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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89, Feb 2014

애니미즘(Animism)

2013.12.6 – 2014.3.2 일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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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복 미술평론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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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 신화의 반사경, 애니미즘



1. 근대성 신화와 애니미즘이라는 표상어


독일 큐레이터 안젤름 프랑케(Anselm Franke)가 기획한 <애니미즘>전은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 생명주의’등 비합리적인 테마를 다룬 여러 유형의 작품과 애니미즘에 관한 담론 아카이브, 근대성과 시각문화의 역학관계를 다룬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애니미즘’을 ‘비(非)근대적인 것’의 표상어로 내건 이 전시는 공통 설치작품인 안젤라 멜리토풀로스와 마우리지오 라자라토의 <배치>(2010)와 <입자들의   삶>(2012)을 중심으로, 전시 국가마다 작가, 연구자, 기획자의 협업으로 현지에 적합한 전시 구성을 취하는 유동적인 전시다. 2010년 벨기에 앤트워프 엑스트라시테에서 첫 전시를 개최한 뒤 여러 국가를 돌고서 2013년 12월 7번째 전시장인 일민미술관에서 한국 관람객을 맞고 있는데 국내외 작가 37팀의 작업 50점이 출품되었다. 


전시장은 총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층 전시장은 최근 인류학계에서 ‘애니미즘’이라는 개념을 ‘영혼 설계’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흐름을 반영한다. 계룡산 무당의 숨을 유리병에 모아놓은 길초실의 <무당의 숨>(2009), 계룡산 신도안 일대의 무속 신앙 공동체에 남겨진 토착 종교 이미지를 채집하여 식민지 시대와 냉전 체제에서 억압된 고유한 정서를 복원한 박찬경의 <원무>(2008)와 <산신>(2008), 자연에 버려진 사물과 돌을 의인화해서 은유적 상징물로 개념화한 지미 더햄의 <롯의 아내도 이해했으니, 과거를 회상하기만 하면 화석화와 퇴적 작용이 일어날거야>(1998) 등의 작품은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유사 존재(quasi-objects), 매개자(mediators)를 존중하는 사유방식, 전 우주가 살아 있는 존재이며 유사 주체(quasi-subjects)화된 것으로 인식하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는 생물인 것과 아닌 것, 순수한 주체와 단순한 객체 사이의 경계를 구분짓는 서구의 근대적 이성이 아시아권 문화나 제3세계 문화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며 삭제하거나 왜곡시킨 비근대적 문화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근대성 신화’를 ‘타자의 은폐’ 과정으로 분석한 해방철학자 엔리케 두셀(Enrique Domingo Dussel)에 따르면, 개념으로서 근대성의 신화가 탄생한 것은 15세기, 즉 1492년 인도에 도착하고자 항해를 떠난 안달루시아 대양 횡단 항로에서 콜럼버스가 구성한 ‘세계’ 속에서 ‘아시아 존재’가 발명된 데서 시작된다. 이 시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동안 유럽은 타자를 발명하고 타자를 제압하였고, 폭력을 행사할 식민지로서 비유럽적인 타자를 필요로 했다. 또한 근대성을 구성하는 타자성을 발견하고 식민지화하는 자아로 자신을 설정하고자 유럽 강국들은 비유럽세계에 대해 제국주의적 욕망을 투영해왔다. 빈센트 모니켄덤의 <어머니 다오, 거북이 같은 자>(1995), 켄 제이콥스의 <자본주의: 노예> (2006), 칸디다 회퍼의 <뉴욕 자연사 박물관>(2003), 크리스 마커와 알랭 레네의 <조각상들 또한 죽는다>(1953)등 일련의 영상 작품들은 식민주의와 과학 발전이라는 확신의 정점에서 전근대적인 타자의 이미지로부터 자기 확신의 근거를 찾았던 서구 근대인이 비유럽적인 세계에 접근할 때 폭력적인 시선과 야만적인 경계짓기로 탈-애니메이션(de-animation)화하고 목소리를 지운 흔적을 담고 있다.


제2층 전시장에서는 '경계짓기'의 폭력이 어떠한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중에서 안젤라 멜리토풀로스와 마우리지오 라자라토의 <배치>(2010)와 <입자들의 삶>(2012)은 ‘애니미즘’의 현재적 의미를 고찰하는 작품으로서 <애니미즘>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담고 있는 영상작품이다.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였던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의 생태철학을 기반으로, 근대적 이성이 딱지붙인 신경증, 강박증,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해체하고 애니미즘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발췌 화면, 인터뷰로 구성된 <배치>는, 근대의 모순을 해결할 대안으로 애니미즘적 생태주의가 도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특히 브라질의 정신분석가/문화평론가인 수에리 롤니크(Suely Rolnik)는 서구 이분법이 낳은 단일-인간주의, 단일-주체주의를 거부하고 의미의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는 장으로서 서구적 주체 개념을 넘어선 바로크적 주체성을 제안한다. 


독립 사회학자인 마우리지오 라자라토와 영상작가 안젤라 멜리토풀로스가 공동 제작한 시각연구 프로젝트 <입자들의 삶>(2012)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의 방사능 문제를 현장 취재와 인터뷰로 다루며, 일본인 자신들의 육성으로 일본의 과거 역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생생하게 고발한다. 이 영상 작품 속에서 일본 비평가 미나토 치히로(港千尋)는 후쿠시마가 악의 근원이 아니라, 일본의 역사 자체가 악의 근원이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하며, 애니미즘적 세계와 초근대성을 연결할 가능성으로서 원시적인 것을 재고할 것을 강조한다. 3층 전시장에서는 하룬 파로키, 톰 홀러트, 구동희, 자크라왈 닐탐롱, 파울로 타바레스, 수잔 슈플리 등의 영상작품을 통해 다양한 애니미스트 세계를 만날 수 있다. 


한국 순회전의 장소성을 반영한 설지작품, <제국의 시대를 배회하는 유령들-근대 이행기의 시각문화와 애니미즘> 아카이브 섹션에서는 조선 후기 시각문화 자료를 통해 애니미즘이 근대성의 이면 혹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장치로 쓰인 자료들이 제시되어 있다. 전시장 아카이브에도 설치되어 있지만 이번 애니미즘 전시 기획 의도는 경계를 무력화하고 위계를 없애는 관계를 중시하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가들, 특히 브루노 라투르가 주장한 세계관에 빚지고 있다. 애니미즘을 통해서 서구 중심주의적 근대성의 모순을 재고한다는 기획의도는 모더니티를 새롭게 해석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그렇긴 하나, 세상은 서로가 서로를 구성하면서 변화하는 혼종적 세계이므로 끊임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잡종적 존재들을 존중하고 자연, 사회, 문화는 서로가 서로를 만들면서 구성한다는 목소리는 또 하나의 가상세계를 제시하는 데 머물고 있다.   




전시 전경




2. <애니미즘>전과 <대지의 마법사들>전


‘애니미즘’을 표상 주제로 근대성 신화가 은폐한 것들을 복원하고 재고찰하고자 한 안젤름 프랑케의 <애니미즘>전은 문화 다원주의(cultural pluralism)와 모더니티를 함께 다룬 혁신적 전시주제이긴 하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전시의 발원점에 해당하는 장 위베르 마르탱(Jean Hubert Martin)의 <대지의 마법사들(Magiciens de la Terre)>전과 연계해서 살펴보면 다원주의적 세계를 지향한 전시 특성의 한계점이 잘 드러난다. 유럽과 미국 중심의 모더니즘에 내재한 보편주의 미학과 제도적 관점의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알리는 전시로서, 흔히 1989년 <대지의 마법사들>전이 언급된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London, Routlegde 1971)이 소개된 이래, 유럽과 미국중심의 아방가르드 문화에서 중심과 주변, 타자의 개념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고, ‘타자의 문화를 표상하기’라는 문제의식이 움텄다. 


1989년, 프랑스 현대미술관 관장이었던 장 위베르 마르탱은 그동안 국제 현대미술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 및 비서구의 미술을 서구미술과 동일한 맥락에서 위치지우려는 의도로 <대지의 마법사들>전을 기획한다. 파리 퐁피두 센터와 파리 비엔날레 전시장인 파크 드 라 빌레트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린 이 전시에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중국, 인도 등 세 지역의 작가들이 초대되었는데, 오늘날 국제적 스타로 부상한 황용핑, 구덱신 등의 중국작가들이 이때 서구 미술계에 소개되었다. 마르탱은 문화의 상대성, 문화 간의 상호관계에 균열을 가하기 위해, 중심부(유럽과 미국)와 주변부(비서구) 국가의 작가들을 균등한 비율로 선정하였으며, 비서구미술의 컨텍스트를 서구미술의 개념 속에 대입해 보려고 했다. 전시 개막식에는 세 명의 네팔 스님이 빨대로 모래를 불어서 만다라를 제작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고, 아프리카의 베닌공화국에서 참가한 작가는 닭을 제물로 삼아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비서구 지역의 종교적 제의형식을 재연한 다양한 오브제들이 중심을 이룬 이 전시는, 비서구권 작가들을 신비주의적 관점으로 다뤄 무수한 논란이 일어났고, 결국 마르탱이 관장직을 사임하게 된다. 


2013년 작고한 미국의 미술비평가 토마스 맥케벌리(Thomas McEvilley)는 이 전시에 관해 다양한 비서구 문화의 규범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시선으로 굴절시켰다는 점에서, 전세계적으로 유포된 식민주의 프로젝트의 결과물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한 바 있다. 주변부를 중심으로 격상시켜준 기획자들의 호의로 인해, 서구미술과 비서구 미술은 서로 뒤섞이거나 교류하지 못하고, 각 지역의 순수한 전통을 표상하는 지표(index)로서 환원되는 데 그쳐버렸다. 또한, 전시의 정체성 맥락에서 볼 때, 비서구의 미술을 마법적(magic)이고, 샤머니즘적이고 페티쉬적인 대상으로 해석한 태도는 이후, 전지구적 현대미술 전시에서 비서구미술을 고려할 때 끊임없이 재고되고 있다. 근대 서구의 폐쇄적이고 자기도취적인 사고에 대한 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이국주의의 공유를 지향했던 <대지의 마법사들>전에서 비서구권 미술을 규정했던 요소 즉, 샤머니즘적이고 애니미즘적인 세계가 바로 <애니미즘>전에서 다뤄지는 주제라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대지의 마법사들>전에서 <애니미즘>전에 이르기까지 근대성을 재고찰하는 전시 프로젝트는 근대성 전시담론의 계보를 형성할만큼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애니미즘>전이 기존의 근대성 기획전과 차별되는 지점이 있다면, 모든 지역에 비근대적인 요소가 산재해 있음을 상기시키고 영혼 설계의 관점에서 비근대적인 것의 가치를 재조명한 데 있다.   



3. 봉인된 작은 서사들


산에서, 열 명의 무당은 열 개의 풍선을 불었다.

도시에서, 유리 공예사는 공을 불었다.

풍선은 움직여 갔다. 

그 숨은 그 유리공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봉인되고,

사로잡히고,

길초실 <무당의 숨> 2009


어린 시절에 고향 마을에서 들었던 일화 중에 기이한 일화가 있다. 이웃마을 아저씨가 밤새워 도깨비와 싸우다가 이겨서 끈으로 나무에 묶어 놓았는데 아침에 가서 보니 빗자루가 걸려 있더라는 얘기다. 마을 사람들은 설마 그런 일이 있었겠나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은 듯했고 듣는 어린이는 밤새 빗자루로 변해버린 도깨비의 변신술이 궁금했다. 야밤에 마을에서 도깨비불이 명멸할 때 어디선가 도깨비가 변신술을 부리고 있지 않나 상상하곤 했다. 마을이 점점 근대화되어갔고, 흙길이 포장도로로 바뀔 즈음에 앞산 절의 무당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성년기 이후 서울 생활이 길어질수록 도깨비란 그저 민화 속에 등장하는 도상에 불과하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전근대적인 관습, 토착적인 세계관을 버리고 도회적 인간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애니미즘적인 것, 샤머니즘적인 것, 토테미즘적 것들의 감염성은 의외로 강력해서 겉으로는 말끔하게 치유된 듯했어도, 그것들을 표상하는 대상과 접속될 때 유년기의 환상이 되살아났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일민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애니미즘>전은 비(非)근대적 시공간에서 자란 아이가 근현대적 시공간으로 옮겨와서 버린 것들이 무엇이었나, 왜 그것들을 버리게 되었나를 생각하게 하는 전시로서 사적이든 공적이든 심층적 복원 서사에 가깝다.    




* Candida Hofer, Ethnologisches Museum BerlinⅢ 2003 Courtesy die Kunstlerin ⓒ Candida Hofer, Koln, VG Bild-Kunst, B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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