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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95, Aug 2014

루치오 폰타나, 찢어진 단색 캔버스를 넘어서

France

Lucio Fontana,
beyond the slit
monochromatic canvas

다양한 외양은 때때로 다양한 성격을 표현한다. 코 밑에 딱 붙은 콧수염, 회색 정장 차림의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는 여느 시골 은행 사무원처럼 보인다. 수다스러움과 커다란 제스추어의 손짓은 50년대 이태리 영화에 나오는 배우 같다. 흰색 정장의 목에 슬쩍 두른 실크 스카프는 바람둥이 라틴 애인 같기도 하다. 그리고 검정 정장의 모습은 의사나 대학 교수 같달까.
● 김승덕 프랑스통신원

Lucio Fontana et ses 'lunettes spatiales', 1965. Photographie Lothar Wolleh ⓒ Dr. Oliver Wolleh ⓒ Fondazione Lucio Fontana, Milano / by SIAE / Adagp, Pari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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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덕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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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바로 당대 예술의 핵심, 공간 개념을 정착시킨 20세기 최대의 거장 조각가 중의 한 사람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다. 폰타나는 다양한 재료를 다루면서도 끊임없이 일관성 있게 작업 연구를 해온 도예가, 화가, 조각가, 환경 설치작가, 발명가이며 스승이기도 하다.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에서는 이 아르헨티나계 이태리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이 4월25일부터 열리고 있다. 파리에서는 세 번째 개최되는 전시로, 1970년 최초의 회고전이 같은 미술관서 열렸고(작가가 작고한지 2년만이다), 1987년에는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바 있다. 그러니까 첫 번째 회고전이 이뤄진지 17년 만에 두 번째 회고전, 또 다시 27년 만에 세 번째 회고전이 열린 셈이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나의 전시가 기획될 때  그 전시의 가치와 정당성에 관한 질문이 각 시대와 세대에 걸맞게 조심스레 심사숙고되어야 한다.  




<Concetto spaziale(Concept spatial)>, 1961, 

Collection particuliere, courtesy Sperone Gallery, 

New York. ⓒ Fondazione Lucio Fontana, Milano / 

by SIAE / Adagp, Paris 2014




전시는 두 가지 이슈를 동시에 포함한다. 과학적이고 학술적인 연구의 결과를 보여주면서 특히 요즘에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전시 성격도 겸해야한다. 그러나 거의 예외 없이 미술적으로 훌륭한 전시는 특정한 시대적 시점의 문맥과 맞아 떨어진다.루치오 폰타나는 1899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1968년 이태리 밀란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의 가족들은 이태리 롬바르디라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하는데 그의 아버지 루이지 폰타나도 건축가이자 조각가였다. 대가들은 여러 단계의 기법적, 작업적 변화를 거치면서도 매 과정에서 조차 작품의 빼어남을 보여준다. 천재 작가는 성장기를 초월하고, 반발적인 실험기간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안정된 성숙기도 꾀하고, 완벽한 미완성의 미스터리로 이어지는 마지막 한 순간은 서스펜드로 남기도 한다. 그러나 초기 작업부터 고통의 어느 순간까지, 이 모든 시기가 전체적으로 하나의 그림으로 보여지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이다. 폰타나의 경우 그의 생애는 그 어느 시기 할 것 없이 변함없이 훌륭하였다. 그의 꾸준하고 끊임없는 연구 태도와 실천의 결과라 볼 수 있다. 그는 어느 한 순간도 안일하게 손을 놓지 않았다.


폰타나가 초기 짧은 시기에 실험했던 유기체적(biomorphic) 형태의 추상미술은 의심할 여지없이 대가의 작품이다. (그림3, 이 조각품 시리즈는 원래 1934-35년에 제작된 것으로, 다른 전시를 위해 50-60년대에 작가의 손에 의해 재현됐다.) 하지만 그는 이런 형태의 모더니즘을 유럽의 다음 세대들에게 넘긴 채, 세라믹을 사용한 구상 조각에 몰두한다. 복잡한 동식물 형태의 구상 작업으로, 장식적인 모티브, 세련되고 정확한 색감을 특징으로 한다. 당시는 모더니스트의 미학과 미묘한 반대 급부적인 전통을 찬양하는 파시스트 미학, 그리고 애매모호한 이성주의 사이에 커다란 모순이 존재했던 시기였다. 허나 폰타나는 이 모든 것을 넘어선 작업을 당당히 보여준다: 거칠면서 섬세하고 둔탁하며 세련된 작업. 오늘날 다시금 시도되고 있는 네오-모던 키치적 시각으로 이 작업을 보자면 낯설지 않을 법도 하지만, 폰타나 시대의 상황에서 보자면 시대를 매우 앞선 작업이다.




<Ambiente spaziale a luce nera>, 1948-1949 

(DISTRUTTO) cartapesta , vernice fosforescente, 

luce di Wood, dimensioni ambientali




아르헨티나의 전쟁 시기를 거치는 가운데, 아카데믹한 사실주의와 모더니스트 이슈를 오가며 작업에 임하던 폰타나는 점차 작가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젊은 아르헨티나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며 1946년 과학과 예술이 병합된 방향을 추구하는 ‘백색선언(Manifesto Blanco)’을 소개하고 이후 그는 1947년 밀란으로 돌아와서 공간주의 운동에 기반을 다지는 일에 주력한다. 공간주의는 이젤 회화나 받침대 위의 조각 작품 같은 잠재적 개념의 공간을 거부하고 미술과 과학을 통합연구하며 실재적인 공간의 실험을 목표로 삼았다. 폰타나와 젊은 동료는 움직임을 물체에 새기려 했던 미래주의 작가 보치오니의 작업을 더 폭넓게 발전시키려 시도했다. 공간의 연속성을 재료를 통해 강조하는 것이 공간주의의 모토였다. 도자기, 혹은 회화 캔버스 같은 전통적인 재료를 통해 이런 공간성을 구현하기에는 몇 년 간 시간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108쪽 그림1, 110쪽 그림1). 다음부터 살펴볼 1949년 <검은 빛의 공간 환경(Ambiente spaziale a luce nera)>과 1951년 밀라노의 트리엔날레에 출품한 천장의 네온 작업은, 공간주의의 기념비적 순간으로 여겨진다.




전시 전경 




1949년 2월5일 토요일 밀란에 있는 나비글리오 화랑(galleria del Naviglio)에서 폰타나는 6일간 <공간 환경(Ambiente spaziale)> 혹은 <검은 빛의 공간 환경(Ambiente spaziale a luce nera)>으로 알려진 전시를 개최한다(그림4). 어둡고 야광으로 채색된 갤러리 내부 천장에 매달린 조각 작품들은 블랙 라이트가 비춰지면서 형태를 드러낸다. 오프닝 저녁 행사로는 소용돌이 치는 듯한 움직임의 튀튀(tutu) 차림의 무용수가 공간을 휘젓는 모습도 눈에 뜨인다. 관객에게 흰옷을 착용시켜 작품의 일부처럼 야광을 발하게 구상한 것도 눈여겨볼 만했다. 이는 60년대나 볼 수 있는 환경 미술(envirnmental art)을 훨씬 전에 예고했다 볼 수 있겠다. 이때부터 폰타나는 ‘공간적 개념(Con cetti Spaziali)’이라는 제목을 계속 쓰면서 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1951년 밀라노의 트리엔날레 건물 주 계단 위 천장에 설치된 네온 작업은(105쪽) 공간에 흰빛의 드로잉을 설치한 것처럼 보인다: 공중에 떠있는 자유로운 아라베스크 선처럼 보이는 이 작업은 재료로부터 탈피해 무한의 공간을 정복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우주와 같은 신비한 공간성을 조각으로 성취한 폰타나의 작품을 ‘황홀하다’ 이외에 어떤 단어로도 적합하게 표현할 수 없다.


루치오 폰타나의 작업의 영향을 준 미술사적 배경을 알기 위해선, 1915년 말레비치의 절대주의(Suprematism)의 전설적인 첫 전시인 <0.10>을 언급 할 필요가 있다. 분명히 폰타나의 공간주의의 기원은 이태리의 미래파와 거의 같은 시점에 일어났던 러시아 아방가르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말레비치가 시간과 공간을 4차원의 세계로 좁혀가고 있었던 것처럼, 폰타나의 경우 한정된 잠재점으로서의 회화적 공간을 거부하고, 조형의 요소가 자유로이 존재하고 보여질 수 있는 공간을 추구하였다. 이런 형태적 전략은 여러 방법으로 구성되었다 : 공간 속으로 요소들을 펼친다거나, 작품 자체 내에 그 요소들을 나누어 놓는다거나, 구멍이나 길게 가른 틈(그림1, 3, 5), 채색된 화면에서 집합체로 뿌려진 가는 채색된 유리조각들, 구멍난 철로 된 합판 등등... 갈라진 캔버스는 폰타나의 서명과도 같게 되었고 전후 세상에서 위대한 성공작이 되었다. 같은 시기에 즉흥적 추상의 앙포르멜 미술도 전 세계적으로 크게 번창하였다. 폰타나가 50년 말 이래로 보여준 ‘구멍(hole)’, ‘가름(slit)’ 등의 작품은, 개념적 뒷받침에 힘입어 서서히 매우 성공적인 전시들로 자리를 잡았다.




<Scultura spaziale(Sculpture spatiale)>, 1947, 

Muse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Pompidou ⓒ 

Centre Pompidou, MNAM-CCI, Dist. RMN-Grand Palais / 

Christian Bahier / Philippe Migeat ⓒ Fondazione 

Lucio Fontana, Milano / by SIAE / Adagp, Paris 2014  




1968년 생을 마치기 전 마지막 10년의 기간은 폰타나에게 또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열었는데, ‘구체 미술(concrete art)’을 위해서 캔바스, 알루미늄이나 구리 등의 금속판, 나무, 세라믹, 테라코타 등등(fig.E) 합성된 재료를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폰타나는 ‘추상(abstraction)’보다는 의식적으로 ‘구체’라는 단어를 썼는데 재료의 현실성과 구체성 그 자체가 그의 작업의 의미였기 때문이다. 말기 작업에서 폰타나는 일종의 파피즘(Popism) 혹은 디자인에 많은 매력을 느낀 것 같다. 가구 조각처럼 보이는 삼각 좌대 위에 얹힌 매끈한 타원형의 조각 오브제는 근사한 현대식 가정집을 채우기 적합한 물건 같다. 쿼드리포니(quadriphony)의 에드가르드 바레제(Edgard Varese) 사운드 트랙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루치오 폰타나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연구는 그가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진행되었다. 그래서 하나의 시그니쳐 작품만 반복하는 일은 이 작가에게서 찾아 볼 수가 없다. 더 이상 새로운 작업을 하는 데에 관심을 두지 않는 오늘날의 성공한 작가들에게 귀감이 되리라 생각된다. 전시는 8월 24일까지.  



글쓴이 김승덕은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큐레이터다. 삼성문화재단(현 삼성미술관 리움) 자문 큐레이터(1993~2000)를 지냈으며, 파리 퐁피두센터 어소시에이티드 큐레이터(1996~1998)를 지냈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프랑스 아트센터 르콘소시움의 국제 전시기획 디렉터를 거쳐 지금은 공동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야요이 큐사마 순회전(2008-9), 린다 벵글리스 순회전(2009-11) 등 다양한 국제 전시 프로젝트에 공동 큐레이터이자 비평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2013년 베니스 비에날레 한국관 커미셔너직을 그리고  카타르 도하의 뮤셔레뷰 도시개발 공공 미술 자문위원을 지냈고 현재 팔레 드 도쿄의 프로그램 자문위원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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