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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89, Feb 2014

로봇들의 성으로 오세요

France

Philippe Parreno: Anywhere, anywhere out of the world

90년대 이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알제리 출신의 세계적인 뉴미디어아티스트,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의 전시가 지난 10월부터 파리 현대미술관, 팔레드도쿄에서 열리고 있다. 2012년 확장 개관한 이후, 팔레드도쿄가 한 명의 작가에게 건물 전체를 전시공간으로 내어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전시는 파레노가 20여 년간 필름, 비디오, 사운드,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표현매체를 통해 구축해 온 예술세계를 총 세 층으로 구성된 거대한 공간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규모만큼이나 눈여겨볼 오브제는 바로 ‘공간.’ 작가의 공간연출력은 이미 다른 전시들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되어 왔다. 그는 치밀한 시나리오 작업을 통해 전시 자체를 연극화하고, 전시공간을 현실에서 독립시켜 새로운 픽션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작품’은 물리적인 오브제뿐만 아니라, 전시공간이라는 현실을 가공시키는 과정까지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그래서일까, 팔레드도쿄가 파레노에게 모든 전시공간을 할애했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만은 않다.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hibition view Philippe Parreno 'Anywhere, Anywhere, Out Of The World' Palais de Tokyo 2013 'Philippe Parreno TV Channel'(detail) 2013 Courtesy Pilar Corrias Gallery On screen: The Writer 2007 Photo: Aurélien M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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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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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이는 점멸등. 혼자 연주하는 피아노.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는 자동문. 작가의 서명을 끊임없이 복제하는 로봇…. 작가가 이번에 관람객을 초대한 픽션 공간은 다름 아닌 로봇의 성이다. 전시장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로봇들은 설치의 형식을 빌어 빛과 이미지 그리고 소리로 치환된다. 한 가지 행위만을 수없이 되풀이하도록 프로그래밍된 각각의 로봇들은 독립된 하나의 설치작품이자,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퍼포먼스의 주체이다. 아무런 통제 없이 혼자서 작동하는 로봇들에게는 나름의 확실한 룰이 존재하는데, 바로 일정한 템포를 유지하는 것. 이것은 작가가 오브제들을 로봇화시키기 위해 부여한 명령어이며, 곧 로봇들의 정체성이다. 상당히 간단해 보이지만, 이 명령어가 가져오는 효과는 실로 대단하다. 정해진 순간,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속도로 움직이는 로봇들의 유기적인 운동성은 규칙적인 리듬감과 파장을 생성해내며 공간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실제로 작가는 4막으로 구성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발레음악 ‘페트루슈카(Petrouchka, 1911)’ 악보에 기초해, 공간을 재구성했다. 마법사 주인을 따라 광대놀음을 하는 꼭두각시 인형들의 사랑과 비극을 담은 원작 페트루슈카의 파레노 버전인 셈이다. 




Exhibition view Philippe Parreno 

<Anywhere, Anywhere, Out Of The World>

 Palais de Tokyo 2013 Douglas Gordon + 

Philippe Parreno <Zidane: a 21st Century Portrait> 

2006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Aurélien Mole




인간과 유사하지만, 자유의지와 생명력을 애초에 가지지 못한 채 태어난 꼭두각시 인형들은 로봇으로 진화한다. 인간이 될 수 없기에 죽음이 무의미하며, 인간도, 비인간도 아니기에 존재에 대해 번뇌하는 페트루슈카의 슬픔은 리암 길릭(Liam Gillick)의 자동연주피아노 설치작품, <눈 속의 공장(Factories in the snow)>(2007)을 통해 구슬픈 선율이 되어 들려온다. 천장 어딘가로 부터 흩날려 내려오는 눈을 맞으며, 쓸쓸하게 홀로 연주되는 피아노는 페트루슈카의 혼령이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미 바닥에 수북이 쌓인 눈만이 연주가 수차례 반복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작가는 리암 길릭이 제작한 디스클라비어(Disklavier) 피아노 네 대를 상징적으로 설치하여, 총 4막으로 나뉜 원작의 구성을 충실히 구현해낸다. 다시 말해, 디스클라비어 피아노를 통해 들려오는 연주는 막이 오르고 내림을 알리는 일종의 무대장치이기도 한 셈이다. 피아노가 설치된 장소와 연주시간을 통해 전시가 행해지고 있는 시공간은 파레노의 시나리오대로 철저하게 통제된다. 관객은 단 네 개의 피아노 선율을 따라, 작가가 만들어놓은 픽션의 세상으로 초대된다. 




Exhibition view Philippe Parreno

<Anywhere, Anywhere, Out Of The World> 

Palais de Tokyo 2013

 <Liam Gillick, Factories in the snow> 

2007 Photo: Aurélien Mole




작가가 페트루슈카에서 가져온 유령의 모티브는 자동시스템이 탑재된 전자기계, 즉 로봇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된다. 원작 음악의 리듬에 맞춰 어둠을 밝히는 화려한 조명 빛 <대니라는 길(Danny La Rue)>(2013), 유령무용수들의 발소리가 울려 퍼지는 빈 원형극장 <춤으로부터 댄서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How Can We Know the Dancer from the Dance?)>(2012), 자동으로 열리는 두 개의 문 사이로 들려오는 센 강과 파리도심의 소음 <자동문(Automated Doors)>(2013). 다양한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연출된 미스터리 한 공간이 놀라움을 넘어 긴장감마저 자아낸다. 로봇들이 만들어내는 유령의 흔적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필름과 비디오 작품 안에서도 끝없이 중첩된다. 50년대 헐리우드를 풍미했던 은막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는 유령이 되어, 파레노의 필름 <마릴린(Marilyn, 2012)>에 등장한다. 여배우의 시점은 카메라의 눈을 빌려 재현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테이블 위엔 샴페인과 두 개의 빈잔, 빈 소파, 시들어가는 꽃이 놓였다. 


정적을 깨며 전화벨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로봇들이 복제한 그의 목소리와 필적만이 고독으로 가득 찬 이 방의 주인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점점 절망으로 변해가는 목소리와 편집증적으로 쓰이는 글들은 그가 느끼는 심적 변화와 고통을 대변한다. 과거 여배우의 이미지를 단 한 장 사용하지 않고도 로봇들이 창조해낸 것은, 화려했던 한 여배우의 쓸쓸한 혼령이다. 유령과 로봇을 소재로 삼은 픽션의 세상은 직접적인 공간 변형과 연출을 통해서도 실현된다. <암흑으로 사라지다(Fade to Black)>(2013)는 벽면내부에 자동점멸시스템을 부착하여, 어둠 속에서만 이미지가 보이도록 했다. 환한 조명 빛 아래에 보이는 단색의 이미지는, 점등과 동시에 뒤편에 숨어있던 섬광의 이미지를 꺼내 보여준다. 숨었다 보여주기를 반복하는 이 은밀한 장치를 통해 작가는 유령의 모티브를 다시 한 번 강조할 뿐 아니라, 고정된 벽에 운동감을 주는 효과도 동시에 누린다. 




Exhibition view Philippe Parreno

 <Anywhere, Anywhere, Out Of The World>

Palais de Tokyo 2013 Philippe Parreno 

<Automated Doors> 2013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Aurelíen Mole 




신기한 벽의 이야기는 바로 맞은편에 보이는 책장으로 이어진다.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Dominique Gonzalez-Foester)가 제작한 <비밀책장(La Bibliotheque clandestine)>(2013)은 언뜻 보기에 벽면에 놓인 일반적인 책장의 모습이다. 하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조금만 책장을 밀어내면, 이제껏 보지 못한 비밀의 방이 나타난다. 마치 판타지영화에나 나올법한 책장을 통해 파레노의 공간은 확장과 축소, 열림과 닫힘이라는 서로 상충되는 두 가지 성격을 모두 지니게 된다. 더욱 놀라운 일은 책장 너머에 있다. 관객이 책장을 밀고 비밀의 방으로 건너가는 순간, 시간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향한다. 숨바꼭질하듯 작가가 숨겨놓은 것은, 뉴욕에서 2002년에 열린 존 케이지(John Cage)와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의 전시회 현장. 당시 케이지의 드로잉이 하루에 한 장씩 커닝햄의 드로잉으로 교체되며 케이지의 전시는 결국, 커닝햄의 전시가 되어버린 바 있다. 이 선구적이고도 실험적인 전시회가 작가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파레노에게 예술이란 끊임없는 소통과 창작을 의미한다.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표현의 무한한 가능성을 재발견하고 끝없이 변화해나가는 것이 그가 구현하고자 하는 예술의 진정한 가치이다. 앞서 언급한 동료작가 리암 길릭, 곤잘레스-포에스터의 작품은 물론, 더글라스 고든과 함께 연출한 영화 <지단, 21세기의 초상> (2006),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외 20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공동 프로젝트 <세상의 밖 어디든(Anywhere Out of the World)>(2000)을 전시한 것에서 파레노의 예술관을 쉽게 떠올 수 있다. 세기를 초월한 아티스트들의 만남을 주도하고, 그들이 전하는 각각의 독립적인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또 하나의 픽션을 가공해낸 작가는 다양한 무대연출 테크닉을 사용하여 팔레드도쿄가 가진 기존의 공간성에 ‘운동성’ 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다. 마치 유령들이 살아 활보하는 듯 미스터리로 가득 찬 공간의 이면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셀 수 없이 많은 로봇들이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수없이 복제되어 바닥에 떨어져있는 파레노의 서명이 말해주듯, 여기는 로봇들이 사는 곳, 바로 파레노가 창조한 움직이는 성이다. 




Exhibition view Philíppe Parreno 

<Anywhere, Anywhere, Out Of The World>

 Palais de Tokyo 2013 Dominique 

Gonzalez-Foerster <La Bibliotheque clandestine> 

2013 Photo: Aurelien Mole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Vincennes-Saint-Denis)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현대예술과 뉴미디어아트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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