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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1, Dec 2020

더글라스 고든
Douglas Gordon

인간 본성의 해부학

“만약 무언가에서 진실을 발견하고 싶다면, 그것을 하나하나 분해해 살펴보고 법의학자의 디테일로 다시 합쳐보아라. 그것이 서사를 분석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 과학적인 방식은 이내 서사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들 것이며, 결국 당신은 모순의 미로에서 길을 잃어버린 채 스스로의 망각을 인정해야만 한다.” 매체와 학문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품을 선보이는 더글라스 고든은 도덕적·윤리적 문제, 정신적·육체적 상태, 그리고 집단 기억과 자아를 탐구한다. 자신의 작품 외에도 다양한 문학작품과 전통문화, 할리우드의 상징적인 영화 등을 이용하는 그는 시간과 언어를 유려하게 왜곡시키며 혼란과 도전 속으로 과감히 뛰어들기를 자처한다. 인간에 대한 고든의 관심은 어릴 적 들은 한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한쪽 귀에는 작은 악마가, 다른 한쪽에는 작은 천사가 속삭일 때 어느 쪽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원초적인 인간 본성에 관한 질문은 작가를 완전히 매료시켰고, 지금까지도 그가 천착해오며 작품세계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의 행동과 성격, 즉 인간 본성의 모순과 변동을 보여줌으로써 고든은 현실에 균열을 가하고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영상, 설치, 사진, 텍스트, 퍼포먼스 등 그의 작품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지만, 모든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시간과 장면의 분리, 해체, 재조합의 과정이 녹아져 있다. 특히 작가의 관심은 영화와 비디오 작품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 김미혜 기자 ● 이미지 가고시안(Gagosian) 제공

'The End of Civilisation' 2012 (Film still) 3-screen video installation with sound dimensions variable edition of 3 © Studio lost but found/VG Bild-Kunst, Bonn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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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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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은 일찍이 비디오 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렸다. 1996터너 상(Turner Prize)’을 시작으로 199747회 베니스 비엔날레(47th Venice Biennale)’프리미오 2000(Premio 2000)’, 이듬해 구겐하임(Guggenheim)휴고 보스 상(Hugo Boss Prize)’을 연이어 수상하며 국제적인 입지를 다져나갔다. 비단 예술가뿐 아니라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을 크게 두 분류로 나누곤 하는데, 그저 타고나길 그렇게 태어난 이들과 지대한 노력으로 선천적 재능을 따라잡는 이들이다. 고든에게 이 기준을 적용해 살펴보자면 전자에 가깝다. 그리고 그 이유는 작가의 인터뷰 안에 담겨 있다. “예술적 성향을 처음 발견한 것이 언제냐는 질문에 그는 “10살 때쯤이었다. 한 선생님이 나의 노트에고든의 예술적 면모를 기회가 닿는 대로 지지하고 응원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그리고 부모님은 선생님의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답했으니 말이다.





<Douglas Gordon: 24 Hour Psycho Back and Forth and To and Fro> 

2008 (24 hours) Installation view: Gagosian, New York 14 November, 2017-3 February, 2018 

© Studio lost but found/VG Bild-Kunst, Bonn 2020 Psycho, 1960, USA, directed and produced

by Alfred Hitchcock, distributed by Paramount Pictures © Universal City Studios 

Photo: Rob McKeever Courtesy Gagosian




고든의 첫 작품이자 대표작 중 하나인 <24시간 싸이코(24 Hour Psycho)>(1993)는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영화 <싸이코(Psycho)>(1960)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작가는 당초 110분이었던 영화를 초당 프레임 수를 조정하여 24시간 동안 상영되도록 만들었다. 작품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 트램웨이(Tramway)에서 가장 먼저 공개됐는데, 눈에 잘 띄지 않는 크고 어두운 공간 속 대형 스크린의 앞뒤로 투사되는 영상에는 어떠한 소리도 없이 장면들만 천천히 지나간다. 흥미로운 점은 <24시간 싸이코>를 본 관람객 중 소리를 들었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전에 봤던 원작 <싸이코>에서 기인한 기억의 트릭이다. 또 이와는 반대로 히치콕의 영화를 본 적 없는데 봤던 것이라고 착각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어떤 영화를 본 적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특히 걸작으로 알려진 경우) 작품에 대한 지식이 대중적으로 공유되기 마련이다. 이를 다시 바꿔 말하자면,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긴장된 서사를 완화된 공포, 일종의 불안한 나른함의 형식으로 전환시키며 작가는 묻는다. 우리의 뇌와 연결된 지식이 과연 진실하느냐고. 그리고 자각의 과정에서 우리는 불현듯 깨달을 수 있다. 무엇을 발견해야 하고, 또 놓치고 있는지 말이다2000년대에 들어 고든은 <24시간 싸이코>의 새 버전 <24시간 싸이코 앞뒤로 앞뒤로(24 Hour Psycho Back and Forth and To and Fro)>(2008)를 공개했다작품은 동일한 스크린 두 개가 나란히 설치된 형태를 취하는데이름 그대로 각각 앞으로뒤로 영상이 투사되고 뒤집히며 정교한 이미지가 뒤틀리고 망가진다특히 가고시안 전시에서는 서로 수직으로 설정된 두 개의 스크린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3분의 1로 분해하면서 또 다른 두 개의 별도 이미지를 생성한다전혀 다른예상할 수 없는 형식으로 강렬한 긴장감과 놀랄만한 대비를 선사하는 고든의 기술적 노련함이 <24시간 싸이코>가 당시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는 이유라고 하겠다.




Douglas Gordon & Philippe Parreno <Zidane: A 21st Century Portrait> 2006 Installation view: 

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 Denmark June 23–August 16, 2020 

© Studio lost but found/VG Bild-Kunst, Bonn 2020 & © Philippe Parreno Photo: Kim Hansen




영화뿐 아니라 과학적 푸티지(footage), 고전 문학, 유명 인사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요소들을 비틀어 보여주는 행위는 작가를 고무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와 협업한 <지단: 21세기의 초상(Zidane: A 21st Century Portrait)>(2006)을 살펴보자. 2005 4 23, 스페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타디움(Santiago Bernabéu Stadium)에서 레알 마드리드(Real Madrid)와 비야레알(Villareal)의 경기가 진행됐다. 영상은 레알 마드리드의 미드필더이자 세계적인 프랑스 축구 스타 지네딘 지단(Zinédine Zidane)의 경기 출전 모습을 리얼 타임으로 보여준다. 경기장 주변에 설치된 17개의 싱크로나이즈드 카메라는 오직 지단만을 쫓는다. 경기의 중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도 고정된 렌즈는 줌의 각도와 거리만 바꿀 뿐, 다방면, 다각도에서 그의 모습과 표정을 포착한다. 90분의 경기 시간 중 지단이 볼을 갖고 있는 시간은 불과 2분에서 3분 남짓




<Non-Stop Non-Stop> 2018 Neon in infinity mirrored powder coated steel box Installation view: 

Selfridges, London 7 January-30 March, 2019 © Studio lost but found/VG 

Bild-Kunst, Bonn 2020 Photo: Lucy Dawkins Courtesy Gagosian





하지만 그의 시선은 좀처럼 공에서 떠나지 않고 마이크로초마다 집중하고 있다. 슈퍼스타에 대한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풀 수 있는 어떠한 문맥이나 설명도 없이, 걷고, 뛰어다니고, 땀 흘리며, 거친 숨을 내쉬는 지단의 모습은 순전히 공과 경기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듯 보인다. 그저 위대하고 화려하다고만 생각했던 한 선수의 기나긴 고독과 순수한 외로움을 보여주는 영상은 관람객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대중과 평론의 큰 호응을 받은 <지단: 21세기의 초상> 2007세자르 상(César Award)’ 베스트 다큐멘터리 부분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Play Dead; Real Time> 2003 Installation view: 

Gagosian 555 W24th St, New York, NY 10001 22 February-30 March 2003 

© Studio lost but found/VG Bild-Kunst, Bonn 2020

 Photo: Rob McKeever Courtesy Gagosian




집단 기억과 연결된 심리적 함의를 드러내는 작품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문명의 끝(The End of Civilisation)>(2012)은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경계 컴브리안(Cumbrian)의 깊고 외진 곳을 배경으로 한다. 한때 로마 제국의 국경이기도 했던 문명의 원시적 가장자리에서 가장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악기 중 하나, 아름다운 조각품으로 여겨지며 높은 문화를 상징하는 그랜드 피아노가 불타오르고 파괴된다. ‘2012 런던올림픽(London 2012 Summer Olympics)’ 성화 봉송에서 영감을 받은 고든은 고대 시대 소식 전달을 위해 비콘(Beacon)을 점화했던 전통을 재현하는 동시에, 희망과 소망의 상징으로 지핀 불이 위험과 파괴, 절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층층이 레이어드된 사운드가 여러 개의 스크린을 통해 겹쳐진다. 한 스크린은 피아노가 처음 불타기 시작했을 때부터 잿더미로 변할 때까지의 과정을 클로즈업하여 기록해 보여준다. 또 다른 스크린은 평온한 주변 경관의 패닝(panning) 샷을 보여주는데, 이따금씩 약간의 불꽃 혹은 연기가 스크린 주변부를 침범한다. 아름다운 풍경과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도 맹렬한 불길은 항상 가까이 있고 언제든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결국 인간은 선과 악, 그사이 중간 지점에 머무르며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경계를 오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리고 선택의 순간마다 두 영역 중 어느 경계에 서 있을지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고든은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서 인간의 본성을 응시하며 우리에게 말한다. “보드판과 조각들, 주사위를 제공하는 것은 나다. 하지만 놀아야 하는 것은 당신이다(I am the one who provides the board, the pieces and the dice, but you are the one who has to play).” 

 

 


더글라스 고든

Portrait of Douglas Gordon

 Photo: Studio lost but found / Frederik Pedersen




작가 더글라스 고든은 1966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태어났다. 글래스고 예술학교(The Glasgow School of Art)에서 조각과 환경 미술을 공부한 뒤 슬레이드 대학(Slade School of Fine Art)에서 영화와 미디어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1990년대 국제적 비디오 아티스트로 부상한 그는 프랑스 파리 현대미술관(Musée d'Art Moderne de Paris),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Los Angeles), 영국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했다.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 ‘토론토 국제 영화제(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베니스 영화제(Venice Film Festival)’ 등에 그의 작품이 초청된 바 있다. 현재 베를린을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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