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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92, May 2014

팝 컬쳐 세대, 음악으로 미술하다!

new generation,
doing art
through pop!

‘유럽에서 칼뱅파의 적극적인 성상파괴운동이 일어났던 16세기에서 17세기. 교회 안에서 형상을 가진 것이라곤, 오르간뿐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신과의 직접적으로 소통하길 원했던 당시, 성상들로 대변되는 미술은 버림받았고, 성가로 대변되는 음악은 추앙받았다. 그리고 2014년, 현재에도 이 흐름은 여전히 유지되는 듯이 보인다. 가수 지드래곤(G-Dragon)은 대다수의 청소년의 영웅이 되었고, 가수 싸이(PSY)는 조용하다 싶으면 한 번씩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는다. 음악은 다시 ‘대중음악’이라는 형태로 우리의 삶 깊숙이 침투해있다. 특히나 1970, 1980년대 미국의 팝송과 포크송, 록 음악과 발라드 음악을 듣던 세대와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일명 ‘팝 컬쳐 세대’라고 부르고 싶다)가 점차 세상의 청·장년층으로 자리 잡으면서, 대중음악은 그들이 공유하는 문화로서 삶의 곳곳에 배태되어 있다. 미술 역시 예외는 아니다. 고의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미술은 자연스레, 그리고 끊임없이 그 내부로 대중음악을 불러들이고 있다.
● 기획 · 글 문선아 기자

수잔 힐러 'Die Gendanken sind fre: 100 songs for the 100 days of dOCUMENTA(13)' 2011-2012 Interactive audio sculpture dispersed on five sites 수잔힐러는 dOCUMENTA(13)에서 관람객의 사회·역사적 의식을 자각시키고자 100곡의 대중음악 콜렉션 쥬크박스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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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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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을 주제삼다


대중음악과 작가를 연상시켜 보면, 쉽게 떠오르는 이가 있으니, 바로 배영환. 그는 대중음악 자체를 작업의 주제로 삼는다. ‘유행가’라는 타이틀로 세 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스스로가 “유행가만큼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도 없다.”고 밝힐 만큼, 대중음악, 그 중에서도 유행가는 그의 전 작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모티프 중 하나다. 먼저, 그는 첫 개인전에서 유행가 가사집에서 오려낸 악보와 그 가사가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을 함께 전시했다. 예컨대, ‘긴 머리 소녀’의 악보와 함께 버려진 화분 위에 바비인형을 철사로 묶어 세워놓거나 ‘고아’의 악보를 깨진 계란 껍질이 담긴 계란판과 함께 뒀다. 또한 <유행가 2>에서는 흰 캔버스 위에 알약, 약솜, 깨진 유리, 병뚜껑, 면도날, 본드 등으로 유행가의 가사를 써내려 갔다. 유행가의 노랫말들은 흔히 과거를 회상하는 식의 진부함과 통속성을 보이는데, 오히려 이런 성향이 개인의 개별적인 추억에 접목돼 특유의 진정성을 확보해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유행가는 때로 얼마나 통속적이냐에 따라 그만큼 사람들에게 위로와 치유를 선사하기도 한다. 작가는 미술 역시 세상에 이런 따뜻한 역할을 수행하길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젊은 작가 최윤의 최근작 <국민 매니페스토>에서도 대중음악 자체가 큰 주제로 작동하고 있다. 커다란 바위를 형상화한 조형물 위의 모니터에선 산수풍경을 담은 달력 사진이 선보이고 있고, 바위에서 연결된 관으로 대중음악(그 중에서도 K-POP) 가사를 웅변하는 여성낭독자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뮤직비디오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자극적인 음과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가수들의 이미지가 소실된 이 작업을 통해, 작가는 잘 인지되지 않던 K-POP 가사를 관람객들에게 다시 인식시킨다. K-POP을 선언문적인 웅변으로 바꿔버림으로써 대중에게 주입되는 대중문화에 대한 생각을 묻는다. 하나의 상징으로서 자리 잡은 특정한 대중음악으로 작업을 하는 작가들도 있다. 이기일은 한국 사회 내에서 은밀하고 뜨겁게 소비됐던 외국의 가수 비틀즈의 이야기를 작업으로 담아낸다. 1970년대를 전후하여 한국에서는 비틀즈를 포함한 외국의 팝 음악들이 단색조의 카피음반과 출처불명의 준 라이센스 음반들로 만들어져 음지에서 거래됐다. 


당시에는 저작권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으며, 1990년대가 되서야 금지곡을 포함한 정상적인 비틀즈의 앨범이 발매되었기 때문에 이 음반들에는 당대 음악인들의 열정이 담겨있다. 작가는 지난해 열린 개인전에서 비틀즈가 유행하던 시기 한국에서 활동했던 그룹사운드 1세대의 공연을 시각화하는 프로젝트를 기록으로 모아 설치작업으로 선보였으며, 비틀즈의 노래가 담긴 카세트 테이프 그림, 카피음반의 레코드 라벨을 형상화한 실크스크린 등을 전시했다. 작가는 시대의 흐름에 묻혀 세대의 간극으로 작용하는 지난 대중음악에 다시 의미를 부여하면서 대중음악 장르를 시각화하여 문화적 장으로 확장시키고자 한다. 이와 유사하게, 외국작가 다미안 드루베(Damien Derou baix) 역시 <F.E.T.O>라는 작업에서 하드코어 헤비 메탈 밴드인 네이팜 데스의 앨범 이미지를 이용한 설치 작업을 선보이며, 록음악을 통해 기존 사회의 문제점들을 비판한 젊은이들의 메시지를 상기시킨 바 있다. 




린 폭스(Llyn Foulkes)는 대중음악과 미술의 경계를 

오가는 대표적 예술가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음악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특히, ‘고무밴드’라는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기계’라는 악기를 만들어, 

해머미술관, dOCUMENTA(13) 등에서 퍼포먼스 연주를 진행했다.




대중음악형식을 차용하다


위의 작업들이 대중음악의 내용적 측면을 주 모토로 작업을 하고 있다면, 관람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대중음악이 갖는 형식을 차용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임민욱. 그는 자신이 살아가면서 마주친 경험들을 다양한 매체로 녹여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데, 그 중 <뉴타운 고스트>는 슬램 형식을 차용했다. 한 명의 래퍼와 한 명의 드러머가 트럭을 타고 삼각형 구도로 지정된 영등포 지역의 재개발 지구를 돌며 래퍼는 확성기를 들고 내내 작가의 생존과 관련된 현실, 재개발 문제 등에 대해 탄식한다. 간헐적으로 비춰지는 영등포 주민들의 무관심한 일상은 퍼포먼스와 대조되고, 툭툭 내뱉는 래퍼의 라임은 관람객의 뇌리에 더욱 깊게 박힌다. 그가 이민휘와 공동 작업한 <국제호출주파수> 역시 음악 형식을 차용한 작업이다. 개발 논리에 의해 추방당하는 사람들을 기리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호출주파수를 보내는 행동지침과 악보로 이뤄진 이 작업은, 퍼포먼스에 참여한 모두가 함께 작업을 구성하는 일원이 되게 하면서, 그 사이에 공감대를 효과적으로 형성해낸다.


작업을 위해 대중음악의 형식을 빌려오는 방식은 최근 버라이어티 쇼 ‘아트스타코리아’ 에서 <CJ.r(Cha Ji.rap/ 차지.랩)>을 선보인 차지량으로 이어진다. (비록 그것이 작업이냐에 대해 논란은 있겠지만,) 그는 일종의 공격적 면모를 지닌 랩 형식을 이용함으로써 쇼의 제작진과 심사위원에 대한 ‘불만이거나 요구’인 의도를 효과적으로 재현해냈다. 외국에도 유사한 사례가 많다. 특히, 푸틴이 지지하는 종교지도자 임명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하다 구속된 페미니스트 예술가 그룹 푸씨 라이엇(Pussy Riot) 역시 ‘펑크 락’이라는 대중음악의 형식을 차용하여 자신들의 사회에 대한 비판을 성공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임민욱 <뉴 타운 고스트> 2005 Video still  




대중음악을 재료삼다


대중음악을 작업의 재료로 삼는 작가들도 있다. 김동규는 자신의 퍼포먼스이자 영상작업 <망부의 춤>에서 1970년 발매된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를 끌어들인다. 망부석이 위치하는 구릉. 작가는 음악을 틀어놓고 망부를 위로하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음악은 자연스레 그치는데, 작가의 춤은 멈추지 않는다. 음악에 맞춘 듯했던 율동은, 소리가 사라지고 시간이 연장되면서, 격정적이고도 애절한 몸짓으로 전환된다. 김동규는 한국적 성스러움(聖)을 대변하는 망부석에 세속적 가사를 담은 소방차의 대중음악을 대비시키고 싶었다고 말한다. 한껏 가요스런 음악으로 작업의 의미를 강조하고 싶었다고. 이후 선보인 작업  <탈출용 옷걸이>에서도 같은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동묘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중고 추상화 한 점의 과거를 추적하여 한국 근·현대 미술의 역사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는 영상 작업의 말미에 송창식의 ‘왜 불러’를 배경음악(BGM)으로 위치시켜 넣음으로써 시대를 소환하면서도,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역설적 언급을 대신하고 있다. 한편, 대중음악의 리듬감을 시각화한 작가도 있다. 주로 페인팅을 하지만 때에 따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세상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이우성의 지난해 개인전에서 영상작업   <돌고 돈다>가 큰 인기를 끌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들리는 뽕짝 메들리를 배경으로, 영상에 등장한 두 남자는 어디론가 떠나는 상상을 한다. 작가는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두 남자의 모자가 반복되는 리듬에 맞춰 무한히 돌고 돌도록 장치해 놨다. 이로써 이들이 꿈꾸는 탈출 또한 무한 반복으로 돌고 도는데, 반복되는 대중음악의 리듬은 이를 효과적으로 은유하고 있다. 




이우성 <내 소원을 이루어 주는 다리> 

2013 Gouache on wood 80×110×90cm 

이우성은 대중음악의 아이콘 소녀시대의 

다리를 시각화하는 작업하기도 했다.




뮤직비디오를 차용하다


최근에는 뮤직비디오 형식을 차용하는 작업들이 종종 등장하고 있다. 함정식은 가수 2NE1의 ‘내가 제일 잘나가’의 러닝타임에 맞춰 영상설치 작업을 만들었다. 정지되어 있는 차 안. 쉴 틈 없이 깜빡이는 전조등과 후미등으로 인해 화면과 차는 요란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인식된다. 이 역설적 상황에 반복되는 ‘내가 제일 잘나가’는 절규이거나 자기 최면이 된다. 김실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되, 소리를 지우고 전혀 상관없는 배경 화면을 배치하는 ‘무성-뮤직비디오’란 새로운 형식의 작업을 제시한다. <금지곡들: 여자란 다 그래>는 존재한 적 없는 노래들을 위한 4채널 무성 뮤직비디오 설치작으로, 영상에서의 음향문제에 대해 근원적으로 도전한다. 


등장인물과 장면은 모차르트의 동명 오페라 ‘코지 판 투테’에서 빌려왔는데, 이들은 미래의 금지곡으로 치환된 각 장을 소리 없이 부른다. 근대 이전 대중오락 장르로서 기능했던 오페라에, 그 소비가 무한히 확장돼가고 있는 문화 상품으로서의 뮤직비디오를 중첩시킨 작업이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가사가 화면에 노래방 자막처럼 드러난다는 사실. 이때 자막은 유튜브 사용자가 자율적으로 뮤직비디오를 각국 언어로 번역해 유통시키는 현상, 국적을 불문하고 관용구처럼 등장하는 영어 후렴 등의 언어적 양상을 차용하며, 작가는 조금씩 엇나가거나 실패한, 뮤직비디오 장르 특유의 장면과 연기 연출, 편집 등을 통해 화면고유의 리듬을 발생시킨다. 




김실비 <무정한 사람아! 왜 도망치나요?> 2013 

단채널 HD, 색, 무음, 3'33, 가변 크기. 영상 스틸




경계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음악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미술에 침투하기도 한다. 2012년 ‘아트선재 오픈 콜’에서 공연 기획그룹 더 아웅다웅스(The AWDWs)의 기획안이 선정되어 <아트선재 오픈 콜 #1 : 북조선 펑크 록커 리성웅>전을 선보였는데, 이 전시는 ‘평양에서 펑크 록 음악을 연주하는 클럽이 있고, 정기적으로 그곳에서 공연을 했던 뮤지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농담 섞인 질문에서 출발했다. 하여, ‘리성웅’이라는 가상의 펑크 록커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퍼포먼스와 설치로 구현했는데, 이 과정에서 무키무키만만수, 악어들, 쾅프로그램, 파블로프 등 10팀의 언더그라운드 인디밴드 뮤지션들이 미술관 안으로 당당하게 입성했다. 한편, 이와 반대로 미술이 음악으로 침투해가는 경우도 있다. 최근 박찬경은 영화감독 박찬욱과 함께 하는 ‘파킹찬스(PARKing CHANce)’로서 이정현의 뮤직비디오 ‘브이(V)’를 연출하며 미술의 대중음악으로의 침투 가능성을 선보였다. (아시안 고딕에 대한 그의 관심은 ‘좀비 신부의 컨셉으로 꽤나 확연히 뮤직비디오에 드러나고 있다.) 


살펴보았듯, 이제 음악은 그 스스로의 경계에 갇히지 않고 미술계에 침범하여 여러 작업에서 다양한 양태로 나타난다. 특히 그 문화를 공유했던 시절에 힘입어 대중음악은 미술에 의해 거침없이 차용되며, 작가도 모르는 새 무의식 속에 숨어있던 대중음악이 자신을 드러내버리기도 한다. 이에, 미술도 조금씩 그 바운더리를 넘어 음악과 미술의 경계가 허물어져가고 있다. 삶이란, 본래가 통합된 것이기에, 미술과 음악이라는 적극적 분류가 사실 처음부터 오류였는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인 감성을 공유하는 예술의 두 가지 양태로서, 미술과 음악이 서로를 오가며 앞으로 또 어떤 하모니를 만들어 낼 지, 수 년 후의 예술계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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