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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89, Feb 2014

박서보
Park, Seobo

아득하고 아련하고 희끄무레하고 거무스름한

오늘날 한국의 컨템포러리 아트 씬에서 가장 활기를 띠고 있는 장르를 꼽으라면 단연 단색화라 답하겠다. 지난 2012년 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의 단색화]전이 대규모로 열린 이후, 크고 작은 단색화 전시가 마련되고 있다. 덕분에 현존하는 단색화 작가들이 바쁜 스케줄에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단색화에 대한 이런 열광은 컨템포러리 아트가 어떠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자국의 역사화 된 미술을 재해석해냄으로써 동력을 다시 얻고자 하는 어떤 충동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상황이 이러하니 단색화 연구 또한 학자들 사이에서 한창이다. 한국의 단색화를 거론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한국 모더니즘의 산 역사, 박서보다. 단색화의 참된 가치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적 단면을, 그에게 물었다.
● 안대웅 기자 ● 사진 서지연

Ecriture(描法) No.060821-08 2008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162×195cm Photo: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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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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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템포러리 아트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 중 하나가 전후 모더니즘이라고 하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야심찬 이론적/미학적 시도들이 바로 모더니즘형식주의와 그 비판 위에서 제기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그것은 한때 모노크롬 회화 혹은 한국적 미니멀리즘이라 불렸던 단색화에 해당한다. 단색화는 70년대 후반 박서보, 하종현, 권영우, 이우환 등에 의해 주도된 운동으로 한국의 추상미술을 ‘완성형’으로 주조해내 90년대 컨템포러리 아트와의 ‘링크’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박서보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하나다. 아니, 단색화 운동 자체가 박서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70년대 후반 시작해 오늘날까지 30여 년간 지속해오고 있는 작업 시리즈 ‘묘법(Ecriture)’은 일군의 단색화 작품 중에서도 세계적인 마스터피스로 잘 알려져 있는 바다. 초기 묘법 시리즈는 여러 단계를 거쳐 제작되는데 우선 캔버스에 밝은 회색이나 연한 크림색 물감으로 뒤덮고 그것이 채 마르기 전에 연필로 선을 긋고, 또 그것을 물감으로 지워버리고, 다시 그 위에 선을 긋는 행위를 되풀이한다. 물렁물렁한 물감은 연필 긋기로 밀려나고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연필로 그리고, 물감으로 지우는 행위의 반복, 그 과정과 결과가 바로 작품이다. “그리는 행위가 곧 아무 것도 그리지 않는 것”을 두고 박서보는 이런 행위가 자신을 지우는 과정이며 몸을 닦는 ‘수신'에 가깝다고 말한다. 




Ecriture(描法) No.070907(R9, GB2)

2007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180×300cm  




“내가 70년대 일으킨 운동이 단색화 운동이지. 그런데 사실 색으로 보는 게 아니야. 5,000년 간의 역사를 가진 우리의 자연관을 통해봐야 하지.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야 분리시켜서 보면 안돼. 때때로 자연을 서양처럼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 지배의 대상으로 봐. 하지만 내 작품에서는 내가 자연의 일부분이니까 분리가 안 되는거야. 동양화에는 원근법이 없어. 그 정신 전통을 회복하기 위해서 (회화적으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그러려면 나를 계속 비워내야 하는 거지. 그렇게 되면 그림은 나를 비워내는 장소이며 도구이다. 그림은 수신의 도구이다. 이런 게 내 생각이었어.”(2014년 1월 17일 인터뷰 중)


자연과 닮으려는 행위 속에서 계속해서 스스로를 비워낸 결과 개성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색이 단순해진다. 자연에 가장 방해가 되지 않는 태도는 색을 자연과 닮게 만든다. 그래서 박서보의 색은 사실 단색이라기보다 희끄무레하거나 불그스름하거나 거무스름하다. 하지만 이런 사실조차도 그의 작업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림은 수신하는 과정의 찌꺼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박서보의 사상은 80년대 이후 한지를 재료로 삼아 작품을 제작한 후기 묘법에 와서도 크게 다르지 않게 나타난다. 후기 묘법은 캔버스에 한지를 붙이고 규칙적인 붓질을 반복해 수직의 움푹한 고랑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은 곧은 선들이 조형적으로 배치된 모던한 추상 미술이 된다. 하지만 박서보의 문제는 선 자체라기보다, 선과 선 사이의 골짜기를 다스리는 일이다. 그는 수신하는 기분으로 선과 선 사이의 골을 수없이 반복해서 칠하는 사이에 나를 비워낸다고 한다. 




Ecriture(描法) No.100920 2010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200×440cm Photo: Yun Sang-jin  




이렇게 만들어진 질서정연한 화면 속에 단순한 사각 형태가 군데군데 노출되어 있다. 박서보는 이것을 ‘숨구멍’이라고, 그리스 평론가 니코스 파파스터지아디스(Nikos Papastergiadis)는 ‘정신의 창’이라고 불렀다. 물질을 보면서 무위를 음미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단색화의 묘미일지도 모르겠다. 한때 많은 미술사학자와 평론가들은 박서보의 작업을 두고 서구의 이론적 잣대를 적용하려고 애쓰곤 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형식주의 이론, 일본화된 미니멀리즘이라 할 수 있는 모노하 이론,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론, 호미 바바의 후기식민주의 담론 등 일일이 열거하기 벅찰 정도다. 이런 이론적 시도를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외래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예시화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도 없었다. 미국의 저명한 미술 평론가 로버트 모건(Robert C. Morgan)은 박서보의 회화가 모더니즘 회화가 아니며 그렇다고 미니멀리즘의 특징을 공유하지도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의 회화는 실질적인 창작 과정보다 내재적이고 이론적인 측면, 즉 피상적인 가치에 더욱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매체특정적(medium-specific)이지 않다는 것이다. 또 그의 관점에 따르면, “미국의 미니멀리즘은 표현을 배제한 구성의 중립을 고집한 반면, 한국의 모노크롬 작가들은 감축하여 단순화시키는 방법과 색채를 통일시키는 방법으로 표현의 새로운 형태를 탐구하는 데 열중하였다. 따라서 한국작가들에게 평면회화에서의 감축은 표현의 배제와 동의어라 할 수 없다.”  또 이런 저런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미니멀리즘은 3차원의 ‘특정한 오브제(specific object)’를 다루는 입체 사조고, 박서보의 회화는 여전히 ‘회화’로 남아 있다. 박서보는 모건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회화와 미니멀리즘의 차이를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사람들은 저의 최근 작업이 미니멀 아트와 유사하다고 하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의 작업은 동양적 공간의 전통, 즉 공간에 대한 정신적인 개념과 좀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저는 자연적 관점으로서의 공간에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 이와 같은 경향은 최근 작업뿐 아니라 70-80년대의 작업에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Ecriture(描法) No.6-69 1969 

Pencil and oil on canvas 91.6×69cm 

Collection of Artist, Seoul  




한편, 보다 최근에는, 작가의 사상과 세부 작품에 대한 미술사적 기술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요청에 부응해 재미 미술사학자 조앤 기(Joan Kee)는 최근의 단색화 연구서를 통해 초기 ‘묘법’ 시리즈의 개별 작품의 방법론을 자세히 분석함으로써 70년대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종종 사회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되었던) 박서보의 회화와의 관계에서 도출된 독특한 시각성을 밝혀내고 있다. 그녀의 관점에 따르면, ‘묘법’은 저항의 코드는 아니었지만 70년대의 억압적인 사회에 사는 “관람자의 관심과 뚜렷하게 공명하는 ‘보는 경험’”을 중심주제로 삼았다. ‘묘법/Ecriture/描法’이란 제목 자체에 나타난 묘사하기(depiction)와 쓰기(ecriture)의 양의성처럼, 박서보의 ‘묘법’은 읽을 수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읽거나 쓰지 않더라도 그들이 너무나도 직시할 수 있었던 유신 시대를 사는 한국 관람자 안의 인식을 원위치로 회복시키기 위해 그것을 ‘묘법’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계획된 규범의 강제에 의해 강압적으로 결정된 사회에 대항하기 위해 규범과 떨어져(alone) 보는 행위를 인식하려고 한 박서보는 충분히 실천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박서보에 대한 이런 색다른 해석 자체도 흥미롭지만, 조앤 기의 저서의 경우 최초의 영문판 단색화 연구서일뿐만 아니라 권위 있는 저작상 Charles Rufus Morey Prize의 후보로 올랐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제 단색화가 단순한 동양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에서 이론적 연구의 대상으로 고려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룰 것은 다 이룬 듯 보이는 작가에게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글을 쓰고 전시회를 가지고, 또 미술관을 지어야겠다는 것이 그의 대답. 당장 올해 3월에는 싱가폴에서 영문 자서전이 출간될 예정이고 예천과 제주에서 박서보 미술관 건립이 기획 단계에 있단다. 또 8월에는 국제갤러리, 9월에는 세계적 화랑 블룸 앤드 포(Blum and Poe) 갤러리에서의 기획전에 참여한다 . 팔순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비결을 물으니, 알쏭달쏭한 귀띔을 한다.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변하면 추락한다.” 




Ecriture(描法) No.950815 1995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227.5×182cm Collection of Artist, Seoul




박서보




박서보는 1931년 생으로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엥포르멜부터 미니멀리즘까지, 한국에 추상미술을 안착시키는 데 큰 공로를 이뤘다. 특히 다단계로 변화해온 그의 묘법 회화는 동양적 사상을 바탕으로 그리기의 행위, 수행성을 강조하여 서구의 방법론을 넘었다고 평가된다. 전갈자리의 기운을 타고 태어나 정열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성격을 갖고 있는 그는, 1962년 대학 강단에 선 이후 1997년까지 홍익대학교에서 교수·조형미술연구소장·산업미술대학원장·미술대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 외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부회장(1977-1979)·한국미술협회 이사장(1977-1980) 등 그가 거쳐간 직함을 일일이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1994년 서보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한 이후 지금까지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파리비엔날레(1963)와 칸국제회화전(1969), 베니스비엔날레(1988) 등 각종 국제전에 출품하였고, 대통령 표창, 중앙문화대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국민훈장 석류, 서울특별시문화상, 옥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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