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Issue 94, Jul 2014

차계남

2014.6.17 – 2014.6.29 동원화랑, 봉산문화회관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윤규홍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예술사회학자

Tags

끝없는 수행, 묵의 경이



우리는 아주 단순한 대상에 한 작가의 세계관을 집어넣어 성공한 현대 예술의 사례를 개념 미술이라고 불러왔다. 특히 한국에서 개념 미술은 설치 작업으로부터 단색화에 이르는 일련의 영역에 걸쳐 진행되면서, 동시대 미술의 우세종처럼 대접받고 있다. 2014년에 새롭게 선보인 차계남의 작업은 개념 미술의 큰 테두리 속에서 그녀가 가진 지향점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 지향점은 한 편으로 치열하고, 또 다른 한 편으론 안락한 단색화(의 작업 경향이라기보다 제도)이다. 작가는 반야심경을 옮긴 서예 작품을 하나씩 잘라 해체하여 굵은 실처럼 꼬았다. 이 낱낱의 종이 실들은 커다란 평면으로 재구성된다. 한지와 먹의 사용은 그녀의 단색화 작업이 흑과 백의 강한 대비로 나타나는 배경이 된다. 


이번 전시에 공개된 차계남의 최근 작업은 관객들을 죄다 감탄에 빠트리는, 어마어마한 규모와 일일이 손을 거친 인내력의 극한을 보여준다. 이와는 별도로, 특별히 나는 이 작업에 관해 몇 가지 궁금증을 가진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의문은 숨겨진 텍스트, 반야심경이 품은 의미이다. 미술가들에게 상징적인 독서는 그 자체로서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에 관한 2차적 관찰로서의 재해석이며, 따라서 그런 작업은 그럴듯한 의미를 내세우기에 유리하다. 내가 그 행위를 상징적 독서라고 부르는 까닭은 한 미술가가 평소에 이런저런 책을 읽고 거기에서 창작의 영감을 우연히 구하는 일반적 독서와 구별하기 위함이다.  


나는 차계남의 창작 과정의 전반부 단계인 반야심경 필사본과 그 해체 작업이 일종의 책거리로서의 뜻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 일이 예컨대 고시 준비생이 두꺼운 교재를 밑줄 그어가며 거듭하여 읽고, 단원 별로 책을 자르고, 스티커 메모지로 새로운 내용을 첨가하고, 그것을 벽에 가득히 붙이는 공부, 그런 일보다 훨씬 숭고하고 결백한 행위라고 나는 보지 않는다.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 더 나아가서 예술인 척 하는 예술이나 예술을 닮은 일상처럼 예술의 범주를 구분하는 기준에 관하여 사회과학은 예술에 곧잘 간섭을 하고 있다. 두 장소로 나뉘어 벌어진 이번 전시를 통하여 그녀가 성취한 상징적 독서는 과거의 전통을 파괴하는 태도에 초점을 맞춘다. 원본의 변형은 새로운 깨달음을 낳고, 작가 스스로에 관하여 솔직해질 이유를 분명히 한다. 공공 미술관을 찾은 시민들이 접하는 차계남의 그림, 화랑에 온 콜렉터들이 생각하는 그녀의 작품, 평론가들이 평가하는 그 작업 등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Untitled> 2011 한지에 먹 244×244×7cm




그 모든 비밀이 검은 색 속에 침전되어 봉인된 듯한 평면 작업 뒤로 작가의 지나온 개인사나 작업방식이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인지도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충분히 오를 걸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이와는 거꾸로 자기 작업을 둘러싼 경외감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란다. 작가 차계남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도 작가는 비교적 일관되게 여러 활동을 지속해왔다. 실제로 작가는 40년의 작업 이력 속에서 재료와 형태와 색의 가시적 형식이 바뀐 전환점을 몇 차례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계남처럼 하나의 스타일로 인식되는 작가가 흔하지는 않다.   


그것이 상징적 독서가 되었건, 처절한 자기부정이 되었건, 작가가 자신 속의 습성을 따로 떼어내어 핑계거리로 삼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계속해서 완성한다는 사실은 이번 전시에 드러난 작품의 방대함과는 또 다른 면에서 하나의 화제가 되었다. 몇 차례 스타일의 진화를 거듭해오며, 이제 차계남의 작품은 반복된 노동의 집적물로, 오래된 정신적 전통을 암호처럼 숨겨놓은 주석으로, 산수화의 변형으로 해석될 인지 공간을 애써 마련한 조형성으로, 새로운 단색화의 기법 탐색으로, 이 모든 정황을 다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가운데 뭐라고 칭해도 좋은데, 아마도 작가는 자신이 그 모든 정의내림보다 조금씩 더 극단적인 쪽으로 치우쳐 있길 바랄지도 모르겠다.           




* <Untitled> 2012 한지에 먹 366×244×7cm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