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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1, Dec 2020

Candida Höfer

2020.9.18 - 2020.11.8 국제갤러리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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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현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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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팬데믹이 이어지는 가운데 부산에서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의 사진들을 마주했다. 사람 한 명 없이 고요한 미술관, 도서관, 극장 같은 장소를 담아낸 회퍼의 사진들. 특유의 텅 비어 있는 공간은 여전했지만, 그 작업들은 사진 바깥의 전염병 상황을 연상시키며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사실 팬데믹 정세가 아니더라도 이번 전시는 회퍼의 사진들이 다양한 맥락에서 읽힐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대표적인 양식의 사진들을 나열하는 전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찍은 초기 작업부터 하나의 공간을 삼면화처럼 나누어 찍은 최근 작업까지 다양한 사진들이 전시되었다. 그리 많지 않은 출품작들의 각기 다른 형식에서 흥미로운 연결들이 포착된다. 생각해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 형식의 다양성이 회퍼의 전시에서 특별히 감각되는 까닭은, 그의 미학이 일관된 스타일의 연쇄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칸디다 회퍼가 소위 베허 스쿨(Becher school)이라고 불리는 뒤셀도르프 사진 스쿨의 일원이라는 점을 짚어야 한다.1) 베허 부부와 그들의 가장 중요한 연결점은 유형학의 문제에 있다. 베허 부부는 유형학적 사진이라는 방법론으로 현대미술에 사진의 자리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유형학은 하나만 보고는 알 수 없는 성격을 일련의 연쇄 속에서 발견한다. 나름의 특징을 가진 하나하나의 개체들을 모아놓고 보면 그 차이점과 공통점 사이에서 어떠한 유형이 파악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개별과 집단의 문제는 단순히 형태적 유사함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지식의 조건을 생각하게 할 뿐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 환경을 드러내기도 한다.2) 그렇기에 유형학적 사진은 형식을 너머 구조의 문제와 연결된다. 그것은 또한 같음과 다름, 하나와 전체의 교차, 무엇보다 연속성 같은 문제에서 미니멀리즘이나 개념미술의 맥락과 만나기도 했다. 칼 앙드레(Carl Andre)가 미국에서 베허 부부를 조명한 것이나, 베허 부부가 이례적으로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조각 부문에서 수상한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Ethnographisches Museum Lissabon I 1989> 

C프린트 20×30cm ©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 Candida Höfer/VG Bild-Kunst, Bonn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회퍼 역시 주제의 연속성, 일관성, 중립적인 화면 등의 형식을 통해 유형학적 문제를 일정 부분 연결해나간다. 그는 이미지의 연쇄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회퍼가 지속적으로 촬영해온 아무도 없는 공간은 그 자체로 어떠한 유형을 드러내기도 한다. 인간의 부재를 통해서 인간의 흔적으로서의 공간, 혹은 인간이 만든 공간에 스며있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이 보이게 하는 것이다. 특히 도서관이나 미술관 등의 공간은 사회적, 문화적 축적이 이루어지는 건축물이기 때문에 그러한 점이 더욱 명료하게 드러난다. 회퍼를 비롯한 베허의 제자들은 이러한 부분에서 말 그대로 학파라 불릴 정도로 연결되는 지점을 가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스승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여기에서 그들에게 공통으로 발견되는 것이 차이점이 바로 사진의 프린트 크기이다. 그들이 사진을 크게 뽑아 전시장 벽에 걸기 시작했다는 점은 사진과 미술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다


슈테델 미술관(Städel Museum)에서는 2017년에 <Photographs Become Pictures>라는 전시를 통해 베허 스쿨을 전반적으로 조명했는데, 베허 부부와 제자들의 사진을 한 번에 전시하여 그 사진들의 스케일 차이를 극명하게 살필 수 있었다. 이번 국제갤러리 부산의 회퍼 개인전도 작게 프린트된 <Ethnographisches Museum Lissabon I 1989> 같은 비교적 초기 작업과 <Tables 2016> 같은 근래의 핸드핼드 작업, 그리고 보통 180cm 정도로 인쇄된 커다란 사진들을 함께 전시하여, 스케일 차이를 리듬감 있게 오가며 회퍼의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되었다. 이러한 지점은 카탈로그나 디지털 인터페이스에서는 감각할 수 없기 때문에 전시를 통해서만 포착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국제갤러리 부산 <Candida Höfer>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제갤러리




사진 프린트 크기의 변화에 장 프랑스와 쉐브리에(Jean-François Chevrier)는 큰 사진을 그림처럼 걸게 되었다는 의미에서타블로(tableau) 형식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것은 무엇보다 사진의 관람성을 변화시킨다. 이전에 미술관의 회화를 보듯이 개방된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벽에 걸린 사진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아가 그것은 회화와 관람객 사이에서 제기되던 문제들이 사진에 적용되는 계기를 만든다. 여기에서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는 『Why Photography Matters as Art as Never Before(2008) 등 저서를 통해 타블로 형식의 사진들이 모더니즘 회화처럼 반연극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주장을 펼친다


연극성이라는 개념은 마이클 프리드가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프리드 자신은 리터럴 아트라고 쓰는) 미니멀리즘을 비판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예술품이 관람객을 몰입시키는 예술적 존재가 아니라, 그것이 연출된 상황 속의 다른 사물과 같은 방식으로 감각되는 문제를 말한다. 그는 예술의 존재를 고민하는 모더니스트의 입장에서 당시의 미니멀리즘, 설치, 퍼포먼스 등의 경향을 비판하기 위하여 그러한 개념을 도입하였다. 미니멀리즘 작업과 같은 것들은 예술을 미적으로 매개된 작품이 아니라 사물성을 가진 것으로 만들어 사물과 예술의 경계를 흐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사물성을 비판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프리드의 입장은 미니멀리즘이 가지는 미학적 의의를 오히려 잘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리드는 당대의 커다란 사진들이 모더니즘 회화와 같이 예술의 지위를 확고하게 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을 반 연극적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프리드가 미니멀리즘을 비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진의 문제에서도 거꾸로 드러내는 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회퍼의 사진이 외부와 단절된 세계를 담아내기 때문에 모더니즘적 몰입을 촉발한다고 주장하는데, 역설적으로 회퍼의 사진은 사물성의 문제와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이 풍부하다. 회퍼의 사진에서 부재(absence)는 어떻게 감각되는가? 그냥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면 그것은 감각되지 않을 것이다.


원래 무언가로 채워져 있거나, 사용되거나, 점유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비어 있을 때 우리는 부재를 감각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회퍼의 사진들에서 일관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의자이다. 그것은 명확히 자리를 상징하면서, 부재 그 자체를 드러내는 사물로 작동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비어있는 의자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전시의 백미인 <Ethnographisches Museum Lissabon I 1989>는 비교적 초기 작업으로 삼각대도 없이 카메라를 손에 들고 35mm 필름으로 찍었다. 그 사진은 큰 세계지도와 수리 중인 조각상이 놓인 박물관의 강당을 담아내는데, 그곳에도 역시 비어있는 의자들이 빼곡하다.




국제갤러리 부산 <Candida Höfer>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국제갤러리




볼쇼이 극장을 찍은 <Bolshoi Theatre Moskwa III 2017>도 붉은색 객석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역시나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지만, 각기 다른 의자들은 계급과 계층에 따라 다른 위치와 모양으로 자리한다. 사물들의 구체적인 형태와 쓸모, 위상까지 파악할 수 있는 이미지는 프리드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게, 초월적인 몰입이 아니라 인간과 사물들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사진을 보는 사람은 커다란 화면에 가득한 사물들을 바쁘게 움직여가며 살피게 된다. 그리고 감각되는 움직임은 화면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시장에 걸린 이미지들이 그 자체로 사물이 되어 이리저리 연결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마이클 프리드의 사물성 논의에서 더 나아가 최근의 담론과 만나며 오브제, 객체, 사물이 겹쳐있는 개념으로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곳은 사물들로 가득하다. 사물들의 활기로 가득 차 있다. 

 

[각주]

1) 베허 스쿨은 1976년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Kunstakademie Düsseldorf)에 사진학과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 교수로 부임한 베른트 베허(Bernd Becher)와 힐라 베허(Hilla Becher)의 제자들이 중심이 된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 토마스 루프(Thomas Ruff), 그리고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 등이 대표적이다.

2) 예컨대 베허 부부의 시리즈 중에서 그들의 고향인 독일 지겐 지방의 목조주택들을 찍은 <Framework Houses, Siegen Area, Germany>(1989)를 보면 주택들의 모습은 제각각 다르지만 전면의 목조 프레임이 특정한 형태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 지겐은 철을 생산하는 지방이라 숯이 많이 필요하여 건축에 사용하는 목재의 양을 법적으로 제한하면서 특유의 건축 양식이 발달했다. 그러한 맥락이 유형학적 연속성에서 파악되는 것이다.



*<Bolshoi Teatr Moskwa III 2017> C프린트 180×199.6cm ©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 Candida Höfer/VG Bild-Kunst, Bonn 이미지 제공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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