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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1, Dec 2020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
별이 된 사람들

2020.8.15 - 2021.1.31 광주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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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ACC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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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우주, 불완전한 세상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인 올해, 광주의 문화예술기관들은 저마다의 5·18정신을 보여주기 위해 분주했다. 민주화운동의 성지라 불리는 광주는 ‘광주비엔날레’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1980년 5월의 광주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이전부터 자주 소개되고 발굴되었던 터라 그 중심에 있는 광주시립미술관의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에 대한 기대는 더욱 높았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특별전 <별이 된 사람들>은 영민하게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전략으로 전시를 내놓았다. 전시 서문에서 전승보 관장이 말한 바와 같이 “은유와 암시로 이루어진 전시공간”은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혹은 공격적으로 한국사회의 부조리, 전두환 정권의 재앙, 그로 인한 광주의 비극을 생생하게 담아왔던 것과는 달리 감성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기에는 분노보다는 애도를 위한 연출이 담겨 있어 불혹이 된 5·18 광주의 성숙함을 드러내 준다. 이미 젊은 세대에게는 5·18의 의미가 역사의 한 부분으로 막연하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동시대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어낸 그 날을 이미 지나간 역사로 흘려보낼 수도 없다.

<별이 된 사람들>은 광주를 중심소재로 놓지 않는다. 오히려 1980년대 이전부터 현재, 광주 밖의 여러 나라와 지역들을 한데 모아 1980년 광주를 생생히 기억하는 세대부터 미디어를 통해 단편적 이미지들이 고정화된 세대, 그리고 이미 오랜 역사로 인식하는 세대들에게 각자의 기억을 근거로 구축된 시대정신을 공통분모로 한다. 이러한 전략은 1980년 5월을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를 교차해가며 자유로운 해석을 보장하는 열린 사유의 모멘텀을 제공해준다.

흙과 시멘트를 재료로 한 전원길의 <2020 백초를 기다리다>(2000)로 시작하는 전시는 물, 흙, 나무, 빛 등의 자연과 쇠, 유리, 전자기기 등의 문명 도구들이 조우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다. 피터 바이벨(Peter Weibel)의 <신음하는 돌>(1969)은 1980년 광주의 민주화운동 이전에 유럽을 중심으로 기성세대와 사회에 대항한 청년들의 응어리를 커다란 돌덩이의 신음하는 목소리로 전달한다. 돌은 지구의 가장 오래된 자연산물로 지구 자체, 존재, 연금술의 상징이며, 절박한 상태에서는 저항하는 무기가 된다. 조덕현의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티나>(2020)의 모퉁이에 쌓인 돌들은 한 손에 쥘 수 있을 만한 크고 작은 돌멩이들로, 저항의 상징을 치유로 환원시키는 과정을 관람객들과 함께한다. 스크린을 연상시키는 하얀 천의 뒤편에는 관람객 개개인이 선택한 돌들을 쌓거나 내려놓는 행위들이 비춰진다. 윤이상의 음악과 어우러지는 이 무대는 여러 세대와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다양한 메시지들의 층위들을 관람객 스스로 사유하게끔 한다.



연기백 <푸른 언덕> 2020 

분해된 자개장, 나무, 실 가변설치




자연산물과 사회적 사물들이 함께 놓인 전시공간은 갈등-저항-소통-현실의 양면을 드러내는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피터의 또 다른 작품인 <비디오 루미나>(1977)의 7대의 모니터 속 눈동자, 원성원의 ‘타인의 풍경’ 시리즈(2017)에서 보여주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풍경, 쉴라 고우다(Sheela Gowda)의 <다크룸> (2020)의 아스팔트를 담은 드럼통 속 세계의 사회적 틀과 집단적 틀에서 바라보는 응시는 권력의 폐쇄성이 사회와 어떤 부조화를 초래하는지를 암시한다. 하태범의 온통 백색의 시리아 내전을, 임옥상이 그려낸 광화문 촛불집회는 그에 따른 저항을 보여주고 이어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구도청과 전일빌딩의 모형이 등장한다. 시리아와 광화문이 갈등과 저항을 양면을 시사했다면 정정주의 <응시의 도시_광주>(2020)는 소통을 통한 교감을 시도한다. 구 도청과 전일빌딩, 상무관 조형물 속에 위치한 카메라와 20여 개의 프로젝터는 응시의 주체와 객체, 나와 타자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관람객을 가해자의 응시함과 피해자의 응시됨의 이중적 공간에 위치시킴으로써 실제와 가상, 사회와 개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적 경험을 자아낸다. 전시에서 직접적으로 1980년 5월을 상징하는 작품들은 정정주의 작품처럼 1980년 당시가 아닌 2020년 현재의 시점에서 그림자, 소리, 안개, 몸짓과 손짓 등으로 소통하고 애도한다.

한편, 전시의 2막은 현실 세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근대사회 속의 기계 장치들을 영화의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뮌의 작품 <오디토리움>(2020)은 역동적이고 화려해 보이는 구조 이면에 순수한 자연과 단절하고 과거의 사실을 은폐하는 사회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연기백의 <푸른 언덕>(2020)에서 공중에 매달린 자개장 파편들, 천경우의 두 작품 <사과의 테이블>(2018/2020), <100개의 질문>(2011)에서, 관람객이 스스로에게 듣고 싶어 하는 글귀들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분쇄해버린 종잇조각과 벽 한 면을 빼곡히 채운 일방적인 100개의 질문은 현실사회의 소외된 시선과 잊혀져가는 시간을 경각시킨다. 역사적 진실과 시대의 아픔을 주제로 한 작품과 전시들은 늘 조심스럽다. 1980년 광주의 5월은 여전히 말끔히 해결되지 못한 한국 역사의 비극이자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유산이다. 전시의 작품들은 그러한 아픔들을 과장하거나 확대하지 않고 흔적으로써 남기고 비워둔다. 대신 광주의 기억을 한국 근대사의 과정과 세계화 과정 속에 나열하며 5·18의 정신이 지속되고 있음을 말한다.



미샤엘라 멜리안(Michaela Melian) <루나파크> 2020 

유리 오브제, 프리즘, 슬라이드 영사기, 오디오 가변설치




전시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현실사회의 왜곡과 소외를 희망과 나눔의 메시지로 보듬는다. 미샤엘라 멜리안(Michaela Melian)의 <루나파크> (2020)는 특정한 배열 없이 각기 다른 형태로 테이블에 놓여진 투명한 물체에 빛을 비춘다. 회전형 슬라이드 프로젝터를 통해 움직이는 빛은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투명물체를 관통하면서 형체의 그림자들을 모은다.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연상시키는 그림자들은 시각과 시야에 따라 변형되면서 고정화되어 있지 않은 장소, 즉 작품소개에 나와 있는 글처럼 유토피아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오순미의 <불안전한 평정>(2020)은 빛에 대한 다른 해석을 제시하는데, 화려한 LED 조명과 함께 벽면에 비춰진 수많은 텍스트는 좌우로 비틀거리는 원형이 중심을 잡게 되면 빛이 꺼지고 텍스트들도 사라진다. 작가는 읽기 힘들 정도로 빼곡하게 채워진 글자와 빛을 진실 없이 부유하는 욕망으로 간주한다. 이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몸의 균형이 맞춰질 때 자신의 사고 역시 리셋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쑨위엔 & 펑위 <교체> 2015 철제 책상, 

의자, 발열장치, 온도조절기, 물통 가변설치




전시에서 유일하게 5·18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장동콜렉티브의 <오월식탁>(2019-2020) 역시 당시의 잔혹함을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 아닌 당시에 요리했던 음식과 이야기를 현재 유행하고 있는 ‘먹방’과 ‘쿡방’ 형식으로 전달하며, 그날의 광주도 여는 일상과 다를 바 없는 삶 속에서 발생한 것임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본 특별전과 동명의 제목인 마지막 작품 <별이 된 사람들>(2020)은 신 묘역으로 옮기기 위해 군데군데 파헤쳐진 망월동 묘지를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 채우고 있다. 작가 조정태는 작가 노트에서, 40년이 지난 5월의 흔적과 시간은 이름 없이 별이 된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만들어낸 과정이며, 여전히 많은 곳에 이름 없는 별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전시관 외벽에 붙여진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의 구절처럼, 나와 시공간을 넘어 함께 사유할 수 있는 무위의 공동체들이 불완전한 세상을 무한히 비추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경계도 없는 흙에서 시작해 콘크리트 구멍에서 싹트는 꽃을 기다리며 돌아보는 전시 <별이 된 사람들>은 무한한 우주 속 별들로 마무리한다. 이와 같은 전시의 열린 결말은 5·18이라는 시대적 아픔을 통해 승화된 시대정신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변화된 시대에 맞게 새로운 가치와 결합되어 발전적으로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5월의 역사적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진상을 규명하는 것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렇게 한 발씩 딛고 앞으로 나가는 과정이 벌써 40년째 계속되고 있다. 매년 5월이 되면 여전히 눈물이 흐른다. 그렇지만 40해가 넘는 동안 흐르는 눈물에도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의미가 녹아 있듯, 5월 정신에도 많은 가치와 의미가 더해져, 시대적 분노를 넘어 생활 세계로 스며들어 왔다. 전시 관람을 마치고 <오월식탁>에서 마련한 작은 쌀 상자를 챙겨오자. 쌀을 나누는 것은 기본적인 일상을 나누는 것이고 밥상에서의 정서를 교감하는 것이다. 그렇게 5·18민주화운동은 이제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다.


*조정태 <별이 된 사람들> 2020 캔버스에 유채 194×117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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