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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94, Jul 2014

21세기적 유토피아에 대한 예술적 고찰

France

Monumenta 2014: L'étrange Cité

인류 문명의 탄생과 함께 인간은 보다 나은 삶과 사회를 꿈꾸며 진보해왔다.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에 속해있든 이상적인 도시를 구현하고자 했던 인간의 바람은 생존적 차원을 넘어 질적 차원의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시대적 패러다임에 따라 이상도시가 지니는 형태와 내용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상도시의 추구와 실현은 결국 인류의 발전과 진보라는 본질적-목적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절대 불변하는 범인류적 가치이자 과제이다.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Comment rencontrer un ange' Monumenta 2014 Ilya et Emilia Kabakov ⓒ Photo Didier Plowy pour le Réunion des musées nationaux-Grand Pal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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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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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까닭에, 현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법한 지상 낙원,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는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인류 역사상 가장 어렵고 오래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인간이 자연 속에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하며 도구를 사용하고, 문자를 만들어 기록하고 사유하기 시작한 지 수세기가 지났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꿈꾸는 이상도시는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지난 6월 약 한달 동안 파리, 그랑 팔레(Grand Palais)에 기이한 장소 하나가 생겨났다. ‘모뉴멘타 2014(Monumenta 2014)’에 초청된 러시아 출신의 아티스트, 카바코프(Kabakov) 부부가 건설한 <이상한 도시(L'étrange Cité)>다.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눈앞에 신기루처럼 펼쳐지는 카바코프 부부의 이상한 도시를 통해, 21세기형 이상도시를 마음껏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개인의 자유는 물론 표현의 자유가 엄격히 통제되었던 구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를 경험한 카바코프 부부의 예술에는 은밀하지만 과감한 메시지가 담겨있고, 아늑한 평화로움 이면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진실이 탄압받고 사회를 향한 비판과 자기반성이 피를 부르는 공포의 시대를 보내며, 일리야 카바코프는 참혹한 현실을 중의적으로 표현하는 테크닉을 습득한다. 젊은 시절, 어린이 책에 삽화를 그리며 시작된 그의 회화는 무엇보다도 서정적인 시각적 표현과 아주 단순하지만 강렬한 공간구성이 특징적이다. 인상파 화가들을 떠올리게 하는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채와 절제된 구성의 조화로움 속에서 탄생한 카바코프의 중의적 언어는 몰락한 사회주의체제의 단면을 고발하는 한편, 새로운 세상을 향한 간절한 기다림을 표현해낸다. 회화로 시작된 카바코프의 예술세계는 ‘총체적 설치(Total installation)’를 통해 마침내 완성된다. 




<Vue d'ensemble> Monumenta 2014 

Ilya et Emilia Kabakov < L'étrange Cité > 

ⓒ Photo Didier Plowy pour le Réunion des 

musées nationaux-Grand Palais




일차적인 설치행위에 의미를 두기보다 설치를 통해 파생되는 결과들에 초점을 둔 총체적 설치는 새롭게 창조된 시공간에서 관람객이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는지, 또 어떠한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모뉴멘타 2014에서 소개된 카바코프 부부의 이상한 도시는 그들이 이때까지 걸어온 총체적 설치의 결정판이며, 더 나아가 총체적 예술(Art total)로 진화하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흰 벽면으로 온통 둘러싸인 이상한 도시에 등장하자마자, 거대한 <둥근 지붕(Coupole)>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파이프 오르간의 신비한 음색이 흐르고, 그 리듬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색 조명이 둥근 지붕의 내부를 수놓는다. 빛이 관통한 고딕성당의 화려한 장미창을 연상케 하는 지붕은 소리와 빛, 리듬, 색이 만들어내는 이색적인 하모니를 내뿜는다. 작곡가 스크리아빈(Alexader Scriabin)의 소리-색채 결합이론과 음악, 빛, 율동의 조화를 추구한 피스카토르(Erwin Piscator)와 크레이그(Edward Gor don Craig)의 무대연출력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이 둥근 지붕에서 총체적 예술의 태동을 감지할 수 있다. 


아름다운 빛과 선율을 뒤로 한 채, 관람객은 곧 도시 입구에 다다른다. 암울했던 현실의 끝에서 이제 막 유토피아의 땅을 밟는 우리의 모습을 빗댄 것일까. 개선문의 형태를 띤 도시의 입구문은 둥근 지붕이 발산하는 빛을 맞으며 찬란하게 서있지만 문의 오른쪽 어깨는 이미 부서져있다. 총 7개의 독립된 테마를 중심으로 나뉜 이상한 도시는 <비어있는 미술관(Le Musee vide)>으로 본격적인 도시의 형상을 띠기 시작한다. 검붉은 벽지, 금색으로 두른 천장과 문의 테두리, 관람객을 위해 놓인 긴 안락의자는 전형적인 미술관의 내부모습이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파사칼리아’가 잔잔히 흐르는 이 미술관이 특별한 이유는 단 한 점의 작품도 벽에 걸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의 리듬에 맞춰 깜빡이는 타원형의 불빛들이 작품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이 공간은 소리, 빛, 리듬, 색과 같은 순수한 조형적 요소들이 빚어내는 총체적 종합예술의 또 다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비어있는 미술관은 미적 판단이 불가능한 공간이지만, 그 덕분에 관람객은 자신의 감각기관에 의지하여 주어진 상황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La Coupole> Monumenta 2014 Ilya et 

Emilia Kabakov <L'étrange Cité> ⓒ Photo Didier Plowy 

pour le Reunion des musees nationaux-Grand Palais




카바코프 부부는 현대인들에게는 잊혀진 신화와 전설이나 고대인들의 지혜 속에서 이상도시의 모티브를 얻기도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영혼과 사유를 뜻하는 <마나스(Manas)>의 방에는 과거, 티베트 북쪽에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낙원, ‘샴발라(Shambhala)’가 다시 세워졌다. 똑같은 형태의 두 개 도시가 서로를 위아래로 마주보고 있는 샴발라의 재건설을 통해, 작가는 지상과 천상세계의 공존을 시도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전설의 바벨탑,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피라미드, 엘 리시츠키(El Lissitzky)의 연단디자인, 타틀린(Tatline)의 미완성 타워프로젝트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60˚가 기울어진 건축물 구조를 바탕으로, 카바코프 부부는 <우주에너지센터(Le centre de l’énergie cosmique)>를 세운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나선형 형태의 기울어진 이 미래주의형 건축물은 우주에너지를 저장해 영혼을 치유하고 인간의 정신세계를 분석하는 연구소로 이루어져 있다. 대우주와 소통하고 정신에너지를 마음껏 공급받은 관람객은 이제 천사를 만나러 간다. 


<매일 거울을 보며 자기 자신과 대화하고 반성하라>. 이제 백발이 다 되어버린 노부부 작가가 알려주는 천사를 만나기 위한 방법이다. 간단한 내용이지만, 막상 부부가 재현해놓은 인간과 천사의 상봉장면은 아찔하기만 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슬아슬한 나무사다리를 홀로 오르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향해 두 날개를 펼치는 천사. 우린 과연 끝없는 자기성찰을 통해 행복이라는 천사를 만날 수 있을까? 관람객의 눈 앞에는 아름다운 풍경들로 둘러싸인 문 하나가 우두커니 서있다. 카바코프 부부가 창조한 미로같이 얽혀있는 이상한 나라에서 관람객이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이다. 햇살이 가득한 아침부터 컴컴한 밤하늘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빛의 변화를 은은하게 담아낸 풍경들은 인상파 화가들의 색채와 모네(Claude Monet)의 연작형식을 닮아있다. 섬세한 색채톤의 변화를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동일한 높이에서 문을 감싸고 있는 풍경들을 통해 카바코프 부부의 문은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단절이 아닌 통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Comment rencontrer un ange> Monumenta 

2014 Ilya et Emilia Kabakov <L'étrange Cité> 

ⓒ Photo Didier Plowy pour le Réunion des 

musées nationaux-Grand Palais  




관문을 통과하는 순간, 안과 밖, 개인과 공동체, 사적 공간과 사회, 현실과 이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서로가 서로를 교차하는 세상, 바로 카바코프 부부가 건설한 유토피아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의 낙원 끝에는 두 채의 예배당이 있다. 벽면에 퍼즐조각처럼 이미지가 파편이 되어버린 <하얀 예배당(La cha pelle blanche)>과 짙은 갈색 톤의 거대한 그림이 90˚기울어져 있는 <어두운 예배당(La chapelle sombre)>이 그것. 이미지보다 빈 공간이 더 많은 하얀 예배당은 인간의 망각과 흩어져가는 기억들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한다. 뒤이어, 바로크 풍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어두운 예배당에서 작가는 이미지의 회전을 통해 현실(나, 관람객)과 이상(이미지)이 교차하는 시공간의 초월을 시도한다.


멈추지 않는 시간 앞에서 점차 소멸되어가는 것들에 대해 사유하게 되는, 인간의 이상이 투영된 이미지와 현실이 교차하는 이 특별한 예배당에서 21세기적 유토피아에 대한 작가의 예술적 고찰을 살펴볼 수 있었다. 생존만을 위한 삶과 물질적 가치와 안녕은 더 이상 현대인이 바라는 이상도시의 조건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나 자신과 우리의 ‘힐링(healing)’이다. 나와 타자가 공존하고 서로의 영혼을 치유하는 사회, 나 자신의 반성과 비판이 이루어지는 성숙한 사회를 건설한 카바코프 부부의 이상한 도시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찾는 이상적인 도시였는지도 모르겠다.  




Ilya et Emilia Kabakov 

<Etude pour La Chapelle blanche maquette> 

Monumenta 2014 ⓒ Ilya et Emilia Kabakov / 

ADAGP Paris 2014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Vincennes-Saint-Denis)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현대예술과 뉴미디어아트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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