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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7, Jun 2021

김세진
Kim Sejin

미시적 삶을 생산하는 테크놀로지

아마도 김세진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는 '야간 근로자'(2009)에 나타난 순간들, 시간의 깊이를 만들어내고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공간의 리듬, 두 근무자의 표정, 몸짓, 어둠과 빛의 차이들일 것이다. 이 아름다움은 작품이 도시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표현했다는 그 사실 자체보다 카메라가 이미 구축된 재현의 장을 비껴가면서 혹은 그 이면으로 침투하면서 어떤 미시적 삶의 리듬을 보여준다는 점과 연관된다. 카메라 워킹, 편집, 미장센 등은 그들의 야간 근무를 인과적으로 혹은 서사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다.
● 조선령 미학 연구자·기획자 ● 이미지 작가 제공

'2048' 2020 3채널 HD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10분 25초 이미지 제공: 송은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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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령 미학 연구자·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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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시간 속에서 인물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동일한 평면 위에서 움직이면서 어떤 지속의 리듬을 보여준다. 여기서 공간, 색채, 표정, 몸짓, 빛과 어둠은 어떤 것의 상징이나 기호가 아니라 감각적 흐름 혹은 질료적 두께로 드러난다. 이렇듯 김세진의 작품은 영상 테크놀로지가 재현적 수단을 통해서는 드러나지 않는 삶의 리듬 혹은 질료적 삶을 복원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오늘날 삶은 이미 매체에 의해 포획된 이미지 그 자체이다. 그러나 김세진은 현실이 이미지라는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실이 이미지가 되기 ‘이전’을 조명한다. 이 ‘이미지 이전의 삶’은 카메라 이전의 원본적 현실이 아니라, 카메라에 의해서만 존재하게 되는 삶, 하지만 재현의 공간이 결과물로 고정되기 전에 생성되는 삶, 테크놀로지가 관습적인 방식으로 사용되었을 때는 포착할 수 없었던 삶이다.


김세진의 작품에는 소수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작가는 야간 근무자, 미화원, 이민자, 난민, 소수민족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작가는 그들에게 또 다른 재현의 장을 마련해주거나 개인적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을 특수한 지점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미시적 삶을 복원하는 매체의 능력 그 자체를 통해 소수자성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오히려 그들을 보편적 장으로 되돌려 보낸다. 이런 면에서 김세진 작품의 인물들은 익명적이다. 추상적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감각을 체현한다는 의미에서. 삶은 매체 너머에 있지 않다. 영상은 외부에 원본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영상은 내부에서 매체의 통상적 사용법을 비껴가면서 새로운 현실을 드러낸다. 일상 속 감시, 통제, 규제를 위해 사용되는 카메라의 시선에서 감각의 생성을 포착하고 지속의 리듬을 드러내 다른 무엇으로 변형시키는 작업이 김세진의 작품에서 종종 발견된다. <야간 근로자>에서 공적 공간의 인물을 무의지적으로 계속 촬영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감시 카메라의 그것과 유사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그 기능은 전혀 다르다. 감시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감시가 포착할 수 없는 미세한 감각으로 통제를 빠져나간다. 




<모자이크 트랜지션> 

2019 2채널 비디오, 4채널 사운드 5분 34초 

이미지 제공: 송은문화재단




김세진에게 소수자의 삶이 유목적 삶과 맞닿아있는 이유를 우리는 이제 잘 이해할 수 있다. 소수자들은 재현의 고정된 장에서 자기 자리가 없기 때문에 유목적이며, 이는 또한 디지털 영상 매체의 모듈적인 성격과 같은 선상에 놓인다. 카메라가 현실의 이차적 기록을 담당하는 듯 보일 때에도 이 모듈적 성격은 매체의 잠재적 능력을 현실화시키는 단서가 된다. <일시적 방문자>(2015)는 소수자성, 유목성, 매체성이 만나는 지점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공항은 국경이동의 관문이며, 그곳에서 테크놀로지는 감시, 통제, 검색, 검문의 도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제도적 틀의 완강함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 아니다.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작고 섬세하고 유연하기 때문에 틀에 걸리지 않는 삶의 리듬이 몸짓, 색채, 편집, 음향, 카메라 워킹, 두 채널 사이의 운동을 통해 전개된다. 


여기서 몸짓은 통제의 테크놀로지 하에 놓인 객체인 동시에 그 그물을 빠져나가는 단서가 된다. 김세진 작품에서 사운드는 통상 자기 존재를 강하게 주장하기보다 매체와 삶을 이어주는 어떤 공명의 요소로 표현되는데, 이는 종종 전자음과 실시간 음향의 혼합으로 나타난다. 음향은 미시적 리듬이 어떤 결정화된 모습으로 구현될 때 잠시 동안 음악이 되기도 한다. <일시적 방문자>에서 소음이 드럼의 리듬이 되는 순간 그리고 <밤을 위한 낮> (2014)의 후반부에 한 소녀가 핸드폰 불빛을 비추며 서 있을 때 음악이 낮게 깔리는 순간이 단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철거된 스산한 건물들에 접근해 들어가는 카메라의 시선과 색채, 빛, 감각을 병치시키는 이 작품은 현실을 어떤 시적 순간으로 변용시키는 지점을 보여준다.




<모션 핸드> 

2016 프락시노스프 애니메이션, 

턴테이블, 스테레오 사운드

이미지 제공: 경남도립미술관




대중문화가 폭발하던 1990년대 후반에 ‘영상세대 감수성을 장착한 신세대’ 작가로 미술계에 등장했다는 표현이 김세진을 소개하는 수식어로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얼핏 이미지 변형의 기술에 몰두한 듯 보이던 초기 작업에서도 테크놀로지를 통한 미시적 삶의 조명이라는 작가의 관심사는 이미 발견된다. <기념사진>(2002)은 그 사례 중 하나다. 교복을 입은 남녀 고등학생들이 통상적인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에서 작가는 카메라의 결과물로서의 사진이 아니라 그 이전의 시간, 흐름으로서의 시간에 초점을 맞춘다. 완성물이 나오기 전까지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변화하는 미세한 차이들을 포착함으로써 이 작품은 시간을 더 이상 선형적인 틀 속에 이해될 수 없는 감각으로 경험하게 한다. <그들의 쉐라톤> (2006)도 <기념사진>의 모티브를 다른 방식으로 변주한다. 서로 다른 시간에 촬영한 동일한 객실 창문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일상적 시간 속에서 가라앉은 시간의 결 같은 것을 길어 올린다. 


유목적 삶에 대한 관심은 작가 자신의 유목적 행보를 통해서 작업으로 구현된다. 김세진은 북극에서 남극까지, 유럽에서 남미까지 지구의 곳곳을 여행하면서 이민자들, 난민들, 소수민족의 삶을 찾아 나선다. 작업은 때로는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열망으로의 접근>(2016)이나 <존재하지 않는 곳을 향한 북쪽>(2019)은 이 경향을 보여준다. 두 작품은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보다는 일반적 다큐 기법에 가까이 가 있지만, 이 경우도 빛나는 지점은 다큐적인 것보다 시적인 것 속에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존재하지 않는 곳을 향한 북쪽>에서 붉은 색채 속에 잠긴 인물의 뒷모습, 동상 위에 앉아있는 갈매기, 유빙이 흐르는 바다를 태양이 비출 때 같은 순간이다. 전반적으로 붉은색이 중심을 차지하는 작품 속에서 색채는 은유나 상징이 아니라 존재의 감각으로 경험된다(작가는 이 작품이 상영된 송은아트센터의 벽면 자체를 붉은색으로 칠했다).




<녹색 섬광> 2020 

6채널 HD 비디오 & 사운드 

각 6분 30초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김세진은 최근 들어 데이터 시각화 기술이나 드론 기술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관심을 갖는다. <모자이크 트랜지션>(2019)과 <녹색섬광> (2020)이 대표적 사례다. 여기서 초점은 달라진다. 이 작품들은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세계를 촬영하는 카메라가 아니라 ‘촬영하지 않는’ 카메라임을 보여준다. 원근법적 공간을 구축하는 고전적 카메라는 깊이를 갖지 않는 데이터 분석으로 대체되었다. 감각의 모듈 역할을 했던 추상적 색면은 <모자이크 트랜지션>에서 현실을 추상화시키는 데이터-이미지로 변형된다. 더 규칙적이 된 음향은 이미지를 움직이고 화면을 회전시킨다. 화면은 영화 스크린보다 컴퓨터 스크린에 가까워지며, 객체를 움직이는 커서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동시대적 쟁점을 새롭게 포착한다는 점에서 초점은 변화했지만, 작품은 또 다른 방식으로 기술의 내부에서 현실의 시적 변용을 시도한다. 


온라인 플랫폼을 흘러 다니는 데이터-이미지의 조각들은 도표나 숫자로 포획될 수 없는 음악적 감각들로 변화한다. 여기서 ‘현실’은 데이터화된 현실이며, 변용은 그 속에서 일어난다. 반면 <녹색섬광>은 이러한 변용을 위한 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다소 비관적인 느낌을 준다. 녹색의 색채는 야간에 공격목표를 찾기 위해 사용되는 투시 등의 색채로, 음향은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워키토키의 대화로 표현된다. 공중에서 지상을 겨냥하는 드론의 시선은 전쟁이 직접 수행되지 않을 때도 지상의 사물과 인물들을 타겟으로 포획함으로써 전쟁의 시선을 창조한다. 최근 작가의 관점 자체가 달라진 것일까? 아직은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려워 보이지만, 단서는 발견된다. 기술이나 매체를 은유적 수단이 아니라 실재적 힘으로 사용하는 작가 특유의 작업 방식은 최근 더 완성도가 높아졌다. 영상작업에서 기술적 완성도란 그것이 관습적 차원에서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때 오히려 작품에 방해가 되는 경향이 있다. 




<밤을 위한 낮> 2014 싱글채널

HD 비디오 6분 56초 이미지 제공: 작가




김세진의 작업 대부분은 이 위험성을 비껴간다. 오히려 기술적 완성도는 작업의 핵심이다. 테크놀로지에 의해 포획된 삶의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삶 속에 침투하는 테크놀로지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초정밀 모니터를 사용하여 개의 털 하나하나를 보여주는 <전령(들)>(2019)은 이 경향을 잘 보여준다. 우주개발의 욕망 이면에 버려진 작은 존재를 조명하는 작품은 작가의 오랜 관심사를 계승하는 동시에 새로운 지점을 예고하는 문지방처럼 보인다. 오늘날 관건은 재현의 공간을 변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납작해진 세상에서 간격을 창조하는 것인 듯 보인다. 하지만 작가의 관심이 재현의 복원에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동시대적 조건 하에서 삶과 매체의 관계는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을까? 어쩌면 김세진의 다음 전략은 기술이 갖는 실재적 힘을 어떻게 해방할 수 있는지 탐구하기 위해 기술의 내부를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이 될지 모른다. PA




프로필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작가 김세진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과 영국 슬레이드 스쿨 오브 파인 아트(Slade School of Fine Art)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05년 인사미술공간에서의 <이상사회>를 시작으로 2006년 금호미술관에서의 <Living on the Edge>, 2009년 브레인 팩토리에서의 <24HR City>, 2014년 문화역 서울 284 RTO에서의 <열망으로의 접근>, 2015년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의 <우연의 연대기>, 2019년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의 <태양 아래 걷다> 등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세계 유수 기관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해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제16회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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