강이나 주황색 같은 밝은 색상을 선호한다. 노란색은 죽음을 의미하므로 옷으로 만들어 입지 않는다. 검은색만으로 옷을 입는 것 역시 부정적인 의미다. 싱가포르에서 빨강, 녹색, 파란색은 매우 인기가 있다. 보라색과 검은색은 불운을 상징하고 검은색, 흰색, 노란색은 금기다. 파키스탄에서는 에메랄드그린이 선호색이다.
노란색은 브라만 수도승들이 입는 옷이라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메시지를 갖기도 한다. 검은색도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인도에서도 검은색, 흰색, 회색은 부정적인 색이다. 빨강은 생명력을, 파란색은 진정성을, 밝은 노란색은 태양 같은 빛남, 녹색은 평화와 희망을 상징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노란색은 죽음을 의미한다.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바레인, 이라크, 카타르, 예멘, 오만 같은 중동국가들에서 갈색, 검은색, 녹색, 파란색, 흰색은 긍정적인 의미가 있지만, 분홍, 보라, 노란색은 부정적이다. 수단에선 또 노란색은 아름다움의 색으로 추앙받는다. 이 나라 저 나라의 금기색과 선호색을 나열해 봤지만, 결국 색이란 굉장히 주관적인 선택이고 느낌인 게 사실이다. 목숨이 위험하다거나, 뚜렷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모든 선택의 결론은 개인의 취향으로 흐른다. 개인의 취향이 존중되고 인정받는 활기찬 대한민국 2016년의 시작점에 금기란 없다고 외쳐보고 싶어진다.
<Under the Same Sun: Art from Latin America Today>
설치전경 Museo Jumex, Mexico City Courtesy: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and Museo Jumex, Mexico City
6. 숫자에 관한 금기
● 이효정 기자
‘아홉수’란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한국에선 나이에 ‘9’가 들어가면 모든 일이 풀리지 않아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설이 있다. 별시답지 않은 소리 같지만, 그 파급력은 막강해 주변에 29세에 결혼하는 사람은 확실히 적다. 미신에 관한 여러 설화가 존재하는 중국은더하다. 그들은 45세가 죽음을 경험할 수 있는 나이라 여겨 45세라 직접 밝히는 것을 피하며, 공자가 73세, 맹자가 84세에 사망한 것에서 비롯해 위대한 성인들도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생각해 73과 84도 기피 대상이다. 게다가 중국에서 100은 만수로, 자신의 나이가100세가 되어도 99세라 말하는 기이한 금기가 존재한다. 이렇게 숫자에 관한 미신은 주변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금기사항이다.
그것은 앞선 예처럼 나이와 결합하기도 하고 숫자 그 자체로 불운을 상징하기도 한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와서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엘리베이터에 있는 ‘F 버튼’인데특히, 병원 같은 의료기관에서 숫자 4를 보긴 여간 힘들다. 이유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로 숫자 ‘4’는 한국에서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아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4는 금기의 숫자가 되었고, ‘Four’의 앞 글자 F가 4층을 나타내게 되었다. 4에 대한 불신은 이뿐만 아니다. 아무래도 생명과 직결되는 금기 숫자다 보니, 2000년대 출생한 한 여자아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4444가 나온 경우가 있어 이를 변경한 사례가 있었으며 더는 이와 같은 조합이 나오지 않도록 주민등록번호 생성규칙을 조정했다 한다.
국가에서도 불길한 숫자라 취급당하는 4를 정면 돌파한 예술가가 있었으니 바로 김구림이다. 김구림이 ‘통령(리더)’으로 있던 ‘제4집단’의 명칭은 불길한 숫자 4에서 유래했다. 김구림은 한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숫자 4라 여겨, 이 미신을 타파하고자 하는 생각에 4를 단체 이름에 빌렸다. 한국전위예술에 한 획을 그은 ‘제4집단’, 그 이름의 유래도 전위적이다. 동양에 숫자 4가 있다면, 서양은 ‘13’이다. 13이 불운을 상징하게 된 기원은 다양하다. 서양은 12를 완전수, 조화수로 여기는데, 12에1을 더해 만들어진 13이 완벽함을 파괴해 저주스럽다 여기는 것이 첫 번째 근거다. 예수가 유다에게 배신당한 날이 13일의 금요일이며, 최후의 만찬에 초대된 13번째 주인공이 유다라는 등 기독교와 연관 지어 언급되기도 한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프란시스 고야(Francis Goya) 또한 숫자 13이 두려운 나머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 만다. 그가 왕실 전속 화가로 임명되었을 때 그린 <카를로스 4세 왕실 가족 초상화>(1800-1801) 화면 왼쪽에 보면, 왕실 구성원이 아닌 한 사람이 보인다. 바로 고야 자신이다. 그는 자신이 왕실 사람도 아니며, 게다가 작품에 자신을 넣을 구실이 전혀 없음에도 굳이 자신의 얼굴을 넣은이유로 숫자 13을 들었다. 초상 속 왕가 사람들이 총 13명으로, 고야는 이것이 불길하다 생각한 것이다. 이에 그는 13이 찝찝한 나머지자신의 초상을 구석에 끼워 넣어 저주를 피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저주를 피하려고 한 그의 행동이, 아이러니하게 그를 온갖 비난 속으로 빠트렸다.
13일은 금요일과 결합해 금기 숫자로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얼마 전 전 세계를 혼란에 빠트렸던 파리 테러도 13일의 금요일에 일어나미신에 대한 믿음을 가중했을 만큼, ‘13일의 금요일’은 이미 서양에서 불길한 날을 뜻하는 고유명사다. 메일 아트로 알려진 미국 퍼포먼스 예술가 레이 존슨(Ray Johnson)은 그의 삶 자체로 13일의 저주 미신에 근거를 더했다. 그가 강에 투신해 자살한 날짜가 바로1995년 1월 13일, 바로 13일의 금요일이다. 당시 존슨의 나이는 67세였는데, 6과 7을 더하면 13이 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없지만 이런 모든 요소가 13일의 금요일 저주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힘을 실었다. 기독교에는 또 다른 금기 숫자 ‘666’이 있다.
이는 악마의 숫자를 의미해 서양에선 13만큼이나 666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관한웃지 못할 해프닝 하나가 있는데 그 주인공은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이다.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아이오 밍 페이(I.M.Pei)가 디자인한 피라미드는 “악마의 숫자인 666개의 유리조각으로 이뤄졌다”며, 루브르 박물관 공사에 대한 음모론을 제기한것이 원인이 됐다.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끈 소설이라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대중들이 루브르 박물관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빈치 코드』는 픽션이라 사실 루브르 박물관 측이 적극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없음에도, ‘악마’란 이미지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불쾌했나 보다. 루브르 직원들은 유리판이 666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한바탕 소동을 치렀고, 그들은 끝내 유리조각의 총 개수가 675개 공표해, 이 기가 막힌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카를로스 레브스(Carlos Reves)
<VS(1973)> 2014 Laser etched dried Reishi
mushroom Diam. 25cm Courtesy of TORRI
7. 음식·식사예절에 관한 금기
● 백아영 기자
음식에 대한 금기는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 금기 중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들 수 있는 것이 음식이 아닐까 싶다. 미신에 의한 것도 있고, 실제로 같이 먹으면 해로운 것도 있다. 세계가 점차 국제화되고 하나 됨을 외치고 있지만 전 세계에는 여전히 국가마다 금기시되는음식도, 식습관도, 식사예절도 무수히 많다. 음식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금기가 캐나다에서는 지붕이 없는 곳에서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금기가 아니라 법으로 금지하는 실제 규칙이다. 예를 들면 한국은 한강 등 야외 공원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지만, 캐나다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은 금기가 아니고 법이다. 캐나다 해변에서 따스한 태양 빛에 녹아들어 맥주 캔을 따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더라도, 절대로 실행으로 옮기지 않도록 하자.
영국에서는 커피나 수프 등을 먹을 때 소리를 내면 안 된다. 물론 트림을 해서도 안 된다. 한국에서는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 불어먹는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 행동을 터키에서 해서는 안 된다. 터키에서는 음식을 식힐 때 입으로 불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에서 호~ 소리를 내며 불어먹는 호빵 광고를 터키에서는 볼 수 없겠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국수를 먹을 때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예의 없는 행동이다. 먹으면서 후루룩후루룩 소리를 크게 낼수록 요리가 맛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실제로 일본 우동집에서 후룩후룩 면발 들이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 정신이 아득했던 기억이 있다. 베네수엘라는 식사 후 이쑤시개를 사용하거나 음식을 소리 내어 먹는 행위를 하지 않는것이 좋다고 하니 식당마다 이쑤시개 통이 쌓여있는 한국에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단순히 음식을 먹을 때 소리를 내거나 불어먹는 것에서조차 이렇게 많은 금기가 존재한다니. 동서양이라고 모두 다른 것이 아니고, 비슷한 문화권에서도 엄연히 서로 다른 금기가있다.
한국에서는 숟가락을 엎어놓아서는 안 된다. 숟가락을 밥그릇에 세로로 꽂아도 안 되는데 이는 제사상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또 한국에서는 자신이 술을 마셨던 잔을 그대로 들고 다른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일이 빈번한데, 이러한 행동은 외국인에게는 아주 황당한 일이라고 한다. 한국은 그릇을 식탁에 내려놓고 숟가락으로 퍼 먹지만 일본과 중국에서는 밥그릇을 입 가까이에 가져다 대고 젓가락으로 먹는다. 지리·문화적으로 가까운 세 나라에서 정반대의 행동이 금기시된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밥상 앞에서 잔소리를 많이 하면 복이 나간다고 하고, 엎드려서나 누워서 밥을 먹으면 죽어서 소로 태어난다고 한다. 엎드리거나 누워서 밥을 먹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어지러운데 금기사항까지 전해지는 것 보면 그런 행위가 빈번한가 싶다. 집안에 초상이 났을 때는 국수를 먹지 않는다.
한편, 몽골인들은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리고 몽골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면 관습적으로 권유하는 마유주를 나눠마셔야 한다. 이탈리아인들은 유쾌하고 왁자지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식당에서는 종업원을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이탈리아인들의 식습관에는 다양한 금기가 존재한다. 손의 청결에 주의해야 하며, 식사 도중 식탁에서 손을 식탁 밑으로 내리지 않으며 팔꿈치를 식탁 위에 올려놓지 않는다. 특히 어른들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에서 이러한 행동을 했다가는 예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에 십상이다. 인도네시아에서도 먹을 때 테이블 위에 두 손을 항상 올려놓아야 한다.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와, 공동의 큰 접시에 담겨 나온 음식에서원하는 부위를 고르기 위해 뒤적거리며 가져오는 것은 크나큰 실례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식탁에는 기본적으로 오일과 소금이 놓여있으며, 식사 중 필요할 때는 본인이 직접 가서 가져다 먹는 것이 예의 있는 행동이다. 옆 사람에게 달라고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인도에서는 집에 초대받았을 때 집주인이 음료와 스낵을 권유한다면 바로 받아먹어서는 안 된다. 처음 한 번은 거절하고, 집주인이 다시묻는다면 그때 받도록. 독일에서는 음식들, 심지어 피자나 감자튀김을 먹을 때도 손으로 집어 먹는 것은 안된다. 반드시 집기류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단 하나의 예외가 있으니 빵은 손가락으로 먹어도 된다. 얇은 감자튀김인 스키니프라이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무슬림 지역에서는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어야 한다. 왼손은 화장실에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식사 시 왼손을 이용하는 것은 금기다. 케냐나 독일에서 저녁 초대 손님으로 갈 일이 있다면 이러한 금기를 염두에 두자. 자신의 접시에 담긴 음식을 다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집주인은 요리가 맛이 없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가 있으니 중국에서는, 음식을 모두 먹어치웠다가는 집주인에게 음식이 모자랐다는 뜻으로 내비쳐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인도에서도 접시에 음식을 소량 남겨야 배가 다찼다는 의미다. 접시를 비웠다가는 집주인이 접시에 다시 음식을 담아낼 것이다. 카자흐스탄 집주인이 차를 내어줄 때 잔은 반만 차 있을 것이다. 잔이 다 차 있다면 떠나달라는 의미다. 컵을 뒤집어 식사를 끝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는 임산부가 먹는 것이 금지된 음식들이 있다. 상어고기를 먹으면 태어날 아기의 피부가 억세진다고 한다. 오리고기, 돼지족발, 마른 무를 먹는 것도 금기다. 돼지족발에서 뜨끔한 당신! 금기라는 것을 명심하자. 참고(?)로 중국 소수민족 중 먀오족은어린이와 미혼남녀가 돼지족발을 먹으면 결혼하지 못하거나 이혼한다고 믿어 금기한다고 하니 기억해두자.
디터 로스(Dieter Roth) <Literature Sausage(Literaturwurst)>
1969 Published 1961-70 Artist’s book of ground copy of Suche
nach einer Neuen Welt by Robert F. Kennedy, gelatin, lard,
and spices in natural casing Overall approx.
30.5×17×9cm The Museum of Modern Art, NY
The Print Associates Fund in honor of Deborah Wye
8. 집·가정에 관한 금기
● 백아영 기자
어두컴컴한 집, 끼익 하는 문소리, 두려움에 휩싸인 채 집 안에 발을 들여놓는 한 사람이 있다. 혹은 여행 온 대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집 안에 들어선다. 공포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선 어느 문을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된다거나, 무엇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말라거나 하는 등 금기가 존재한다. 어릴 적 TV에서 <푸른수염>이라는 만화를 보고 상당한 충격에 휩싸인 적이 있다. 큰 성의 주인인 남자는 여자에게 예쁜 열쇠를 하나 건넨다. 그리고 당부한다. “이 열쇠로 저 문을 열지 말라”고. 차라리 주지를 말던가. 괜히 호기심만 자극하지 않겠나. 영화든 만화든 여기서 불문율이 존재한다. 등장인물 중 하나는 반드시! 꼭! 그 금기를 깨고 만다는 것. 그리고 결과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현실에서는 영화처럼 금기를 깬 대가가 죽음은 아니더라도 집에 관한 여러 터부가 존재해 왔다. 유독 한국에서 집에 대한 금기가 많았는데, 예로부터 임산부가 있는 집에서 집수리를 금했다. 집에서도 어느 부분이냐에 따라 다른데, 언청이를 낳는다는 이유로 구들을 고치지않았고, 벙어리를 낳는다는 뜻 때문에 문이 찢어져도 바르지 않았다. 굴뚝을 수리하지 않는 것은 산모가 난산한다는 이유다. 또 임산부는 불을 넘어다니지 말아야 했는데 이는 불이 유산을 연상하는 탓. 문지방을 밟으면 복이 나간다는 혹은 문턱에 서 있으면 운수가 나쁘다는 의미가 있어, 되도록 문지방을 넘어 다녀야 한다. 옛 가옥과는 다르게 현대식 아파트는 방 문턱이 낮아서 밟았는지도 모르지만, 지금도 꼭 피해서 다니려고 하는 건 어린 시절 들었던 금기사항이 나도 모르는 새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듯하다. 이 문지방에대한 것은 일본에서도 같은 금기로 전해진다.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올 시는 집에 들어가기 전 소금을 뿌리라는 것도 일본과 한국의 같은 금기다.
한국에는 또 집 안에서 키우는 동물에 대한 금기가 더러 있다. 시골에 가면 꼭두새벽부터 닭의 울음소리에 잠이 깨곤 한다. 이렇듯 울음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닭이지만, 초저녁에 울면 그 집에 우환이 생긴다. 집 안에서 개가 땅을 파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개는 땅을 파는 습성이 있는데, 땅을 파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마을에 까마귀가 와서 울면 좋지 않은 징조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까마귀가 좋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공포영화에서도 까마귀가 울면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일본에서 까마귀는 길조다. 개가 뜰에서 짖어대면 도둑이 온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도둑이 들어 개가 짖은 것인지, 개가 뜰에서 짖으면 안 된다는 금기를깨고 말아 도둑이 온 것인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하는 물음을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개가 안채를 향해 짖으면 망한다는이야기도 있고, 참새가 집 안으로 날아 들어오면 흉사가 생긴다고 하니, 인간과 친숙한 동물임에도 이런 금기들을 들으니 갑자기 그들의존재가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중국 소수민족들도 각자의 금기를 지닌다.
몽골족은 집 안의 불을 꺼트리면 안 된다. 불을 중요시하기 때문인데, 부엌 아궁이 불을 소변으로 끄는 행위는 절대적으로 금기한다. 카자흐족은 그 집에서 키우는 가축에 대해 칭찬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주인에게 (좋은 내용이라도) 가축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수를 세는 것은 신을 노여워하게 하기 때문이란다. 마지막으로 한국 집과 가정에 관한 금기를 조금 더 소개하고자 한다. 제비집을 뜯으면 집안에 우환이 찾아온다. 집 안에서는 휘파람을불지 마라. 마늘을 집안에 심지 마라. 집안에 초상이 났을 때는 장독을 열어 놓지 않는다.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한국 집에만 해도 금기가 이렇게나 많다니, 일일이 나열하기도 숨 가쁘다. 언어에 관한 금기를 쓰며 언어가 지닌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밝혔는데, 미처 본문에 소개하지 못한 것까지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수백 가지가 넘는 금기를 읽고 쓰다 보니,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어느 나라에선 금기 색이 아닐까 싶고, 점심 메뉴는 아무 문제 없었는지 금기 노이로제라도 생긴 듯 불안하기까지 한다. 결국, 금기가 금기를 낳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
<Architettura Monumentale> Watercolor
on paper 61×46cm Courtesy: Antonia Jannone
Disegni di Architettura, Corso Garibaldi 125, 20121 Milano
9. 꽃·식물에 관한 금기
● 백아영 기자
꽃은 마음을 전하는 가장 보편적인 선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당신이 독일에 있는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할 예정이라면, 숫자를 유념해야 한다. 홀수가 아닌 짝수는 금기. 홀수여도 13송이는 삼갈 것. 스웨덴이나 폴란드 등에서도 꽃다발은 홀수로 주어야 한다는 오랜 전통이 있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장미는 구애를 뜻하므로 함부로 선물해서는 안 된다. 독일인에게 꽃을 선물할 경우 꽃다발을 싼 포장지를벗겨 주는 것이 예의다. 어딘가에서는 사랑을 고백하는 수단인 장미지만, 헝가리에선 붉은 장미 선물은 좋지 않다. 백합도 금기다. 백합은 노르웨이, 미국, 영국, 캐나다 등지에서도 죽음을 의미해 꺼리므로 선물하지 말아야 한다.
아, 노르웨이와 더치권 국가들에선 백합과더불어 카네이션도 금기. 카네이션은 프랑스에서 장례식에서 쓰이기 때문에 또한 조심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카네이션이 금기된 나라라니, 이 나라들에서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있다간 금기를 몸에 이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겠다. 인도에서는 재스민을 조심할 것. 장례식과 관련된 꽃이기에 선물로는 피한다. 한국에서 국화가 지닌 의미와 유사하다. 그럼 재스민차 선물도 피해야 할까? 언급한 꽃들 중 국화차, 장미차, 재스민차를 세계 어딜 가든 꺼리지 않고 즐겨 마셨으니 괜찮을 듯싶다. 영국에서는 푸른 담쟁이덩굴을 집 안에서 기르면 사고나 싸움이 일어난다는 말이 있다. 그 집의 딸이 결혼할 나이가 가까워져 오더라도결혼하지 못한다는 설이 있다고 하니, 영국에 간다면 좋은 핑계(?)가 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담쟁이덩굴을 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묘지에 많이 심는 식물이라는 것 때문.
중국 소수민족 중 카자흐족은 한 그루의 나무가 우뚝 서 있으면 두려워한다고 한다. 그 아래서 휴식을 취해서도 안 되고, 나뭇가지를 베는 것은 더더욱 아니 된다. 이 모든 것이 마을에 병이나 재해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나무의 신을 불쾌하게 만들어 신이 만들어낸 행위라고 여긴다. 해결책은 존재한다. 나무에 형형색색 헝겊을 매달아 장식해 신을 위로하면 된다. 일본은 정원에 동백나무를 심는 것을 터부시한다. 동백꽃이 질 때 마치 목이 잘리는 형상을 연상하듯 꽃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한국은 집이나 절에서는 복숭아나무를 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고, 커다란 나무를 앞마당 한가운데 심는 것 자체를 금기해 주로 뒷마당에 심어야 했다. 그리고 마을에 있는 큰 고목을 베면 그 마을에 흉사가 일어난다는 설도 있다. 그 나무를 벤 사람에게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집 안에서 어쩔 수 없이 큰 나무를 베어냈을 경우에는 금기를 이겨내기 위해 소금 자루를 씌워야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하늘이 두려워 금기를 만들어내고, 또 그 금기를 재빨리 해소할 수 있는 해결책까지 만들어냈구나. 금기를 어겼을 때 행할 수 있는 안내서가 있다면 참 좋겠다. 어찌 됐든 꽃이나 식물만큼 자주 예술작품 소재가 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보기 좋고 예쁘니까. 어느 꽃이든 종류를 떠나 내 눈에는 전부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는데, 나라마다 지닌 의미도 금기도 다르다니 괜스레 아쉽다.
차이 시리스(Chai Siris) <King Kong>
2014 Banana tree, sound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SIRI1408 Courtesy of TORRI,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